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간담회] 등단 제도와 문예지 시스템, 이대로 괜찮을까? (1)
[기획 간담회] 등단 제도와 문예지 시스템, 이대로 괜찮을까? (1)
  • 김보관 기자
  • 승인 2020.08.26 16:47
  • 댓글 0
  • 조회수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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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행사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 이전(8월 15일)에 진행되었습니다.

[사진, 편집 = 김보관 기자]

사회: 이민우 뉴스페이퍼 대표
참여: 문종필 평론가(2017년 데뷔), 우다영 소설가(2014년 데뷔), 이소연 평론가(2008년 데뷔), 한의연 작가(반년간문학잡지 비릿 be:lit 에디터), 한소리 작가(웹진 아는사람 기획자)

 

민우: 최근 등단 제도와 문예지 시스템을 둘러싼 활발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시인동네 고영 사태를 통해 우리는 ‘공공재’로 인식되어 온 문예지의 모순을 마주했습니다. 등단 제도를 통해 작가를 만들고 문예지 지면을 발판 삼아 책을 만들기 전까지의 원동력을 만드는 일련의 시스템은 그 한계점이 명확해 보입니다. 그간 SNS를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오늘 좌담회를 통해 구체적인 논의와 기록을 이어가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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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일부 문학단체 등에서 이른바 ‘등단 장사’를 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지인을 데뷔시켜주거나 돈으로 작가의 자격을 사고팔기도 하죠. 몇몇 문예지의 사례에서 등단 자체가 권력을 내포하는 듯하기도 합니다. 

문예지가 ‘등단’이 목표가 아닌 내 글을 알릴 수단이나 기회가 되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대체로 많이 보는 지면을 통해 추가 청탁이 이뤄지다 보니 메이저 문예지들의 경우 큰 구조들에서 상을 준다든가 하는 행위가 반복됩니다. 일련의 한계에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고요.

근래 이러한 한계들로 인해 잡지나 문예지, 웹진 등 대안 매체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이때, 자본적인 문제가 큽니다. 문예지발간지원기금을 받아가는 대형 출판사는 “기금을 받아도 손해를 본다”고 하는데요. 현재 지원사업은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유지하는 걸 계속 이끌어준다는 느낌이 강해요. 생태계의 다양화와 활성화를 위해서는 5년이 지난 곳에 가는 지원을 줄이고 신진 문예지에 더욱 많은 힘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신진 매체가 생겨나면 공급이 많아지고 더욱 긍정적인 방향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민우: 문예지발간지원사업이 기존 문예지 생태계를 유지시킨다는 지적은 꾸준히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문예지발간지원사업은 이름과 달리 작가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보니 기관지나 기존문예지를 지원해야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있어 그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공개 발표된 예술활동을 통한 문학 분야 예술활동증명기준 [출처 =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소리: 예술인 등록 같은 경우에도 수익이나 지면에 발표하는 작품을 기준으로 나뉩니다. 시인의 경우 ISBN을 부여받은 서적 중 문예지의 경우 결호 없이 3년 이상 발간된 월간지 또는 5년 이상 발간된 격월간, 계간, 반연간 문예지에서 시를 다섯 편 이상 발표해야 하는 형식이지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문예지를 5년 이상 지속하기가 굉장히 힘든데요. 일련의 상황 때문에 ‘돈을 내고 작품을 발표하면 예술인 창작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등의 등단 장사가 심화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은 돈이 있어야 하는데, 이미 있는 사람들은 적으로 제도를 개선할 이유도 의지도 보이지 않는 듯해요.

민우: 사실 문예지가 세력화됐다는 지적도 있었는데요. 모임이나 동아리 또는 특정인들을 위한 문예지처럼 되어가며 공공재라는 의식과 달리 실질적으로 모두에게 열려있는 건 아니지 않나 싶어요. 당연히 자본적인 한계도 뒤따르고요.

소연: 판매 수익으로서 기본적 유지가 되고 지속이 가능해야 하는데 지원금에만 기대는 상황 자체가 구조적 모순이 아닐까요. 사실 수요가 많지 않고요. ‘순문학’이라는 하는 부분의 독자 급격히 줄어드는 현실이고요. 시장 파워가 있는 문학동네나 창비에서도 순문학 단행본 등은 ;‘한국 문학에 기여한다’는 의식 하에 내주는 것에 가까워요. 시장 전망이 불확실한데도 불구하고 출판해주는 것조차 없으면 문학 시장이 고사하니까요.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해요. 현재 우리가 독자를 만날 수 있고 책을 팔 수 있는가. 거기에 추가적으로 정부 지원금이 붙어 두 가지가 같이 나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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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궁금한 점이 있어요. 왜 전자책으로는 내지 않는 걸까요? 최근 웹과 모바일로 보는 독자들도 늘어나는데 아직도 종이책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얼까요?

민우: 다수의 문예지가 전자책으로 바꾼다는 데에 동의했지만, 실제로 변경할 의사가 있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로는 기술력의 한계를 가장 많이 꼽았고요. 

종필: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언어도 물질인 만큼 어떤 작가든 촉각적인 감정을 중요시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책에 대한 시도는 하고 있는 듯하고요. 다만 현재 문예지라는 100년의 전통이 기차처럼 지나가고 있는데 이를 멈추기에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소연: 전자책이 대부분 손해로 이어지기도 해요.

종필: 젊은 친구들은 처음부터 스마트폰을 만지며 자란 세대들이잖아요. 그래서 그들이 매체를 바라보는 감각은 또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매체 전환이 불가능한 것 같지는 않은데 과도기에 서 있지 않을까요.

소연: 지금 웹진들도 전자책으로 안 만들 거든요. 전자책으로 얹고 약간의 편집을 거치면 되는데 하지 않아요. 종이책으로 입지를 다진 회사가 전자책으로 옮기면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지 비용 절감이 아니에요.

소리: 조금의 희망이랄까, 달라진 점이 있기도 해요. 저는 창작자보다 독자의 입장으로 많이 모는데, 최근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게 전자책 위주의 시리즈인데요. 에세이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류를 좋아하는 층도 있어서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가장 최근의 아무튼 시리즈
가장 최근의 아무튼 시리즈 “아무튼, 언니”

소연: 매체의 문제가 아니라 콘텐츠 자체를 봐야 해요. ‘아무튼’ 시리즈는 이른바 B급 감성이 있어요. 지금 비슷한 컨셉으로 청탁을 받았는데 계속 쉽게 써달라고 요청이 들어와요. 이슬아 작가의 메일링 성공에는 메일링 자체도 있지만, 접근하기 쉬운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해요. 우리가 ‘순문학’ 시장을 이야기 할 때, 그것과 구별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순문학과 장르문학, 대중문학과의 경계가 너무 견고해요. 하지만 A급, B급으로 치부하는 그 경계 자체가 무용하다고 생각해요. 그 구분이 현재는 의미가 있지만, 앞으로는 그 장벽을 깨야 하지 않을까요.

종필: 그러니까 지금 현재 문예지에 나오는 글들은 소통이 덜 되고 있다는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어요.

소연: 하드웨어의 문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문제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안 팔리는 책들의 하드웨어만 바꾼다고 독자들이 의미 있게 느낄까요? 현재의 문학 자체를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소리: 독자들은 ‘순문학’을 잘 몰라요. 사실 저희 같은 사람들이나 알죠. 사람들은 ‘문학’하면 그냥 그런 작품들을 떠올리지 이른바 ‘순문학’이라고 불리는 작품을 보여주면 어렵다는 반응을 보여요. ‘순문학’이라는 말이 계속 안에서 돌고 있다는 느낌이 강한데요. 이것은 고립이 아닐까요. 이러한 틀을 부수어야 하는데 계속 남겨두는 듯해요.

종필: 좋은 문학에 대한 정의도 저마다 다른데, 어느 순간부터 제도권에서 학습된 시각으로 작품을 바라보게 돼요. 우리가 배워 온 개념들을 없애버리는 방법도 있어요. 새롭게 출발해 새로운 개념들을 만들어가는 거죠. 다만 걱정이 있는데 일련의 개념이 관성이라는 거죠. 이 정서는 기차처럼 지나가는데, 이걸 멈추기 쉽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하고요. 매체도 잡지도 마찬가지예요. “던전”이나 “비릿” 같은 곳들처럼 새로운 지도를 만들 필요가 있어요. 달리는 기차를 어떻게 막겠어요. 관성을 막으려면 우리만의 방법을 만들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사실상 기존의 선배들에게 패권을 줘버리는 거예요. 하지만 그 선배들이 나쁜 게 아니에요. 그들도 목숨 걸고 자기만의 문학을 했거든요.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맞는 문학을 우리가 고민하고 바꾸어 나가야 해요.

소연: 결론은 우리가 문학 권력이라고 하는 대형 출판사, 이를테면 창비도 사실 시작은 아비를 죽이고 나왔거든요. 이전의 문학을 단절하고 4.19정신으로 새로운 세계를 선언하고 나왔어요. 그때는 그것이 용기였고 단절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들이 또 다른 ‘아비’가 된 거잖아요. 많은 이들이 창비의 문학 권력을 비판하지만, 그 누구보다 목숨 걸고 투쟁했던 사람들인데 지금은 관습이 되어버린 거죠. 지금은 2000년대의 뭔가를 구축하지 못했어요. 90년대 것을 끌고 올 게 아니라 2020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어야 해요. 과감하게 단절할 것은 끊어내어야 하고요.

다영: 그런데 그 과감한 단절이 예전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자생할 수 있는 시장이 있고, 베스트셀러가 나오고, 어찌 되었든 책이 충분히 판매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지금 새로 나오는 출판사는 책이 영화만큼 잘 팔리던 그때처럼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기 어렵죠. 그렇기 때문에 국가 지원금을 받고 문예지를 낸다고 해도, 자생이 안 되는 현재 문예지 시스템을 개선하는 방식이 아니라 죽어가는 문예지에 심폐소생술을 해서 연명하는 방식이 되고 있어요. 이러면 끝이 없죠.

사실 이렇게 생각해요.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각자 자기가 원하는 문학의 실체가 있을 거예요. 크게는 편의상 나눠 놓은 장르로 구분될 수 있을 테고, 그 안에서도 취향의 차이로 나뉠 거예요. 문학 안에 호오의 영역이 있고, 무관심의 영역이 있고, 또 인정할 수 없는 배척의 영역이 있을 수도 있어요. 각자의 좋아하는 문학과 취향이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하지만 지금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르고 ‘내가 좋아하는 문학’을 알릴 기회가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음악으로 예를 들면 주류에서 물러나 있었던 힙합이나 트로트가 부상하게 된 것도 어떤 매체와 프로그램을 통해 관심을 끌고 팬층이 형성되고 그들이 서로의 취향을 서로 이해하며 시장 자체가 늘어나는 방식이었는데요. 문학도 그렇게 되려면 문예지가 지원금을 받아 단순히 새로운 문예지를 하나 더 만들 게 아니라 ‘어, 저거 되게 재밌겠다.’, ‘저거 멋지다.’, ‘나도 읽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들 수 있는 곳에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또 우리가 프로듀스101을 할 수는 없잖아요? 물론 재미야 있겠지만. (웃음)

종필: 자본주의에 살고 있잖아요? 그 시장 안에 포섭되어있는 상태에서 자본을 멀리하는 건 적합하지 않죠.

한소리: 문자 투표도 진행하고요. (일동 웃음)

종필: 일련의 흐름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자본과 힘을 합치고 목소리를 내고 이런저런 과정에서 새로운 지도를 만들지 않으면 똑같은 관성의 기차를 타고 계속 가게 돼요. 영원히 멈추지 않은 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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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연: 어느 한쪽을 악역으로 설정해두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현실이 그렇지만은 않다고 봐요. ‘대형 출판사들이 나쁘다’, ‘모든 것이 국가 책임이다’ 이렇게 접근하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죠. 국가 지원이 기성 출판계에 쏠리는 건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게 그들이기 때문이겠죠. 참고할 만한 자료나 지표는 극히 제한적인데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등단’이라는 전통적인 기준도 거치지 않은 이들이 내는 목소리에 국가 이름으로 지원을 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거라고 봐요. 쉬운 일이 아닌 그런 일을 추진하려면 어마어마한 공무 집행력이 들어갈 거고, 결국 그 모든 과정이 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가에 의무감을 기대하긴 힘들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돈이 문제예요. 비릿은 현재 4호 제작을 진행 중인데, 저희 같은 경우 매호 제작비에 800에서 900만 원가량의 기초 예산이 필요해요. 원고료에 인쇄비에 디자인비까지 해서 최소로 계산했을 때. 이런저런 기타 비용을 고려하면 사실상 1000만 원 내외의 비용이 지출되죠. 매호 예상 판매량을 생각해서 인쇄 부수를 달리하고 있는데, 대부분 다 팔려도 본전을 얻을 수 없는 구조예요. 다 팔릴지도 미지수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이게 과연 지속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자꾸 드는 거죠. 이게 과연 지속 가능한 시장인가? 투자는 계속해서 이루어지는데 그와 비례하는 최소한의 결실을 기대할 수 있는가? 우리는 왜 이걸 하고 있는가... 이런 막막함이 있어요. 지속할 자신감을 갖는 게 쉽지 않아요. 저는 문학계 대형 출판사들이 꼭 얻는 게 있어서 문예지 사업을 내려놓지 않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비교적 어떤 바탕이 마련되어 있으니까 지속해올 수 있었던 일이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 자신은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럼에도 날 선 비판을 받으면 힘이 빠지는 것도 이해가 돼요. 

그래서 저는 (현재로선 불가능해 보이기는 하지만) 체제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곧 돈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이고, 웹툰을 보든 웹소설을 보든 유튜브를 통해 영상이나 음악을 감상하든 소비자 개인이 어떤 창작물을 소비하기 위해 직접 돈을 지불하는 구조에서 벗어나고 있거든요. 넷플릭스 또한 개별적인 작품 감상에 대한 비용 지불이라기보다는 플랫폼 이용료에 가깝죠. 한 달에 0편을 보든 100편을 보든 이용료는 같으니까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문학·출판 시장은 여전히 근대적인 구조에 머물러 있어요. 아까 전자책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아마 그렇게 쉽게 기존의 틀을 벗어낼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당장 전자책으로 다 돌려버리면, 인쇄소들은 어떻게 될까요? 책을 만들어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출판 산업의 규모가 아무리 작아졌다고 해도 그 안에서는 모두 하나같이 엮여 있기 때문에 저버릴 수 없는 관계가 있을 거예요. 

출판사는 말 그대로 책을 만들어서 출판사인데 그들에게 웹진 체제나 전자책 출판으로의 대대적인 전환 같은 것들을 기대해도 되는 걸까요? 출판사 입장에서는 아예 플랫폼이 바뀌어야 하는 거잖아요. 문학이 책이라는 물성을 갖는 매체와 어느 정도 헤어질 때가 됐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문학이 책을 버리려면 너무 많은 고통이 수반된다는 점, 이 점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반연간문학잡지 “비릿” [사진 출처 = 비릿]

소리: 혹시 “비릿”은 독립 잡지인가요? 왜 이 질문을 드리냐면 저도 웹진 기획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런 독립 매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몇 가지 있어요. 메이저가 되고 싶은 거야? 너네도 다른 문예지처럼 많이 팔리고 많이 읽혔으면 좋은 거 아니야? 같은 이야기들이 나와요. ‘독립’을 요구하는 시선들이에요. 그래서 스스로 그렇지 않다고 검열하는 사례도 많고요. 근데 저는 사실 문학 시장 내에서 독립과 상업을 나누는 게 모호해졌다고 생각해요.

종필: 쉽지 않은 게 인간 본성으로 들어가면 누구나 자기애, 나르시시즘, 인정 욕망이 있어요. 궁극적으로 여러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바람이 있다고 봐요.

소리: 독립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가 고민되는 부분이에요. 우리가 ‘독립 문예지’, ‘독립 잡지’라는 것을 말하는데 독립 매체라고 해서 굳이 상업성을 멀리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지만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너 왜 독립이라면서 상업적으로 왜 출판사를 하려?’ 이런 게 은근히 심해요. 만드는 쪽에서 출판사 신고하고 ISBN을 받으면, ‘너네 독립매체 아니잖아, 상업용으로 하는 거 아냐?’라는 이야기들도 많이 들어서 오히려 이런 절차를 피하는 분들도 있어요.

소연: 지나친 자기검열인 것 같아요. 그럴 필요 없어요.

의연: 저희도 “비릿”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독립출판의 기준점이 무엇인지 고민해본 적 있는데 딱히 납득되는 기준점이 없었어요. ISBN 등록 여부로 구분하는 시각도 있지만, 그러한 구분법은 다소 투박하게 느껴지고요. 그보다 중요하게 느껴지는 건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인가.’하고 자문하는 일이에요. 문단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인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인가. 우리를 옭아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독립의 대상이 될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지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무엇보다 저희를 괴롭게 하는 건 결국 돈이니까요.

등단 이야기로 잠깐 이어가자면, 저는 등단제도가 처음부터 작가들을 길들이는 구조였다고 생각해요. 시작부터 권력의 인정을 받음으로써 자신감을 얻게 되잖아요. 통과를 못 하면 끊임없이 ‘내가 잘못됐구나’ 하는 자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요. 등단하고 나서도 몇 차례의 기회를 받고 거기서 제대로 된 임팩트를 못 남기면 청탁 줄어들고 잊히는 작가가 되어가고요. 작가 개개인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실력을 믿을 수 없게 만드니까 예술가로서 확신을 가지기 어렵죠.

이러한 맥락에서 독립출판을 바라볼 때 제가 초점을 맞추고 싶은 지점은 능동성이에요. 수동적으로 기회가 오길 기다리는 데 머무르지 않고 내가 내 돈 들여서 만들고 독자와 만나겠다는 의지를 보아주잖아요. 저는 독립출판물의 퀄리티를 판단하기 이전에 그들의 능동성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문학에서 많이 사라진 것은 그런 의미에서의 활기나 에너지라고 보고요. 

미래파나 후장사실주의가 등장했을 때 한국문단에서 나타났던 방어기제도 정말 웃겼어요. 시나 소설은 그런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식의 반응들. 좁은 울타리 안에 선비들처럼 모여서 ‘감히 어떻게 저런 말을.’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거죠. 

독립출판의 흐름에서 서툰 면이 보이는 건 사실일 수 있지만, 그냥 무조건 ‘쟤들은 허접하고 그래서 안 돼’ 하고 편견과 힘으로 찍어 누르려는 시각은 이제 없어져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그리워하는 근대의 시인이나 작가들도 자기들이 잡지 만들어서 시작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그들이 혁명가였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으로선 혁명가를 기대하기 힘든 구조 같아요.

소연: 맞아요. 혁명가를 기대하기 힘든 구조라는 게 문제에요.

다영: 문학동네가 20년이 넘었잖아요. 처음 나왔을 때는 작은 출판사였어요. 공고한 기존의 출판사들에 대항해서 젊은 작가와 평론가들이 모여서 만들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지금의 문학동네가 되었을까요? 여러 문학상과 신인상, 등단제도를 만들고 거기서 유명 스타작가들이 나왔어요. 분명 좋은 작가들을 배출했고 그 자체가 혁명의 근거가 되었어요. 근래에 와서는 한 해 동안 발표된 단편에 부여하는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이 주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요. 이렇게 수상제도와 등단제도는 분명한 순기능을 해내왔어요.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러니까 자생하기 어렵도록 침체된 문학 생태계 안에서 그러한 문학상과 등단제도는 ‘특별한 기회’가 아니라 ‘유일한 기회’가 되어버렸다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분명 작가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줄 수 있는 좋은 기능이지만, 그런 식으로 호명된 작가만이 평단과 독자에게 노출되는 안타까운 구조가 되어가고 있어요.

근 몇 년 사이에 없어진 문예지가 정말 많거든요. 문예지가 없어지면서 등단할 수 있는 공모나 지면도 함께 없어졌어요. 등단한 후에도 지면이 적으니 활동하기 어려워졌죠. 한국의 작가들은 대개 단편소설을 지면에 발표해서 역량을 인정받고 그 활동으로 책을 내는 구조 안에 있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문예지의 지면이 소중해지고, 더구나 지면을 가진 문예지에서 상을 주는데 그 안에 호명되지 못하면 사실상 활동의 기회가 없어지는 거죠. 작가도 출판사도 독자도 수상에 의존하게 되는 거예요. 이건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소연: 독자들이 책을 살 때도 작품을 읽어보는 게 아니라 그 작가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쳐서 책을 사요.

소리: 지금의 독립이라는 건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사실 길들이기식 제도나 권력에서부터의 독립하는 게 맞는 말이겠네요.

 

* [기획 간담회] 등단 제도와 문예지 시스템, 이대로 괜찮을까? (2) 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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