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햇살 속으로 - 네마프 2020 유비호 작가를 만나다
[인터뷰] 햇살 속으로 - 네마프 2020 유비호 작가를 만나다
  • 문종필 평론가
  • 승인 2020.08.2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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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0년 8월 20일
장소: 대안공간루프(ALT SPACE LOOP) 지하 1층
참석자 : 유비호(시각예술가), 문종필(인터뷰어, 문학평론가)
 

네마프 2020 개막작 유비호 작가 [사진 = 이민우 기자]

 

2020년대를 눈앞에 두고있는 현재 우리는 여전히 이기적인 판단을 하는 인간의 어리석은 선동과 행동으로 전지구적으로 분열과 파국으로 치닫고 있음을 알고 있다. 더불어 예상치 못한 이상기온 뿐 아니라 다양한 환경 재앙을 맞이하고 있다. 나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하나의 상상을 해보았다. 아주 먼 미래. 아마도 겁(劫)의 시간이 지난 후, 지적지능을 지닌 다른 종들이 출현한다면, 현재 우리 ‘호모 사피이엔스’를 이들은 어떻게 바라보며 진단할까? 호모 사피엔스 그들이 속한 집단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같은 종족인 호모 사피엔스를 정복하고 살인하며 지구의 자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면서 결국 가이아(GAIA)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 파멸로 이끈 이들을. 미래의 다른 종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씁쓸하지만 인간 스스로 본인이 속한 종을 ‘호모 사피엔스’라 칭한 것처럼, 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을 여러분들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현재. 슬기로운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작은 파동이 되길 희망해 본다.

(유비호, 「작가노트(2019.9.2.)」)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언젠가는 도래할 그 무엇에 대해 간절히 쳐다보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미래는 같은 모습일 수 없다. ‘미래’에 대해 논하는 사람마다 모두 상이하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미래를 공유할 수 없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어떤 미래를 꿈꾸느냐 따라 이곳의 성격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시각예술가 유비호는 어떤 미래를 품고 있을까.

그는 파멸과 희망을 동시에 쥐고 있다. 가능성을 놓지 않으면서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한다. 그의 작품 <예언가의 말(A Prophet`s Words)>에서는 이러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총 다섯 번의 변주를 감행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증오를 응시하는 것으로 시작해 아픈 역사적 순간을 끌어안으며 희망의 단편들을 줍는다. 이 시간 속에서 화자는 스스로를 재정비한다. 마지막에는 희망을 논하며 굳건히 일어난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이 적힌다.



향기로움 
대지의 사랑이여!

우리 함께 
그 어떤 운명이 갈라 놓으려 하더라도 
빛을 찾아
짙은 어둠의 터널을 지나가자!

내가 너의 빛이 되고,
네가 나의 빛이 되어주면서,

우리 함께 
혼돈, 분열의 어둠을 밀어내어 
햇살 속으로 들어가자!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라는 단어와 함께 움직이는 동사들의 모습이다. 즉, 화자는 함께 어둠을 몰아낸 후 햇살 속으로 행진하자고 목소리 높인다. 햇살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의지는 다소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지금 현재 햇살 속에 놓여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화자에게 있어 어둠은 무엇이고 분열은 무엇일까. 그는 무슨 이유로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자 했을까. 이러한 고민을 하던 찰나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게 된다. 한국전쟁의 모순을 다룬 <서브토피아>(2008), 일상에서의 탈출을 그린 <Extreme Practice>(2010), 사회적 재난을 겪은 피해자와 가족들의 영상을 담은 <이너 뷰>(2015) 등의 작품이 그것이다.

위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듯이 햇살 속으로 걸어가고자 하는 의지는 끊어진 것을 다시 잇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그는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자 한다. 이 지점이 “햇살 속으로 들어가자!”라는 구절과 만나는 것 같다.

예술의 영역에서 사회에 대한 비판을 무조건 옹호할 수는 없다. 구호는 구호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의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독자 입장에서 유비호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와 호흡하는지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은 즐거움이자 현실에 참여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예술은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 없으며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예술은 예술일 뿐 실질적인 유용성을 생각하면 쓸모없기로 가장 선두에 서 있다. 그러나 예술의 가치가 빛날 때가 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쳐다본 작품을 통해 자신이 품고 있던 생각을 수정할 때다. 그 순간 오랜 시간 믿고 있던 가치관은 회전하게 되는데 이 경험은 다른 장소와 시간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여기서 예술은 문학일 수 있고 음악일 수 있고 회화일 수 있고 조각일 수 있고 시각예술 일 수도 있다. 편협한 시선에서 벗어나 이러한 범주에 속하지 않는 대상들도 누군가의 인식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예술의 역할을 다한 셈이다. 가령, 지나가다 우연히 바라본 풀꽃일 수 있고 시장에서 머리를 읊조리며 졸고 있는 할머니의 두꺼운 손일 수 있다. 간절하게 혼술 하며 푸념하는 어느 한 중년 사내의 목소리일 수도 있고 내가 사랑했던 과거의 당신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몸짓이고 이 행위를 바라본 주체의 받아들임이다. 어떤 파편이든지 간에 한 개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면 이 경험은 그것 자체로 의미 있다. 그렇다면 오늘 만나게 될 유비호 작가는 독자들에게서 어떤 ‘충격’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그의 작업은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유비호 작가를 대안 공간 루프에서 만나보았다.  

유비호 작가 [사진 = 이민우 기자]
유비호 작가 [사진 = 이민우 기자]

문종필: 시각 예술가이십니다. 예술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을 것 같아요. 문학이 있고 조각이 있고 음악이 있고 몸으로 하는 행위예술도 있고요. 그런데 왜 시각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려고 했나요? 선생님에게 ‘시각언어’는 무엇인가요? 

유비호: 시각언어는 추상적인 언어입니다. 범주화시키기가 조금은 어려워요. 개방된 언어이기도 하고요. 간단히 말해 감각적이고 무의식적인 언어입니다.  

문종필: 선생님과 비슷한 작업을 하시는 선배 또는 후배들의 작업을 소개받을 수 있을까요?

유비호: 글 쓰는 것과 비슷해요. 요즘은 홀로 작업하고 있어요. 홀로 작업을 한 지 7년 정도가 되어가고 있어서 솔직히 후배들의 작업을 잘 모르겠어요. (웃음)   

문종필: 고독을 즐기면서 개인 작업에 집중하고 계시는군요. (웃음)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

문종필: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은 사회적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 보면 예술가의 의미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특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이 문제에 대해 깊게 논할 수는 없지만 무슨 이유로 사회문제를 무게감 있게 접근하고 계신지 궁금했어요. 자신의 예술을 끌고 가는 근본적인 동력은 무엇인가요? 

유비호: 원초적인 질문이네요. 제 삶에서 작가의 삶을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주 일찍부터 시작이 됐던 것 같아요. 저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생활했어요. 바닷가보다 좀 내륙에 가까운 김제평야 북부지역이었거든요. 그 지역은 지금 행정구역상으로 군산에 위치하고 있어요. 저희 부모님은 농부이셨어요. 그리고 그 지역과 풍경이 굉장히 크게 보였어요. 그때 바라본 하늘과 노을은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이런 날들이 이어지다가 초등학교 들어갔더니 저와 비슷한 아이들이 수십 명이 있는 거예요. 저는 그 순간 어떤 그룹 속에 제가 소속되어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름다운 세계와 이질적인 세계가 부딪쳤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때부터 아름다운 세계의 가치들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 인식이 그렇게 형성되면서 지금까지 작가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지금처럼 동시대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게 된 시점은 대학시절 때부터인 것 같아요. 저는 90학번이거든요. 386세대는 아닌데. 선배 세대가 가지고 있던 고민들 그런 지점들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그걸 풀어나가는 방식이라든지 인식하는 방식이 선배 세대와는 다소 다르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차별화된 인식을 가지고 나의 작가적 언어를 만들어 가려했어요. 

인터뷰 현장 대안공간루프 [사진 = 이민우 기자]
인터뷰 현장 대안공간루프 [사진 = 이민우 기자]

문종필: 유비호 작가님의 네마프(nemaf) ‘개막작’에 대해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의 취향이 강하게 작동할 수 있어서 조심스럽게 질문을 드립니다. <예언가의 말>의 경우는 ‘시적인 것’과 만나는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화자가 세상이라는 부조리를 응시하다가 이 사회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한 후 그것을 통과한 끝에 희망을 노래하고 있어서요. 어떻게 보면 이러한 흐름은 단순해 보이기도 해서 조금은 걱정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호 작가님께서는 ‘희망’이라는 소재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고 싶어요.  

유비호: 제 작품 <예언가의 말>이 어떻게 구상됐었는지 설명을 드리면 다음과 같아요. 제가 2017년도에 베를린에서 1년 동안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했어요. 그리고 2018년 거기서 ‘예언가의 말’을 발표했어요. 그 작업의 시작은 그 당시 베를린 현지에 있다 보니까 난민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고 그들이 겪는 고통이라든지 부조리들을 목격했어요. 그분들을 지켜보면서 제 기억 속에 스쳐 지나간 영상이 하나가 있어요. 한국전쟁으로 70년 동안 가족과 이산가족이 된 할아버지의 이야기예요. 인터뷰 속 70대 노인은 어렸을 적 아버지와 이별한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 할아버지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어요. 제가 베를린에서 봤던 난민들 역시 이 할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그분들과 얘기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해요. “우리는 이념 필요 없다, 오로지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나고 싶고, 같이 살고 싶을 뿐이다.” 저에게 이 두 이야기는 상당히 유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어찌 보면 동시대에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약간의 공간적. 시간적 차이도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어떤 특정한 불가항력적인 외부적 힘들에 의해 부득이하게 고향을 떠나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야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너무나 가슴 아픈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예언가의 말>의 가장 기본적인 기조로는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관련이 있어요. 사랑하는 애인을 찾기 위해 지하의 신 하데스한테 가서 자신의 장기인 음악적 재능을 통해 모든 신들을 감동시켜 결국에는 사랑하는 애인을 지상으로 데리고 오는 여정이 그것이에요. 우리가 지금 이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현실은 마치 오르페우스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고 있는 칠흑 같은 어두운 터널을 걸어가고 있는 것 같은 순간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랑하는 이와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현실은 기쁨, 절망, 희망, 기대, 애절함, 안타까움 등의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과정 속에서 이 작품의 글이 구체화되었습니다. 

문종필: <떠도는 이들>의 경우 풀(Full) 영상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먹먹한 감정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건강한 주체가 아닌 결핍된 존재가 황폐화된 장소를 느리게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 주체는 할머니를 업고 걸어갑니다. 결핍된 주체가 등에 업고 있는 대상이 할머니인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한국근현대사를 통과해 온 인물로 상정해도 될 것도 같습니다. 그러한 존재를 업고 결핍된 존재는 느리게 황폐화된 도시를 걷습니다. 삶과 삶이 반복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처 입기도 하고 상처 주기도 했던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 대해 독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모두 다 알려주시면 독자들께서 감상하는 재미가 떨어지니 아주 조금만 우회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유비호: 그 작업의 시작은 김기영 감독의 영화 <고려장>에서 시작되었어요. 한국영상자료원에  가면 1963년도에 개봉된 김기영 감독님의 <고려장>을 확인할 수 있어요. 저는 이 영화를 2015년 영상자료원에서 다시 감상하였고, 그때 제 마음이 무척 먹먹했었어요. 2015년은 아직 세월호 문제가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시기이기도 해서,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이 나를 힘들게 하여, 결국 이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고려장’ 캐릭터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공간에 놓아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제가 살고 있는 공간에 가져다 놓으면 우리 사회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했어요. 그걸 관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유비호 작가 [사진 = 이민우 기자]
유비호 작가 [사진 = 이민우 기자]

문종필: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 선생님 작품 중에 <이너뷰>(2015)가 있었어요. 

유비호: 예 

문종필: <이너 뷰>(2015)에서는 씨랜드총소년수련원 참사유가족대표 고석 씨의 목소리.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김성환 씨의 목소리. 용산참사 생존자 김주한 씨의 목소리.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박순이 씨의 목소리. 세월호침몰사고 고 최윤민 어머니 박혜영 씨의 목소리.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사 대책위원회 위원장 윤석기 씨의 목소리. 춘천산사태 인하대생 참사유가족 대표 정경원 씨의 목소리.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대표 한종선 씨의 목소리를 담으셨는데 저는 이 목소리를 한 번에 다 읽거나 듣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 문득 세월호 사연에 손을 뻗었어요. 그 순간 ‘아, 맞다.’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그 순간 세월호를 한 번 더 기억을 해야겠다고 무의식적으로 다짐했던 것 같아요. 어떤 방식이든지 예술가의 작품은 무용하지 않다고 생각 했어요. 선생님의 작업이 그 순간 고마워서 페이스북에 공유하기도 했고요. 그 당시 열정적으로 세월호에 대해서 외치며 돌아다녔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잊은 것은 아닌지. 모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6년 밖에 안 지났잖아요. 6년 밖에 안 지났는데 ‘아, 내가 깜빡 잊고 있었네’ 그런 생각이 문득 지나가더라고요. 

유비호: 지금 말씀하신 내용에 제가 조금 더 첨언을 할게요. 

문종필: 예.
 
유비호: 작업을 발표할 때 시각예술 작가에게 발표되는 장소성과 시간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업을 처음 발표하였던 시간성에서 벗어나 다른 시간대에서 보이게 되면, 최초의 작품 의미와 다소 다르게 읽히고 다르게 의미가 전달되기도 해요. 2015년에 작업한 ‘떠도는 이들’도 그 예 중 하나라고 여겨요. 특히 이 작업은 먼저 전시공간에서 발표되었어요. 영화 형식의 시간적 나열로 보이는 방식이 아닌, 한 공간에 각각의 장면들이 동시에 보이게 했어요. 관객에게 공간을 유유히 돌아다니며 작품을 감상하게 했던 거죠.  


문종필: 그런 공간적인 차이가 있었군요. 이러한 차이를 통해 느껴지는 감각의 차이를 생각해 봅니다. 아무튼 제게 <이너 뷰> 영상은 과거에 잊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떠올려주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문학도로서 내 건강과 밥그릇만을 생각한 것은 아닌지 문득 반성하게 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속물근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

문종필: 네마프(nemaf) 2020 공식 ‘트레일러’에서는 네 개의 파편들이 묶여 있어요. 

첫 번째 영상은 골프를 치는 장면이었는데 찾아보니 골프공은 아니고 말랑말랑한 공이었고 그 안에 쪽지 같은 게 있더라고요. 그 내용이 재미있었어요. 일상에서 탈출하는 방법이 적혀 있었거든요. 그다음 작품은 그림자들이 질주하는 장면이었는데 약간 섬뜩하게 느껴졌어요. 그다음 세 번째는 고개를 흔드는 약간 무서운 인물이 등장했어요. 마지막에는 어린아이가 손거울을 비치고 있었어요. 특히 어린아이가 거울로 빛을 반사시키는 장면은 인상적이었어요. 무엇인가 희망적인 이미지가 거부감 없이 다가왔어요. 

 

유비호: 제 작업의 첫 번째 개인전이 ‘강철태양’이었거든요. 

문종필: 예? 

유비호: ‘강철태양’이요. 제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빛이에요. 절대적이고 완전한 빛이라기보다는 개별적이고 모양이 제각각 다른 파편적인 빛이에요. 

문종필: 한 소녀가 거울을 통해 빛을 비출 때 독자들이 번쩍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유비호 작가에 대해서 내가 정확히 잘 모르지만 적어도 이 작가는 미래를 이야기할 때 예언자의 목소리를 내지는 않을 거라고요. 그보다는 지금 이 순간 고유한 한 개인의 선택이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 같았어요. 왜냐하면 거울에 비친 모습이 각자 다르게 전달되었기 때문이에요. 각성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 같았거든요. 

유비호: 네 맞아요. 어린아이가 비추는 빛 조각은 어렸을 때 경험을 통해 각자 알듯이, 빛이 눈의 각막에 닿으면 마치 송곳으로 눈을 찌르는 감각 경험을 하잖아요.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 보이는 장면들이 백야가 되는 시각적 리세팅이 되잖아요. 저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빛 조각을 비추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권위의식, 절대적인 가치라 믿는 믿음과 의식들을 제거하고 다시 ‘리셋’하고자 해요. 

문종필: 예술가는 쉬지 않고 몽상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떠도는 이들>과 <예언가의 말> 이후의 작품을 지금 이 순간에도 작가님은 당연히 구상하고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물론 지금 현재는 코로나―19와 관련된 미제(Incomplete)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지만요. 다음 작품에 대해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다음 작품은 앞선 작품들과 비교해 어떤 차이를 생성시킬 수 있을까요? 

유비호: 글쎄요. 제가 3년 전부터 1960~70년대 미국 페미니즘 운동사에서 비롯된 사이언스 소설(Sci-Fi)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문종필: 아, Sci-Fi 소설이요? 

유비호: 예. Sci-Fi 소설이요. 분명히 60-70년대 미국 페미니스트 운동 안에 유색인종 페미니스트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아시아 그리고 흑인 페미니스트들이 그 운동 안에서 소외받으면서 이들의 세상의 탈출구로서 Sci-Fi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어요. 마치 이 것은 조선 초기 ‘금오신화’를 썼던 김시습이 떠올랐어요. 그는 한문체 소설을 통해 당시 지식인들에게 단종에 대하여 왕위찬탈을 하였던 수양대군과 이를 따르는 지식인들에 대한 분노와 정의를 얘기했던 것처럼요. 


문종필: 고무적인 것이 소설이나 시를 쓰는 분들도 그런 고민을 같이 하는 것 같아요. 시대적인 요청인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 작업도 즐겁게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상으로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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