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환 교수가 김수영을 유교의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읽었다(한겨레신문, 5월 31일). 그는 시인이 서구의 모더니즘뿐만 아니라 동양의, 아니 우리 고유의 '선비정신Confucian gentlemanship'을 지녔던 대쪽같이 곧은 지식인이었다는 것이다
자, 올해는 머 김수영 탄생 100주년이라 하니 너나 없이 김수영에 대해 한 마디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평가의 세계가 주관적인 만큼 매우 '주의 깊은close' 접근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그는 김수영의 시에 공자, 선비 등 유교 관련 시구가 적지 않은 이유를 들어 시인의 정신적 뿌리가 유교의 선비정신에 있다고 본 모양이다 그러나 이건 대단한 착각이다 김수영의 시와 산문을 보먼 도교 관련 어휘도 적지 않게 등장한다 우선, 관우를 소재로 한 '묘정의 노래'는 도교 전통을 말함이고, '달나라의 장난'에 등장하는 '공통된 그 무엇'에 대비되는 '스스로 도는' 팽이에 대한 비유는 권력의 세계에서 벗어난 도교의 자연을 연상시킨다 '시를 배반하고 산다'('구름의 파수병')고 했던 반시론적 태도도 동질적 세계에 흡수되지 않는 민중적 삶의 도교적 암시에 다름 아니다 '신귀거래' 연작은 아예 권력에 초탈한 도교시인 도연명의 김수영 버전이고 '거대한 뿌리'에 등장하는 '무수한 반동들'-요강, 망건, 장죽...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에 대한 경도는 그대로 도교의 민중지향적인 시인의 취향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거기 '시꺼먼 가지'는 도교의 무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상징적 표지가 아닌가 무엇보다 '풀'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차이와 반복으로서의 생성-소멸-재생의 인식은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로서의 민초적 삶의 도가적 패턴을 암시하고 있는 시적 에피스테메가 아닌가.
아니 이것마저도 아니라먼 그가 끊임없이 시를 써오먼서도 반시를 주장했던 이유가 반역의 정신('구름의 파수병')에 닿아 있기 때문이고, '이땅의 시인으로 언어의 변화는 생활의 변화요, 그 생활은 민중의 생활을 말하는 것'이라던('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그를 보자먼 그는 분명 저 피지배층의 종교적 심성을 대변했던 중국적 도교의 한국적 변용으로서의 민중 취향을 드러낸 것이라 아니 볼 수 없다 이로 볼 때, 김상환의 주장은 제논에 물대기식 주관적 편향성에서 벗어나지 모한 한계를 지녔다
김수영이 공자를 들먹인 것('공자의 생활난')은 그를 추앙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공자는 주제국 말기 도덕규범이 해체되어가던 춘추전국시대를 살다간 불우한 지식인이었다 마찬가지로 김수영 또한 해방이후 가치가 실종된 시대를 살먼서 불우한 자신을 빗대어 말하기 위해 차용한 것일 뿐이지 전근대적인 충효예의리 중심의 유교정신의 고취와는 거리가 멀다 선비 또한 일정한 직업이 없이 가난하게 살먼서 글을 쓰고 번역을 하는 자신에 대한 '자조적인' 비유로 가져다 쓴 것이지 않은가 지난 번(<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에는 데카르트의 '코기토'라는 근대의 이른바 관념의 형이상학으로 김수영을 오독했던 그가 이번에는 아예 '민중적 전통의 뿌리를 깊이 있게 의식했던 한국의 보기드문 문화검투사'(졸저 <네거리의 예술가들> 중 '김수영론')를 좁직한 유교정신에 가두는 오류를 범하였다 최근 이송우 시인의 첫시집 <나는 노란 꽃들을 모릅니다>)의 '유신의 기억2-부당이득 반환 명령'에는 김수영이 혁명을 꿈꾸는 이땅의 지식들에게 혁명의 교과서로 인식됨을 암시하는 대목이 보인다 그러니까 김수영은 보존하는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폭파하는 성격을 띠고 있는 진보적 시인이었지 않은가 어찌 고루한 선비정신인가! 오, 오류의 위대함이여!
나는 그렇게 본다.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삼국지 : 조조를 위한 변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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