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워진 ‘천재 작곡가’ 김순남 작곡가 생가 첫 확인! 성북구에 위치한 옛집을 찾아가다
[인터뷰] 지워진 ‘천재 작곡가’ 김순남 작곡가 생가 첫 확인! 성북구에 위치한 옛집을 찾아가다
  • 김보관 기자
  • 승인 2020.10.21 11:04
  • 댓글 0
  • 조회수 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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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 누이 김현경 여사와 외동딸 김세원 방송인이 전해주는 김순남 작곡가
생가를 구경하는 김순남 시인의 딸 김세원 방송인 [사진 =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김소월 시인을 기린 가곡 ‘산유화’와 ‘초혼’, 만나지 못하는 딸을 생각하며 작곡한 “자장가” 등으로 알려진 김순남 작곡가의 생가가 확인됐다. 성북구 동소문동에 위치한 고즈넉한 옛집은 75년 전, 김순남 작곡가와 그의 부인이 신혼살림을 꾸려나가던 곳이다.

​김순남 작곡가의 외동딸인 김세원 방송인, 김순남 작곡가의 사촌 누이이자 김수영 시인의 아내인 김현경 여사와 함께 찾은 생가는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과거 안방에 피아노가 있던 그의 성북구 생가에는 임화, 오장환, 김남천 등의 문인들은 물론이고 내로라하는 음악인들이 즐겨 방문했다.

김순남 작곡가의 사촌 누이이자 김수영 시인의 아내인 김현경 여사 [사진 = 김보관 기자]
김순남 작곡가의 사촌 누이이자 김수영 시인의 아내인 김현경 여사 [사진 = 김보관 기자]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그의 집에 들르면 항상 누가 있었어요. 임화와 그의 부인, 김남천, 오장환 등 여러 문인들이 죽치고 있기도 하고요. 김순남 작곡가가 이야기를 잘하고 박식하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한 자리 껴있었죠. 문인들에게 제가 쓴 글을 가져가기도 했어요. 칭찬도 많이 받았죠”

​김현경 여사가 추억하는 김순남 작곡가는 항상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던 이였다. 친구였던 설도식 성악가가 피아노를 사준 이야기 역시 인상 깊다. 어머니에게 들었다는 김세원 방송인은 “아버지가 그 피아노가 들어온 날 너무 신나서 최창봉 전 문화방송 사장에게 가서 자랑했다.”고 한다.”며 소소한 일화를 전했다.

좌측의 김순남 작곡가 [사진 출처 = 김세원 방송인]
좌측의 김순남 작곡가 [사진 출처 = 김세원 방송인]

​김순남 작곡가는 국내 최초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으며 첫 해방가요 ‘건국행진곡’, 한반도 최초의 본격 오페라인 ‘인민유격대’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당시 수재들만 들어갔다는 경성사범학교에 입학 후 청년기부터 국내외적인 주목을 받은 김순남 작곡가는 일본, 소련 등지로 유학을 다니며 그 명성을 떨쳤다.

​특히 미군정 시기에는 줄리어드 음대 출신의 엘리 헤위모이츠 문화영사의 눈에 띄어 미국 유학을 권유받기도 했다. 이처럼 당대 뛰어난 예술가였던 김순남 작곡가의 생가가 확인된 것은 한국 음악사는 물론이고 예술사에 그 의미가 크다.

김순남 생가에 모인 사람들 [사진 = 김보관 기자]
김순남 생가에 모인 사람들 [사진 = 김보관 기자]
김현경 여사와 김세원 방송인 [사진 = 김보관 기자]
김현경 여사와 김세원 방송인 [사진 = 김보관 기자]

“그는 자나 깨나 작곡 생각만 했어요. 그림에도 소질이 있어 자신의 포스터 그림을 직접 그리기도 했고요. 피아노를 잘 쳐 많은 이들이 레슨을 받으러 왔어요. 백남준도 레슨을 받았습니다. 가곡은 열아홉 살 때 장안에서 유명한 피아노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았는데 단번에 두각을 나타냈어요. 장님이 아이를 안고 구걸을 하는 모습을 보고 지은 자장가가 기가 막혀요. 유명한 ‘초혼’, ‘진달래꽃’ 등의 가곡은 번개가 치는 것 같죠.”

​작곡뿐 아니라 피아노 연주와 그림 등 다양한 방면에 재능을 보인 그지만, 한동안 김순남 작곡가는 우리 역사 속에 지워져 있었다. 그의 월북 때문이다. 김현경 여사는 “임화 시인이 와서 김일성 찬양가를 부탁했을 때, 김순남 작곡가가 거절한 적이 있다. 오해와 달리 김순남 작곡가는 자유인이고 예술가이지 사상가가 아니다.”라며 “당시 공산주의를 이상주의로 생각해 많은 엘리트 청년들이 경도되곤 했다.”고 부연했다.

​김순남 작곡가의 재능은 월북 이후에도 계속됐다. 평양에서 조선음악가동맹 부위원장과 평양음악대학 작곡과 교수를 역임한 그는 1952년에는 북한 정부의 후원으로 소련 차이코프스키음악원에서 쇼스타코비치와 더불어 20세기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 하차투리안에게 수업을 들었다.

김순남 작곡가의 외동딸인 김세원 방송인 [사진 = 김보관 기자]
김순남 작곡가의 외동딸인 김세원 방송인 [사진 = 김보관 기자]

“러시아의 쇼스타코비치가 아버지의 곡을 보고 ‘동양에도 이런 천재가 있느냐.’고 했다고 해요. 또 다른 유명 작곡가는 ‘내가 배울 것을 가졌다’고 칭송하기도 하고요. 이후 김일성이 남로당을 공격하고 정적을 없애기 위해 아버지를 끌었죠. 그때 망명을 했으면 될 텐데 아버지는 순진하게 다시 돌아올 거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차이코프스키음악원에 휴학계를 낸 기록이 있더라고요.”

​이후 북한에서 숙청을 당했을 때도 ‘재주가 아깝다’는 이유로 사형이 아닌 유배형이 내려졌다. 김순남 작곡가와 그의 딸에 관한 내용이 해금된 것은 1988년의 일이다. 이러한 연유로 국내에서는 김순남 작곡가의 온전한 악보를 찾아보기가 힘든 실정이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없는 김세원 방송인은 다양한 곳을 오가며 김순남 작곡가의 행적을 따라갔다. 그는 “비운의 작곡가라고는 하지만, 그나마 작품이 곳곳에라도 남아있는 게 다행”라는 말과 함께 작품을 수집하던 때를 떠올렸다. 미국의 워싱턴 국립도서관 아카이브에서 김순남 작곡가의 바이올린 독주곡 등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러한 김세원 방송인의 기록은 그의 책 “나의 아버지 김순남”에 실려있다.

생가 앞을 거니는 김현경 여사와 그의 딸, 김세원 방송인 [사진 = 이민우 기자]
생가 앞을 거니는 김현경 여사와 그의 딸, 김세원 방송인 [사진 = 이민우 기자]

“너댓 살 무렵 고모네 집 마루에 피아노가 있더라고요. 할머니가 ‘얘, 너희 아버지 거다. 쳐봐라.’라고 했죠. 그때가 625 직전이었고 피아노를 생전 처음 봤어요. 뒤에 일가친척들이 쫙 앉아 있는데 어린 맘에도 이분들이 나를 향해 ‘아빠가 없다. 안 됐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더듬더듬 건반 몇 개를 누르고 나니 슬픈 곡을 연주한 기분이었어요. (…) 할머니가 딸이라는 소식을 전할 때도 아버지는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큰집인 줄 알았는데 작은 집이네요. 아무튼, 그렇게 피아노를 치다가 딸이라고 하니 조금 생각하다가 ‘세원이라고 하세요.’라고 전했답니다. ”

​김순남 작곡가를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피아노만 내리 13시간을 치다가 졸도한 적이 있을 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역사적 아픔 속에 가려진 그의 천재성은 몇 곡의 음악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이번에 확인한 성북구 김순남 생가 또한 그의 삶과 음악 행적을 그릴 수 있는 중요한 자료 중 하나다. 더욱이 생가터가 아닌 온전한 형체로 존재하는 이곳이 제도적으로 보존, 관리되어 한국의 천재 작곡가를 기억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길 기대해본다.

김순남 생가에 모인 사람들 [사진 = 김보관 기자]
김순남 생가에 모인 사람들 [사진 = 김보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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