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자이자 민주주의자인 최현배 선생,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민주주의다.”
국어학자이자 민주주의자인 최현배 선생,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민주주의다.”
  • 박용규(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고려대 사학과 박사)
  • 승인 2020.10.0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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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배(1894∼1970) 선생은 국어학자로서 잘 알려져 있다. 국어학자 이외에 다른 면모도 있다. 최현배 선생은 독립운동가, 한글운동가, 사회사상가이기도 하였다. 
분명 최현배는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맞서 조선말을 수호한 독립운동가였다. 선생이 남긴 "우리말본"(1937)과 "한글갈"(1942)에 잘 드러나 있다. 언어 독립투쟁 때문에 1942년에 구속되었고, 징역 4년형을 선고 받았으며, 해방 이후 1945년 8월 17일에 함흥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아울러 일제 시기 이래 서거할 때까지 문자생활에서 국한문혼용 대신에 한글전용을 주장한 한글운동가였다. 동시에 새 나라 건설과 새 사람이 되어야 함을 역설한 사회사상가였다. 

필자는 이런 모습과 함께 최현배 사상의 백미로 민주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들고 싶다. 작년에 발표한 논문('해방 이후 민주주의자 최현배의 활동', "나라사랑" 제128집, 외솔회, 2019)을 통해 민주주의자 최현배의 면모를 조명하였다.

최현배 선생(1894∼1970)
최현배 선생(1894∼1970)

민주주의자로서의 최현배의 면모는 선생이 지은 "나라사랑의 길"(1958)과 "나라 건지는 교육"(1963)에 잘 나타나 있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와 한국 교육계의 부패를 비판하면서, 이의 타개책을 제시하였다. 이승만 정권의 “우악스러운” 정치를 신랄히 비판하였다. 민주주의자로서의 모습을 선명히 보여주었다. 

최현배는 1968년에 대통령 박정희가 지시·제정·선포한 ‘국민 교육 헌장’을 유일하게 비판하였다.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적 요소를 가진 ‘국민 교육 헌장’을 논리적으로 비판한 글을 발표하였다. 동아일보 1968년 7월 30일자에, 최현배 선생이 기고한 '국민교육헌장에 대하여'라는 글이 게재되어 있다. 국민 교육 헌장이 ‘교육 헌장’은 아니라고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교육헌장’으로 볼 수 있는 내용과 서술이 없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대통령 이승만·박정희의 주장과, 이승만·박정희의 독재정치를 신랄히 비판한 최현배 선생의 사상을 비교하여, 민주주의자 최현배 선생이 남긴 유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이들 정권의 공통점은 반공주의와 반공 정책을 내세웠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승만·박정희는 “대한민국이 반공을 해야 공산주의를 이긴다. 반공이 우선이니, 국민의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는 유보하자.”는 입장이었다. 이승만은 ‘멸공 통일’을, 박정희는 ‘승공 통일’을 내세워 장기 집권을 강행하였다. 

이승만은 ‘반공’을 앞장서 내세우며, 1948년 12월에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였다. 1958년 야당을 탄압하고 장기집권을 획책하고자 국가보안법을 개정하였다. 

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며, 공약 제1항에 “대한민국은 반공이 국시인 나라다.”라고 밝혔다. 1961년 5월에 중앙정보부를 설치하였다. 같은 해 7월에 반공법을 공포하였다. 하나의 사례만 들면, 야당 정치인 서민호는 남북교류를 주장한 것이 문제가 되어, 박정희 정권에서 반공법 위반으로 두 차례 투옥되었다. 그러나 뒤에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의 평화통일 주장이 정당하였음을 대한민국 법원이 인정하였다.

이에 반해 최현배 선생은 1958년 "나라사랑의 길"에서, “대한민국의 국시는 민주주의다.”라고 주장하였다. 계속해서 그는 1957년에 “대한은 민주주의 나라이다.”라고 하였고,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하면 공산주의를 이긴다.”라고 하였다. 같은 해에 “민주주의의 실현을 방해하는 자는 실로 조국을 망치는 이적 행위를 하는 자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계속해서 그는 1958년 "나라사랑의 길"에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면 공산주의 체제를 저절로 이긴다고 역설하였다. 

최현배 선생은 민주주의 우선이었다. 그는 "나라사랑의 길"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를 획득하려면,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의 순당한 발달을 꾀함으로써, 그에 따른 모든 인권과 자유와 행복을 만인이 한가지로 누릴 수 있도록 정치를 운영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하여, 모든 국민이 인권과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민주정치를 강조하였다. 민주정치는 독재를 용납할 수 없다.

그는 "나라사랑의 길"에서, ‘우리 민족의 이상이 민주주의의 완전한 실현에 있다.’라고 역설하였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인권, 생명,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 추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7년 3월 그는 “공산당을 이기고서, 평화적으로 통일의 실현을 원하거든, 우리는 모름지기 자기 개조, 자기 책임감으로써 믿음의 씨를 심고 기르고 또 번지게 하여 믿음의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신뢰 사회를 강조하였다. 신뢰 사회는 사람의 인권이 존중받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인권 유린이 빈번하게 자행되는 군부 독재정치 사회에서는 신뢰사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최현배 선생은 철저한 민주주의자요, 민주주의 사상가였다. 참으로 돋보이는 최현배 사상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박용규(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고려대 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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