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기획 인터뷰 05] 이철경 시집 “한정판 인생” 출간! 소외된 자들을 위한 노래
[추석 기획 인터뷰 05] 이철경 시집 “한정판 인생” 출간! 소외된 자들을 위한 노래
  • 송진아 기자
  • 승인 2020.09.30 19:27
  • 댓글 0
  • 조회수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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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가난한 자들이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하길”

명절 연휴가 찾아옴에 따라 자못 즐거워지는 이들도 있겠지만, 반대로 더욱 외롭고 힘들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철경 시인의 시선이 닿는 일용직 노동자와 거리의 노숙자, 사회초년생의 백수 생활 등 사회적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유년 시절 자신이 겪은 상흔에서 나아가 타인의 아픔과 고통과 연대하고 사회의 부조리함에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철경 시인은 이번 시집 “한정판 인생”에서 역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면면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시집 “한정판 인생”을 통해 우리는 내가 될 수도, 내 곁의 누군가일지도 모를 쓸쓸한 이들이 지나고 있는 또 하나의 시간에 함께하며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갈지도 모른다.

(영상)

Q. 4년 만에 세 번째 시집 “한정판 인생”을 발간하셨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고 계셨나요? 간단한 소회와 근황을 들려주세요.

두 번째 시집을 내던 해가 세월호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정신적 고통이 여전히 남아있던 해였지요. 사회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의혹으로 답답했던 분노의 계절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광화문 광장에 나가 세월호 단식을 하고 팽목항까지 순례길을 걸으며 조금씩 치유를 해나간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워낙 탄탄한 비리 세력의 철벽 방어로 해결의 실마리조차 막막하기만 했어요. 인본주의에 기반을 둔 복지국가를 원했지만, 그때는 부도덕한 정치에 대한 환멸로 많은 국민들이 촛불 시위에 동참하고 겨우겨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촛불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문학판에는 친일반역 문인이 일부에서 추앙받고 그 시혜를 받아 문학판 중심에서 좌지우지하는 실정입니다.

또한, 노동자들은 해고의 위험에 놓이고 살기는 더 팍팍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도 그간 회사가 힘들어 월급이 몇 개월씩 체불되고 실업자 상태로 몇 개월을 지나면서 대형면허도 따고 버스 면허도 땄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전공업무를 써주는 곳이 없어서 막막했지요. 그사이에 네팔 트레킹을 두 번이나 갔다 왔고, 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여행에서 얻은 삶의 의욕을 당겨서 다시 회사에 취직하고 지금은 직장인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시집 “한정판 인생” [사진 = 김보관 기자]
시집 “한정판 인생” [사진 = 김보관 기자]

Q. 시집 제목이 독특합니다. 시집에 실린 시 ‘한정판 인생’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데요. 시 속에 등장하는 ‘한정판 로봇’의 삶이 어쩌면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표제작을 선정하게 된 계기와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기자님께서 질문하신 대로입니다. 오민석 형님이 쓰신 표4처럼 입력된 사고와 한정된 공간에 갇힌 로봇이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휴머니즘 로봇이길 원했어요. 우리가 사는 사회는 부조리가 만연하고 기득권자 의향대로 하길 바라지만, 저와 이 시를 읽는 독자는 휴머니즘 로봇처럼 각자 세상의 부조리를 고치며 결코 강자의 세상이 아닌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을 원하는 마음으로 시를 썼습니다.

이 제목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제가 제목을 “한정판 인생”으로 정하고 탈고를 했어요. 그렇게 ISBN 코드를 받았다가 시집 제목이 ‘흐느끼는 어깨를 보았다’ 의견이 있어서 다시 등록했어요. 그런데 저는 아무래도 “한정판 인생”이 좋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다시 출판사에 의견을 넣고 시집 제목을 되돌렸지요. 그러다 보니, 시집이 8월 31일 나오는 거로 되어있었으나 연기되어 실제 제가 시집을 받은 건 9월 10일이었지요. 제목 때문에 많이 고심하고 결정했습니다. 좀 늦더라도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심사숙고해서 “한정판 인생”으로 하게 됐지요.

Q. 총 4부로 나뉜 이번 시집의 목차 구성에서 특히 신경 쓰신 부분 또는 각 목차를 묶은 기준에 관해 이야기해주세요.

처음에는 같은 성격의 시를 각부에 따로 모아서 순서를 배열할까도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비슷한 이미지가 중복되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죠.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회적 약자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이들의 이미지를 전면에 올리고 리얼리즘이 강한 시들은 뒤쪽에 배치했습니다. 이유는 많은 독자가 저를 투쟁가로 오판할까 걱정되어 서정적인 시들을 많이 전면에 배치했죠. 안타까운 건 독자들이 불편할까 봐, 세월호 관련, 시나 노동자 또는 위정자 비리에 연관된 시를 시집에서 많이 솎아냈습니다.

이철경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이철경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Q. 유독 ‘아이’가 등장하는 시편들이 눈에 띕니다. ‘장롱 속 아이’, ‘작은 아이’, ‘언 강’ 등에서 등장하는 아이는 주로 작고 슬픔을 품은 여린 존재로 그려지는 데요. 어떤 것을 형상화하는 시어인가요? 창작 비화를 들려주세요.

저 시속의 아이는 대부분 헐벗고 허기진 아이들인데요. 그건 제 삶의 내력과 무관치 않습니다. 출판사 도보 자료와 같이 저는 5살부터 19살까지 산골 고아원에서 유년과 청소년기를 다 보내며 성장했습니다. 그때는 가정집 아이들도 힘들었겠지만, 유독 고아들은 더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죠. 먹는 거, 입는 거, 자는 거, 모든 것이 불편하고 힘든 날들이었어요. 게다가 폭력과 노동은 더욱더 그곳 생활을 지치고 힘들게 했지요. 저와 같은 학년 동기가 7명이었는데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부 가출하거나 사라졌어요. 저도 시도를 안 한 건 아닙니다. 그러나 참고 또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회 나가서 가장 밑바닥 인생이 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지요. 하긴 그곳을 나와 공장을 전전하며 숙식할 때도 여전히 힘든 날들이었지만 배가 고프진 않았으니까요. 제 시의 아이들의 대부분 제 유년의 초상입니다.

Q. ‘제1구역 재개발 골목’, ‘빈자의 시선’, ‘홈리스’, ‘싱글대디’ 등의 시에서 일상 속 소외된 존재를 바라보는 시인님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시인이 바라보고 그려내는 약자들의 삶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요?

한국 사회에서 약자라고 하는 사람은 자본주의에 의한 판단으로 볼 때, 일용직 노동자와 거리의 노숙자, 사회초년생의 백수 생활 등 사회적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겠죠. 지금은 코로나 창궐로 인해 더 많은 노동자가 거리로 내몰리며 실직의 고통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인 가난한 자들이 단지 개인의 노력 부재로 치부하기엔 세상이 온당치 않은 일들이 많아서 가난의 대물림이 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기득권 세력인 위정자나 부자들은 그들만의 공고한 성을 쌓고 부의 대물림을 위해 법망을 피해가거나 노골적인 이익 창출을 위해 노동을 착취하거나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죠. 그러나 법을 만드는 정치인도 여든 야든 하나같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지 않고 개인의 부를 위해 혈안이 된 정치인이 부지기수입니다. 정말 좋은 나라가 되려면 누구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고 힘들고 가난한 자들이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돈이 힘이 되는 자본의 사회에서
일용직이나 빈민층은 고액의 사채에 허덕인다
기술이 미천한 자는 새벽시장을 전전하며
일욜직으로는 최소한의 목숨을 연명한다

빈번한 공사 현장 화재 참사는 대다수 일용직
하찮은 죽음으로 내몰리는 하루벌이 비해
자본의 이 땅에서 빈곤에 고통받는 비정규직 노동자,
영문도 모른 채, 살처분되는 돼지처럼
집단 매장 순서대로 무덤 앞에 기다린다.

-이철경 시인의 ‘빈자의 시선’ 중에서.

Q. ‘내 삶의 전부가 시’라는 작품의 마지막에는 ‘한때는 내가 시인인 줄 알았다’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해당 구절을 쓰시게 된 데에는 어떤 사유가 있으셨나요?

우리나라에 시인이 5만 명이니 10만 명이니 하는 말들이 돌고 있습니다. 게다가 SNS상에서 시인들이 그리 환영받지 못하고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고 있죠. 이러한 상황이 자꾸 발생하는 건, 시인도 인간인지라 별별 사람이 다 있지만, 시인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지요. 

때로는 시인들이 더 괴팍하고 사회 부적응자들이 많지요. 몇 해 전부터 시인의 치부가 기사에 오르내리고 민망한 일들이 시인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각인시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존경받던 시인이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시를 가르치는 시인이 손가락질 받는 일이 허다했으니까요. 그러한 일들을 보면서 창피하고 죄송스러웠어요. 누구를 두둔할 수도 없을 만치 피폐해져 가는 문학판이 불편했지요. 시를 쓰면 독자들은 위안을 받을지언정 시인은 시를 쓰면 더 가난해지니까요. 저도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회사에선 누구도 제가 시인인 줄 몰라요. 그러니 스스로 시인이 아닌 평범한 가면을 쓰고 샐러리맨으로 사는 거죠. 하지만 시는 현실에 발을 디디며 시가 나오기에 시 쓰는 순간만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시인의 질문을 받을 때만 시인인 거죠.

Q. 이외에도 상처받은 자아가 등장하는 시편들이 많습니다. 코로나 시국을 담은 작품들도 있고요. 주로 시적 영감을 얻는 대상은 무엇인가요? 어떤 것들에 관심을 두고 한 편의 시로 녹여내시나요?

저의 경우는 생소한 풍경이나 사회적 이슈를 무시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 인도 네팔 여행에서 생소한 이미지를 보면 시적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죠. 그냥 생소한 풍경이 아니라 고통받고 힘든 사람들의 일그러진 일상을 보면 내 유년의 어느 한 시절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면 현재와 과거가 만나 공진하면서 최상의 시적 모티브를 그려내게 됩니다. 물론 사회적 이슈를 보면 반발하고 동조하면서 불편한 현실에 대한 거부의 몸짓을 시로 그리거나 행동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 시에는 사회 참여적인 시들이 다소 있습니다. 많이 버렸어요. 그런 시는... (웃음)

시 ‘한정판 인생’ [사진 = 김보관 기자]
시 ‘한정판 인생’ [사진 = 김보관 기자]

Q. 그렇다면 시인님이 생각하시는 ‘시’와 ‘문학’은 무엇인가요? 글을 쓰게 된 계기와 문학관에 대해 들려주세요.

제가 시를 쓰게 된 동기는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저도 그 테두리를 벗어나진 못해요. 양상이 조금 다를 뿐이죠. 제가 중학생일 때, 동창 애를 짝사랑했어요. 음…….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을 겁니다. 5학년 때 저는 고아원에서 운영하는 신문 배달 일을 했어요. 시골 마을을 돌며 신문을 돌렸는데, 중계소에도 신문을 넣었지요. 그러면 친구 아버지가 밥 먹고 가라고 해서 친구 집에서 밥을 먹었지요. 그때 그 밥 내음과 따뜻한 온기 웃음소리 수줍어하는 친구의 모습이며 그런 흐름이 꿈속처럼 행복하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수년이 지나며 그때 공부도 잘하고 예쁜 친구를 오래도록 짝사랑했지요. 그 무렵 김소월의 「초혼」을 읽었는데 어쩜 내 마음 같은지, 그때부터 난 시인이 되어 내 마음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땐 너무나 순수했고 맑은 영혼이었지요.

Q. 이번 시집을 통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독자들이 얻어 갔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코로나바이러스로 이전과 이후 일상이 판이해졌어요. 수많은 사람이 사회적 불평등에 놓이고 실업 상태에서 많이 우울하고 많이 분노하는 마음이 울컥울컥 들 겁니다. 이럴 때는 더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시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작은 위안이라도 받았으면 좋겠어요. 제 유년과 청소년 시절은 헐벗고 허기지고 두려운 날들의 연속이었어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노동에 영양실조로 잠시만 서 있으면 픽픽 쓰러졌죠. 그러니 그때는 악에 찬 눈빛이었죠. 그러한 힘든 시기를 지나오니, 제가 꿈에 그리던 시를 쓰게 됐잖아요. 독자들도 이 작은 시집을 읽고 서로 위로하고 토닥거려주며 함께 힘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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