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 특집 인터뷰 02] 위계 구조에서 벗어난 편안한 문학 공동체 독립문예지 “베개”
[문예지 특집 인터뷰 02] 위계 구조에서 벗어난 편안한 문학 공동체 독립문예지 “베개”
  • 김보관 기자
  • 승인 2020.08.28 2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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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최근 몇 년 새 문학계에서는 다양한 독립 매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시대의 문학을 고민하는 한편 기존의 청탁 권력을 탈피하고 수평적인 구조를 지향하며 웹진과 종이책 등 다양한 형태로 독자와 만난다.

‘독립’이라는 표지를 달고 나타난 여러 문학 매체들이 갖는 특징은 무엇일까? 기존의 문예지와 다른 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뉴스페이퍼는 올해 3월 5호를 출간한 독립문예지 “베개”를 만나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느슨하고 따듯한 공동체를 표방하는 독립문예지 “베개”는 ‘문학 하기’의 대안적인 방법을 모색하며 문예지 외에도 단행본 발간과 창작 수업 진행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1. 안녕하세요. “베개”와 벌써 세 번째 만남인데요.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베개”의 요즘 근황을 들려주세요.

- 3월에 『베개』 5호를 냈고 다가올 12월쯤에 6호를 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8월에는 『지난 여름의 구름』이라는 베개 필자들의 산문집을 냈습니다. 

창작가가 매체와 안정적인 관계를 갖고 또 독자와는 접촉면이 넓어질 때 계속 써갈 수 있다는 기분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문예지 『베개』에 더해 산문집과 시인선 등의 단행본도 내보려고 계획 중입니다

2. 독립문예지 “베개”는 최근 증쇄한 5호를 비롯해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책 속에서 10분 희곡, 스케치, 파라벨 등의 ‘작은 형식들’의 시도가 돋보이는데요. 이러한 시도를 거듭하시는 이유가 있으실까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요즘 적잖은 독자들의 삶은 원고지 70매 남짓의 단편소설을 감당할 만큼의 심리적 집중과 지구력조차 유지하기 어렵게 되어있습니다. 피로한 삶이기 때문이에요. 쓰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이러할 때 ‘작은 형식’을 읽거나 창작하기란 비교적 향유 가능한 일입니다. 

모던 파라벨 작품 일부 [사진 제공 = 베개]

둘째, 작은 형식들은 지배적인(dominant) 서사장르인 소설에 비해 창작의 문턱이 낮은 편입니다. 스케치나 파라벨은 텍스트의 본질을 구성하는 몇 가지 조건을 이해하면 부담없이 써내려갈 수 있습니다. 마치 방심한 사람처럼 다가가 텍스트의 묘미를 얻을 가능성도 있는 작은 산문 장르입니다. 숙련되고 진부한 작품 말고 의외의 상상력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10분 희곡은 애초에 낭독공연을 염두에 두고 원고를 받아왔습니다. 얼굴, 목소리, 몸짓, 함께 있음 – 그런 생동감 있는 장면에 대한 소망 같은 게 있었기 때문이에요.

셋째, 위에 ‘지배적’이라는 술어를 사용했는데요, 도미넌트한 장르 주위엔 작품의 선정, 해석, 판매/유통에 관련된 이해관계와 권력의지가 조성하는 긴장이 있습니다. (시와 소설 말고 작은 형식들로 이름을 알리고 흥행하는 창작가가 되는 제도적 경로는 아직 없습니다.) ‘작은 형식들’은 파편의 미학에 기반을 두고 맥락에 대한 야심 없이 우연한 해석의 가능성에 자신을 개방합니다. ‘작은 형식들’은 권력보다는 자유로움을 바라고 무리하게 애쓰지 않고 상상하는 사람의 형식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베개』는 작은 형식들을 사랑합니다. 아직까지는 스케치와 파라벨의 속성을 잘 이해한 응모글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작은 형식의 매력을 좀 더 알려야겠습니다.

3. 근래 독립문예지 “베개” 6호의 원고모집과 관련한 공지를 게재했다가 다시 내리시면서 자본적 어려움을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독립문예지를 운영함에 있어 가장 크게 이야기되는 고충 역시 자본적 지점인데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베개』는 1년에 두 권 정도 내고 있습니다. 최소한 평균 정도의 원고료를 지급하면서 한 호를 발간하는 비용은 대략 7-800만 원 정도입니다. 『베개』에서 운영하는 창작교실에서 비용을 일부 마련하고 원고료는 책의 판매수익으로 충당한다는 방침인데, 500부를 찍어 모두 판매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안 돼요. 『베개』 5호는 증쇄를 찍었다고 했지만, 실은 초판을 300부만 찍은 거였고요. 호를 거듭할수록 주문이 조금씩 늘긴 하지만 그 추세가 더딥니다.

얼마 전 원고공모를 철회한 것은 1년에 두 권으로 맞춰져 있던 예산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어서였습니다. 재정이 허락한다면 독특한 문예지를 만들어 낼 사람들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생계를 해결하고 책까지 만들 여건에 있는, 더군다나 젊은 사람들은 소수가 아닐까 하고요. (책을 내서 생계까지 해결하는 일은 정말 잘 안 될 겁니다.)

『베개』는 문예와 연관되는 인접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치료 방향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창간호부터 설정된 <치유하는 창작>이란 섹션이 그런 취지를 갖고 있어요. 한편에는 기예와 취향으로서의 문학이 있고, 이에 더해 문예적 관점이 아닌 ‘치유적 관점’에서 좋은 글들을 싣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문예 독자 이외의 독자들까지 초대하며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치유와 창작>은 매우 넓은 주제영역이고, 문학치료, 표현예술치료, 정신분석 외에도 온갖 다양한 내러티브들이 치유서사로 포섭될 수 있습니다. 곧 단행본으로나 『베개』의 기획글로 치유하는 창작을 소개하는 글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밀고가다> 섹션의 응모원고들도 당연히 환영하고요.

이런 시도로 과연 재정난이 조금이라도 극복이 될까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독자들에게 가 닿아야만 합니다.

베개에서 발간한 에세이집 “지난 여름의 구름” [사진 제공 = 베개]

4. 이밖에 독립문예지가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정’에 관련한 실망일 겁니다. 

책을 만드는 동안은 충만하고 행복했지만, 다수의 독자와 작품을 매개로 소통하리라고 상상했다가 막상 책을 세상에 내놓고 났을 때 기대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해 실망할 수 있습니다. 문예지의 편집자들이 어느 독립문예지에 실린 매력적인 작품을 보고 청탁을 하거나 비평가가 언급을 하는 경우도 생기기 시작하는 듯하지만 아직까지는 드문 일에 속합니다.

독립문예지 활동은 각종 문예지원제도로부터 차등대우를 받기도 하고 창작인에게서도 꿩 대신 닭의 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베개』는 등단이나 유력매체의 영향력에 대해 초연한 자세를 지향하지만, 외부로부터는 미약해서 아쉽다는 반응과 마주칠 각오를 해야합니다.

어쨌든 독립문예지들은 홀로 충만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원칙과 자세에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핍문예지가 아니라 독립문예지인 뜻이 있을 테니까요. 누군가 알아봐 주는 것은 기쁘고 고마운 일이지만, 그런 일이 없다고 힘이 빠져서는 안 됩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문예지 발간을 계속 이어나가시는 이유를 들려주세요. 현 문학 생태계에서 독립문예지가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 『베개』는 밝고 편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입니다. 『베개』는 명멸하는 독립문예지들의 영역, 즉 독립문학계에 ‘마음 편한 질서’가 확산되는 걸 바랍니다. 창간호에도 썼지만 젊은 사람들이 향해 가려 애쓰는 <등단 이후>가 마음 편한, 밝은 질서가 아니라는 생각을 오래 해왔습니다. 

생태계라는 표현을 하셨는데요, 문학계에 근접한 젊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상처 입고 모욕받은 경험은 – 돌발한 생태교란종의 훼방 같은 것이 아니라 - 기존의 위계적인 제도가 허용하고 조성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문학을 미끼로 사용해 힘없는 신진들을 오도하고 사욕을 채우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윤리를 따지자고 하면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문학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라고 합니다. 어둡고 불편한 일입니다.

이런 생태계의 현실과 공동체에 대한 요구는 이질적으로 충돌합니다. 문학계 안에서 공동체의 감정이나 책임감과 윤리를 갖고 항의하고 싸운 작가들은 가혹하게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기존 문학장에서의 일이었고요.

『베개』는 소극적인 문예지여서 체제 안에서 싸우고 애쓰는 대신 바깥에서 어떤 단절 이후를 시작한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다만 공동체의 윤리와 책임에 기반해 항의하고 상처를 감수하는 작가들에게는 언제든 지면을 제공하고 싶다는 입장입니다. 

독립문예지들의 입장은 다양하겠지만, 공통적으로는 ‘우리가 더 나은 질서다’라는 기분을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독립문예지들이 많아지고 존속할수록 전체 생태계는 밝고 건강해진다고 봅니다.

6. 그렇다면 기존 문학 생태계에서 문예지가 해온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문예지 100년의 역사를 평가하기는 어렵고, 다만 시민사회의 어떤 의식과 지향에 비해 문단이 오히려 낙후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시점이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입니다. 교양, 기예, 사회비평의 관점, 동시대적 감정의 확인 – 이런 것들을 위한 매체로서의 역할과 지위를 갖고 있다가 점차로, 상당히 많이 상실했습니다. 

7. 등단제도 및 청탁 시스템과 관련해 기존 문예지의 권력화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한 기존 문예지 시스템의 한계가 있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압도적인 매체변동의 흐름 속에서 문학의 영역이 왜소해진 것과 그 내부인들의 질서가 답답해진 것 사이엔 어떤 연관성이 있어 보입니다. 한편에는 문학인들의 절박함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유·무형의 자원을 배분하는 입장인 문예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수평적 관계구도에 대한 감각의 결여, 서열주의, 은폐된 신분제적 사고방식 등 한국사회의 병폐가 문학장에서도 반복됩니다. 

권력화란 갑질과 위계를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 이는 어느 한 편이 모멸감을 참고 있다는 뜻입니다. 기존 시스템의 한계라면 인정과 보상의 방식에 관해 이전 세대가 알지 못하는 수준의 공정성 사유를 갖고 있는 문학의 새로운 세대를 납득시키지 못한다는 점일 겁니다. 

8. 기성의 권력이나 권위를 탈피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응모된 작품을 선정하여 『베개』에 실을 때, ‘심사하여 가치를 인정한다’는 의식 자체를 갖지 않으려고 합니다. 승인체제를 만들기 위해 기존방식대로 “권위 있는” 심사위원단을 구성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베개』는 창간호 때부터 ‘심사권력’이나 ‘청탁권력’이 성립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의논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전 호에 작품이 실린 비등단 시인들이 이번 호의 작품들을 선정하는 방식을 취하였습니다. 

문학 이외의 대타자는 인정하기 어렵다는 견지에서 문학의 권위 있는 대리인은 따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베개』는 응모자들이 내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는 권위가 아니라 마음이 통하는, 어떤 곁의 사람들을 만났다고 느끼길 바랍니다. 『베개』는 누군가를 승인하고 호명을 통해 상징지위를 높여주지 않습니다. 기획특집을 통해 필자들 사이에 우열적 구도를 설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베개』를 통해 애호하는 독자들과 연결되는 필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베개의 보람입니다. 

<글을 쓰고 독자와 만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위계적인 구도에서 오는 괴로움 같은 것이 없이 비교적 마음이 편했다.> – 이 정도가 사람들이 독립문예지에 관해 소박하게 기대할 수 있는 바가 아닐까 합니다.

독립문예지 베개 필진. 좌측 부터 이여경, 배시은, 정고요 작가 [사진 제공 = 베개]

9. 문예지 외에 산문집 “지난 여름의 구름”을 출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창작 강의를 진행하기도 하고요. 다양한 활동에 관해 들려주세요.

- 문예지 외에 단행본을 출간한 것은 『베개』의 필자들과 동행하고 있다는 확인을 위해서였습니다. 문예지에 한 번 실리고 마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청탁은 ‘쓰고 있습니까?’라고 묻는 일이고 원고는 ‘쓰고 있다’는 응답입니다. 묻고 답하며 오래 함께 간다는 여행의 이미지를 품고 있습니다.

베개의 창작 수업은 잘 알려진 시인·작가들과 애호가, 창작가의 만남을 중개하고, 아울러 외부적인 지원금에 기대지 않고 『베개』를 발간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운영합니다. 지금까지는 시와 소설 위주였지만 좀 더 수업의 주제를 넓혀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서 시대적인 매체변동을 문학에 부정적 요인으로 언급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24시간 토로와 토론, 이야기의 공유와 교감 그리고 거래가 이루어지는 SNS 시공간이 문학의 새로운 장이 되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유튜브에 영상 텍스트를 올리기도 합니다. 이 또한 ‘작은 형식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어는 [베개의 기분]입니다.)

유튜브 “베개의 구름” [사진 제공 = 베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베개』에 실린 작은 형식의 작품들을 낭송이나 공연 형태로 퍼포먼스 해보고 싶습니다. 내년 초에나 가능할지 아직 잘 모릅니다. 책을 받아들고 묵묵히 읽는 독자의 경험과는 다른, 함께 생생함을 누리는 시간을 바라봅니다.

10. 추가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편히 남겨주세요.

-  많은 독예문예지들의 시도가 밝은 생태계를 이루기를 바랍니다. 오래 함께 갈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고, 가능하다면 『베개』의 기분과 힘을 나누어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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