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샘의 문예시감(8.15 특집) 우리의 문화수준을 드높이기 위해서는
늘샘의 문예시감(8.15 특집) 우리의 문화수준을 드높이기 위해서는
  • 김상천
  • 승인 2021.08.1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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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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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이른바 K-문화 전성시대라고들 하지만 정작 문화의 꽃밭엔 벌레들만 가득하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죽은 사체라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K-철학을 야그하고 우리 문화의 고양 방안을 야그하려고 하니 갑자기 참을 수 없는 구토의 역겨움이 몰려옴을 느낀다.

물론 우리 문화는 지금 호시절을 맞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적 체급에 맞게 스케일도 기술도 글로벌 수준에 닿아 있고, 일부나마 세계적 평가와 찬사를 받고 있는 것도 부정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문화 현주소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특히, 출판계의 상황은 더욱 그렇다. 그나마 몇 권이라도 팔리던 인문철학서들도 세계적인 판데믹 위기를 맞으면서부터는 아예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문화가, 나아가 한국철학이 고사위기에 놓인 것은 정부의 통제와 방임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본다. 먼저, 정부의 통제부터 보자.

정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으로 영혼의 기술자라는 작가들을 통제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작가들이 수년, 또는 수십 년에 걸쳐 어렵게 써낸 원고를 출판하고 싶어도 출판비가 없어 고심하고 있을 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정부의 출판비 보전 정책이다. 그러나 책은 좀처럼 팔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것은 경제적 위기도 위기지만 무엇보다도 질좋은 책들이 생산되지 모하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질 좋은 책이 생산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대중적 흥미도 갖춰야 하지만 깊이 있는 시각과 비판적 안목을 갖춘 것이어야 하는 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렵게 품을 팔아 답사도 해야 하고 다양한 자료를 통해 이면을 들춰도 봐야 하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그러나 아쉽게도 그렇게 공을 들여 쓴 책들은 정부의 지원에서 예외 없이 탈락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뭐 정부가 국민을 통제하려는 구시대적 권위주의 발상에서 벗어나지 모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작가(또는 출판사)도 먹고 살기 위해서는 그들의 입맛에 맞는 봉지커피처럼 달달한 B급 책이라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리하여 알량한 지원금을 따내기 위해 거장 임권택이 젊은 시절 국민들을 눈멀게 하는 포르노물과 알게 모르게 폭력을 미화, 정당화시키는데 일조하는 느와르물을 만들지 않으먼 안 되었고, 또 다른 거장 임진택이 ‘판소리 안중근’ 같은 국뽕형 서사물을 토해내지 않으먼 안 되었고(이것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가난한 예술가들께서는 쥐꼬리만한 창작지원금을 타내려고 하늘같은 그들에게 침을 질질 흘리는 굴종의 개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니 그들은 나의 하늘이다.

정부의 통제는 눈에 보이는 곳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박용규 박사(<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 인간과자연사>)에 따르면 항일동학대장 전봉준, 최시형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정당한 수훈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사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뜻밖인데다 충격적인 일이지 않은가. 어티케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이런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음모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교과서에서 대한제국의 국권을 수호하고자 일제와 싸우다 공주 우금치 고개에서 고혼이 된 수많은 항일동학농민군들에게 국가적 수훈이 정당하게 완료된 것으로 배우지 않았는가. 이것은 국민에 대한 엄청난 기만이 아니고 무엇인가. 다행히 박용규 박사가 날카로운 역사의 눈으로 이를 확인하고, 외롭게 투쟁하고 있으니 결과를 두고 볼 일이다.

이번에는 정부의 방임을 살펴보자. 우리는 어제 76주년 광복절 기념식을 치렀다. 매년 되풀이 되는 행사지만 올해는 홍범도의 항일 치적을 앞세워 국권수호의지를 드러낸 독립투사들의 무훈을 기리고 국체의 자존을 세우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 이채를 띠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 또한 하나의 국뽕신화 만들기가 아닌가. 당시 최진동이라는 총사령관이 실질적인 주역으로 독립군의 투쟁을 드높이고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수훈을 세운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하성환의 <근현대인물한국사, 살림터>참조)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이는 또 하나의 국민 기만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분명 광복을 맞은 독립국가로서의 자존감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한국인으로서, 여기 국민적 자존감의 핵을 이루는 것을 국민적 정체성이라 할 때, 그 정체성의 핵심은 무엇인가 라는 문제다. 그것은 바로 '배타적인exclusive' 권력으로서의 근대의 민족개념으로서의 국가의 실체다. 더욱이 우리는 근대 이후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근대국가 성립과정에서 식민이라는 뼈아픈 체험을 하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우리에게 있어서의 국가적 정체성은 무엇보다 민족저항의 에토스를 지닌 국가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아직도 친일행위가 너무도 명명백백한 부일배이자 철저한 부역(‘附逆’은 국가에 반역이 되는 일에 동조하거나 가담한 일을 말한다)문인들을 기리는 친일문학기념상이 오래도록 시행되고 있는 것을 방치하고 있는지 이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신기한 나라의 풍습이 아닌가. 다행히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 '작가회의 자유실천협의회' 등을 위시한 뜻있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미당문학상과 팔봉문학상을 저지해 냈으나, 가장 악질적인 매국문인 김동인을 기리는 동인문학상은 왜 여전히 존치시키고 모른 채 하고 있는가. 그러고도 국가라 할 수 있는가. 아니, 이런 파렴치한 사태를 두고도 모르쇠 하는 사회를 깨어있는 시민사회라고 볼 수 있는가. 이것은 무고한 독립선열들을 욕보이고 양심 있는 작가들을 또한 모욕하는 일이지 않는가. 똥친 막대라니 그놈이야말로 맑고 향기로워야 할 문학의 강물을 흐리게 하고 아름답고 고와야만 할 예원의 숲을 망가뜨린 장본인이지 않은가.

이렇게 우리는 정부의 통제와 방임으로 나라의 건전한 문화적 기풍이 썩어가고 있는 가운데 어제 또 광복절을 맞았다. 그러나 저 간악한 일제가 우리의 손발을 자르고 목을 치고 명을 끊는데 도움을 준 무리들을 처단을 하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기리고 있다니, 그런 나라에서 어티케 아름다운 문학의 꽃이 피고 단단한 사상의 열매가 맺기를 바라는가. 대저 우리의 문화수준을 드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권위주의적 발상과 무책임한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의 책임있는 답변을 바라마지 않는다.

......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삼국지 : 조조를 위한 변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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