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교] 인어공주
[미래학교] 인어공주
  • 김주욱
  • 승인 2021.09.03 00:09
  • 댓글 0
  • 조회수 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래강사:<김주욱>
글 짓고 그림 그리는 몽상가. 2014년 장편소설 『표절』을 시작으로 단편소설집 『미노타우로스』, 중·단편 소설집 『허물』, 『핑크 몬스터』, 스마트소설집 『그림이 내게 와서 소설이 되었다』, 장편소설 『물북소리』 등을 펴냈다. brunch.co.kr/@kimmirra

출처: Pexels
출처: Pexels

 

인어공주

그녀는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바다 속 궁전 이야기를 했다.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이 있는 그녀는 동남아 출장을 가면 잠수를 즐겼다. 그녀는 몸을 비비 꼬면서 인어를 만났다는 얘기를 하다 말고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하얀 마스크 사이로 삐져나온 뜨거운 입김에 순간적으로 달아올라 그녀를 안았다.

그녀는 댄스클럽에서 몸에 쫙 달라붙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흐느적거렸다. 원피스의 비늘 문양 때문에 오늘만큼은 인어공주 같았다. 우린 클럽을 떠날 때까지 찰싹 달라붙어 서로 엉덩이에 손을 얹고 천천히 리듬을 탔다. 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코로나19 사태로 말미암은 해약, 빚 독촉, 밀린 임대료 등은 자영업자를 위한 지자체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출근해서 사무실 청소를 끝내고 작년 연말에 개발한 베트남 자유여행 상품을 점검했다. 코로나19 사태만 진정된다면 떠났던 고객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눈을 감고 다낭 해변으로 날아갔다. 야자수 그늘서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바라봤다. 바람에 등줄기의 땀이 날아가고 긴장이 풀어지는데 문소리가 크게 났다. 그녀가 즐겨 뿌리는 미끌미끌한 향수 냄새가 났다. 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람이 오면 아는 척 좀 하세요.”

그녀는 자신의 긴 생머리를 수사자의 갈기처럼 자르고 휘황찬란한 색으로 물들였다.

“변신 축하해.”

그녀는 대꾸도 없이 자리에 앉아 숄더백에서 스낵 한 봉지를 꺼내서 터뜨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고소하고 기름진 스낵이 쏟아졌다. 굳게 닫혀 있던 그녀의 아래턱이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리와 어울리는 가방을 사야 되는데!”

아작아작 거리며 스낵을 씹는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그녀의 표정은 차츰 누그러졌다. 아작아작 씹는 것도 좋은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머리가 그게 뭐야. 애인이랑 싸웠어?”

“심각한 일이 있죠. 두 달째 월급을 못 받고 있으니까요.”

“조금만 기다려.”

“밀린 거 한꺼번에 주셔야 해요.”

“조금만 더 기다려.”

“사장님 얘길 들으니 스트레스가 다시 쌓이네요.”

퇴근 후 그녀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려고 댄스클럽에 갔다. 우리는 미국 매사추세스 공대 과학자들이 만든 코로나19 바이러스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바이러스의 단백질 구조를 연주음악으로 변환한 작품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단백질은 약 1,200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져 있고 표면 곳곳이 우리의 감춰진 송곳니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다고 한다. 그 부위는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침투할 때 사용하는 이빨과 같아서 백신 개발의 표적이다. 과학자들은 아미노산이 나선형으로 꼬여 있거나 일직선으로 뻗은 모양에 따라 고유의 음계를 부여했고 열에 의한 분자 진동에도 고유의 소리를 부여해서 악보를 완성했다고 한다. 연주곡은 조용한 차임벨 같은 소리로 시작해 경쾌하게 현을 튕기는 소리로 바뀌다 중간중간 천둥이 치는 소리도 났다. 과학자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구조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은 항체나 약물이 결합할 수 있는 단백질 부위를 찾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바이러스가 이빨을 드러내 숙주를 물듯이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서로 몸을 콕콕 찌르면서 춤을 췄다. 춤을 추며 나는 얼마든지 언제든지 그녀의 숙주가 되고 싶었다.

잠시 후 은은한 조명이 무대를 환상적으로 이끌었다. 내가 몸을 기울여 속삭이면 그녀는 몸을 뒤로 젖히면서 웃었다. 나는 그녀가 웃다가 뒤로 넘어질까 봐 그녀의 허리를 휘감아 앞으로 당겼고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이때다 싶어 그녀의 고개를 들어 키스를 퍼부으려는데 하얀 마스크가 나를 가로막았다.

차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나는 손가락빗으로 그녀의 끈끈한 머리칼을 가지런히 정리해주면서 바다 속 이야기를 들었다.

“바다 속 궁전의 정원을 거닐면 그곳이 밑바닥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하늘 높이 떠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요즘 아주 밑바닥이라고!”

“바다 속으로 끝도 없이 빠져들다 보면 바다에 하늘이 펼쳐지는 것 같아요.”

“고지서가 해일처럼 밀려오는데 낭만적이군.”

차는 어느새 좁은 골목을 돌아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녀가 주절대던 바다 속 궁전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차 안에서 내 목을 끌어당겨 입 맞췄다. 하얀 마스크 안에서 꿈틀거리는 그녀의 입술이 뜨거웠다. 그녀는 차에서 내린 다음 문을 닫기 전에 말했다.

“사장님, 오늘 월급날인 거 알고 계셨죠?”

“벌써 한 달이 지났단 말야?”

“차라리 정리해고해 주세요. 실업급여나 타 먹게.”

대리기사가 차를 돌리는 동안 그녀는 원룸텔 앞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인어공주 같던 그녀는 잡어처럼 변했다. 어떻든 간에 그녀의 유선형 몸매는 멀리서 봐도 매력적이다.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