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우 시인의 첫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슬픔이란 무엇일까
정현우 시인의 첫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슬픔이란 무엇일까
  • 전세은
  • 승인 2021.02.0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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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한송희 에디터]
[사진 = 한송희 에디터]

창비 시선 시리즈에서 정현우 시인의 첫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가 출간되었다. 

정현우 시인은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했고, ‘시인의 악기 상점’에서 보컬을 담당하며 문학과 음악 부문에서 활동 중이다. 2019년에 동주문학상을 수상하고 데뷔 6년 만에 첫 시집을 펴냈다. 동주문학상 수상작인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도 이 시집에서 만나볼 수 있다.

시인은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 성찰과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되물어가며 시적 세계를 펼쳐 나간다. 이병률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이 시집은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영혼들의 상처를 위로하는 비가이자, 인간 존재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고해록이다”라고 전했다.

정현우 시인은 출간 인터뷰에서 첫 시집을 엮으며 “호명받지 못하고 소외받는 존재들을 대신해 말해주고 싶었다”며 “가난했던 유년 시절을 지나오면서 느꼈던 감정과 환상들이 시로 태어난 것 같다”고 밝혔다. 

정현우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특별히 애착을 느끼는 작품 중 하나로 ‘세례’라는 시를 꼽으며 “인간의 가장 강한 무기는 눈물이라고 생각해요.”라고 이유를 전했다. 그의 답변에서 보이듯, 시집 속 많은 시는 슬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시인은 슬픔을 원망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며 “슬픔을 가진다는 것”이 “인간이 되기 위한 경우의 수”라는 표현을 통해 감정을 마주한다. 

 

세례 

잠자리 날개를 잘랐다
장롱이 기울어졌다

삐걱이는 의자에 앉아
나는 본 적 없는 장면을 슬퍼했다
산파가 어머니의 몸을 가르고
아버지가 나를 안았을 때,
땅속에 심은 개가 
흰 수국으로 필 때

인간은 
기형의 바닷바람
얼음나무 숲을 쓰러뜨려도 
그칠 수 없는 눈물이
갈비뼈에 진주알로 박혀 있다는 생각
그것을 꺼내고 싶다는 생각
내가 태어났을 때
세상의 절반은 
전염병에 눈이 없어진 불구로 가득했다.

창밖 자목련이 바람을 비틀고
빛이 들지 않는 미래
사랑에 눈이 먼 누나들은
서로의 눈곱을 떼어주고

나는 까치발을 들고 
귓속에 붙은 천사들을 창밖으로 털었다.

 

나는 천사에게 어떤 말을 배웠을까.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슬픔을 노래하는 정현우 시인의 시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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