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탐방기] 재미동포 교사 이금주의 따끈따끈한 북한이야기(14)
[북한 탐방기] 재미동포 교사 이금주의 따끈따끈한 북한이야기(14)
  • 이금주 매사추세츠 한국평화운동 공동의장
  • 승인 2020.09.1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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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도로와 자동차

차창 밖, 일요일 오전의 평양 시가 모습을 바라본다.  일요일 오전임에도 거리에 활기가 넘친다.  오고가는 사람들이 꽤  많아 보인다. 바쁘게 걷고 있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 전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다들 분주한 모습이다.

파란색 무궤도 전차가 지나간다. 버스처럼 생겼는데 이름이 말해주듯이 궤도 위가 아니라 바퀴로 도로 위를 달린다. 객차 안에 사람들이 빽빽하다. 좌석은 다 차 있고 많은 승객들이 손잡이를 잡고 서 있다. 반대 차선에 만경대와 광양역을 오가는 빨간색 궤도 전차가 보인다.  이 전차도 거의 빽빽이 차 있다. 무궤도 전차와 궤도 전차 모두 지붕 위에  연결된 전선으로 전력을 공급받아 운행한다. 

버드나무 늘어진 평양 거리의 무궤도 전차  
버드나무 늘어진 평양 거리의 무궤도 전차  

전차는 평양시민의 주요 대중교통수단인 듯 하다. 그 동안 거리에서 본 전차는 언제나 거의 만원이었던 것 같다. 이 역시 대북제재로 인한 영향으로 여겨진다. 대중교통 수단인 전차와  버스는 낡아 보였다. 한 평양시민의 말에 의하면 버스나 전차는 대부분 30-40년은 족히 된 차량들이다. 고장이 나면 고치고 또 고쳐 쓴다. 제재로 인해 한정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야 하는 주민들은 만원버스, 만원전차에 시달려야 한다. 버스나 전차를 타려면 수십미터씩 줄을 길게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제한된 물자로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는 북녘 동포들. 대북제재로 인한 고통은 결국 주민들의 몫이다.

북의 교원단체인  '조선교육문화직업동맹(교직동)' 소속 선생님이 한 말이 생각난다. “북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항상 전쟁의 위협에 있기 때문에 국가방위를 우선으로 하는 산업에 집중한다. 자동차의  경우에는 대중교통수단인 지하철, 전차, 버스가 개인 승용차보다 우선이다.” 실제로, 평양의 도로에서 개인 승용차보다는 버스, 전차, 택시를 훨씬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대중교통 수단도 충분하지 않아 주민들의 불편함이 커 보였다.

다양한 차종을 볼 수 있는 평양의 거리
다양한 차종을 볼 수 있는 평양의 거리

한국전쟁이 70년 지속되고 있는 상황, 남과 북이 대치하고 북이 미국과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은 남과 북의 일반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전쟁을 끝내 군비를 줄인다면, 그 혜택은 남과 북 모두에게 돌아갈 것이다. 북녘 동포의 삶은 분명 더 나아질 것이다. 평양시민들은  40년 된 낡은 전차를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이며 만원버스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남녘 젊은이들에게는 반값 등록금이 가능할 것이며 소외계층에게 돌아갈 복지 혜택은 늘어날 것이다. 평양의 거리에서 마주한 동포들의 삶에서 이 70년 전쟁을 끝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를 보았다.

도로에는 다양한 차종이 달린다. 버스, 전차, 트럭, 미니밴, 택시 등 다른 나라의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차종을 볼 수 있다. 또한,  외국에서 생산된 차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거리에서 나의 눈을 사로잡는 차는 단연코 북측 자동차인 평화자동차다. 방북 기간 동안 나에게 배정된 차도 평화자동차다. 평화자동차는 남북경협의 일환으로 북한 남포에 세워진 남북합영회사다. 북에서는 외국에서 들여온 부품으로 자동차를 조립 생산한다.  하루에 3-4대 정도를 생산한다고 한다. 거리를 다니며 가끔 <휘파람>,< 뻐꾸기>, <평양> 등과 같이 평화자동차에서 생산한 차를 보게 된다. 평화자동차를 선전하는 대형간판도 평양의 주요 도로에서 볼 수 있다. 마침, 우리의 평화자동차는 평화자동차 선전 간판 앞을 지난다.
우리의 평화자동차는 차선별로 제한속도가 다른 도로에 진입한다. 우리는 최좌측 차선인  70km 차선 위를 달린다.  평양의 도로 중, 특이했던 것이 차선별로 제한 속도가 다른 도로다. 평양의 도로 중 일부 구간이 그러하다. 예를 들어, 1차선은 시속 70 km, 2차선은 60 km, 3차선은 40 km 이다.  전세계 여러 나라의 도시를 다녔는데, 차선별로 제한 속도가 다른 도로는 평양이 처음이다. 각자 자기 목적에 맞게 다른 속도로 운전할 수 있으니 그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차선별로 제한속도가 다른 평양의 도로
차선별로 제한속도가 다른 평양의 도로
북한의 자동차 브랜드 '평화자동차' 휘파람
북한의 자동차 브랜드 '평화자동차' 휘파람
북한의 자동차 브랜드 '평화자동차' 뻐꾸기
북한의 자동차 브랜드 '평화자동차' 뻐꾸기

칠골교회, 아멘으로 화답하다

우리의 평화자동차는 광복거리를 향한다. 크리스천인 필자는 일요일 주일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광복거리에 위치한 칠골교회로 가는 길이다.  칠골교회는 일요일 오전 10시에 예배가 있다.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도로를 지나, 한적한 주택가로 접어 든다. <칠골1동> 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수십층의 고층빌딩 아래  작은  교회의 십자가기 보인다. 칠골교회다.

1899년에 설립된 칠골교회는 김일성 주석의 어머니인 강반석 집사가 출석한 교회였다. 김일성 주석도 어머니와 함께  이 교회에 출석 했다.  한국 전쟁 시기에 파괴된 것을, 김일성 주석이 재건하도록 지시하였다고 한다. 안내원의 설명이다.

여러 개의 돌계단 위에 아담한 교회가 서 있다.  교인들이 삼삼오오 계단을 올라 교회로 들어 간다. 나도 차에서 내려 교회에 입장했다. 여성교인과 남성교인이 나를 맞이한다. 멀리 미국에서 칠골교회를  찾아와 주었다고 특별한 고마움을 표시한다. 

교회당에 들어 자리를 잡았다.  입구에서 인사를 나눈 여성 교인이 성경책와 찬송가책을 가져다 준다. 미처 준비하지 못 한 방문자에 대한 배려다. 놀랍게도, 보스턴 한인 교회에서 사용하던 같은 종류의 성경책과 찬송가책이다. 

연단과 신자석 중간에 성가대가 보인다. 연단과 신자석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15명정도의 남녀 성가대원이 앉아 있다. 너무도 눈에 익숙한 성가대 가운을 입고 있다. 남측의 교회나 미국의 한인교회에서 보았던 낯익은 성가대복이다. 

목사님의 예배 시작 선포와 기도로 예배가 시작된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고  찬양이 이어진다.  남녀 교인이 나와 성경을 봉독한다. 마태복음 5장 1절-16절 산상수훈을 교대로 읽는다.
“자비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자비를 받을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자들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교인들이 아멘으로 화답한다.

칠골교회 목사님, 교인들과 함께

목사님의 설교가 이어진다.  성가대의 찬양, 봉헌, 목사님의 축도로 공식 예배가 끝을 맺는다. 그리고 목사님이 교회와 교우의 근황을 광고한다. 

방북기간 동안 남과 북이 같음을 곳곳에서 확인했다.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칠골교회 예배당에 발을 딛는 순간 정말 놀랐다. 내가 다니는 한인교회와 너무 비슷했다. 성가대의 위치, 성가대의 복장, 성경책과 찬송가책, 예배 형식이나 순서, 성경을 읽고 찬송을 하고 헌금을 하는 것까지도 매우 흡사했다. 예배를 드리는 내내, 마치 내가 보스턴의 한인 교회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남과 북, 우리의 동질성은 칠골교회 예배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목사님의 기도가 아직도 귓가에 아른거린다.
“정의와 진리, 평화를 위해  신심을 다 바쳐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지 못 하는 죄를 용서하소서… 국토 분단으로 장장 70여년 우리 민족이 겪어야 하는 분단의 고통은 이루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이 이 분단의 고통을 끝내고 평화와 통일로 나갈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기도의 중간 중간 교인들은 아멘을 외쳤다. 

목사님의  설교도 기억에 남는다. 목사님이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를 말하면서 신앙인들이 남북 평화통일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교인들이 아멘으로  화답하였다.

칠골교회 성가대
칠골교회 성가대

칠골교회 교인들이 불렀던 찬송가 396장 <죄짐 맡은 우리 구주>와  칠골교회 성가대가 불렀던 찬송가 202장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모두 우리가 알고 있는 가사와 똑같았다. 남측의 교회나 보스턴의 한인교회에서 부르던 바로 그 찬송가였다. 보스턴의 동포와 북녘의 동포는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며 예수의 사랑과 공의를 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또 다시 우리는 그리스도의 자녀로 한 형제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은혜로은 예배였다. 신심 가득한 성가대의 찬양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성가대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북녘 땅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느끼게 하였다. 예배 후 목사님과 교인 몇분과 간단히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70대 여성교인은  내 손을 꼭 마주잡고 작별 인사하였다. 내년에, 다음에 꼭 다시 오라고.  평화를 갈망하는 듯한 그의 눈빛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남과 북, 북과 남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평화의 기운으로 살아나게 하소서” 이런 무언의 메시지를 내게 전하는 듯 했다. 

보스턴 동포는 평양의 예배당에서 주님께 간구하였다.
“평화의 주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이 70년 분단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남과 북이 한반도에 영원한 평화의 땅을 이루게 하소서!” 
내년에 다시 찾아와 한 마음 한 목소리로 주님을 찬미하고 주님의 사랑과 평화를 찬양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칠골교회를 떠났다.

주일 예배를 드리는 칠골교회 교인들
주일 예배를 드리는 칠골교회 교인들
칠골교회 성가대의 찬양
칠골교회 성가대의 찬양

다정한 연인들의 청춘거리

우리의 평화자동차는 청춘거리를 달린다. 청춘거리는 평양직할시 만경대 지구 안골에 위치한 일종의 체육촌이다.  평양의 중심에서 벗어난 외곽에 자리 잡고 있다. 1989년 제13차 세계학생청년 축전 개최를 위해 건설된 체육시설과 경기장이 밀집된 곳이다. 청춘거리에는 핸드볼관, 수영관, 탁구관, 농구관, 배드민턴관, 역도관, 배구관, 경경기관, 중경기관, 태권도전당, 사격관 등이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거리를 보고 싶다는 나의 요청으로 청춘거리에 오게 됐다. 

주차를 하고 청춘거리를 걷는다. 일요일 오후, 거리는 한산하다.  왕복 4차선의 도로에 파란 버스가 달린다.  거리를 따라 가로수가 늘어져 있다.  늘어선 가로수 아래로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다. 자전거 전용 도로와 보도는 나란히 뻗어 있다. 끝이 안 보이는 자전거 전용 도로 저쪽에서 자전거 한대가 달려 온다.  일요일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태권도전당> 앞을 지난다. 북쪽  최초의 태권도 전용 체육관이다. 2000석의 관람석을 갖추고 있는 비교적 소규모 시설로 국제경기를 여러번 개최했다고 한다. 공중을 날 듯 힘껏 발차기를 하는 동상이 이곳이 태권도 경기장임을 알려준다. 태권도 동작이 살아 있다. 

배드민턴 모양의 건물이 보인다. 단번에 배드민턴관임을 알았다. 수영경기관 앞을 지난다. 수영풀을 연상케하는 건물 외관과 파란색과 녹색이 잘 조화를 이룬다. 물을 가르며 수영을 하는 수영경기관 마크가 건물 맨 꼭대기 달려있다. 력기경기관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 외관이 경기장의 특색을 잘 드러낸다. 예정에 없었던 청춘거리 방문이어서 경기장 내부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거리를 걸으며 경기장의 외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구경거리다. 경기장의 특성을 살린 건축물과 주변 조형물을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평양 청춘거리 배드민턴관
평양 청춘거리 배드민턴관
평양 청춘거리 태권도 전당 앞에서
평양 청춘거리 력기경기관
평양 청춘거리 력기경기관

청춘거리는 예쁜 가로숫길이다. 8월의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린다.  그 아래, 가로수가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마련해 준다.  횡단보도, 교통표지판, 쓰레기통 등이 보이는 평범한 거리의 모습이다.  평양 외곽에 위치해 사람이나 차량이 붐비지 않는다.

우리 앞에 양산을 쓴  젊은 남녀가 걷고 있다. 남자가 양산을 받쳐들고 있다.여자는 왼손에 손선풍기를 들고 걷는다.  단발머리에 흰색 셔츠와 검정 치마를 입고 있다. 복장이나 머리모양으로 보아 대학생인 듯 하다. 청춘거리의 청춘남녀는 조곤조곤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눈다. 간간히 웃음소리도 들린다. 양산을 여성 쪽으로 들고 있는 남성. 연인의 피부가 햇볕에 그을릴 새라.  팔을 여성쪽으로 뻗어 양산을 고쳐 잡는다. 그의 다정다감함이 느껴진다. 일요일 정오의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청춘거리에서는 가로수 사이로 젊은이의 사랑이 익어간다. 

자전거 전용도로 저편에서 자전거가 달려온다. 남편과 아내가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앞에는 멋스러운 선글라스를 쓴 남편이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는다. 그 뒤에서 아내는 남편을 꼭 잡고 웃음을 머금고 있다. 청춘거리 자전거 전용길 다정한 부부의 모습이다.  부부의 사랑이 평양 청춘거리에서 빛난다.

각종 체육시설과 경기장이 모여 있는 청춘거리. 청춘거리답게 평양시민들의 사랑도 피어난다. 실제,  다정한 연인들, 금슬 좋은 부부들을 평야의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부부들은 아침출근 길에도, 주말 외출에도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금슬을 과시한다. 젊은 연인들도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어린 눈빛을 솔직하게 교환하며 감정을 표현한다. 북남북녀, 북녘 동포들의 모습이다. 평양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사랑하며 사는 곳이다. 

평양 청춘거리 다정한 부부와 연인들
평양 청춘거리 다정한 부부와 연인들

평양 자연박물관 입장

2019년 8월4일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각. 평양 대성산에 위치한 자연박물관에 왔다. 자연박물관은 우리의 자연사박물관과 유사하다. 지구 탄생의 역사부터 생물의 발생, 진화의 역사에 대한 박물관이다.

평양 자연박물관은 ‘세계적 수준의 문화정서 생활거점, 교육거점’이라는 기치로 2016년 7월에 개관하였다. 일반적인 자연사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학문 발전과 대중 교육을 그 설립 목적으로 한다. 자연박물관은 연건축면적 3만 5천여 평방미터로 우주관, 고생대관, 중생대관, 신생대관, 동물관, 식물관, 선물관, 전자열람실, 과학기술보급실 등을 갖추고 있다.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이 건물이 눈에 확 들어 온다. 연한 파스텔톤의 녹색 건물이다. 
주차장에는 여러 대의 버스가 서 있다. 이층버스도 보인다. 버스에서는 지방에서 단체로 온 듯한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내린다. 단체관람을 온 듯 한 학생들도 무리지어 있다. 입장권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안내원이 나를 위해 입장권을 사러  갔다. 

평양 자연박물관 주차장
평양 자연박물관 주차장

입장권을 받고 줄을 서서 차례로 자연박물관에 입장한다. 건평만  만평이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외관으로 보기에도 그 규모가 꽤 커 보인다. 입구를 통과하자 게이트 앞에서 봉사원이 입장권을 수거한다. 방북 기간 중 방문하는 모든 관광명소와 역사유적에 대한 자료를 모으는 중이다. 방문지를 오래오래 기억하고 여행의 의미를 간직하기 위함이다. 

평양 자연박물관-입장 순서를 기다리는 시민들
평양 자연박물관-입장 순서를 기다리는 시민들

입장표를 수거하는 봉사원에게 공손하게 부탁한다.

“저는  미국에서 온 동포인데, 기념품으로 표를 안 내고 가져가도 될까요?”  

봉사원은 한마디로 단호히 거절한다. “안 됩니다. 표를 내야 합니다.” 

입장객이 표는 내는 것은 이곳의 규율이라고 한다. 나는 나와 동행한 안내원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눈빛으로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멀리서 온 동포인데, 좀 봐 달라고 표를 내지않고 가질 수 있게 해 달라고 정중히 청한다. 그러나, 봉사원은 요지부동이다. 

“안 됩니다. 표 내시라요.”
안내원의 말이 이어진다.
“봉사원 동무, 이 보시라요. 내래 그렇게 사정했는데, 봐 줄 수도 있지 않습네까.” 

안내원이 다시 강하게 요청한다. 봉사원은 안 된다고 다시 단호히 대답한다.

봉사원과 안내원 사이에 언쟁이 오간다. 그러다가, 결국 안내원이 포기했다. 나로 인해 벌어진 상황이라, 나 역시 난감하고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봉사원은 끝까지 단호했다. 나는 입장표를 내야 했다. 무리한 부탁을 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입장표를 주었다. 

북이 원칙에 철저한 사회임은 이미 여러 번 경험한 바 있다. 자연박물관 봉사원은 원칙에 입각해 자신의 일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의 일에 관한한 그가 최고결정권자였다. 전체 인구의 10%만 가입할 수 있다는 노동당 당원인 안내원은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자연박물관 봉사원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그는 김책공대를 졸업한 엘리트이기도 하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는, 사회 구성원이 그들의 사회적 배경이나 지위를 떠나 인격 대 인격으로 대등하게  만나 소통하고 교류한다.  오늘 안내원과 봉사원의 의견 충돌을 통해 북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단면을 보았다. 그것은 사회구성원들간의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다. 왠지 갑질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를 느꼈다. 물론, 나만의 해석일 수 있다.

 

매사추세츠 코리아 평화운동 공동의장 이금주


매사추세츠 한국평화운동 공동의장
평화와 통일을 여는 보스턴 행동 대표
 
세월호를 잊지 않는 보스턴 사람들의 모임 대표

Public Schools of Brookline, MA ESL 교사

하버드대학교 응용언어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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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오 2020-10-11 18:11:50
탐방기 잘 읽고 갑니다. 종종 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