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 캐릭터는 무엇입니까? 「누가 뭐래도, 그로토니!」
당신의 인생 캐릭터는 무엇입니까? 「누가 뭐래도, 그로토니!」
  • 강윤슬 에디터
  • 승인 2020.09.23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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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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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이야기의 중요성에 대하여
[사진 출처 = 봄볕]

우리의 삶을 둘러싼 캐릭터들

[뉴스페이퍼 = 강윤슬 에디터] 바야흐로 콘텐츠의 시대이다. 카카오톡 메신저의 이모티콘을 필두로 우리의 삶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다양한 캐릭터들이 산재해 있다. 유행에 따라 수많은 캐릭터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기를 반복한다. 예쁘고 귀여운 캐릭터도 있는 반면, 저런 게 왜 인기를 끄나 싶은 의아한 것들도 간혹 있다.

최근 유행하는 ‘펭수’를 처음 봤을 때만 하더라도 귀엽다는 생각보다 왜 그렇게 인기가 있나 싶었다. 눈은 흰자위가 너무 많이 보여서 조금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했더랬다. 하지만 펭수의 영상을 보고 재치 있는 입담과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에 공감하며 빠져들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꼭 외양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키곤 한다.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아름다운 꽃들 중에서도 어떤 꽃의 향기가 사로잡듯이, 우리의 마음에 남는 캐릭터들은 그만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유행은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최애(최고로 사랑하는) 캐릭터

‘브누아 프레트세이’의 얇은 그림책 「누가 뭐래도, 그로토니!」는 작가 ‘바바라’가 ‘그로토니의 모험’이라는 책을 완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여태껏 여러 책을 썼지만 그로토니가 가장 마음에 든다며 만족하고, 이는 그로토니가 인기를 휩쓸며 그녀의 만족감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로토니의 모험’이라는 이야기가 인기를 끌면서 그로토니는 영화와 각종 캐릭터 사업으로 뻗어나간다. 그 결과, 어디를 가나 그로토니 캐릭터가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유행이란 게 늘 그렇듯이 사람들은 그로토니 캐릭터에 각자 불만이 쌓이거나 관심이 식어가고 ‘슈퍼포키’라는 새로운 캐릭터에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이제 그로토니는 퇴물 취급을 받게 되고 원작자인 바바라는 모두가 그로토니를 잊은 것만 같아 상심에 휩싸인다. 그 순간, 아무도 찾지 않는 그로토니의 이야기만을 고집하며 읽는 아이를 발견하고 안도의 한 숨을 내쉰다.

제 아무리 인기 있는 것이라 스테디셀러라 할지라도 영원히 최고의 베스트셀러 지위를 누릴 수는 없다. 정점을 찍은 만큼 그것이 잊힐 때 느끼는 상실감 또한 엄청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그로토니의 원작자 바바라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 최고의 지위에서 물러난다는 것보다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더 괴로워 보인다.

‘지음’이라는 말이 있듯이, 제 아무리 매력적인 존재라도 그것을 알아주고 사랑하는 이가 없다면 쓸쓸하지 않겠는가. 말하자면 원작자는 그로토니 ‘덕후’인 아이를 만나며 위안을 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사랑이 작가에게는 계속 창작해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주리란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가진 특별한 이야기

수많은 캐릭터가 우리 주변에 있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것을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남들이 안 찾을 때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주변에 상관없이 소나무처럼 자기만의 취향을 올곧이 고수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덕후’(오타쿠)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배우 ‘심형탁’이 생각난다.

배우 ‘심형탁’을 생각하면 도라에몽과 그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자연스레 떠오르곤 한다. 그가 TV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애정하는 캐릭터에 대해서 열광적으로 이야기했던 것들이 깊이 각인되어서 그런 것 같다. 나만 그런가?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고등학교 때 따돌림을 당해서 도라에몽을 좋아했다는 이유를 듣고 나면 가슴이 뭉클해져서 고개를 끄덕인다.

애초에 도라에몽의 원작자도 어렸을 적에 도라에몽의 주인공 ‘노진구’처럼 왕따를 당해서 도라에몽 같은 친구를 원해서 그린 거라고 했다. 그의 그런 마음이 담긴 만화는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주었다. 이런 면에서 캐릭터란 단순히 외양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만의 개성, 다시 말하면 ‘이야기’와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인간은 왜 이야기에 열광하는가? 우리 삶에서 이야기의 중요성

인류는 태초부터 이야기와 함께 해왔다. 이야기는 지나간 선조의 역사에서부터 어제의 일까지 과거 기억들을 담고 잘못을 반추하며 그간 쌓인 지혜를 전달해주는 매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거기서 더 나아가 재미와 용기를 주는 등 다른 역할들을 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무료한 인생에 낙을 주기도 하고, 중요한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도 한다. ‘위인전’등의 이야기는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이야기에 기대어 살아간다. 마블 히어로를 그려낸 ‘스탠 리’는 처음에 만화를 그릴 때만 해도 하찮은 일을 한다는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어서 그가 그려낸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주며 사랑을 받는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의 주인공이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며 히어로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며, 불치병에 걸린 환아들도 자신을 투영해 병을 이겨내고자 한다. 


지식정보의 홍수 속에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글을 쓰면서 가끔 이야기의 효용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질문하곤 한다. 지식과 정보가 홍수를 이루며 이렇게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면서, 정작 글을 읽거나 책을 보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있는 게 이 시대의 아이러니다. 뉴스 기사를 보면 댓글로 3줄 이상은 읽지 않는다는 게 흔한 반응이다. 사람들은 좀 더 편하게, 지식과 정보를 가만히 앉아서 떠먹여주는 것을 선호한다. 유튜브를 통해 배우는 게 흔한 일이고, 콘텐츠를 통해 부를 창출한다.

시선을 끌기 위해 콘텐츠는 점점 더 자극적이고 일차원적으로 소비되는 양상을 띤다. 감독기관에서 다 감독을 할 수도 없을뿐더러 할 수 있다고 해도 완전히 막을 수도 없다. 그러니 소비하는 주체가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서는 오히려 양질의 콘텐츠를 판단하는 능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언더그라운드’라는 책에서 지하철에서 사린가스로 테러를 일으켰던 옴진리 교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원인을 파헤쳤다. 옴진리 교 라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은 불우한 환경의 불량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중산층의 건전하고 똑똑한 청년들이 많았다. 하루키는 이들에게서 의외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들은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옴진리 교에 자발적으로 귀의한 사람들은 사춘기 때 소설 같은 이야기를 읽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주한 현실에서 겪게 되는 패배감을 옴진리 교가 제공하는 픽션에 빠져들어 위로받고자 했으나, 피해자 역시 그들과 다름없는 사람이라는 현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고 메시지를 희구하는 존재

“한 권의 소설이, 한 줄의 말이,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고 영혼을 구제한다. 다만 두말할 필요 없이 픽션은 늘 현실과 엄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 픽션은 우리의 실재를 깊게 삼켜버린다. 예를 들어 콘래드의 소설이 우리를 실제로 아프리카의 깊은 정글 속으로 끌고 가듯이.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책장을 덮고 현실로 돌아와야만 한다. 우리 모두는 픽션이 아닌 다른 곳에서 현실세계와 마주선 우리 자신을, 아마도 픽션과 힘을 상호 교환하는 형태로, 완성해나가야만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p.235)

픽션은 때론 삶을 구원해주는 힘이 된다. 현실을 대리충족하기도 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픽션을 픽션으로 끝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야기의 힘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 빠져들어, 자기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주변과 세계를 이해하는 바탕이 되어준다. 이것이 바로 동정심을 구현해내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힘이 된다.


사람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는 사람을 만듭니다.

가끔 교보문고 앞을 지나다보면 교보에서 선정한 문구를 유심히 바라보곤 한다. 언젠가 봤던 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듭니다.’라는 교보문고 창립자 故신용호 회장의 말이었다. 이 말을 생각하면 아프리카 속담 중에 ‘노인 한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에 따르면 한 명의 사람은 도서관 하나의 분량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제 삶에 담고 있다.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하는 셈인데 그게 어떤 이야기인가이냐는 그 사람이 보고 접하는 것에 달려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마음에 남는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기둥이 되고,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의 인생도 어찌 보면 ‘내 삶의 이야기’라는 한 편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그 안에 좋은 것들로 채워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이유에서 나는 마음에 남을만한 좋은 이야기를 쓰고, 그런 좋은 이야기들로 내 삶을 채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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