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문학관 이승하 작가와의 만남 성료. 나의 시 나의 삶
조병화문학관 이승하 작가와의 만남 성료. 나의 시 나의 삶
  • 이철승 기자
  • 승인 2020.11.25 16:12
  • 댓글 0
  • 조회수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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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승하 시인 제공
사진= 이승하 시인 제공

 

아픔을 갈라 희망을 구하다

기온이 영하 42도까지 떨어진 러시아 전선에서 보초를 서던 독일군 병사가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다. 소리 때문에 적에게 노출될 수도 있었지만, 추위와 고통에 지친 병사에게 노래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었다. 그때 노래를 듣고 권총을 들고 오는 상사를 보며 병사는 죽음을 예감했다. 하지만, 상사는 오히려 병사와 함께 웃기 시작했고 계속 캐럴을 부를 것을 명령했다.

독일의 작가 볼프강 보르헤르트는 죽어가던 병상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담은 ‘많고도 많은 눈’을 썼다. 나치 정권에 대항하는 글을 쓰고 투옥되어 병에 걸린 보르헤르트는 전쟁이 끝나고 주어진 마지막 2년을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모두 썼다.

지난달 27일 조병화문학관에서 ‘나의 시 나의 삶, 폭력과 광기의 시, 혹은 사랑과 용서의 시’를 제목으로 ‘이승하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개최되었다. 경기도 문화의 날 행사의 일환인 이번 행사는 경기도가 주최하고 조병화문학관이 주관하며, 안성시와 한국문학관협회, 한국문인협회 안성시지부가 후원했다.

이날 보르헤르트와 ‘많고도 많은 눈’의 이야기를 전한 이승하 작가는 폭력, 죽음과 같은 어둡고 고통스러운 주제를 펼쳐놓고 그 안에서 사랑과 희망을 끄집어내는 데 능수능란한 시인이다. ‘폭력과 광기의 나날’,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예수·폭력’과 같이 이승하 시인의 시집 제목은 한결같이 어둡고 비극적이다. 하지만 36년간의 그의 문학을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과 가족이다.

“사춘기나 청소년기에는 방황하기 마련인데 저는 그 정도가 조금 심했던 것 같습니다.” 시인은 청소년기의 자신이 문제아였다고 고백했다. 가출과 퇴학, 입시 실패를 반복하며 쌓인 세상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감으로 그는 말을 더듬기도 했다. 김천시립문화원 직원이었던 작은이모 덕에 자유롭게 책을 빌려볼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하지만, 작은이모는 스물다섯에 동료를 구하고 대신 강을 건넜다. 작은이모를 보내며 중학생 이승하는 ‘혈연의 죽음’이라는 시를 지어 선물했다.

이제는 달과 뭇 별을 슬하에 두시어
더 이상 고통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 이승하 시인의 평생 화두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되었다. “죽음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관이 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살아있음을 축복하며 죽음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죽음을 거론하며 사랑을 담론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그의 시는 비극적이면서도 순수하고, 전위적이면서도 윤리적이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도 하며, 정적인 시집을 낸 이후에는 동적인 시집을 내는 패턴을 반복하기도 한다. 이승하 시인 자신도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밝혔다.

1984년에 데뷔한 이승하 시인은 90년대 후반 한때는 소설과 문학평론을 썼다. 4권의 평전을 내며 의병장 최익현,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 안드레아, 일본 유학 중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윤동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시인 공초 오상순의 일생을 살피기도 했다. 이 시인은 “사리사욕은 조금도 없이 오직 이타적으로 삶을 살았던 분들입니다. 제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높은 정신세계를 보여주었지요. 그들의 생애를 추적하며 본받고자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제 문학적 기질이 서사보다는 서정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승하 시인은 결국 시로 돌아왔고 시인으로 남았다. 이 시인은 앞으로 더 밝은 시를 쓰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스물이 되기 전까지 별로 웃지 않았다는 그는 요즘 일부러라도 웃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시인은 “제 주변과 세계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고찰과 인식을 게을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사랑과 희망이 가장 필요한 곳, 가장 빛나는 순간이 고통과 비극 속에 있다는 것을 시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진= 이승하 시인 제공
사진= 이승하 시인 제공

 

이승하 시인은 벌써 10년째 교도소, 구치소, 소년원에서 시 창작을 강의한다. 제자인 서경숙·손옥자·허전 시인이 맺어준 연으로 시작한 강의다. 이 시인은 “제가 유경험자이기에 동병상련을 느끼고 열과 성을 다하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시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시인은 분노와 절망에 빠져있을수록 시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창문 밖의 눈은 소리 없이 내리고
너희들 숱한 외침은
묻히고 있다

팬데믹 시대, 환경 위기에 직면한 자연, 폭력이 광기를 낳고 광기가 폭력으로 이어지는 세상이라서 시를 쓰고 있다는 시인. 이승하 시인은 이럴 때일수록 문학인의 역할을 강조한다. “팬데믹 시대인 지금 우리 문인은 더욱 치유의 문학, 위안의 문학, 애도의 문학, 출발의 문학을 꿈꾸어야 할 것입니다. 확진자가 0명이 될 때까지 작가들이 펜을 멈추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죽음을 목격하고 죽음과도 같은 고통 속에서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병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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