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기획 인터뷰 04] 작은 것들에 깃든 삶과 시, 문성해 시집 “내가 모르는 한 사람”
[추석 기획 인터뷰 04] 작은 것들에 깃든 삶과 시, 문성해 시집 “내가 모르는 한 사람”
  • 송진아 기자
  • 승인 2020.09.30 19:26
  • 댓글 0
  • 조회수 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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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오후의 언덕과
축사로 들어서는 염소들 등에도 얹혀 있는 것들

내 뒤에도 누가 붙어사는지
가다가 한참을 뒤돌아보는 사람이 있다

나의 뒤에 내가 모르는 한 사람이 붙어사는 일
나는 그를 위해 밥을 주고 잠을 주고 노래를 준다

- 문성해 시인의 ‘뒤태’ 중에서.

매일 먹는 밥과 같은 일상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은 때로 반짝이는 별똥별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 침대 맡에 놓인 이불과 베란다에 마르고 있는 빨래 너머에서 빛나는 위로를 찾아내는 문성해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내가 모르는 한 사람”과 함께 돌아왔다.

시인은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데뷔해 시집 <자라>, <입술을 건너간 이름>, <아주 친근한 소용돌이>,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를 내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시는 알아가는 일이 아니라 몰라가는 일”이라고 말하는 문성해 시인은 모르는 것들에 몇 번이고 다가가며 우리 곁의 삶을 그려낸다.

(시인 영상)

Q. 안녕하세요. 다섯 번째 시집 “내가 모르는 한 사람”을 발간하셨는데요. 시집의 제목을 ‘내가 모르는 한 사람’으로 정하게 된 계기와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시집 제목을 정하는 데 있어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시집은 마지막까지 제목을 두고 고심을 했는데 불과 시집이 나오기 일주일 전에 이 제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시집의 첫 번째 시 ‘뒤태’에 나오는 구절이었는데 ‘내가 모르는 한 사람’은 사람의 뒤태에 붙어사는 한 사람을 지칭해요. 그런데 이 ‘내가 모르는 한 사람’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가 될 수도 있고 내 자신이 될 수도 있고 해서 여러 가지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 재미가 있었어요. 저마다 ‘내가 모르는 한 사람’은 누굴까? 생각해 볼 기회가 되기도 하구요.

Q. 시집의 첫 얼굴인 첫 작품의 제목이 아이러니하게도 ‘뒤태’인데요. 해당 작품을 첫 순서로 배치한 데에는 어떤 사유가 있으셨나요? 

집 앞에 일산호수공원이 있는데 아침마다 그곳을 산책하면서 사람들의 뒤태를 매일 만나게 되었어요. 매일 하는 산책이라서 어떤 때는 익숙한 뒤태를 만나기도 하구요.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의 뒤태와 흡사할 때가 있는데 그런 때는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거나 간혹 쫓아가서 앞을 확인하기도 하지요. 전 이런 일이 많아서 무안함과 당혹감을 느낄 때가 많았지요.

그러고 보니 뒤가 나오는 ‘뒤태’가 첫 작품이 되었군요. 그렇게 깊이 생각하고 첫 작품으로 ‘뒤태’를 배치한 건 아니고 누구에게나 공감이 가고 친숙하게 읽힐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작품을 찾다 보니 그 작품이 맨 앞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시집 “내가 모르는 한 사람” [사진 = 김보관 기자]

Q. 총 3부로 나뉜 이번 시집의 목차 구성에서 특히 고려하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1부는 발표작 위주로 묶었고 대부분 생활과 시와의 삐그덕거림이나 소음에 대한 시들을 한데 모아 보았어요. 생활과 시는 언제나 원만할 수 없는 관계에서 불협화음을 내게 되는 존재들임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2부는 1부보다는 조금 땅에서 떨어진 이야기들, 상상하는 즐거움이나 언어의 맛을 주는 시편들로 묶어보고 싶었고 3부는 1부와 2부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최대한 가벼운 느낌으로 묶어보려고 했는데 독자들에게 저의 저의가 잘 전달될는지는 모르겠어요

Q. 이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는 ‘처서’일 것 같은데요. 소소하고도 큰 행복을 그려내며 따듯한 가을의 정서가 물씬 느껴집니다. 이외에 다가오는 연휴, 단 한 편의 시를 추천한다면 무엇인가요?

소소하고도 큰 행복을 주는 절기라면 ‘처서’가 단연일 것 같아요. 여름을 지나 가을로 들어가는 문턱에서 햇볕도 충만하고 먹을 것도 넘치고 또 멀리 떠난 인연들도 돌아올 것 같고요. 

추석에 추천하고 싶은 시가 있다면 2부 두 번째 시 ‘방랑자의 시’라고나 할까요. 아무래도 추석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도 많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또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고향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자의든 타의든 우리 모두는 ‘방랑자’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조금은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는
낡은 구두와
말벌의 웅웅거림과
어깨가 흘러내리는 배낭을 배반할 수 없는 사람
시인이 번뜩이는 영감을 배반하지 않는 것처럼,

그는 지나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거나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시인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비유로만 사랑하는 것처럼.

문성해 시인의 ‘방랑자의 시’ 중에서.

Q. ‘혼자 먹는 밥’에서는 이전의 시집 제목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유독 쌀이 등장하는 시편들도 눈에 띄고요. 시인님께 ‘밥’은 어떤 존재인가요?

‘밥’은 저의 첫 시집부터 줄기차게 나오는 소재였어요. 그러고 보니 모든 시집에 ‘밥’이 나오는 시들이 꼭 한두 편은 들어가 있군요. 이 세계의 모든 존재들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밥’이 아닐까요? 밥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동시에 그것을 얻기 위해 싸우게 하고 때로는 비굴한 모습으로 모멸감을 견디며 살게 하죠. 이러한 것을 쓰기 위해 ‘밥’이라는 소재를 즐겨 썼던 거 같아요. 가장 필요하지만 가장 더럽고 또 때로는 숭고해지는 존재가 바로 ‘밥’이라는 생각입니다.
 

문성해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Q. ‘두릅’, ‘변기’, ‘빨래’, ‘이불’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대상을 중심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시편들도 있습니다. 시에 삶을 녹여낼 때 유독 신경 쓰는 지점이나 시인님만의 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제 맘속에 들어온 것들로 시를 매만지는 편인데 유독 맘속에 이런 것들이 많이 들어와요. 아까 말씀드린 ‘밥’이나 ‘변기’, ‘바구미’, ‘이불’ 같은 것들 말이죠. 그런 것들 속에는 삶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삶이 그것 속에서 어떻게 아름다워지고 아니면 반대로 피폐해지는지 그것을 걷어내면 삶이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환해질 텐데 그러지 못하는 연유를 찾아가 보는 것, 답이 없단 걸 알면서 그 일에 매달리는 일이 저의 시업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Q. 시인님이 생각하시는 ‘시’와 ‘문학’은 무엇인가요? 글을 쓰게 된 계기와 문학관에 대해 들려주세요.

한마디로 제게 ‘시’는 발바닥을 언제나 땅에 붙이고 나아가야 하는 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생활하듯이 시를 쓰는 거지요. 장례식에서 돌아와서도 쓰고 돌잔치에 갔다 와서도 쓰고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서도 쓰는 게 시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Q. 이번 시집을 통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독자들이 얻어 갔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내가 흔히 겪는 일들, 내가 지나쳐 보낸 풍경들이 시가 될 수도 있구나, 아, 이런 생각은 내가 해보지 못한 생각인데? 하는 생각을 가지고 시를 읽으신다면 좀 더 재미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요? 또 시 역시 사람의 일이라서 그 속에서 다룬 정서를 찾아내는 일을 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Q. 끝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남겨주세요.

코로나로 모두들 입은 막고 살지만 그래도 아직 눈은 가리지 않아도 되니 따스한 가을볕 만나시는 일 잊지 마시고 그 눈에 아름다운 것 많이 담으시는 추석 연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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