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페이퍼 = 알량한(필명) 에디터] 흔히 ‘올드미디어’라 불리는 기성 언론의 위기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종이 신문을 읽고 TV 뉴스를 챙겨보는 것이 오히려 낯선 시대다. 포털사이트의 뉴스도 예전만큼의 영향력은 사라지고, 자극적인 광고와 무의미한 속보 경쟁만 치열하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표한 38개국의 뉴스 신뢰도 중 한국은 4년 연속 꼴찌를 달리고 있다. 저널리즘의 시대는 끝나버린 것일까. 변화가 절실한 순간임이 분명하지만 언론사들이 하루아침에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아니, 변화가 가능하긴 한 걸까. 대표적인 뉴미디어 언론사로 꼽히는 바이스의 창업자 셰인 스미스의 말을 들어보자.
“(…) 조직 자체를 뜯어내야 한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해야 하고, TV나 광고, 영화 쪽에서 일한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을 채용해야 하며 학교에서 갓 졸업한 사람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 (…) 내가 이 모든 걸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러니까 내 비결을 누설한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46쪽)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는 이렇듯 불가능해 보이는 올드미디어 언론의 변화를 모색한다. 저자인 정혜승은 1994년 문화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해, 2008년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경력을 쌓은 후 카카오에서 부사장까지 역임했다. 그녀의 경력 자체가 지난 30년 동안 언론이 겪어온 급격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뉴미디어를 익히고 그녀가 몸을 옮긴 곳은 청와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하며 뉴미디어 비서관으로 2년 여간 일했다. ‘완전히 새로운 직접 소통’을 표방하고 나선 정부였다. 저자는 그곳에서 패러다임을 뒤엎는 시도를 해야만 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곳이라 말할 수 있는 청와대를 바꿀 수 있다면, 언론이라고 바꾸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때문에 그녀가 청와대에서 고군분투하며 일궈낸 변화는 그대로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녀가 이뤄놓은 변화는 ‘국민청원’ 제도로 요약된다. 국민청원이 보여주는 가장 큰 변화는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귀 기울였다는 점이다. 그동안 올드미디어 언론은 대중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크게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하겠다. 언론사의 구독률이 하락하고 유튜브 등의 뉴미디어로 사람들이 몰린 이유도 거기서 찾아야 한다.
어느 분야든 일방향 홍보는 수명을 다했다. 미디어 환경은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한때는 댓글이 쌍방향 소통의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되기도 했으나, 이제 댓글 정도로는 성에 안 찬다. 국민청원 역시 국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채널을 모색한 결과였다. (306쪽)
청와대를 통해 저널리즘의 변화를 모색하다 보면, 이것은 미디어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로까지 확대되는 걸 알 수 있다. 권위만을 내세우는 미디어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 권위만을 내세우는 민주주의는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듯이 말이다. 눈높이를 맞추고, 이용자와 함께 관계를 맺으며 나아가야 한다. 청와대는 그렇게 변화에 성공했다. 이제 미디어의 차례다.
물론 뉴미디어가 무조건 옳다는 말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이스도 구독률 하락을 걱정하는 실정이다. 대중이 원하는 것만을 주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저자는 오히려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을 ‘이야기’로 전달할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그 모든 해법들도 스스로 몸을 낮춰 대중이 원하는 것을 들으려 했을 때만 유효하다. 저자의 과감한 시도들이 청와대를 바꿀 수 있었던 것도, 이전 정부와는 달라지려는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시금 바이스의 창업자 셰인 스미스의 말을 생각해 보면, 그가 말한 변화의 불가능도 사실은 최종 결정자들의 변화 불가능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뉴스를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해진 세상을 좀 더 선명하게 알고 싶어 한다. 뉴미디어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가치란 그런 것이다. 구호뿐인 새로움을 탈피하고, 불가능한 변화로 나아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