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최정례 시인이 타계했다. 작년 11월 펴낸 일곱 번째 시집 『빛그물』이 그가 생전에 낸 마지막 시집이 되었다.
1955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그녀는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국어교사로 재직하게 된다. 2008년 강계숙 평론가와 진행한 대담에서 그녀는 당시를 회고한다. 첫 아이를 낳고 남편이 아파 시골에 요양하러 내려갔던 때에, 당시 이십 대 후반이었던 시인을 앞에 두고 시부모가 울었던 장면이 기억에 선하다고. 그 무렵 아이를 맡기고 출근을 해서 학교 교무실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동료 교사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부터 시라도 쓸까봐." 그러던 어느 방학에, 그녀는 교사들을 위한 창작 프로그램에서 오규원 시인을 만나면서 시쓰기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 후 서른 다섯에 『현대시학』을 통해 데뷔하고, 불혹의 나이에 가까워질 즈음 첫 시집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1994)을 펴낸다.
두 번째 시집 『햇빛 속에 호랑이』(1998)를 펴낼 무렵, 그녀는 대학원에 진학한다. 석사와 박사 학위 모두 연구 주제는 백석의 시였다. 석사 학위 논문 「백석 시 연구: 근원에 대한 질문으로서의 근대성」(2001)과 박사 학위 논문 「백석 시의 근대성 연구」(2006) 모두에서 그녀는 백석의 시를 '전통'이 아닌 '근대성'의 맥락에서 살펴보고자 했다. 그의 대학원 동기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종훈은 최정례 시인에게 있어 "모더니티는 모순된 속성을 내장하고 있으면서 미완의 상태를 유지한다. 백석의 시는 그에게 전통의 시가 아니라 관능의 시였다"고 말한다.
최정례의 시에서 꾸준히 화두가 되었던 것은 '시간'과 '기억'이다. 2013년 문학평론가 오형엽은 시인의 시 세계를 분석하며 그의 시가 "'시간'과 '기억'이라는 중심 주제를 변주·심화"시켜왔으며, "그리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균열과 빈틈과 어긋남을 표현한다"고 평한다. 시인 또한 '기억'에 대한 자신의 천착에 대해 밝혀왔다. 2006년 아이오와 대학의 국제 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시인은 「나는 왜 쓰는가(Why I Write)」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다음과 같이 '기억'에 대해 언급했다.
"기억의 조각들 속에서, 저는 제 진짜 존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세상과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시를 보시면 알 수 있듯이, 제 기억은 결핍이며 동시에 마음의 파멸(mind's ruin)이었습니다. 저는 이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그 결핍과 파멸의 순간들로부터 달아나고 싶었습니다. 즉, 저는 제 자신의 고통을 통해 타인의, 그리고 결국 전 세계의 고통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아이오와에 머물었던 2006년과 버클리대에 방문교수로 체류했던 2009년은 시인의 시 세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듯하다. 다섯 번째 시집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2011)에서 감지된 '산문시'에의 실험이 여섯 번째 시집인 『개천은 용의 홈타운』(2015)에서 본격화된 것이다. 『개천은 용의 홈타운』의 해설에서 문학평론가 조재룡은 이러한 시인의 시적 변화를 "전진하는 산문에 역행하는, 산문이라는 외형 안에서도 끊임없이 되돌아오고 회전하고 되감기며, 산문의 정체성에 금을 가게 하는 시적 징후를 마련해내면서, 이성과 감성, 산문과 시 사이에 자리한 이분법을 부정하는 시적 언어를 발견하려는 기획의 산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분석한다.
한편 2015년은 최정례 시인이 “개천은 용의 홈타운”으로 미당문학상을 받은 해였다. 미당문학상은 반인륜적인 제국주의를 찬양하고 민주주의 운동을 방해 및 폄훼한 미당 서정주를 기념하는 상이라고 비판을 받으며 2018년 일시 중단되었다.
이에 미당문학상 수상자이자 이후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했던 최정례 시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가 아무런 친일행위를 한 게 없지만 그들이 나를 친일시인이라고 하면 친일시인이 되는 것이다."라는 내용의 포스팅을 했다. 이러한 발언은 수상자가 심사위원에게 상을 주는 등 특정 세력끼리 상을 주고받은 지점과 문학이 사회적 적폐를 숨기는데 동원되었다는 점. 즉 미당문학상이 특정 문학 집단과 언론 권력의 합작품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발언 되었다는 점에서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상은 중단되었고, 시인은 비난을 받았지만 그에겐 무엇보다 계속해서 시를 쓰는 일이 중요했을터다. 그렇게 그녀는 투병 와중에도 일곱 번째 시집을 펴냈고, 우리를 떠났다. 상기한 아이오와 대학에서의 발표 끄트머리에서야 시인은 자신이 '왜 쓰는지' 말한다.
"우리는 단 한 번 삽니다. 그것은 좌절스러운 일이죠. 그래서 우리는 우리 시대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저의 의무이자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 저는 살아있고 기억력이 있고 사물을 깊이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제가 누구인지, 그리고 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말에 답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