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경장 교수가 말하는 홈리스, 성프란시스대학 노숙인 인문학 과정과 함께
[인터뷰] 박경장 교수가 말하는 홈리스, 성프란시스대학 노숙인 인문학 과정과 함께
  • 김보관기자
  • 승인 2021.08.31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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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 성프란시스대학 15주년 기념 문집을 통해 살펴보는 노숙인들의 진솔한 이야기

성프대에 가면
오래 잊은 듯한 좋은 일이 있을 듯하네.
꽃을 사랑하는 디디미
스포츠맨 아도니스
식단 차려주는 거북이
분위기 띄우는 봉노선생
한마음으로 만난 도반선생들.
서로 만나 악수하면 외로움은 저만치 달아나네.

오고가는 정담 속에 사랑은 피어나고
세월이 흘러모든 것이 안개처럼 사라져도
이 순간 보석 상자에 담아두고 싶네.
사랑하는 이들이여,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
지리산 둘레길 떠도는 바람은 알고 있으리.

-이ㅇ원, ‘만남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노숙인들을 위한 인문학 대학이 만들어졌다. 2005년 9월 개교 이래 올해로 16기의 입학생을 받아온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은 갈월동에 위치한 서울시립 다시서기센터에서 출발했다. 노숙인 종합복지센터인 이곳은 임영인 신부가 설립한 곳이다. 

노숙인 재활센터가 아닌 인문학 강좌라니. 다소 생소한 대학이 설립된 데에는 홈리스를 향한 지속적인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숙인 문제에 오랜 고민을 해온 임영인 신부가 흔히 당면한 의식주 문제 등을 해결해주는 복지센터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해서 근본적인 홈리스 신분 상태에서 탈출하거나 벗어나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고민하던 차에 그는 때마침 미국의 클레멘트 코스를 접하게 된다. 클레멘트 코스는 미국 내 빈민, 노숙인, 마약중독자 등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무료 인문학 교육과정으로 ‘성프란시스대학’의 출발점이 된 곳이다. 

‘결국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자존감 회복이다. 그것에 가장 좋은 것은 인문학이다.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를 세우자.’ 그렇게 1년 과정의 성프란시스대학이 설립되고 해마다 스무 명 남짓의 신입생을 받는 세상에서 가장 작고 따뜻한 학교가 만들어졌다. 한 학기 15주, 1년 30주간의 커리큘럼 속에서 노숙인들은 철학, 역사, 예술사, 문학, 글쓰기 다섯 과목을 수강하게 된다. 여기에 두 학기에 걸쳐 20회 동안 진행되는 심화 수업까지가 성프란시스대학의 전체 과정이다. 

사진= 강의 모습
사진= 강의 모습

 

뉴스페이퍼가 만난 성프란시스대학 편집위원 박경장 교수는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과정이 있다고 방점을 찍었다. 다름 아닌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어 먹는 일이다.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저녁을 같이 먹는 거예요. 우리 선생님들이 사회에서 아주 다양한 일을 한 경력이 있어 각 기수마다 과거 요리를 하셨던 분들이 계셔요. 그런 분들이 식사 준비를 담당하고 교수, 자원활동가, 우리 선생님들이 다 함께 밥을 먹습니다. 일종의 식구이자 밥상공동체이죠.” 

여기에 교실과 책상을 벗어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수업도 잦다. 미술관과 박물관 등을 돌아다니며 현장학습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박경장 교수는 이때 역시 자연스레 형성되는 공동체적 경험에 대해 강조했다. 

“무엇보다 제가 실감하는 것은 이런 것이에요. 선생님들이 홈리스인데 어떤 사회적 관계나 기본적인 가정이라는 관계가 단절된 분들이시거든요. 1년 동안 같은 처지에 있는 선생님들이 모여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마치 대학생활 4년을 1년으로 압축한 것과 같은 행사들 속에서 밥상공동체 혹은 학습공동체를 경험하게 됩니다. 2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선생님들이 가족구성원이자 동문으로 지내며 일반 대학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공동체를 겪는 것이지요.”

이처럼 독특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의 글을 엮은 책이 나왔다. 성프란시스대학 15주년을 맞아 발간된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는 글쓰기 수업에서 나온 글들을 엄선한 것으로 국내 최초의 노숙인 문집이다. 이 책을 내게 된 데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표지사진
표지사진

 

박경장 교수에 의하면 성프란시스대학이 10년째 되는 해에 학장과 교수들이 모여서 발간한 “거리의 인문학”이 그 시작점이다. 당시 거리 노숙인들의 인문학 과정에 관심이 있는 다른 단체들을 위한 기록으로 기획된 해당 도서는 그들이 걸어온 10년간의 세월 속에서의 다양한 시선들이 빠짐없이 들어있다. 그러나 정작 학교의 주체인 노숙인들의 글이 실리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다는 후일담이다. 그때의 아쉬움이 모여 15주년을 기념한 노숙인 문집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을 출간하게 되었다.

약 1년의 시간 동안 TF팀을 구성해 완성된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의 출간 과정에서는 뜻밖의 감동과 슬픔이 공존했다. 박경장 교수는 당시를 떠올리며 “모두에게 연락을 취해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이미 세상을 뜨신 분들도 확인되었다.”며 “선생님들이 40대 초반에 돌아계신 분들이 계시곤 한다. 이승에서 남긴 마지막 글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 그분들의 삶의 무늬라고 할까요. 단순한 사인이 아니고 사인 뒤에 남은 삶의 마지막 흔적, 아름다운 무늬 같은 글이어서 의미가 있어요. 왜냐면 주로 거리 노숙인들이 거리에서 사망하시게 될 때 제일 먼저 경찰서에서 가족에게 연락이 갑니다. 그런데 가족에게 연락이 되어도 시신을 수습하지 않는 경우가 반수 이상이에요. 그래서 무연고 처리되거나 한 생명이 삶을 마감할 때 마지막 장례 절차도 없이 삶을 마감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해요. 우리 선생님들은 저희와 일 년 맺은 연으로 자신의 글들을 남기게 된 것뿐만 아니라 무연고 처리가 될 경우 학교로 연락이 와 각 기수들이 함께 가족인 양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합니다. 생전 선생님이 남긴 글을 낭송하기도 하고 추모하기도 하고요. 눈물겹게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그 순간에 한 생명에 대한 존중감을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다시 성프란시스대학으로 돌아가 노숙인과 인문학이 만나 생기는 변화는 과연 무엇일까. 박경장 교수는 “선생님들이 거리 생활 바닥 생활을 하다가 인문학을 1년 과정을 마치고 졸업하면 당장 무슨 의식주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 대학처럼 졸업장이 있거나 기술을 가르쳐주거나 스펙 쌓는 것도 아니라 직장 알아볼 수도 없다.”며 “그래서 선생님들이 공통적으로 졸업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일 년 동안 있었던 소속집단이 없어져서 굉장히 공허해하고 방황하기도 한다.”고 운을 뗐다.

그뿐만 아니다. 성프란시스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뜻밖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주변 노숙인들에게 ‘어디 졸업했으니 뭐가 달라졌나 보자.’ 하는 시선을 던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꼭 나쁜 효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박경장 교수는 “아마 그런 눈총이 그전처럼은 살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먹게 하고 스스로 달라지려 달라진 척하는 면도 있겠다.”라는 말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넘어진다. 술 먹고 널브러지고 그전과 별다른 바 없는 생활로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양면적인 현실을 전했다.

다시 넘어지는 노숙인들이지만, 그전과 분명히 달라진 점도 있다. 박경장 교수는 “그전에는 그냥 바닥에 널브러져도 자기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 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며 “가장 큰 달라진 점은 넘어졌을 때 자기 모습을 보려 한다는 점이다. 부끄러워지고 수치스러워지고 ‘내가 뭐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일 년간의 인문학 과정을 거치며 이를 거울삼아 자기의 모습을 보려고 한다는 설명이다. 박경장 교수는 ‘그게 바로 스스로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감’이라며 나아가 그것이 결국 인문학의 힘이라고 설파했다.
 
실제로 디테일한 변화를 목격한 적은 셀 수 없이 많다. 박경장 교수는 일례로 졸업식 날 기자들과 인터뷰한 한 선생님의 발언을 꼽았다.

“세세한 변화들을 말하자면 종일 밤을 새워도 모자라요. 그중 직접 들은 것을 하나 꼽자면, 초등학교도 못 나오신 선생님이 한 분 계세요. 기골이 장대하고 입이 굉장히 거친 분이셨죠. 성프란시스대학 졸업식 날 그 선생님이 인터뷰하는 걸 들었습니다. 기자가 ‘뭐가 제일 변했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시더군요. ‘제가요, 여기 오기 전에는 서울역에서 누구와 대화를 하게 되면 말로 안 하고 주먹부터 나갔어요. 그런데 지금은 말로 합니다. 책 한 권 읽어본 적 없던 전과는 달리 읽은 책을 가지고 이야기해요. 주변에서 왜 이렇게 말투가 고와졌냐고 묻기도 합니다.” 

여기서도 노숙인들의 무너진 자존감을 되찾을 실마리가 돋보인다.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 그리고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박경장 교수는 “자존감이 별거겠나. 다른 사람이 ’어? 너 이렇게 달라져?’ 했을 때 ‘어? 내가 그랬네.’라는 사실에 놀라는 것부터다.”라고 표현했다.

장대비 속에 긴 배식줄
빗물바아압 빗물구우욱 비잇무울 기이임치이
물에 빠진 생쥐새끼라 했던가.
물에 빠져도 먹어야 산다.
이 순간만큼은 왜 사는지도 호강이다 왜 먹는지도 사치다.
인간도 네 발 짐승도 없다 생쥐도 없다.
오직 생명뿐이다.
그의 지시대로 행위할 뿐,
사느냐 죽느냐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오로지 먹는 것 쑤셔 넣는 것
빗물 반 음식 반 그냥 부어 넣는 것이다.

-권일혁, ‘빗물 그 바아압’

인터뷰의 후반에 접어들자 노숙인에 관한 편견에 대한 지점이 언급됐다.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명칭이다. 박경장 교수는 “노숙인이라는 명칭에도 문제가 있다.”며 “그조차도 원래부터 노숙인이라고 불린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아마 거리 부랑아. 그렇게 불렸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노숙자라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노숙자라는 것은 가치 중립적인 명칭은 아니다. 거리 부랑아라고 호명만 안 했을 뿐 거의 그 정도 수준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거리의 홈리스들을 ‘노숙인’이라 부르는 건 우리밖에 없다. 박경장 교수는 ‘홈리스’와 ‘노숙인’의 차이를 설명하며 “거리 노숙인이라고 다 거리에 노숙하는 건 아니다. 쪽방에서도 지내고 고시원이나 시설에서도 지낸다. 거리로 나오시는 건 고시원이나 시설에 들어갈 수 있음에도 안 들어가는 것도 상당수다.”라고 꼬집었다. 홈리스의 거리 생활은 각 시설이나 고시원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이나 규율 생활을 견디지 못해 길거리로 나오는 현상이지 본질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는 “본질은 홈이라는 가정을 잃어버린, 가정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사람이라는 것이 맞다. 하우스리스가 아니고 홈리스다.”라고 강조했다. 

이때, 홈리스가 되는 여러 요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인은 어릴 적부터 시작된 가정불화 또는 가정으로부터의 내몰림이다. 박경장 교수는 “선생님들의 90%가 어릴 적 가정으로부터 버림받는 경험이 있다. 이에 따라 아주 이른 나이에 혼자 자기 삶을 책임져야 하는 거리로 내몰리는 경우가 7~80%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근래와 같은 심한 무한 자유 경쟁 체제에서 어느 누구든지, 심지어 아무리 집안 환경이 좋아도 우리는 간혹 미끄러진다. 그러나 우리 거리 선생님들에게는 일반인들이 미끄러졌을 때 다시 딛고 일어설 뒷받침이 되는 가정, 친구, 친척 같은 사회적 관계가 부재한다. 이러한 좌절이 한 번, 두 번, 세 번이 되면 그때 무너진 자존감은 정말 다시 회복되기 힘들다.”는 말들을 전했다. 홈리스가 홈리스가 되는 데에는 이처럼 개인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었던 사회적인 문제가 숨어있는 것이다.

박경장 교수는 “우리가 좋은 사회 좋은 국가, 소위 복지 국가 선진국이라면 그런 사회적 안전망을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며 “과거 마을 공동체가 있을 때는 아이들은 마을이 키운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삭막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공동체 마음은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홈리스분들은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괴물 체제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그런 분일지 모른다는 부연도 함께였다. 

입학식 사진
입학식 사진

그에 의하면 10년 전만 하더라고 노숙인뿐만 아닌 소수자, 장애인, 외국인노동자분들을 위해 인문학 학교를 연 곳이 꽤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재정적인 이유 등 각자의 다양한 이유들로 관련한 과정들이 다수 사라진 것이 현실이다.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내몰린 홈리스. 어쩌면 이 사회적 현상을 바로잡아 나가는 데에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관심이 무엇보다 절실할 것이다.

“전시 행정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해요. 저희도 이것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하지요. 근래 기존의 지원이 끊기며 교사로 있던 후암동 2층의 공간을 나와야 했어요. 지금은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곳에 무상으로 작게 있습니다. 그래서 한해 25명이던 신입생을 재작년부터는 15명밖에 받지를 못해요. 이래저래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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