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기획 인터뷰 02] 이지아 시인의 “오트 쿠튀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그만의 색깔
[추석 기획 인터뷰 02] 이지아 시인의 “오트 쿠튀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그만의 색깔
  • 송진아 기자
  • 승인 2020.09.30 19:26
  • 댓글 0
  • 조회수 3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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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 다양한 표정을 지을 것”


아침과 내일 아침은 공통점이 있다. 당신은 이게 무슨 말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무슨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깃털 하나를 떨어뜨렸다. 오리나 거위의 것으로 생각했는데 집으로 가져와 자세히 보니 쇠백로의 것이었다. 나는 깃털에 사인펜을 끼워 창문에 날개를 그려보다가 이 글을 쓰기로 하였다. 하지만 쇠백로는 이미 천 년 전에 사라진 조류였다.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당신에게 오늘 해줄 이야기는 이 깃털의 나이보다 더 길 것이다. (후략)

-이지아 시인의 ‘캔과 경험비판’ 중에서.

나와 당신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혼자만의 아픈 기억, 열등감,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못다한 슬픔까지. 인간에게는 누구나 어둡고 습한 단면이 존재한다. 우리가 가진 여러 얼굴의 고통을 새로운 무대 위로 끌어낸 시인이 있다. 이지아 시인의 손끝에서 다시 탄생한 현대인의 아픔은 사회가 명명한 이름 대신 담담하고 자못 우아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재현된다.

첫 시집 “오트 쿠튀르”와 함께 강렬한 시작을 알린 이지아 시인. 시집 출간으로부터 몇 개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새로운 질서 위에 새겨진 “오트 쿠튀르”만의 시편과 함께 이지아 시인을 더욱 깊숙이 알아보았다.

(시인 영상)

Q. “오트 쿠튀르”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알렸습니다. 요즘 근황은 어떻게 되시나요? 

안녕하세요. 뉴스페이퍼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코로나로 조심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이런 생활은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부터 하고 있었어요. 시집 준비하고 논문 쓰면서 사람들도 못 만나고 두더지처럼 외로운 시간을 보낸지 꽤 됐거든요. 지금도 도서관, 독서실, 집을 병행하며 살고 있어요. 

요즘 저는, 책 3가지를 기획 중이에요. 하나는 제가 쓴 박사 논문 <한국 시극 작품에 나타난 공간성 연구>를 단행본으로 만들기 위해 수정하고 있어요. 논문과 단행본의 격차를 메우기 위해 분석하고 있어요. 또 추가할 내용과 삭제할 내용을 판단하고 있는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랄까요. 오래달리기를 하는 느낌이에요. 

다른 하나는 시론과 이야기를 겸비한 책인데요. 일반 에세이 형식이 아니라 픽션 에세이에 제가 생각하는 시론과 예술론을 섞어서 쓰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20가지 주제 챕터를 만들었어요. 아이디어는 파스칼 키냐르의 어떤 책에서 얻었어요. 어떤 책은 스포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키냐르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저만의 담론을 형성해 나갈 계획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집...을 준비하고 있어요. 아직 초고이지만 55편 정도 썼고요. 수정 단계에 있고 더 추가할 계획이에요. 수정과정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네요. (웃음)

Q. 이번 시집 제목 선정 과정에서 약간의 논의가 이어졌다고 들었습니다. 표제작을 뽑는 대신 ‘오트 쿠튀르’라는 별도의 제목을 설정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오트 쿠튀르’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이 제목으로 출판사에 투고했었는데요. 정말 몸이 단무지가 되는 느낌이었어요. 한글 옆에 불어도 넣길 바랐거든요. 그건 없는 게 낫겠다 하셔서 한글로만 오트 쿠튀르로 나왔어요. 저도 동의했고요. 오래전부터 시집 이름을 짓는다면 시에 나온 제목이나 문장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편집자님께서 제 의견을 잘 이해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시집 속에 나온 시의 제목을 시집 제목으로 짓는 일이 저한테는 어색한 일이었어요. 그런 경우엔 독자들이 그 표제작을 제일 먼저 찾아 읽으시는 경우가 많으시더라구요. 그리고 시집 속의 문장을 제목으로 하는 경우도, 그 문장을 강조하는 것 같고요. 그런 것들이 물론 좋은 일일 수도 있지만, 저는 어색한 일이었어요.

저는... 시집 한 권이 한편의 짧은 시, 짧은 노래, 짧은 구절이라는 생각을 해요 연결, 반전, 환기... 모든 걸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를 구성하고 순서를 정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건 제 주관적인 생각이에요.
 
나아가 시와 시집 제목은 같은 연장선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고, 팽팽한 평행선이거나, 오히려 시집 내용을 배반하고 비판하는 제목을 짓고 싶기도 했어요. 그래야 시의 충돌, 시의 힘이 발생할 것 같았거든요. 

시 안에서 언어를 자유롭게 풀어주고 싶었어요. 언어를 자유롭게 하면 시의 장소가 넓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제목이 맘에 들었어요.

오트 쿠튀르란 단어는 고급 의상점이란 프랑스어이고, 세계 여기저기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에요. 시집 제목과 목차 이름을 프랑스어로 한 이유는 첫째, 개인적인 사연이 있고요. 프라이빗한 것이어서 생략할게요. 둘째로는, 의도적인 것이었어요. 

프랑스어가 가진 낯선 감각, 이질적인 느낌이 의도적으로 필요했고, 시와 시들의 거리를 멀게 하고 싶었어요. 샤넬이란 디자이너를 좋아하는데, 명품 사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명품이 되는 과정을 좋아해요. 샤넬이란 회사는 일정한 기간에 미래에 선보일 디자인 계획을 하며 오트 쿠튀르 행사를 합니다. 모두 핸드메이드이죠. 한땀 한땀... 상품화하려고 만든 작품이 아니라 디자인의 혁신, 새로움, 한계를 넘어서려고 만든 행사이죠. 프랑스 사회에서는 아무한테나 이 오트 쿠튀르 행사를 열 수 있게 해주진 않아요. 여러 조건이 있죠. 다른 브랜드들도 오트 쿠튀르를 하기도 해요.

가브리엘 샤넬은 기존의 질서를 허물고 혁명을 일으킨 사람이에요. 19세기 여성들의 해방을 의상에서 찾았는데, 코르셋을 벗어던지게 했고, 여자도 편한 바지를 입고 간단한 치마를 입고 가디건을 입어도 되고...상징의 색은 검정이었지요. 이런 의상의 혁신은 여성들에게 자유와 희망을 주었어요. 이러한 샤넬 패션의 정신은 화려함과는 대조적인 '푸어 룩(Poor Look)'이라 불리는 새로운 패션 스타일을 만들기도 했어요. 샤넬은 신체의 움직임을 구속하지 않기 위해 디자인을 극도로 단순화한 것이 특징이에요. 

이런 샤넬의 정신은 시 창작에 있어서도 필요한 요소일지도 몰라요. 자연스러움을 위해 사유를 단순화하는 것. 샤넬은 고아였고 몽유병이 있었고 타인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했어요. 그런 정신은 훗날 명품이 되죠. 명품이란 가격을 측정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가치 있게 보아야 하는 삶의 태도가 아닌가 생각을 해요. 이런 걸 제 시와 연결하고 싶었어요. 제 시에 나오는 인물과 소재들은 모두 불행해요. 하류의 인생과 비주류의 세계를 넘나들죠. 고아, 입양아, 소매치기, 몸 파는 여자와 남자, 클럽에서 판매되는 아이들, 굶어 죽는 노인, 살인 등의 이야기가 있어요. 그걸 그대로 형상화하진 않았어요. 문제는 소재의 중심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모두 우리의 인류이며 반인류의 초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비극적인 인식이나 사유를 무대로 올리고 싶었어요. 위로나 공감, 연민을 거부했으며, 그 시들이 자체로 변화와 갈등을 통해서 고귀해지길 원한 것 같아요. 그것은 여러 형식으로 기술적인 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지곤 하는데, 숨기거나 힌트를 주거나, 부정의 방식인 것 같아요.

즉, 제가 생각하는 문학의 현대성이란, 오늘날의 에코는 그런 것이죠. 오늘날 현대의 슬픔이나 고통은 간접화되어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인의 이름으로 이런 건 슬픔이지, 외로움이지, 결정하는 건 폭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저 대상의 기이한 의상의 행렬처럼, 시크하고 차가운 모델의 워킹처럼, 비참하지만 우아하게 앞으로 나아가죠. 그리고 지난 계절의 패션쇼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항상 전진해야 하죠. 쓸쓸한 운명처럼요. 이게 제 시가 입은 표정과 옷과 집, 하나의 어떤 쇼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시들은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기도 하고, 유령처럼 날아다니기도 하고요. 어릿광대처럼 기이한 웃음을 짓고 있기도 하고요. 담담하게 뒤돌아 서 있기도 해요... 하지만 시인은 다른 이야기, 다른 말, 다른 세계를 발견하고 만들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지아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Q. 시집의 제목만큼이나 각 목차의 명칭도 신경 쓰신 것 같습니다. 모두 낯선 프랑스어로 쓰인 듯한데요. 각각의 의미와 기준에 관해 이야기해주세요.

네. 시집을 엮으면서 목차의 순서와 분류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아요.

흐름을 결정하기 위해 저희 집이 23층인데 일층 비상계단부터 종이 한 장씩을 순서대로 붙였습니다. 그리고 순서를 바꾸고 이상한 것은 빼고 어울리지 않는 것은 삭제하고. 그리고 나서도 맘에 들지 않아 마루에 다 깔아놓고 정리하고, 창문에 열 개씩 붙여보고, 첫 시집이라 걱정이 되었던 것 같아요. 

우선, 1부의 시들은 어리둥절한 시들을 배치했어요. Ⅰ.Travail précieux은 공들인 작업을 뜻합니다. 그런데 공들인 작업은 공들이지 않은 것처럼 스윽 지나쳐 보이는 것처럼 이상한 시들을 놓았어요. 저는 오래전에 좋은 문장, 좋은 단어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런 것에 집중하여 쓰면 구조와 흐름이 망치고, 촌스러움을 가지게 되었어요. 즉, 시를 어떤 틀 안에 갇히게 만들며, 독자가 어느 지점에서 머뭇거리거나 멈춰있다면 그것이 처음에는 감동이나 좋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쉽게 휘발되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어요. 즉, 맛있는 과자를 계속 먹으면 느끼해지고 질리게 되는 것처럼요. 공들인 작업이지만 어떤 기준 없이 맘대로 공을 들인 시들로 배치했습니다. 문법을 따르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서사적 흐름이 강한 시들의 단점과 위약, 못생기고 비정상적인 단어를 쓰고 싶었어요.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시들의 약점을 약간 조롱하는 느낌. 그것이 어떤 효과를 줄지 의도하지 않게 하였어요.

Ⅱ에서 Défilé de mode은 패션쇼, 행진을 뜻합니다. 본격적으로 오트 쿠튀르가 시작되는 곳인데, 이곳의 시들도 1부의 시들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긴 해요. 특이한 경험을 겪는 주체들을 유머와 귀여움. 천진난만으로 허물어지게 쓰거나, 주체들의 즉흥과 발생이 나타나요.

Ⅲ에서 Sélectionner은 선별이란 뜻을 가지고 있어요. 기이한 것들과 기이하지 않은 것들의 연속인데, 사실 그 차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선별은 선택이고, 구별이 되고 그런 선별이 차별을 일으키는데, 이건 차연의 속성을 가지지 않아요. 오히려 짜릿함과 모멸감을 느끼죠. 여기 시들은 그렇게 씌여 있어요.

Ⅳ.에서 Destin tragique은 비극적인 운명을 뜻합니다. 조금 상투적인 단어에요. 문장으로 쓰고 싶었으나, 그럼 목차의 제목이 시들의 제목보다 무게를 둘 수 있어서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비극성을 얘기하고 있지만, 시의 형상들은 그리 비극적이지 않아요. 운명을 좀 비약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어요. 기존의 저항의식과 다른 방식인데 항의가 아니라 항온기에 들어가 어떤 변화와 놀라운 결과를 기대하는 그 무언가를 거절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운명이란 결국 인간의 삶을 가지고 노는 것인데, 그것마저 거역하고 싶은 주체들의 행동 같은 것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Ⅴ.에서 Soleil은 태양을 의미해요. 5개의 소제목을 통해 한 편의 극시를 구성하고 있어요. 반인류를 향한~으로 시작하는 제목이에요. 태양을 24시간 볼 수는 없어요. 밤에는 보이지 않죠. 이분법적 어떤 현상, 인류와 반인류가 결국 우리에게 반사하고 파동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했던 것들이에요. 좀 복잡하죠. 태양은 긍정이나 부정의 모든 걸 가지고 있고, 또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도 해요. 그냥 태양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볼 수 없는 걸 보게 되는 것도 아니고 태양이 없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걸 보게 되는 것도 아니죠. 시간의 행태를 전시하고,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의 죽음이나 사물들의 끝. 이런 이야기들을 즐겁게 얘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런 배열들이 규정된 박스에 다 들어있진 않아요. 그럼 너무 숨이 막히니까요. 그 박스를 뚫고 삐져나온 한쪽 발처럼 성격이 다르고 어울리지 않는 시들을 한두 개씩 일부러 넣었어요. 일관성을 최대한 망가뜨리려고 했어요. 

“오트 쿠튀르” 목차 [사진 = 김보관 기자]

Q. 각각의 시편이 모두 생생히 살아 숨 쉰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로 어떤 것들에서 시적 영감을 받곤 하시나요? 특히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나 대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로 다른 사람들이 다루지 않는 소재나 사유에서 시작하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인간이 가진 열등감과 부족함, 기이한 감정, 설명할 수 없는 상황... 제가 쓸 수 없는 것들... 이런 것을 포착하려고 하죠. 이 시간들이 시 창작에 있어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해요. 고통스럽고 힘들 때가 많아요. 저는 소재의 측면에서 찾지는 않아요. 

무엇을 얘기할 것인가를 찾지만, 결국 그 무엇이 시의 주제나, 대상이 되는 것을 삭제해요. 저만 알고 있을 뿐, 시에는 나타나지 않아요. 그건 주제를 숨기다는 것과는 달라요. 시의 대상들이 서로 만나거나 헤어지거나 숨거나 작동하는 것을 연출하지는 않아요. 저는 그저 시의 방을 만들기만 할 뿐. 대상들이 움직이는 건 그들의 마음이에요. 제가 관여하지 않아요. 그러니 제가 관심이 되는 것은 대상의 본질, 원초적인 질료. 그런 것들인데, 그런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고 자꾸 딴소리를 해요. 하지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여야 해요. 그래야 충돌하고 깨지니까요. 일종의 복잡한 장치 같은 것인데... 진실은 아니죠. 

시는 딴소리이고 헛소리이고 재채기이며 세계의 가장자리를 더듬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여튼 머뭇거리고, 몸을 비비꼬고, 짧게 말하고 도망가버리죠. 대부분 시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정하고 시작해요. 그런데 그건 저만 알고 있고 시는 몰라요. 쓰는 시간은 의외로 짧고 생각하고 사유하는 시간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오래 걸려요. 수정하는 시간은 정말 지옥 체험이에요. 함정에 계속 빠지죠. 하하.

Q. 시인님께 ‘시’는 무엇인가요? 처음 글을 썼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시인님의 문학관과 시인으로 살게 된 계기에 대해 들려주세요. 

초등학교 때 투명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별을 보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를 읽었던 기억이 나요. 물론 완벽하게 다 이해는 못했지만, 그 충격은 참 강했어요. 어릴 때부터 천진난만하고 밝았지만, 생각이 많은 아이였어요. 동물들 소리가 들리고 나무와 채소들이 함께했던 숲속이었는데, 시골을 벗어나 작은 변두리였어요. 가난과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저는 동화처럼 비극적으로, 극적으로 살아남았어요.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이 있겠다고 믿으며 살았어요. 세상이란 그런 걸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릴 때 다른 고전 소설도 읽었어요. 모두 자극적인 이야기들이었어요. 

삶을 고민하던 작은 꼬마는 어떤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포기했고, 돈을 벌어야 했어요. 일반 회사를 다니다가 20살 초쯤 야간대에서 시와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제 몸의 모든 기관들이 문학으로 구성된 것 같았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예뻤던 시절이었어요. 저에게 시는 세상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어 준 힘이었어요. 하지만 그 후로도 삶의 고비들은 많았어요. 시인이 되고 시집을 내게 되는 걸 꿈꾸었지만 제 글이나 상상력, 사유들이 좀 독특하고 기이해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지는 못했어요. 기대를 받았지만, 상처와 실망도 받아서... 또 문학이 아닌 개인적인 아픔으로 15년 정도 쓰는 삶과 떨어져 있었어요. 공부만 했죠. 시를 쓰지 않았어요. 

극단적인 행동도 하려고 했었지만... 결국, 시가 저를 구했어요. 그걸 생각하면 이제 다시는 시를 버릴 수 없을 것 같고, 시를 나태하게 대하거나, 시를 이용해서 살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인위적으로 시를 만들고 싶지도 않고, 구속하고 싶지 않고, 그냥 함께하고 싶어요.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많은 노력과 절제, 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유쾌하게 시와 높이뛰기를 하고 싶네요. 

시집 “오트 쿠튀르” [사진 = 김보관 기자]

Q. 다시 시집 이야기로 돌아와서, 연극의 형식을 차용하거나 활용한 시편이 특히 눈에 띄는데요. 여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나요?

오래전에 시와 희곡을 같이 썼었는데요. 시와 희곡은 연결되어 있어요. 특히나 시극이나 극시는 시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죠. 제가 시집을 낸다면 공연을 전제로 하는 시극보다는 극시를 꼭 시집에 넣고 싶었습니다. 제 박사 논문이 비록 시극에 관한 것이지만 제가 연구하고 싶었던 것은 ‘극시’였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엔 아직 극시 이론가도 극시 작가도 없습니다. 연구하려면 유럽의 이론을 가져와야 해요. 그러려면 탐색과 정보, 연구의 시간이 더 필요했어요. 저는 극시의 장르를 개척하는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이에 관한 연구는 논문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에요. 

창작은 극시를 통해 독자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극시나 시극이나 희극이나 다 극의 성격을 갖고 있고, 시의 ‘파장이나 고임, 멈춤, 휘몰아침, 섞어서 멀리 던지기’에 필요한 소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런 것을 창작에서 은유, 환유, 이미지, 감각, 레이어드 등 기법으로 통할 수 있으나 그런 것들은 이미 낡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비틀기’가 있다면 예전에는 사유와 주제의 환을 의미하지만, 지금의 다른 방식의 비틀기는 문장이나 단어 자체를 비트는 것이 아니라 더 멀리 있는 것을 그냥 옆에 두는 것이죠.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틀기는 단지 비판이나 풍자가 아니라 예상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확대되어요. 말이 안 되는 매력적인 문장은 이렇게 탄생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법이 아니라 기술과 형식이며, 내용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며, 다른 세계로 바꿔버리는 변화의 힘 같은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했어요. 

희곡의 방식을 차용하는 것은, 목소리를 주자는 것인데. 침묵에도 목소리를 줄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무언가에 실력을 부여하는 작업이라 설레었어요. 또한, 캐릭터를 부여하면 그 존재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지요. 의미 없는 의미도 그 자체가 되는 것이며, 무의식과 의식의 이분법적 분별도 해체할 수 있어요. 그리고 시적 화자의 평가나 선택을 멀리할 수 있으며, 장소나 시간을 뛰어넘어 전개가 좀 유연해지는 면이 있긴 해요. 예를 들어 상상과 초월, 초현실은 모두 다른 것인데, ‘이미 있음, 여전히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들’ 이런 것들은 그냥 작품 자체에 본질로 자리를 잡아요. 그러니까 시는 세상에 질문을 하는 게 아니에요. 답을 찾으려고 답을 들으려고 질문하는 제스처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시는 아무런 목표를 가지지 않으며, 욕망을 가진 인간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뿐이에요.

시 속에 희곡의 방식과 다른 장르의 결합, 오페라나 뮤지컬, 동화, 영화, 뉴스, 등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실험하고 시도하는 것. 이런 것을 저는 재미있게 생각하고 있어요. 

Q. 특히 이번 시집의 마지막 작품, ‘반인류를 향한 태양과 파동과 극시’가 기억에 남습니다. 강렬한 제목과 실험적인 형식, 긴 분량에도 뛰어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셨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집필하게 되셨나요? 

질문 감사드려요. 이 극시는 원래 15개 정도의 작은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시집에는 5개의 에피소드만 넣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독자분들이 좋아해 주셨어요. 특히나 소리내어 낭독할 때 재미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감사했습니다. 이 극시는 파편적으로 분절된 이야기 같지만 모두 ‘인간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인류가 인류를 향한 바램과 소망... 이런 것들이 바탕이에요. 실험적인 방식으로 다가가되 경쾌한 리듬과 캐릭터를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길가에 놓여진 ‘청설모와 자전거’의 대화는 근엄하고 관념적이어서 어이없기만 해요. ‘모직코트’와 ‘아버지는 지렁이’ ‘빗줄기’ ‘X’의 대화는 평범한 인물들이 아니에요. 짧고 간단한 대사를 하고 대사가 서로 연결도 안 되고 서로 딴소리를 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저항하거나 싸우려고 하지도 않아요. 이들의 대사가 옹기종기 모여있고 파릇파릇 돋아나게 하고 싶었어요. 특히 ‘클립’이 인기가 많았어요. 저도 클립이 좋아요. 한 번도 책상을 갖지 못하다가 25살에 처음 책상을 가지게 되었을 때, 클립 가지고 책상에서 땅따먹기하고 놀았어요. 아이처럼 너무 행복해서요. 그때의 소중한 마음을 생각하며 극시를 창작했습니다.
 
요즘도 계속 극시를 쓰고, 더 유치하고 가볍지만 슬프고, 천진난만한 이야기들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발전되었던 극시의 역사와 지평을 한국 문학만의 방식으로 색깔로 시도하고 싶어요. 어렵겠지만 전통문화와 첨단의 흐름을 가지고 날아다니는 주체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흥미로운 작업입니다. 서양 중심의 극 형식을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극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고유성을 만들면서 현대성을 잃지 않게 노력해보고 싶어요. 좀 복잡하지만, 판소리나 탈춤이나 여러 극 형식을 제가 현대적인 극시 형태로 창작해보고 싶어요. 그러나 그것이 지금의 문학들과 동떨어지지 않게요.

‘반인류를 향한 태양과 파동과 극시’ 일부 [사진 = 김보관 기자]
‘반인류를 향한 태양과 파동과 극시’ 일부 [사진 = 김보관 기자]

Q. 이밖에도 다양한 음식들이 시어로 등장합니다. 모두 열거하기에도 힘들 만큼 여러 가지 종류의 과일과 음료, 간식과 식품들이 이색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요.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음식이란, 인간의 몸을 최초로 드나드는 물질이며, 우리가 모르는 영역까지 닿을 수 있는 존재예요. 인간의 기분을 나쁘게도 좋게도 할 수 있고요.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 먹을 것이란 중요한 매개체가 되어요. 이런 음식들은 신기하고 과학적인 반응을 일으키지요. 이런 현상은 시 자체에 어떤 변화를 일으켜요. 물론 시마다 다른 이유로 소재들을 가지고 오긴 했지만, 질문을 듣고 다시 시집을 찾아보니 정말 음료, 간식, 과일, 먹을 것에 대한 언어들이 많이 있네요. 하하.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순 없고요. 시에 대한 모든 걸 설명하면 다른 해석이 나오는 걸 막는 거니까요. 그리고 시인들은 시 쓸 때 모든 걸 알고 의식하고 쓰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게 오히려 거짓일 수 있어요. 시는 시인이 쓰는 게 아니라 시가 시를 부르는 것이니까요. 「들판위의 챔피언」에 나오는 ‘문어 빨판’에 대한 이야기와 「현대성」에 나오는 ‘배’, 「파인애플에 대한 리뷰」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만 짧게 이야기해볼게요. 먼저 「들판위의 챔피언」에 나오는 문어 빨판은 생김새가 모두 규칙적으로 생겼어요. 환공포증을 일으키죠. 거식증을 앓고 있는 주체가 문어 빨판을 보면서 끔찍함을 느껴요. 하지만 여기서 주체는 나오지 않아요. 주체를 일부러 삭제하죠. 주체의 자리를 억압하는 세계에 대한 비판이니까요.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증을 반영하는 방식이에요. 
 
「현대성」에 나오는 ‘배즙’은 ‘배’라는 과일의 에센스를 상징해요. 현대가 인간에게 주는 폭력에 관한 이야기인데, 누나는 모르는 남자에게 얻어맞고, 동생은 나무속에 들어가 누나를 관찰해요. 또한 동생과 누나는 금기의 사랑을 나누는 사이에요. 배즙은 관계의 분비물을 은유하기도 해요.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집으로 돌아와 배즙 포장하는 일을 하죠. 지금 현대를 반영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모두 고통스럽지만, 현실을 바꿀 수 없고, 삶의 책임을 반복적으로 이행하고 있죠. 좀 기이하고 슬프죠. 

「파인애플에 대한 리뷰」는 더 비극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렇게 보이게 하지 않기 위해 여러 장치를 붙였어요. 여자가 같은 여자를 괴롭히는 내용이며, 상처를 당한 여자가 자살한 내용이에요. 캐비넷 안에 들어가 목숨을 끊죠. 칸칸이 붙은 사물함은 뾰족한 파인애플 껍데기를 상징해요. 이미지가 이미지를 종속적으로 관리하는 형태에요. 매우 복잡한 구조로 얽힌 시에요. 여기서 먹는 음식 파인애플, 새우, 소금, 후추 이런 것들은 개인이 개인을 죽이고 잡아먹고 없애버리는 허무함을 나타내고 있어요. 죽었던 주체는 죽었던 장소에서 콧구멍에 식빵을 붙이며 정신이 나간 채 멍하니 있죠. 아무리 잘해도 달라지지 않는 세상을 미워하며 끝내죠. 이렇게 이 시집에서 먹는 것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구조화되어 있어요. 나머지는 독자분들이 재밌게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 

상자를 열면 상자를 열면 캐비닛을 열면 살색 스타킹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이곳을 드나드는 자들은 알겠지 이 꼬랑내가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는

좀더 큰 것을 얘기하고 싶은데
너는 오늘 어디니 아르헨티나
너는 오늘 어디니 일본
너는 오늘 어디니 복사기
너는 오늘 어디니 보험
너는 오늘 여기서 집중해

노력이란 걸 너무 많이 하고 살았으니 이제부턴 좀 줄이고 살자. 서류를 만들 때 오타가 너무 많아. 그걸 줄이려고 집중을 너무 하고 살았으니 이제부터 좀 줄이고

-이지아 시인의 ‘파인애플에 대한 리뷰’ 중에서.

Q. 시작 활동 외에도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두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인으로 외에 어떤 자아들을 갖고 있나요? 병행하고 있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다양한 방면에 관심이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정말 관심 없는 분야는 거의 빵점이에요.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이 많아요. 예전에 몇 년 전에 팟캐스트에 나간 적이 있는데, 디제이분이 요즘 관심 있는 게 뭐냐고 질문하셨는데, 옆의 시인분은 언어의 세계라고 말씀하시고, 저는 황당하게도 ‘구리’ ‘알루미늄’ ‘케이블’ 뭐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아요. 그게 사실이었고 그때 읽고 있던 책도 여러 가지 금속, 물질에 관한 책, 무기에 관한.....너무 신나서 대답했죠. 집에 와서 내가 진짜 너무 웃기게 대답했구나 생각했죠. 하하.

또, 사람에 관심이 많아요. 분석하듯이 얼굴을 보며 생각해요. 파리넬리의 남자 주인공의 얼굴, 패왕별희의 장국영 얼굴, 실제 범죄자들의 사진을 파노라마로 만들어서 계속 돌려보기도 하고요. 그냥 기괴하고 특이한 거 좋아해요. 그러다가 울기도 해요. 

대학 때도 국문과 수업보다는 다른 과에 가서 청강하다가 밤이 되어서 집에 갔던 기억이 나요. 알아듣지도 못하는 러시아수업과 작곡 수업, 서양화 수업을 좋아했어요. 다른 작가분들도 좋아하시는 영화, 음악, 미술, 무용, 소설, 그림책에도 관심이 있지만... 그 외에 제가 모르는 것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뿐만 아니라 힙합이나 젊은 세대들의 문화도 좋아하고, 노인들의 세계도 관심이 많아요. 그냥 알지 못하는 세계의 단어들과 사건들이 튀어나오면 심장이 폭발하는 느낌...이에요. 저는 승용차보다 트럭과 크레인, 포클레인, 기차... 이런 것들의 제품명, 이름도 찾아가며 박수치고, 이런 걸 보며 루종일 혼자 놀기도 하거든요. 기계도 좋아하고 자연도 좋아해요. 한번은 제가 ‘털’에 관심이 있던 적도 있었어요. 털이 만들어지는 화학적 과정과 생물들의 털 종류를 조사했죠... 몇 주 재미는 있었지만 결국 털, 글자 하나만 사용했어요. 그리고 ‘관념에는 털이 자란다’라는 문장을 쓰게 되었는데, 완전하진 않았어요. 요즘엔 로봇에 관심이 많아요. 인공지능이나 복제, 기계들의 소리, 움직임, 이런 것들이 재미있어요.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말하면 아마 끝이 없을 것 같아요.

시 쓰는 거 외에도 그냥 공상하고 아무거나 쓰는 거 좋아하는데, 그건 뇌 속에만 있어요. 뇌 속에서 중얼거리다가 산문이 되기도 하고 시극이 되기도 하고 다른 글이 되기도 하고, 브랜드가 되기도 하고, 아이디어가 되기도 해요. 가끔 알바로 외국인 회사에 브랜드 크리에이터로 일하고 있어요. 새로운 상품이나 분야에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의 가치와 이유에 관해 설명하죠. 이 일은 제가 창작하는 데 도움이 돼요. 

며칠 후엔 라이브 동영상을 통해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일인데, 어떤 희곡작가 분의 작품을 피드백하고 이야기 나누는 일을 하기로 되어있어요. 처음 뵙는 분이라... 설레이기도 하고, 희곡에 대해 말씀을 나눌 생각을 하니 잠이 안 와요. 기쁘네요. 그걸 위해 자료를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그동안 SNS를 못 했어요. 활동한 지 6개월 정도 되었는데 이런 작품 분석에 관한 동영상을 지우지 않고 조금씩 하나씩 저장해두려고 해요. 

저는 평상시에 저에게 자꾸 주문을 걸어요. 너는 시인이 아니야. 너는 사람처럼 세계를 보지마. 시인의 입장으로 글을 쓰거나 세계를 보면 상투적이고 평범하고 답답한 형상들이 만들어지거든요. 그러니까 시인 외의 다른 자아로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그냥 제가 고양이거나 개이거나 농구대이거나, 계단이거나, 아이스크림이거나, 아무거나 저를 대입시켜서 시간을 보내요. 

어떨 때는 사물 연기를 하곤 해요. 가족들이 저를 정신나간 사람으로 보곤 해요. 제가 생각해도 이상한 것 같아요. 하지만 시인이란 한 편의 시를 연기하는 사람일 뿐이며, 다른 것이 되어 보는 것. 그냥 그런 게 좋아요. 물론 평상시엔 두 공주님을 관찰하고 케어하는 평범한 자아로 살지만요. 

Q. 이번 시집 ‘오트 쿠튀르’를 통해 ‘이것 하나만은 전하고 싶다’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오늘 너무 말이 길었던 건 아닌지... 걱정되네요. 하하. 이번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게 할게요. 제가 시집 오트 쿠튀르를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이미 삶이 실패하거나 시가 실패하거나 모든 것을 잃었어도...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용기를 가지는 것. 시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어떤 에너지와 힘으로 무서운 속도감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억압하는 제도와 상투적인 것, 권력적인 것, 자신없던 인생에 대해, 타자들이 새로운 도전으로 시작하시길 바라며 시를 썼습니다. 아무리 불행하고 아무리 아무것도 아닌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모두 고귀하고 고급스러운 우리들의 모습이므로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삶의 오트 쿠튀르를 전하고 싶습니다.

Q. 이외에 하시고 싶은 말씀과 함께 추석 인사를 남겨주세요!

저는 제 자신을 보살피고 다정한 말을 건네고 잘 바라보지 못했어요. 제가 저를 감싸면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를 쓰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시집을 내고 방황했지만, 조금은 제가 저를 안아줘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 읽었을 때 주제가 명확한 시보다, 오랜 시간을 두고 생각나고, 읽을 때마다 색다르게 보이고, 오트 쿠튀르 시집은 이상하게 묘한 매력과 힘을 가진 시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포장하지 않고 거짓 없는 문학을 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삶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 다양한 표정을 지을 것입니다. 어수선한 요즘이지만 따뜻하고 여유로운 추석 연휴가 되시길 바라요. 부끄러움이 많아서 표현을 잘못하지만, 언제나 여러분을 사랑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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