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향 소설가와 함께하는 '소설과 계절'
정지향 소설가와 함께하는 '소설과 계절'
  • 남원희
  • 승인 2021.02.16 17:39
  • 댓글 0
  • 조회수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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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에디터
사진=한송희에디터

 

계절마다 떠오르는 단상들이 있다. 봄이면 입학식 날의 어수선한 풍경이, 여름은 습한 바깥 공기를 피해 들어간 시원한 카페가 떠오르고 가을은 허리에 맨 카디건이, 그리고 겨울에는 이른 아침 추운 화장실에서 이를 닦던 것이 생각난다. 정지향 소설가는 네 계절 중 여름에 관한 글을 즐겨 쓴다고 한다. 여름에 대해 쓰다 보니 여름이 좋아졌다는 정지향 소설가. 그는 자연의 감정과 상황이 작가에게 좋은 글쓰기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뉴스페이퍼에서 정지향 작가가 이달 23일부터 진행할 수업 “소설과 계절”에서는 계절뿐만 아니라 햇빛, 안개, 미세먼지 등의 기상 현상을 주제로 한 짧은 글을 쓸 예정이다. 완성된 짧은 글들은 수업 마지막에 완성할 단편소설의 훌륭한 밑바탕이 된다. 동시에 계절적 배경이 두드러지는 소설을 함께 읽음으로써 계절이 소설에 미치는 것들을 면면히 들여다볼 계획이다. 길었던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할 준비에 한창인 2월, 정지향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해보았다.

 

Q. 이번 강의 제목이 ‘소설과 계절’입니다. 계절을 수업 테마로 잡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막막한 분들에게 계절이 좋은 힌트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네 계절은 물론 더 자세하게는 먹먹할 만치 쏟아지는 폭우, 아쉽게 흩날리다 마는 한낮의 진눈깨비와 같은 기상 현상을 세심하게 그려보고 함께 나누는 동안 그 풍경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하나둘 끌려 나오리라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자연의 감정과 상황은 작가에게 좋은 글쓰기 도구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독자에게 이야기가 펼쳐질 배경을 소개하고 그에 동화시키는 데 날씨가 가져다주는 보편적 감수성을 이용할 수 있지요. 인물의 감정 상태나 소설의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데도 도움을 주고요. 계절과 이야기를 함께 떠올리는 동안 이러한 소설적 배경에 대한 이해도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Q. 작가님께서 소설을 쓰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지점은 무엇일까요?

A. 요즘에는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인가?’를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많은 여성 작가들께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고, 그만큼 독자로서도 행복한 시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때보다도 소설을 읽다가 ‘맞아, 이런 이야기가 필요했어.’하고 감탄하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 세대의 여성들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는 많다고 느껴요. 작가의 입장에서도 과연 내가 쓰려고 하는 소설에 그러한 지점이 담기는지 고민합니다.

Q. 작년 가을에 단편집을 내셨는데 책 소개와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A. 네, 첫 소설집 <토요일의 특별활동>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저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장편소설로 수상하면서 등단했고, 그 후로 6년가량 느리게 발표한 단편을 책으로 묶었어요. 소설 속의 인물들도 십 대에서 이십 대의 삶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책을 내면서 작가의 말에 ‘모든 사랑과 여행과 실수가 몸 안에 영원히 쌓이는 것이라 믿으며 쓴 소설도 있고, 아무리 진득한 날도 흘러갈 수 있음을 알아가며 쓴 소설도 있다.’라는 문장을 썼어요. 너무도 치열해서 숨 돌릴 틈 없었던 시절의 단상들, 그때는 미처 다 어루만지지 못했던 상처와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담긴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촬영 및 편집 = 뉴스페이퍼]


Q. 네 계절 중 어떤 계절을 자주 소설의 소재로 활용하시나요? 좋아하시는 계절과 같을까요?

A. 이번 단편집에는 유난히 여름 이야기가 많아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토요일의 특별활동>의 인물들은 생에서 가장 치열한 계절을 보내고 있어요. 이들의 일상은 여름과 잘 어울려요. 긴 하루가 공백처럼 아득하게 펼쳐져 있고, 뜨겁고 무거운 공기는 정신을 혼미하게 합니다. 얼음이 녹아가는 동안에는 조바심이 나고, 밤공기는 괜히 달아서 사람들을 추동하지요. 20대의 날들처럼요. 책을 한창 묶던 때도 작년 여름이었어요. 은평구에 있는 한 도서관에서 상주 작가로 일하고 있었어요. 도서관은 여름 내내 코로나로 휴관 중이었고, 비가 참 많이 내렸어요. 이상한 여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모든 여름이 고유한 결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름-햇빛-더위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어요. 달궈진 공기, 습도, 직사광선의 양, 공기 중에 퍼진 냄새, 또 무엇이 여름을 구성할까 고민했습니다. 청명한 싱가포르의 하늘과 우기 치앙마이의 습도, 바르셀로네타 해변에 불어오는 짠 바람과 제 고향 해운대의 냄새는 서로 다르죠. 이렇게 고유한 계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은 비슷한 결을 어딘가에 새기게 된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서로의 마스크 속에서 숨을 쉬었던 지난여름 우리는 어떤 결을 나누게 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여름 이야기는 너무 많이 써서 책을 묶고 나면 당분간은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어쩌면 또 쓸지도 모르겠어요.


재미있는 것은 여름에 관해 쓸수록 여름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계절의 면면을 살펴보고 문장을 다듬을수록 그렇고요, 또 다른 이들의 작품에서 그 계절에 대한 멋진 문장을 발견할 때도 그래요. 저는 사실 겨울을 아주 싫어하고 못 견디는 사람이었는데, 몇 편의 겨울 배경을 쓰고 다른 작가들의 멋진 문장을 읽으면서 겨울 고유의 아름다움을 점차 좋아하게 되기도 했어요. 소설이 하는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Q. 계절적 배경이 두드러지는 소설 중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A. 이번 책에 실린 제 소설 중에서는 <알레르기>라는 작품을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연애를 시작한 두 사람이 낡은 빌라를 얻는데, 거기 달려있던 오래된 에어컨이 두 사람의 먼지 알레르기를 유발해요. 둘은 이런저런 방법을 써보다가 결국에는 에어컨을 포기하고 발가벗고 생활하게 되어요. 땀이 흐르면 물을 끼얹고 나와 선풍기 앞에 앉고요. 눅진하고 견디기 힘든 여름이었지만 그 공기 속에서 둘은 나른하게 흘러갑니다.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하는 건 오히려 여름이 끝난 뒤부터고요.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과 안드레 애치먼의 <그해, 여름 손님>은 여름마다 생각나는 작품입니다.

 

Q. 최근 관심을 두고 있으신 것이 있으시면 어떤 것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최근에는 자살로 가족이나 친구, 애인을 잃은 자살생존자에 대한 이야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계간지 <에픽> 창간호에 ‘지극히 남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논픽션을 발표하기도 했고요. 한국은 젊은 층의 자살이 굉장히 흔한 나라임에도 그것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터부시하는 사회예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유예된 애도는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이번 강의를 신청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좋아하는 계절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쓴 후에 우리가 결국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계절에 대한 작은 애정을 품고 수업을 마치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요. 그 과정에서 그동안 쓰고 싶었지만 잊었던 이야기들, 내 안에 있는지도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함께 만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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