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세대 페미니스트 소설가 이경자, 절반의 실패, 오늘도 나는 이혼을 꿈꾼다
[인터뷰] 1세대 페미니스트 소설가 이경자, 절반의 실패, 오늘도 나는 이혼을 꿈꾼다
  • 이민우
  • 승인 2020.09.09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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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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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민우, 편집=한송희
사진= 이민우, 편집=한송희

 

[뉴스페이퍼= 이민우, 한송희 기자]21세기에 <82년생 김지영>이 있다면, 20세기엔 <절반의 실패>가 있었다. 1973년 등단한 '1세대 페미니즘 작가'인 소설가 이경자의 1988년 소설집 <절반의 실패>와 1992년 출간했던 소설집 <오늘도 나는 이혼을 꿈꾼다>가 최근 다시 복간돼 화제다. <절반의 실패>가 출간된 게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이니, 무려 30여 년의 세월이 지나 한 세대 후의 독자들과 새롭게 만나게 된 셈이다. 이경자 작가를 만나 소설 복간에 대한 소감과 문학의 방향, 2010년대 들어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한 여성 운동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절반의 실패>에는 그 당시 여성들의 삶, 그리고 그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남성과 여성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어요. 당시의 견고했던 가부장적 질서에 대해 ‘이건 잘못된 거다.’라고 먼저 목소리를 낸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남성과 여성의 삶의 방식에 일종의 ‘화염병’을 던진 작품이었다고 할까요.”
 
책이 나오던 시기는 해방 이후에 만들어진 가족법이 그대로 남아 있던, 작가의 표현을 따르면 ‘지금하고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당시만 해도 여성 문제를 다룬다는 건 파격적인 주제였고, <절반의 실패>는 발간 후 TV 미니시리즈로 제작될 정도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작품에 대한 반응은 마냥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 당시엔 왜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 이런 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냐 등의 반응이 많았어요. 책을 읽고 언짢아하거나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는 사람도 많았고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절반의 실패>가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예요. 그냥 한 번 읽어볼 만한 소설쯤으로 여겨질 정도로 세상이 바뀐 거죠.”
 
이경자 작가는 자신의 세대를 ‘농경 시대의 끝자락에서 착취를 당한 세대’로 정의했다. 그 세대의 여성들은 ‘딸이라는 이유로 학교를 가지 못하거나, 끝없이 노동을 하지만 그 노동의 대가를 국가나 가족에게 바치거나, 남편에게 매를 맞는 여성’이었다.
 
“지금 2,30대 여성들에게 어머니나 할머니 시대는 상상이 잘 안되겠죠. 하지만 어머니 시대, 할머니 시대의 삶에 맞닥뜨렸던 삶의 문제들을 여성의 입장에서 문제 제기를 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이민우 기자
사진=이민우 기자

 

<절반의 실패> 출판 후 30년은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상전벽해’ 같은 변화가 있었다. 호주제가 폐지되었고, 2010년대가 되면서 새 시대 새로운 페미니즘의 흐름이 시작됐다. 저자는 “그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작품이 시대의 부름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작가의 작품엔 작가가 살면서 관찰하고 실감해온 여성 차별의 문제들이 생생한 이야기 속에 녹아 들어있다. 작품 속에 묘사되는 부부나 가족 간의 관계도 가부장적 질서 속에 서로 단절된 관계로 그려지기도 한다. 작가는 “함께 인격적으로 서로 조화를 이루고 사는 공동체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가면서 부부끼리도 서로의 역할과 혜택이 달라지고 차별이 생기면 사랑할 수 없다는 걸 담아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경자 작가 소설집에 담겨 있는 ‘고부간의 갈등’, ‘독박 가사와 육아’, ‘가정 폭력’, ‘남편의 외도’, ‘성 착취’ 등의 주제들은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유효하다. 시대를 앞서 가부장제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켰던 작가의 눈에 비친 현재는 어떨까. 이경자 작가는 “우리 사회는 아직 남성과 여성 모두 여성과 남성 사이의 차별 구조에 대해 느낄 수 없게 하는 교육과 문화 속에 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의 N번방 사태처럼 여성 착취가 이제 자본주의적으로 산업화되는 것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작가는 “남성 근본주의, 남성 제일주의 등 남성에게 가해진 허위의식은 오히려 남성을 힘들게 하는 남성의 적”이라고 꼬집으면서 “페미니즘은 저 밖에 있고 남성은 여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페미니즘 속에 남성이 있고, 남성 속에 페미니즘이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중요한 건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며, 여성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 여성이 자유로운 사회라야 남성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자 작가는 30년 만에 책이 나온 것에 대해 “작가로서도 마냥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복간이 기존의 출판 방식이 아닌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203명의 후원자를 모집해 책이 복간된 것도 상징적인 변화다.
 
“복간을 주도한 독립출판사 ‘걷는사람’의 젊은 친구들이 ‘이 소설은 의미가 있기 때문에 내야 된다’라고 주장을 하는 게 사실 처음엔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그 젊은 편집진들이 재밌어 하니까 신기하죠. 그걸 로도 충분해요.“
 
작가는 1990년대가 문학, 특히 ‘소설의 전성시대’라면 현재는 ‘문학이 다양해진 시대’로 정의했다. “책의 형태로 나온 것만이 소설이나 시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고라고 생각해요. 저는 웹툰이나 4분짜리 대중가요, 예를 들면 BTS의 가사들도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딱 들으면 엄청난 감동을 느껴요. 소설엔 없는 힘이 있죠. 그것도 문학인 거예요.”
 
이러한 새로운 ‘문학의 힘’을 통해 페미니즘도 여성주의도 움직이고 있다는 걸 2020년에도 체감하고 있다는 이경자 작가는 “내 소설집이 훌륭한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이 소설이 당대에 어떤 상징성을 가진다면, 그 30년 전을 뒤돌아보면서 다음 세대, 미래에 대한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자신의 책을 처음 읽는 독자들에 대한 바람을 밝혔다.
 
“나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나의 기준을 다른 데서 찾지 않고 나 자신에게서 찾아야 되는 거예요. 왜냐면 나 스스로가 숨 쉬고 스스로의 입으로 먹는, 하나의 우주이자 온전한 세계니까요 이 온전한 세계의 나를 누구로부터 규정되고 교정되거나 제도화되는 것에 경계가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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