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프로메테우스. 정현우 김승일 크로스 시 낭독회 랄라라 하우스에서 열려
천사와 프로메테우스. 정현우 김승일 크로스 시 낭독회 랄라라 하우스에서 열려
  • 남원희
  • 승인 2021.02.25 14:57
  • 댓글 0
  • 조회수 5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뉴스페이퍼
사진=뉴스페이퍼

지난 22일 저녁, 수원에 있는 책방 랄랄라 하우스에서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의 정현우 시인과 “프로메테우스”를 출간한 김승일 시인의 시 낭독회가 열렸다. 이번 낭독회의 공식 명칭은 “천사와 프로메테우스의 콜라보 시 낭독회”로, 각자의 시집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이날 낭독회에는 “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펴낸 주영헌 시인도 참여했다.

음악과 문학을 넘나들며 활동을 펼쳐왔던 정현우 시인은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했다. 2009년 동주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그로부터 2년 후인 지난 1월 15일 발간한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가 출간 3주 만에 4쇄에 돌입하며 주목을 받았다.

한편 김승일 시인은 2007년 서정시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인문학 콘서트”를 비롯한 많은 동네 서점 행사에 참여하며 연일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낭독회에서 낭독한 시집 “프로메테우스”는 2016년도에 발간된 것으로 최근 논란이 되는 학교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시 “종이배”가 인상적이다.

사진=뉴스페이퍼
사진=뉴스페이퍼

시 낭독회에 앞서 참가한 독자들과 시인은 두 시집 속에서 각자 소개하고 싶은, 혹은 좋았던 시를 낭독하고 이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낭독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세례”, “소라일기” 등을 낭독하며 저마다 다르게 느낀 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고, 시인들의 설명이 잇따랐다. 그리고 낭독회가 시작하자 시인은 각자의 시집을 바꿔 들었다. 다른 낭독회에서는 시인들이 자신의 시를 읽곤 하지만, 김승일과 정현우 시인은 서로의 시를 읽기로 한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김승일 시인은 “제가 제안한 것이다”라며 “제 강력한 시들을 조금 부드럽고, 저와는 결이 다른 정현우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다면 어떨까 해서 제안했는데, 흔쾌히 알겠다고 해주셔서 서로의 시를 읽게 되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사진=뉴스페이퍼
사진=뉴스페이퍼

이상해서 화장을 했다.
내가 태어난 것이
여자를 벗은 것 같아
누나의 검정 치마를 입었다.

거울 속에서 숨죽인 내가
립스틱을 쥔 채로
매달려 있었다.

아랫입술을 잃어버렸다.
쏟아지는 검은 구름들,
누나의 마스카라는
나의 베갯잇을 적시고

벽에 매달려 있는 동안
나는 어느 얼굴이 되는 걸까.

누군가 방문을 열까봐
우는 얼굴로 저녁을 닫았다.

나는 내 몸을 만지면서
눈을 감고 얼굴을 그린다.

정현우 시인 “여자가 되는 방” 중에서

 

김승일 시인은 정현우 시인의 “여자가 되는 방”을 낭독했다. 그리고 시에 따라오는 성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에 앞서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김승일 시인은 어릴 적 학교폭력을 당한 적이 있는데, 이에 불을 붙인 것이 바로 자신이 ‘여성스러웠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승일 시인은 그래서인지 “여자가 되는 방”이라는 시의 제목이 단번에 자신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동시에 의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고 말한다. 여성스러운 것은 무엇이며, 여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공간인 방은 어디일까? 김승일 시인의 질문에 여러 곳에서 이야기들이 나왔다. 참여자인 주영헌 시인은 자기 자신이 여성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질문을 던진 김승일 시인 또한 나에게도 그런 면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나아가 김승일 시인이 이 시가 혹 정현우 시인의 개인적인 경험인지 묻자 정현우 시인은 자신과 친구의 경험이 조금씩 녹아있는 시라고 설명했다. 정현우 시인은 초등학교 5학년, 사춘기 시절의 일을 언급하며 “자신에게 처음 화장을 해주었던 친구가 기억난다. 비록 그 친구는 세상을 떠났지만, 헌정하는 의미로 친구의 입을 대신한 시를 써보았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면서 “젠더 이슈나 성을 다룬 시 9편을 시집에서 뺄까도 고민했었지만, 친구가 아른거려 넣을 수밖에 없었다”며 특별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사진=뉴스페이퍼
사진=뉴스페이퍼

한편, 정현우 시인은 김승일 시인의 시를 두고 “몸으로 쓰는 시”라고 언급하며김승일 시인의 시는 감정이 골이 울퉁불퉁하여 몸으로 밀어붙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정현우 시인의 낭독 차례였다. 정현우 시인이 고른 시는 “쥐”였다. 김승일 시인의 “쥐”는 덫에 걸려 죽어가는 쥐를 보며 그 안에서 빨간빛이 뿜어져 나온다고 생각하여 쓴 시이다. 김승일 시인은 “쥐”를 두고, “지나치면 그만인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굳이 꺼내어 시로 옮긴다는 것이 특이한 것 같다.”며 시인과 기억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했다.

낭독회에 참가한 어떤 독자는 김승일 시인의 “프로메테우스”를 두 번 읽었다고 밝히며 매번 읽을 때마다 특유의 냄새를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냄새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고 좋아야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김승일 시인의 시집에서는 시인의 삶을 관통하는 냄새가 난다. 하지만 살냄새보다는 피 냄새에 가까워서 시를 읽을 때마다 슬퍼진다.”며 개인적인 감상평을 이야기했다.

끝으로 밴드 활동을 겸하고 있는 정현우 시인의 노래가 있었다. “개여울”이라는 노래를 선곡한 정현우 시인의 팔세토 발성이 작은 서점을 울렸다. 높은 음역의 곡에 어울리는 조심스러운 음색이었지만 서점을 꽉 채울 만큼 힘 있는 노래였다. 그리하여 시와 음악이 함께하는 특별한 낭독회는 마무리되었다.

두 시인은 앞으로도 함께 낭독회를 하고 싶다며 서로를 ‘결이 맞는 사람들‘이라 칭했다. 얼핏 보면 반대의 결을 가진 듯 보이지만, 울퉁불퉁한 표현으로 감정에 굴곡진 부분까지 어루만져주는 한 시인과 그 감정을 다시 보듬어 오래도록 기릴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인은 함께 하면 더욱 그 합이 좋다. 김승일 시인과 정현우 시인은 “앞으로 꾸준히 시 낭독회를 할 예정이다. 오늘은 그 여정의 첫걸음인데 그 걸음을 잘 뗀 것 같아서 좋다.”고 이야기했다. 벌써 두 젊은 시인의 다음 낭독회가 기대된다.

 

이건 멀리 가는 배가 아니에요
집 벽에 머릴 쿡 찧으면
오후 내내 햇빛으로 마르는 배에요
책가방과 보온도시락만 들어가거든요
친구가 발 한쪽만 넣어도 바들바들 찢어지는 종이배에요
자꾸 코를 문지르고 소매를 뒤집어 올리지만
배를 반듯하게 접을 수는 없어요
맑은 콧물이 내려오면 퍼다 버립니다

-김승일 시인의 ‘종이배’ 중에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