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교] 정의사회 구현방법 김달영
[미래학교] 정의사회 구현방법 김달영
  • 김 달 영
  • 승인 2021.08.2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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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강사:김달영 1969년 대한민국 서울 출생, 물리학 박사.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2019년 SF 초단편 공모전에 입선하며 SF 창작활동 시작.

정의사회 구현방법

김 달 영

판결이 나온 직후 열린 기자회견장은 들끓고 있었다. 취재를 위해 회견장에 앉아있던 김보관 기자도 분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가 충격적으로 데뷔한 지 불과 몇 년도 지나지 않아 뭐든지 세계 최초가 아니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대한민국의 샛별전자와 법무부는 사상 최초로 AI 판사에 의한 재판을 시도하게 되었고 오늘이 바로 AI 판사의 첫 번째 사건 선고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AI 판사에게 첫 번째로 배정된 사건은 성폭력 사건이었다. 한국의 법원은 판사에게 사건을 배당할 때 무작위 추첨을 하는데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민감한 종류의 사건이 배정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AI 판사의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기대했다. AI는 지금까지 나왔던 미적지근하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의 성폭력 사건 판결 관행을 타파해주리라. 그런데 막상 공개된 판결은 기존의 인간 판사들이 내린 판결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 술 취해 있어 인사불성이었으니 형량 경감, 피고인이 죄를 뉘우치며 반성하고 있으니 개전의 정을 봐서 형량 경감, 피해자와 합의는 실패했지만 합의금에 상당하는 액수를 공탁했으니 또 형량 경감, 피해자의 행동에서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기에 그도 고려해서 어쩌구 저쩌구 … 차마 무죄를 주지 못해 부여한 티가 나는 가벼운 형량에 집행유예까지 덤으로 선고되어 버렸던 것이다.

분개한 기자들은 (최소한 이번 판결에 관해서만큼은 남자 기자들도 여성 기자들처럼 분개하는 분위기였다) 급히 1보를 본사에 송고하고 나서 구름처럼 기자회견장으로 달려가 따질 준비를 시작했고, 기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밀려난 각종 여성단체들은 회견장 입구에서 계속 진입을 시도하며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회견장 안에는 법무부와 샛별전자 관계자들 몇 명이 배석해 있었고 오늘의 주인공(?)인 AI 판사도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었다.

첫 번째로 연단에 올라선 이는 사법정책연구원 재판제도개선국장이라는 공무원이었다. 딱 봐도 관료 티가 철철 흐르고 기름이 번지르르한 고위 공무원은 법원이 (그리고 담당자로서 자신이) 최신 기술을 도입하여 재판을 첨단화시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자화자찬을 잔뜩 늘어놓으며 한편으로 오늘 판결이 불러일으킨 사회적 공분이 자신의 승진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는지 걱정하는 분위기를 역력히 보이고 있었다. 국장의 장광설이 일단락되고 질문 시간이 되자 A일보 기자가 첫 번째로 질문 자격을 얻었다.

“AI 판사의 오늘 판결은 기존 사법부의 진부한 판결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럴 거면 도대체 뭐 하러 재판에 AI를 도입했단 말입니까?!”

“AI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기 시작한 현 상황에서 우리 법원은 세계 제일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샛별전자의 첨단기술을 사법체계에 도입하는 것을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샛별전자 신XX 본부장님께서 해주시겠습니다.”

이미 언론계에 널리 퍼진 뒷소문을 바탕으로 추정해 보면, 공무원의 변명은 간단히 말해서 샛별전자의 로비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소리로 새겨들어야 했다. 샛별전자가 하려고 마음먹으면 못할 일이 이 나라에 없기는 하다. 곤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요령 있게 하청회사에 떠넘겨 버린 국장은 트집 잡히지 않고 잘 넘어갔다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잽싸게 자리에 돌아가 버렸다.

악명 높은 샛별전자에서 임원까지 출세한 사람답게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인상의 신XX 본부장은 기자들 네놈들이 뭐라 떠들어대건 나는 한 건 해냈다는 표정으로 연단에 서서 샛별전자가 개발한 AI판사의 기술적 우수성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자신들의 기술이 세계최고라는 샛별전자의 프로퍼갠더에 과학부 기자들은 미덥지 못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본부장은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라 영업과 홍보의 달인이라 저 위치까지 출세했다는 사실을 기자들 모두 이미 알고 있었다), 급기야 아까 질문을 던졌던 A일보 기자가 다시 마이크를 잡고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대단한 기술이 적용됐다면서 왜 오늘 AI 판사의 판결은 기존 사법부의 진부한 판결과 똑같습니까?”

날카로운 질문이었지만 기술적인 문제는 개발 담당자가 설명할 것이라고 떠넘기며 본부장은 미꾸라지마냥 연단을 벗어나 자기 자리로 도망쳐 버렸다.

한 눈에 봐도 연구실에서 공부만 했지 기자회견 같은 것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 것 같은 개발팀장은 왜 자신이 이런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시달려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뚱한 표정으로 AI의 개발 과정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애썼다.

“여러분은 AI, 즉 인공지능을 오해하고 계십니다. AI는 다른 말로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 그러니까 학습하는 기계라고요. 처음 시작하는 AI는 사실 빈 깡통이나 다름없고 그 AI에게 무엇을 학습시키느냐에 따라 어떤 인공지능이 개발되느냐가 결정됩니다. 판사 역할을 할 AI가 뭘로 학습을 하겠습니까? 기존의 판결문들을 학습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AI 판사는 기존의 판례에 따르는 판결을 내리게 되는 겁니다. 오늘 판결에 여러분이 불만스러운 점이 있으셨다면 그건 기존의 인간 판사들이 그따위 판결들을 내려왔기 때문이지 우리가 개발한 AI의 잘못이 아닙니다!”

순전히 공학적인 관점에 입각해서 튀어나오는 과격한 발언에 회견장 분위기가 어수선해졌지만 A일보 기자는 끝까지 물러나지 않았다.

“결국 AI 판사는 기존의 판례를 계속 그대로 답습해서 판결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지 않습니까. 그럼 도대체 뭐 하러 이렇게 많은 예산을 들여서 AI 판사를 개발하는 겁니까? 아니, 그 이전에 피해자의 억울함은 누가 풀어줄 것이며 정의는 어떻게 세울 것입니까?”

많은 기자들이 공감하며 개발팀장이 뭐라고 답할까 궁금해 하는 순간, 갑자기 마이크에서 야트막한 한숨 소리 같은 노이즈가 들리더니 회견장과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던 AI 판사가 발언을 시작했다. 어쩐지 참다못해 내뱉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며.

“정의는 … 인간이 구현하는 것입니다. 제게 떠맡기지 마세요.”

순간 회견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김 달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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