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최영랑 시인 발코니 유령 출간. 고통을 갈아, 검은 상상을 적셔 쓰는 시
[인터뷰]최영랑 시인 발코니 유령 출간. 고통을 갈아, 검은 상상을 적셔 쓰는 시
  • 이철승 기자
  • 승인 2021.01.14 18:50
  • 댓글 0
  • 조회수 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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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인가 심장 소리가 머리에서 자주 들려왔다. 그 이후로 몸이 많이 안 좋아졌는데 그때가 30대 후반이었던 같다 자주 아프다보니 죽음이 가깝게 느껴졌다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한 내적 반응이었는지는 몰라도 다른 세계로의 몰입하는 습관이 생겼다

지난 12월 최영랑 시인의 첫 시집이 나왔다. 201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어머니의 계절」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번 시집은 실천문학사에서 나왔으며 제목은 『발코니 유령』이다. 뉴스페이퍼는 2020년이 지나기 전 최영랑 시인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영랑 시인은 발코니 유령을 써내려가는 내내 내면의 불안정함과 함께 했다고 이야기 했다. “제가 하는 일의 특성상 만나는 사람들이 생계문제, 주거문제, 가족문제, 독거문제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런 환경에 밀착되어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불안과 불협화음이 지배하는 음울한 색채의 정서가 제 내면에 자리 잡게 되었던 같아요.”

 

바닥까지 침수된 나는 껍데기만 남았다

 

대신 타인의 아픔을 느끼는 시인의 시선도 날카로워졌다. “타인의 삶을 통해 삶의 이면들이 이입되었던 것 같아요. 고통은 시간과 섞이면서도 완전히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잔상으로 머물면서 현존을 드러내는 코드로 작용한다는 것을 심도 있게 느끼게 되었어요.”

시인의 몸은 시인에게 무거운 정서를 양분 삼아 펜을 들라고 했다. “그런 느낌들이 제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었나 봐요. 제 안에는 주기적으로 차오르는 것들이 있었는데요. 그럴 때마다 알에서 갓 깨어난 애벌레들처럼 온몸 여기저기서 밖을 향해 꿈틀거리는 것 같은 어떤 감각들이 느껴지곤 했어요. 그것들을 시적 언어와 화법으로 변용시켜 풀어줬던 것 같아요.”

 

빈집엔 봄이 오지 않고 여름도 오지 않고 빈집의 계절만이 서성거린다

 

시인이 시적 언어와 화법으로 변용한 ‘어떤 감각’은 「어머니의 계절」로 처음 세상에 그 형태를 드러냈다. “저희 어머니를 찾아뵈었을 적마다 ‘좋은 날이구나’를 반복하시곤 하셨는데, 그 말의 의미는 다 떠나보내고 난 후, 겪었을 외로움과 그리움을 그리 표현하셨던 거죠.” 그리움도 정신적인 아픔이라는 시인은 어머니의 아픔을 옮겨 심은 시이면서 어머니의 선물인 것 같다고 했다

시인은 지금도 그때의 몰입하는 습관이 남아 있다고 했다 “삶의 끝을 생각하는 날들이 잦아지면서 부터 아마 그랬을 거예요. 살아서 바라보는 것들이 신비롭게 느껴졌고 감사한 마음뿐이었죠. 타인들이 제 옆을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얼마나 좋았던지요.” 시인은 그 느낌을 ‘전율’이라고 바꾸어 말했다. “주변의 사물들을 한참씩 응시하며 말을 걸었어요. 사람과 대화 하듯 말이죠. 거기서 생명의 소리들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참 신비한 체험이었어요.” 사물에 말을 걸던 시인의 습관은 시간이 지나도 소멸되지 않았다. 그 습관은 한 곳에서 생겨나서 사라지는 습관이 아니라 서로에게 전이되고 자라기를 반복하는 습관이었다.

 

동글동글 허공이 굴러가고 나는 나뭇가지에 걸려서 나풀거렸다

 

시인은 상투적인 생각들을 배제하고 상상 속 대상을 만나려 사유 했다고 한다. “가끔 우리 아이의 어렸을 적 생각이 나곤 해요. 아이가 말문이 트이고 나서부터 세상의 보이는 것들에게 인사를 하곤 했어요. 나무, 안녕하세요. 구름, 안녕하세요. 시소, 안녕하세요. 꽃, 안녕하세요.” 시를 쓰면서부터 그 장면들이 자주 떠올라요. 아이의 그런 반응들은 처음 시작한 말과 함께 맞닥뜨리는 것들이 신기해서 터져 나왔던 탄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무엇이 아이에게 그러한 발상을 하게 했을까, 아이 안의 무엇을 깨어나게 했을까, 시인은 생각했다. “처음은 좀 설레잖아요. 설렘은 느슨했던 것들에게 탄력을 생기게도 하지만 수다스러워지게도 하죠.” 아이의 시선은 될 수는 없었지만, 시인은 상투적인 생각을 돌아보게 되었다.

상상력은 곧 시인이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해주는 에너지가 되었다. “저는 상상을 통해서 새로운 이미지나 다양한 표정들을 만나려고 노력해요. 상상은 좀 더 감각적인 대상이나 언어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주춤주춤 나타난 커브가 나를 삼킨다

 

시인의 상상력은 기하학적 상상력으로까지 뻗어갔다. 직선, 곡선, 각, 면,모서리 등 기하학적 개념과 도형은 결국 울타리가 되고 경계가 되어 시인을 가두거나 고립시키기도 한다. 시인의 상상력이 기하학으로 ‘인간관계의 종합적인 구도’를 설정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그리고는 상상의 세계 안에서 다시 불안과 불협화음에 둘러싸인 시인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평론은 그의 시가 ‘현대인들의 미묘한 심리적 구도를 적절한 이미지를 통해서 구축’해서 ‘불안과 소외라는 이른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는 현대인들의 내면 풍경을 날카로운 이미지를 통해서 적절히 묘사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첫 시집을 출간한 소감으로 최영랑 시인은 ‘무거운 짐을 한 아름 안고 있다가 내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표현했다. 다시 처음에 선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도 했다. 뒤통수가 근질거리기도 하지만, 마음만은 개운해져서 좋았다.

개운한 마음으로 처음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다는 시인은 이제 다음 지점으로 어디를 무엇을 상상하고 있을까. “이후 계획은 아직 없지만, 첫 시집에서 탈피해서 새로운 세계를 탐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전히 시를 쓰고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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