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하 시인과 함께 하는 '위기 극복하는 시 쓰기'
이서하 시인과 함께 하는 '위기 극복하는 시 쓰기'
  • 전세은
  • 승인 2021.02.1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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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송희 에디터
사진= 한송희 에디터

 

‘진짜 같은 마음’은 진실한 마음일까, 진실을 모방한 다른 마음일까. 이서하 시인은 그의 첫 시집 제목 "진짜 같은 마음"처럼 단일한 존재가 지닌 양가적인 면을 담은 글을 써 내려간다. 2016년 한국경제를 통해 데뷔한 이서하 시인은 ‘켬’ 동인에서 에코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쓰레기 낭독회’ 을 하는 등 문학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일상 속 의문들이 시가 된다면 어떨까? 이서하 시인이 진행하는 ‘위기 극복하는 시 쓰기’ 수업은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우리 안에 있는 의문들을 직접 마주해본다. 내면 속의 기억 등을 호출하는 시 쓰기부터 자신을 비인칭화하는 시 쓰기까지. 뉴스페이퍼에서 이달 28일부터 다양한 주제로 시 창작 수업을 진행할 이서하 시인과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해보았다. 

1.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많은 걸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문학인으로서 달라진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각하던 것이 있어요. 쓰는 것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저의 고집스러운 부분하고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연극, 시각예술, 음악, 무용 같은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작업을 위해서 성실하게 망치질을 하는데 저는 못을 어디에 박을지 며칠을 고민하다가 벽을 그대로 두기로 하는 거죠. 산책하는 시간 정하듯이. 이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책임관계가 형성되는 테두리 안에 저는 혼자 있다면 다른 사람은 다른 것과 함께 있는 거예요. 오로지 쓰는 행위에 관해서는 그렇지만 쓰기 위한 과정이나 쓰고 난 후에는 혼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아닌 것들에 써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일상이 중요해요.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서 일상 자체가 혼자가 되어버린 거죠. 작업하는 데 영향이 컸어요. 

2. 강좌 이름이 ‘위기 극복하는 시 쓰기’입니다. 위기란 현재 코로나 팬데믹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개개인에게 주어진 위기인가요?

다 같이 힘든 건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런 시기인 것 같아요. 저는 병의 상대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똑같은 병에 걸렸어도 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상황은 그 사람의 모든 것들, 나이, 성별, 가족관계, 경제적 수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 등을 전부 고려해야 하고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잖아요. 사람보다 기준에 맞는 사람이 되어야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이 병과 사랑이라는 것, 코로나로 인해서 다 같이 힘든 것은 어디까지나 평균에 대한 이야기이고 더 무겁고 더 어려운 위기를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함께 시를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3. 올해 봄에 첫 시집을 내셨는데 책 소개와 첫 시집에 대한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나에게 한해서 내가 쓰는 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대하기’라는 생각이 있어요. 시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시를 쓸 때가 가장 시 쓰기 어렵고 재미없고, 힘들었던 것 같아요. 강의 소개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럼에도 여전히 시는 가장 작은 것으로 가장 큰 것을 해낼 수 있다는 허황된 믿음이 마음 한켠에 있는데 이런 믿음은 전적으로 다른 시인의 시를 읽을 때 생겨요.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항상 내가 아닌 것들이잖아요. 그래서 『진짜 같은 마음』에는 제가 거의 없어요. 사랑도 없구요. 마음을 움직인 것들에 대해서 적다보니 시 안에서 저는 방관자이거나 없는 사람이 되어있더라고요. 현실에서 바라던 것이 시에서는 좋지 않은 것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은 결핍된 상태인 거니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 있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결여가 열쇠가 되는 것이 시인 것 같아요.

[사진 촬영 및 편집 = 뉴스페이퍼]
[사진 촬영 및 편집 = 뉴스페이퍼]

Q. 강의 소개에서 ‘시는 감정을 전달하는 공동체’라고 소개하셨는데 공동체라는 표현을 빌리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얼마 전에 친구가 “가족의 범위가 달라졌다”는 말을 했어요.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과 같은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한 거였는데, 저는 그 말이 그렇게 좋아서 메모에 적어두고 한참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그 말은 ‘가족은 아무것도 아니다’와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는 전혀 다른 두 가지의 의미로 보였고 공동체 안에서 그 의미가 가능하지 않을까, 공통성과 차이가 공존하는 시는 감정을 교차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5. 강의 소개에서 ‘세상을 향한 질문이 그치지 않는 한 내가 앞으로 써야 할 시의 세계는 무한하다고’ 하셨습니다. 최근에는 세상에 향해 어떤 질문을 던지고 계신가요?

최근에 빅터 프랭클의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을 읽고 있는데 작가는 이렇게 말해요.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은 삶 자체다. 인간은 질문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오히려 삶에서 질문을 받는 자다. 그리고 삶에 대답해야 하며, 삶을 책임져야 하는 자다.” 질문을 하는 주체가 바뀌었는데 작가의 말이 너무도 타당해서 세상보다 유한하고 세상보다 변하지 않는 저는 한순간에 질문하는 사람에서 질문 받는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요즘에는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있어요. 최근에 쓴 「가장 위험한 나는」이라는 시에도 쓴 적이 있는데 저에게 ‘여기’는 항상 ‘어기는 곳’이 되어요. ‘여기’라고 말하는 순간 ‘여기’를 지나게 되잖아요. 그래서 모든 곳을 ‘여기’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러면 어기는 것 또한 모든 ‘여기’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사진 촬영 및 편집 = 뉴스페이퍼]
[사진 촬영 및 편집 = 뉴스페이퍼]

6. 시인님이 시를 쓰실 때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지점은 무엇이신가요?

쓰는 것은 읽는 것을 전제로 쓰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읽는 사람을 생각하며 쓰려고 노력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읽는 사람에 대해서 알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아직도 많은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이 부족하고 그래서 어떤 문장이 누군가에게는 필요 없을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문장을 쓰고 싶어요. 예를 들면 상태를 적을 때도 “그는 달려간다”는 문장은 달려갈 수 없는 사람에게는 다른 상태, 있을 수 없는 상태이니까 쓰지 않으려고 하거나, 사랑에 대해 쓰지 않으려고 해요. 사랑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까요. 존재 그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보다는 형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를 쓰고 싶어요. 

7. 최근 관심을 두고 있으신 것이 있으시면 어떤 것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형태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자주 생각하는 것은 제가 가장 모르는 것들이겠지요. 보는 것에 따라 놀이가 수단이 되기도 하니까요. 양가적인 측면을 고려하는 시를 쓰고 싶어요. 하나의 상황 안에 각자 다른 내면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시 같은 것을 쓰고 싶어요. 조금 엉뚱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동화책을 보는 것을 좋아해요. 동화책에는 본질적인 문제가 글과 그림으로 드러나 있거든요. 보는 사람에 따라 문제를 유추할 수 있는 페이지가 다른 것도 있고요.

8. 마지막으로 이번 강의를 신청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전히 ‘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 시를 쓰는 동안 이 생각은 계속될 것 같아요. 저 자신도 모르게 쓴 시가 있을 수도 있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쓴 시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시도 있을 수 있겠지요. 내가 자신을 완벽하게 알기 전까지 내가 쓰는 ‘시’는 여전히 나에게는 모르는 ‘어떤 것’, 그래서 초월적이고 초의미적인 ‘어떤 것’이라고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당위성을 찾는 시간을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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