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박경리문학제 제10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 윤흥길 강연 "나도, 당신도 60억분의 1"
원주박경리문학제 제10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 윤흥길 강연 "나도, 당신도 60억분의 1"
  • 배용진 기자
  • 승인 2020.10.29 14:04
  • 댓글 0
  • 조회수 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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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길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윤흥길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60억분의 1의 사나이.’ 은퇴한 격투기 선수 에밀리아넨코 표도르를 일컬은 말이다. 성적표에 석차를 매기듯 강함을 따진다면 세계에서 으뜸이라는 뜻으로 붙은 별명이다. 소설가 윤흥길은 이를 다르게 해석한다. “세계 최고의 격투기 선수도 인류 중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27일 2020년 제10회 박경리문학상을 받은 윤흥길 작가의 강연회가 열렸다. 토지문화재단과 연세대학교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강연회는 ‘2020 원주박경리문학제’의 일환인 행사로, 현장 참가자를 스무 명으로 제한한 대신 토지문화재단 유튜브 채널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강연 주제는 ‘천재와 범재’다.

“‘천재와 범재’라는 제목에서 천재는 범재와의 비교 대상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이 강연은 천재에게는 해당하지 않을 이야기다. 나는 장삼이사같이 평범한 사람을 이야기하고 싶다. 왜냐면 나 자신이 문학적 재능을 특출하게 타고나지 못한 범재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 대다수를 차지하는 범재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고자 이런 제목을 붙였다.”

 

2020 박경리문학상 수상 작가 초청 강연회 현장 [사진 = 김보관 기자]
2020 박경리문학상 수상 작가 초청 강연회 현장 [사진 = 김보관 기자]

윤흥길 작가의 어린 시절은 평범하지 않다. 그는 당시 자신을 요즘 말로 빗대어 ‘상습 가출러’라고 표현했다. 그는 집, 교회, 학교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빈번히 환청처럼 들려왔다. 그래서 상습적으로 가출했다. 초등교사가 되고 나서도 ‘그만둬야지, 그만둬야지’ 속으로 되뇌며 학기를 보냈다. 마침내 방학 날이 되면 미리 꾸린 배낭을 메고 무전여행을 떠났다.

“자존감을 찾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시기였다. 무전여행을 다니다 급성 간염에 걸려 고생하던 중에 소설을 만났다. 상상력의 세계가 얼마나 놀라운지 처음 알았다. 소설을 공부하고 쓰기 시작하면서 가출 욕구가 사라졌다. 소설을 통해 고급스러운 가출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월간지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응모한 첫 습작이 최종심까지 오르자 그는 스스로 천재라고 느꼈다.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당선되어 데뷔한 후 생각은 금세 달라졌다. 서울에 와서 만난 많은 문인과 비교하니 자신은 재능 없는 사람이었다. 자기 능력으로는 그들과 견줄 만한 작품을 쓰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한동안 소설을 쓰지 못했다. 그의 표현으로 “자존심이 딸꾹질”했다.

“평범하다는 걸 부정할수록 굉장히 불행하게 느껴졌다. 불행에서 벗어나려면 평범함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맞아. 나는 천재가 절대로 못 돼, 나는 평범한 사람이야. 그런데도 지금까지 내 나름대로 문학을 잘 해왔어. 대단한 거지.’ 이런 식으로 반복해서 스스로 세뇌했다. 사람들 앞에서도 내가 천재가 못 되는 범재라고 고백하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소설가 윤흥길은 1977년 한국문학작가상, 1983년 현대문학상과 한국창작문학상, 2000년 21세기문학상, 2004년 대산문학상과 2010년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받았고, 올해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2020 원주박경리문학제 기간인 지난 24일 토지문화관에서 상금 1억 원과 상장을 받았다. 그가 거둔 성과를 보면 자신이 범재라는 그의 말이 올곧이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도 60억분의 1일뿐이라고 말한다.

“러시아에 표도르라는 격투기 선수에게는 ‘60억분의 1’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싸움으로 석차를 매기면 당시 대략적인 세계 인구인 60억 명 중 제일이라는 칭찬이다. 나는 그의 별명을 세계 최고의 격투기 선수라도 인류 중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중의적으로 해석한다. 그렇게 보면 표도르만 60억분의 1이 아니라 나도 60억분의 1이고 당신도 60억분의 1이다. 바닷가에는 수없이 많은 모래가 깔려 있다. 얼핏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모래알 하나하나는 빛깔, 크기, 무게, 성분이 전부 다르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 가운데 나라는 존재, 당신이라는 존재는 세상에 단 하나다. 우리 하나하나는 엄청나게 귀한 존재다. 범인의 삶도 천재의 삶 못지않게 소중하고 가치 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데서부터 인생을 재출발해야 한다.”

 

2020 박경리문학상 수상 작가 초청 강연회 참석 내빈 [사진 = 김보관 기자]
2020 박경리문학상 수상 작가 초청 강연회 참석 내빈 [사진 = 김보관 기자]

윤흥길 작가는 소설가 박경리를 “내 문학의 어머니이자 스승”이라고 밝혔다. 스승 박경리는 생전 윤 작가에게 큰 작품을 쓰라고, 사람을 해치는 살인의 문학이 아닌 활인의 문학을 해야 한다고 되풀이해 요청했다. 그 말에 준하여 구상하고 집필을 시작한 소설이 <문신>이다. 작가 자신은 ‘중하소설’이라고 부르는 다섯 권 분량의 대하소설 <문신>은 2018년 세 권이 출간되고 아직 두 권이 미간으로 남아있다. 윤 작가는 내년 3월 소설을 완간하리라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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