타오르는 프로메테우스의 차가운 횃불 22: Chae Mi Hee
타오르는 프로메테우스의 차가운 횃불 22: Chae Mi Hee
  • 문종필
  • 승인 2020.08.2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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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기본 양식
사진 작업 = 한송희 

 

열심히 살아. 정직하게. 떳떳하게. 우울과 
클리셰의 거울 이미지. 서사화 그리고 이미지의 
배신. 문학 작품을 읽을 시간이 있다면, 부모님께 
안부를 한 번 더 묻고 스트레칭을 한 번 더 하며 
지금 이 사회에 필요한 운동과 글을 생산하고 
있는 연구자들의 글을 소비하라. 문학 서적을 
구매할 돈으로 친구에게 밥을 사고 애인에게 
꽃을 선물하고 나 자신에게 영양제를 선물하라.
(「index.」 부분)

 

1

장현 시인의 『22: Chae Mi Hee』을 주머니에 구겨놓고 허름한 카페로 달려가 단숨에 읽었던 그날을 뚜렷이 기억한다. 이 시집을 읽고 난 후, 장현 시인에 대해 아느냐고 동료들에게 다소 흥분된 어조로 떠들었던 6월의 어느 여름밤을 선명히 기억한다. 무의식적인 그의 글쓰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일까. 좋은 시집을 선택하는 데 있어 취향의 영역이 강하게 작동하겠지만 지금도 이 여운을 쉽게 떨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시집에 불필요한 해설을 수록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든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나는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일까. 26살에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장현 씨의 목소리를 몽상하는 것으로 이 글을 끝마치도록 한다. 

이 시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패기(覇氣)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독자들께서는 시집 15쪽부터 32쪽까지 이어지는 「선생님께」를 읽어 주시라. 어떤 기분이 드는가. 문학을 좋아하는 친구와 치맥을 먹으며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현장에 와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무슨 이유로 이 화자는 이렇게 진지하게 불만을 토로하느냐며 의아해하면서도, 그의 입장에 기대어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게 되지 않는가. 화자는 말한다. “선생님 제가 할 줄 아는 것과 하고 싶은 건 일기 쓰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렇다. 그는 일기 쓰는 행위를 통해 시집 속에 거친 물결을 만든다.    

시집 속 화자는 대상을 응시하기보다 내 안에 있는 ‘나’를 주의 깊게 쳐다본다. 잔잔하거나 서정적이기보다는 묵직하고 단단하게 ‘나’를 응시한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냉철하다. 그는 이 방식을 배워서 실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적합한 형식을 예술사에서 ‘선택’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우리는 인간짐승을 대상화하여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자체를 인간짐승으로 그려야 한다 / 야스거 욘은 말했다”라고 말이다. 이 발언에 동의한 화자는 자신 안에 있는 ‘인간짐승’을 끌어올린다. 이 행위는 무의식을 길어 올리는 것과 관계있다. 무의식은 무엇인가. 함부로 말할 수 없어 숨겨야만 했던 짓눌린 흔적이 겹겹이 쌓여 단단한 화석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이 응어리가 상처로 남아 주체의 살갗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숨죽이며 홀로 품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이러한 탓에 우리는 ‘인간짐승’ 하나쯤은 가슴 한쪽에 달고 살아간다. 이 흔적이 외부로 드러날 때는 뒤틀림을 동반하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부조리를 습관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괴물’을 쉽게 끌어올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짐승을 끌어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장현 시인의 화자는 이 무게로부터 달아나려고 한다. 역겨운 틀을 어깨에 짊어지기보다는 비상을 위해 자신의 날개를 쓰다듬는다. 

독자들께서도 어렵지 않게 짐작하겠지만 그가 ‘선생님’을 호칭하고 ‘선생님’의 가르침에 반항하는 이유는 이러한 맥락을 담고 있다. 그는 패기 있는 목소리를 담아 첫 시집 첫 작품에 선보인 것이다. 그는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예술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이제는 내 문학을 마음껏 하고 싶다고, 새로운 문학을 해보자고 말이다.  

 

선생님, 이제 강의실 단상에서 자신의 소설을
진지하게 낭독할 필요는 없으세요 선생님이 
안쓰럽습니다 저희는 소설에 대해 고민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오직 저희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우리로부터 달아난 것 같습니다 선생님, 방학을 마치고
새 학기에는 새 셔츠를 입고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사건은 그것입니다
(「선생님께」 부분)

그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집에서 소설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시집에서 시인이 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소설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따지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장현 시인은 시와 소설이라는 장르에 얽매이기보다는 쓰는 행위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다시 말해 ‘나’가 무엇인가를 쓴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 행위를 위해 여러 매체가 동원된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소설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근대의 멋진 선배들처럼 여러 장르를 오고 간다. 이러한 이유로 시집에는 소설가의 일상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패턴들」에서 자신의 소설 심사평을 여과 없이 인용한 것도 이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그가 소설과 시 사이를 넘나들고 있기 때문일까. 시집에 등장하는 채미희는, 소설 쓰기로 인해 파생된 인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아니면 동인이명(heteronym)을 활용한 예술가의 놀이로도 볼 수 있겠다. 장현 씨는 이 인물을 정치적으로 활용한다. 따라서 화자와 소설(시집)을 함께 쓰는 채미희는 시집 속 화자와 다르지 않고 시인과도 분리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앞선 두 방법과 다르게 펼쳐진 「아비뇽의 다리 위에서」와 같은 작품이 시집 속에 포진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문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다. 

날개를 먹어버린 새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새를 따라 움직인 것이 인간의 춤이라는 것이다

 

발레를 배웠다던 애인이 내게 손을 내민다 나는 그 손을 잡는다 애인은 우리가 처음 춤을 춘다고 했다 나도 애인과 추는 춤은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이 손을 잡고 있다

 

애인의 가슴이 내 가슴에 닿는다 나는 턱을 붙이며 끌어당긴다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슬프다고 했는데 애인은 반듯한 원을 그리며 스텝을 밟는다 그래도 슬프다 했다

 

나는 그 손을 놓친다 애인은 끊어진 손으로도 미소를 짓는다 하얗게 보였는데 자꾸 하얘지다 보면

 

저러다 사라지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나 모르게 예쁜 사람이 되어 혼자와 춤을 연습한 것이 틀림없다 내 손에 남은 드레스 슬리브를 날개처럼 흔들었다 애인이 저리도 하얬나 투명했나, 나를 다 출 때까지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처음 춤을 춘다고 했고 애인도 나와 추는 춤은 처음이라고 했다 아무도 보지 못한 구름다리에서 내가 속으로 했던 나쁜 말을 애인이 기억할까 봐 발을 빨리 굴렀다

 

지칠 때가 되었는데 계속 춤을 춘다 내게서 태어난 나쁜 말들은 날개 안에 숨기고 하얀 새 이야기를 쓰자 새가 태어나고 날고 마지막엔 땅에 내려와 인간에게 투명한 춤을 가르치는 이야기 

 

날개와 새를 따로 적는다 흰과 춤을 붙여 쓴다 애인이 옆으로 온다 이야기가 아직도 슬퍼? 

 

누군가는 장현 씨의 『22: Chze Mi Hee』를 보고 구호만이 존재하지 않느냐고 비판할 수 있다. 구호를 빼면 무엇이 남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는 일기 형식을 통해 용기를 불어넣었고 동시에 이와 같은 서정시도 만들어낼 줄 안다. 독자들은 장현 씨가 무게 중심을 두고자 하는 방향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채미희와 화자가 서로 주고받는 대화는 우리들이 말하지 못했던 것을 대신 말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쾌감을 선사한다. 시인은 대상을 응시하며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기보다는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를 정직하게 써 내려 간다. 그래서일까. 장현 씨의 시집처럼 ‘나’를 ‘직설적’으로 내뱉은 시집은 정말로 오랜만이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뒤에서 속삭이는 것과 큰 소리로 발화하는 것은 다르다. 후자는 용기를 품고 있다. 장현 씨는 우리들에게 그것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 시집은 독자들에게 타격을 준다는 점에서 좋은 시집이 될 수도 있겠지만, 무관심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예술사에서 진정한 예술의 등장은 무관심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메이저 출판사에서 출간된 시집이니 많은 평자들이 『22: Chae Mi Hee』을 다양한 방식으로 주목하리라 본다. 이상으로 인사동 허름한 카페에서 적은 메모를 끝마치도록 한다. 


글쓴이: 문종필 인천에서 태어났다. 산책하는 것과 영화(만화) 보기를 좋아한다. 최근에는 바다 수영에 도전해 무사히 완영했다. 잔잔한 사연이 있는 인디음악을 좋아한다. 2017년 《시작》 신인상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평론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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