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선” 2차 가해 문제 어디로? 문화예술계 성폭력 근절과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 사이
“문학선” 2차 가해 문제 어디로? 문화예술계 성폭력 근절과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 사이
  • 이민우 기자
  • 승인 2020.10.15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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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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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체육계 성폭력 사건이 잇따라 터지며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에 관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근래까지 문체부 산하 신고센터에 접수된 성폭력 피해 건수는 약 200건 이상으로 관련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태다.

이에 따라 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주요 개편 내용에서도 “성희롱·성폭력 예방제도 강화”가 언급되었다. 2018년 이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피해 예술인들을 위한 성폭력피해 신고상담지원을 실시하는 등 다양한 제도를 신설했지만, 문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은 문학계 또한 마찬가지다. 2016년에 시작된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과 2018년 미투 운동 등을 통한 숱한 문제 제기 이후에도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명확한 방지책은 존재하지 않고 있다.

“문학선” 2020 여름호 특별기고에 게재된 이무권 시인의 글 [사진 = 김보관 기자]

그 와중 지난 여름에는 “문학선” 2020 여름호 특별기고에 게재된 이무권 시인의 글 ‘만드는 자, 쓰는 자, 읽는 자의 까만 하나 되기’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및 특정 문학인에 대한 악의적 공격을 담고 있어 논란이 되었다.

이무권 시인의 기고문은 “문학선” 봄호에 게재된 전영규 평론가의 글, ‘만드는 자, 쓰는 자, 읽는 자는 하나다’를 반박하고 중앙대 전 교수 감태준 씨를 대변하는 내용이다. 감태준 씨는 2007년 12월 ‘제자 성추행 혐의’로 교수직을 박탈당했으며 이후 해당 내용에 대해 교육부 소청심사 청구 및 행정 소송을 진행하였으나 모두 패소했다.

이무권 시인은 ‘만드는 자, 쓰는 자, 읽는 자의 까만 하나 되기’에서는 공산당 선언의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구절을 패러디하며 ‘성인지감수성’을 유령에 빗댔다. 

하나의 유령이 지금 한반도의 남녘 땅을 떠돌고 있다. 유명 정치인, 연예인, 시인, 고위 공직자들이 이 유령이 재단하는 성인지감수성 잣대의 먹이가 되었고, 엊그제 실시한 총선에서도 정적을 향한 선봉장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이무권 시인의 글 중에서.)

더불어 그는 성다영 시인의 ‘좋은 시’를 겨냥했다. 성다영 시인은 올 초 감태준 시인이 발행인인 “시와 함께”의 청탁을 받고 그의 성 추문에 관한 기사 내용을 재조합한 시를 공개했다. 이무권 시인은 성다영 시인이 감태준 씨의 성추행 건을 알린 것에 대해 “명예훼손은 물론 업무방해 고의”라고 주장하며 “범죄행위의 의도”로 확장하고 피해자들의 진술과 정황을 상세히 나열하며 “조작의 혐의”를 언급한다. 이는 명백한 2차 가해에 해당한다.

현장소통소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현장소통소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일련의 정황과 사실은 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원회에 민원으로 접수되었으며 2020년 제2차 현장소통소위원회의 회의 안건으로 제출됐다. 현장소통소위원회 회의는 홍태림 위원장을 포함한 비상임위원 4인과 민간위원 8인, 사무처 6인의 출석 하에 진행되었다.

첫 번째 안건으로 제출된 ‘문예지 “문학선”에 대한 민원 안내 및 향후 조치사항 논의’에서는 재발 방지를 위한 대응 메뉴얼을 포함한 내부 기준 등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체육계 등에서 논의되고 있는 성폭력 예방 및 사후조치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체육계의 국가자격증 정지와 같은 내용을 예술인활동증명에 도입할 경우의 부작용”을 염려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사후조치 중 ‘문예기금 환수절차’와 관련된 내용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원회에서는 “문예기금 관련 문제는 예술위에서 책임지고 환수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과 “성폭력 연루자에 대한 보조사업의 중단과 환수는 개인이냐 단체냐에 따라 논의를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 등 다양한 갈래의 논의가 이어졌다. 후자의 경우 “대표 개인의 책임을 법인에게 묻지 않음”과 같이 단체가 대표 개인과 동일시되는 경우에만 제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문학선”에 대한 보조사업 제재 또는 환수조치 등은 “자유로운 예술활동과 지원금을 통한 예술계의 통제 사이의 논란이 되지 않는 선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는 과거 블랙리스트 사태에서 비롯된 우려로 해석된다. “지원기관이 지원금을 수단으로 예술계를 통제하려는 시도”로 전달될 여지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문예지 “문학선”의 편집권을 훼손하거나 지원금 제재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에서부터 “사건 자체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되, 중장기적으로 유사한 사안 발생 시의 대응 방안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한편, “문학선” 사태의 피해자 A 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회의록 내용 중에는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단일 사건으로 이루어져야 할 문제’라는 표현이 있다.”며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지원금으로 2차 가해가 이루어진 상황이 슬프다. 피해자인 나의 입장은 겨울호 사과문 공지와 지원금의 제재 및 환수를 시행하는 것이다.”고 전했다.

문예지 “문학선” 여름호 표지 [사진 출처 = 문학선]

관련한 뉴스페이퍼와의 통화에서 홍태림 현장소통소위원회 위원장은 “여러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중 내년도 문예진흥기금 지원사업 진행 시 판단이 가능한 평가지표를 만들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충분한 이해도를 가진 현장예술인들과 함께 관련 지표를 마련할 계획이다.”라는 말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문예지 “문학선” 관련 민원은 현장소통소위원회 회부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부를 거쳐 성평등소위원회로 제출된 바 있으며 두 민원은 개별적으로 접수되었다. 홍태림 위원은 “당시 성평등소위원회 역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직접 개입을 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제도의 보완을 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김대현 비평가는 “사후적으로 관련 평가요소를 정리해 이를 반영할 수는 있겠지만, 제재는 어렵다고 본다.”는 말과 함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제재 기구가 아닌 지원 기구인 만큼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공적 기구에서의 성폭력 근절 및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데에는 몇 가지 어려움이 뒤따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지점은 이미 있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추가적인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일일 것이다. 

이번 “문학선” 사태처럼 국가 지원금을 통해 만들어진 문예지 또는 프로젝트에서 성폭력 또는 2차 가해가 발생했을 시 이를 규제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같은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될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1년 개편 내용에 “성희롱·성폭력 예방제도 강화”가 언급된 만큼, 향후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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