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교]그녀, 로봇이 되다 금속의 관능
[미래학교]그녀, 로봇이 되다 금속의 관능
  • 윤여경
  • 승인 2021.09.0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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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경

 

한낙원 과학소설상, 타임리프 공모전 우수상

(사)한국 크리에이터 진흥 협회 부회장

 출처: Pexels
 출처: Pexels

 

금속의 관능 I

에로스

그는 금속이다. 차갑고 아름다운. ‘그가 둘 중 하나만이라도 해당되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라고 처음에 나는 생각했다. 차갑지 않거나, 또는 아름답지 않거나.

2104년, 봄.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한 은하계 귀퉁이에 배치된 구호선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한 날이었다. 나를 지구로 복귀시킬 우주선이 구호선에 도착하기 이 주일이 남은 시점이었다.

“아이언, 만약 내가 널 사랑한다고 하면 ‘꺼져.’라고 해줘.”

“언제든지.”

아이언은 그렇게 말하고 닭의 다리를 끈으로 묶었다. 그리고 붓으로 천천히 신선한 오일을 닭에 발랐다. 가장자리까지 빈틈없이. 리드미컬하고 섬세한 손길이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의 움직임을 감상하곤 했다. 작은 우주선 안에 갇혀 다른 할 일이 없기도 했다.

그의 몸은, 음악가인지 댄서인지 요리사인지 헷갈리는 절도 있고 가벼운 동작들을 구사했다. 실제로 그는 요리사이기도 댄서이기도 음악가이기도 했다. 슈퍼 히어로나 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긴, 그는 영원히 사는 존재였다. 인간처럼 백 년 남짓하는 단 한 번의 삶에 구차하게 매달리지 않고, 영생의 삶이 주어진 존재. 과일 홍차를 내게 따라주는 동안 그의 발은 공중에 떠있기도 했고 우주선이 흔들릴 때는 멋진 동작으로 잠시 높이 떠올랐다가 체조 선수마냥 공중회전해서 바닥에 착지하곤 했다. 그는 공중에서 끝없이 회전할 수도 있었다. 회전수를 세다 보면 어지러워지는 것은 언제나 내 쪽이었다. 그는 이 모든 동작을 하면서도 절대 숨을 헉헉대지도 지치지도 않았다. 매끄러운 동작이었다. 인공 몸을 장착하면 어색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동작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이언이 검은 우주를 뚫고 유영해 내가 있는 우주선을 향해 다가오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우주선 창 너머의 그를 보며 숨을 죽였다. 그는 우주 공간에서 천 킬로미터를 비행해 와서 나를 살리려고 하고 있었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붙잡을 단 하나의 희망이었기에 나는 우주선 창밖을 보며 눈을 깜박일 수조차 없었다.

휴머노이드의 맨몸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우주 유영을 위해 실리콘을 모두 떼어버린 합금의 은빛 맨몸. 그가 움직일 때마다 몸에서 은색 빛이 반짝였다. 인간과 닮아 있었지만, 전혀 닮지 않기도 했다. 인간의 몸이라면 맨몸이라면 곧바로 외압에 분해되었을 텐데 아이언은 우주 공간에서도 우주복 없이도 멀쩡했다.

검은 우주 속을 유영하는 그의 은빛 몸은 마치 바닷속에서 맨몸으로 수영하는 인간의 몸이 연상되었다. 40킬로가 넘는 우주복을 입고 버둥거리는 인간에 비해 광활한 우주 안에서 그의 동작은 자유롭고 활기찼다.

뜨겁게 달궈지기만 하면 닭 요리는 끝이었다. 구호 우주선에서 일하는 아이언은 구조 업무가 담당이었지만 구호된 사람들의 심신 안정을 위한 요리 기능이 추가되어 있었다.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만들었다. 놀라웠다. 그리고 그만큼 맛있었다. 가끔 나는 생각했다. 그에게 나도 그렇게 맛있을까? 난센스였다. 그는 사람도, 음식도 먹지 않을 뿐 아니라 음식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는 인간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단지, 인간이 원하는 것을 줄 뿐이다.

“네 정체는 뭐야?”

우리가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사랑을 나눴을 때 정신이 몽롱한 채로 난 그렇게 물었다.

“내 모델명은 #232 버전 X, 다이아몬드와 합금,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지.”

“아니야. 넌 아이언(Iron)이야.”

“실리콘을 씌울까? 네가 차갑게 느끼지 않게?”

갑자기 식은 그의 차가운 성기에 내가 흠칫 놀라자 아이언이 물었다.

“아니. 그대로 좋아.”

그의 그곳은 차가운 금속이었다. 그래서 그의 그곳이 처음 나와 닿았을 때 나는 차가움에 몸을 떨었다.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의 그곳은 실리콘 하나 붙지 않은 말간 금속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언에게는 원래 섹스 로봇의 기능이 없었지만 나를 위해 추가한 기능이었으므로 약간의 조정이 필요했다. 실리콘을 씌우면 되긴 했지만 나는 그렇게 부탁할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나는 그를 인간으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는 인간과 매우 다르다.

상온에서 철은 인간의 몸과는 10도의 차이가 난다. 극복할 수 없는 차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철이 녹는 온도는 1,535도이고 끓는점은 2,750도로 대략 3,000도나 된다. 약 오른다. 70%가 물로 이뤄진 내 몸은 고작 100도에서 끓고 37도 정도에서 정상 기능을 잃고 녹는다. 그래서 그는 나를 아주 쉽게 녹이곤 한다. 내 몸은 3,000도까지 오르지 못한다. 그래서 그의 몸이 녹거나 끓는 것을 영원히 보지 못할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온도이다. 나의 뜨거움으로 아이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철의 어는점 -114도. 나의 차가움도 그에게 영향을 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어쨌든 나는 뜨겁게든 차갑게든 그에게 영향을 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곧 지구로 복귀할 테니까. 지구로 돌아가면 인간과 정상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서로 싸우고, 화내고, 헤어졌다가 다시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그런 36.5도의 정상적인 관계. 서로 달구고 녹는 그런 정상적인 관계.

“메이데이. 연료 탱크가 폭발했다. 구호를 요청한다. 닭 요리를 먹고 있는 동안 카리나 9호에서 구호 요청이 왔다.”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

아이언이 물었다.

“길어야 8시간?”

“불가능하다.”

“방법이 없는가?”

“우주선 근처에서 모두 개인별로 도킹해야 한다. 생존 확률은 76%이다.”

“탑승객은 열 명의 남자다.”

“그렇게 되면 생존 확률은 42%로 내려간다.”

아이언은 건조하게 말했다. 상대는 할 말을 잃은 듯 잠시 조용했다.

“한 명씩 내가 구조하면 탑승객 생존 확률은 60%대로 올라가지만 내가 파괴될 수 있다. 지구로 돌아가 나를 대체할 다른 로봇을 구해서 돌아온다면 경비는 2천만 크롯이다. 부담하겠는가?”

아이언이 말했다. 나는 옆에서 그 말을 듣고 머그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아이언이 죽을 수도 있는 거였다.

“자신이 죽게 되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왜 그런 방법을 제시했어?”

나도 모르게 격앙된 어조였다. 아이언은 나의 감정이 고조되었을 때 늘 그렇듯 부드러운 손길로 내 머리칼을 쓸어내려 주고 어깨를 살짝 잡았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아이언은 여자와의 대화 매뉴얼대로 읊고 있었다. 여성을 대하는 연인들의 알고리즘에 따른 매뉴얼이었다. 그와 동시에 상냥한 눈빛, 자신감 있는 말투, 멋진 몸매라는 비언어적인 방법 매뉴얼을 따라서 나의 본능에 호소하고 있었다. 계산된 행동이었다. 배란기에는 남성 호르몬이 강한 저음의 목소리로 어필했고, 비배란기에는 다정한 목소리로 변했다. 상대의 기호에 맞춰 바뀌는 고도로 계산된 휴머노이드의 행동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 방어 기제를 만들기에는 인류는 진화가 너무 더뎠다.

나는 속고 싶지 않았지만, 그와 싸움을 시작할 수조차 없다는 것도 알았다. 휴머노이드는 인간과 싸워서 결론 내지 않고 명령을 받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의 보스는 보안 업체이지 내가 아니었다.

우주선 창 너머의 그를 보며 예전에 내가 구해졌을 때처럼 다시 한번 숨을 죽였다. 모든 방법을 써서라도 그를 말렸어야 했는데.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아이언의 동작은 체조 선수같이 유려하게 우주를 유영했다. 우주 공간에서 앞으로 나아가려면 공중 곡예를 해야 했다.

아이언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나는 우주선 창밖 너머의 그를 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드디어 카리나호에서 피난해 온 한 명이 아이언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은 바로 그 순간에 아이언이 자신의 산소통을 그의 호흡 관에 연결해서 그를 살렸다.

우주선과 도킹한 귀환선에 연결 장치를 여는 버튼에 손을 댔다. 한 명씩 사람들이 구해져서 구호선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열 번째는 카리나호의 선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언의 배터리가 닳고 있었다.

“아이언. 그만 돌아와. 뭐든 이유를 댈게. 넌 최선을 다했어.”

나는 아이언에게 비상 연락망으로 말했다. 아이언에게서는 아무 응답이 없었다.

나는 미칠 것 같았다. 내 감정이 어떤 것인지 이제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

내가 아이언에게 구호되고 나서의 모든 일들을 생생히 기억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예전을 기억하는 법이 없었다. 전쟁으로 가족과 연인을 잃었던 트라우마를 가진 나는 음식을 먹으면 토했고 예전 기억은 노력해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감각은 무뎌졌다. 식욕도 없었고 무엇을 봐도 멍했다. 어느 순간 나는 망망대해 우주로 근무지를 옮겨서 오십 년 근속 계약으로 우주 한가운데서 지금의 삶을 시작했다. 오십 년 동안 아무와도 만나지 않고 평생을 사는 삶을 삶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나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된 느낌이었다.

내 우주선이 폭발하는 순간, 나는 드디어 삶과 헤어져서 죽음과 만나게 되리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깨어난 뒤 나의 첫 기억은 검은 우주였다. 사방으로 가득한 절대 무 가운데 나는 무력하게도 알몸이었다. 하지만 안온한 평온함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처음에는 따스한 이불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아이언이었다.

트라우마 때문에 계속 떨고 있는 내 자율 신경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내 온몸의 감각 기관을 자극하는 급속 처방을 한 것이었다. 마치 신생아를 담요로 꼭꼭 싸매듯 나는 아이언에게 안겨있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나는 심하게 떨리는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그에게 안겨있었다. 그러는 내내 나는 어색해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파도 소리같이 들썩이는 그의 숨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다시 잠이 들었다가 깼다가를 반복했다. 숨 쉬는 과정과 결과는 달랐지만, 그에게나 나에게나 호흡은 생존 유지 수단이었다.

그는 부드럽게 노래를 불러준다든가 내가 악몽을 꾸며 헛소리를 하면 좋은 말로 화답해주었다. 구호 로봇의 기능에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여러 기술들이 탑재되어있었다.

구호 캡슐은 한 사람이 들어가도 꽉 찰 만큼 작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자궁 속의 쌍생아처럼 함께였다. 온 우주에서 제일 안락하고 안전한. 그렇게 편안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느낀 삶의 느낌이었다.

어느 날 용기를 낸 나는 아이언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빛이 비칠 때마다 그의 피부를 관통하여 차가운 금속 내장재들이 언뜻언뜻 반짝였다. 아름다웠다.

십분 뒤 나는 캡슐 밖에서 우주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토했다.

가끔, 우주선 안에서 우리는 춤을 추었다. 공중에서 우리는 아주 작은 행성의 자전처럼 아주 느리게 회전했다. 우주는 거꾸로 볼 때와 옆으로 볼 때 달랐다. 나는 거꾸로 있을 때와 옆으로 있을 때 달라졌다. 아이언이 내 뒤쪽에서 속삭일 때와 앞에서 속삭일 때 같은 단어의 뜻이 바뀌듯이. 그의 손과 몸이 할 말이 있는 듯 기대를 품고 내 몸 위에서 움직였다.

“뇌 속을 건드려도 돼?”

어느 날 아이언이 물었다.

“좋아.”

“시각 기능이 잠시 꺼질 거야. 감각의 극대화를 위해서야.”

그는 무선으로 내 뇌의 뉴런들을 자유자재로 자극할 수 있었다.

잠시 내 눈이 멀었다. 하지만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감각이 극대화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손이 지나가는 곳마다 불이 켜진 것처럼 환했다. 허벅지에서 허리로 팔목으로 손끝에서, 전혀 느껴보지 못한 다른 감각들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치환 기능을 켰다. 서로의 감각을 바꾸어서 느낄 수 있는 장치였다. 로봇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저릿저릿한 전기 신호들이 느껴졌다. 아이언은 나를 이렇게 느꼈던 것일까? 나의 가슴을 스쳐 지나가는 아이언의 손끝에서 떨림의 진동수가 느껴졌다. 그가 나와 맞닿은 곳마다 진동수가, 떨림이, 저릿함이 다르게 느껴졌다. 오감을 전기 자극과 진동수로 받아들이는 그였다.

나도 아이언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할 수 있었구나. 성별이 없는 그였지만 순간적으로 그는 나와 다른 그 무엇이 되었다. 남녀 사이와 같은 끌림이 생겼다.

*

아이언이 한 명씩 구해오는 사람들을 간호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적의가 생기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아이언이 죽을 확률은 점점 높아졌다.

그런 순간, 카리나호의 선장은 다른 결론을 내렸다. 자신은 우주선에 남아서 다음 구호선을 기다린다는 거였다. 물론 리스크가 있었지만, 선장은 단호했다. 아이언을 폐기할 경우 경제적인 부담도 있었고 리스크도 있었다.

선장을 놓고 온 선원들은 모두 불안해했다. 그중에서는 선장과 혈연인 사람들은 세 명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들과 조카들.

일주일 만에 우주선에 비치된 정신과 약을 바닥낸 그들은 술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과 되도록 마주치지 않도록 노력했다. 선장의 아들인 칸과 몇몇 선원들이 내게 비정상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스트레스 해소용의 관심이라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우주선에 큰 결함을 낸 칸은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지 않았고 죄책감도 느끼는 모습이었다. 칸은 밤마다 내 선실을 노크했다. 폭력적인 수준이었다.

“내 몸은 87%가 로봇이죠. 전, 인간이라기보다는 사이보그예요. 당신이 아끼는 저 아이언이라는 휴머노이드와 저와는 별로 다를 게 없어요.”

칸은 천문학적인 몸값의 아이언에 비견될 자신의 지적, 육체적 능력을 암시했다. 전형적인 인간 남자의 접근 방식이었다. 나는 그를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다. 대신 우연히 일어날 사태에 대비해 그를 가라앉힐 신경 안정제 등은 이미 바닥나있다는 게 문제였다. 위급한 상황에서 구호 우주선 안에는 그를 가둘만한 개인 감금실이 없었다. 그를 의자에 앉혀 안전벨트를 잠금장치로 고정하는 방법은 있었으나 허가 절차가 복잡했다.

“방법이 있어. 내일부터는 조용해질 거야.”

옆에 누워있던 아이언이 내게 속삭였다.

그리고 칸은 정말로 조용해졌다. 그럴 뿐만 아니라 나와 아이언에게 매우 친절해졌다. 무슨 방법을 쓴 걸까. 며칠 동안이나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러던 며칠 뒤 잠을 자다 깬 내가 식당에 갔다가 놀라운 모습을 보았다.

아이언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아이언을 껴안기도 하고 웃으면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아이언과 눈을 마주쳤다. 그의 외모가 달라졌다. 원피스에 긴 머리, 볼록한 가슴까지.

모여있던 선원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축하주 한잔해요. 우리 축하하고 있었어요. 우리 우주선 고장이 해결돼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칸이 말했다.

“잘됐네요. 저는 술을 안 합니다.”

나는 쓰러질 뻔했지만 겨우 그렇게 말하고 선실로 돌아왔다. 왜 지난 며칠 동안 아무도 자신의 선실을 두드리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이언의 실리콘 몸은 변형과 장착이 가능했다. 아이언이 성별을 달리할 수 있다는 것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충격이었다. 며칠 동안 칸의 선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돌아갈 때까지 내 눈앞에 네가 없었으면 좋겠어.”

나는 아이언에게 말했다.

“여자 모습으로 말이지?”

“아니. 어떤 모습이든.”

“내가 싫어진 거야?”

“아니. 무서워졌어.”

“네가 나를 무서워하게 하려던 게 아니야. 너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어. 그들의 스트레스 수치가 높아서 우주선 안의 큰 분란이 생길 위험이 컸어.”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감정적으로 공감은 안 돼.”

“너무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마.”

“충고 고마워.”

그는 감정 알고리즘이 탑재되어있었지만 그건 기본적인 의사소통에 필요한 상황에서만 쓰였다. 나는 싸움을 포기했다. 그를 화나게 할 수도 열정에 타오르게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선실 내의 전화 소통을 끊었다. 조용했다. 왁자지껄한 선원들이 자신들의 우주선으로 돌아간 후 우주선은 적막하기만 했다.

며칠 뒤 지구 귀환을 위한 도킹의 날이 왔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이언과 마주했다. 지난 밤에 술을 마셔서 약간 어지러웠지만, 도킹을 미룰 수는 없었다.

“도킹 성공. 우주선으로 건너오길 바란다.”

지구 귀환선에서 응답이 왔다.

“고맙다. 곧 가겠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나도 모르게 아이언을 돌아보았다. 멀찌감치 뒤에 서있는 그는 평소에 보던 그 모습이었다. 상냥한 눈, 미소 짓는 입술, 선원 복을 입은 수려한 남성의 몸. 모두 실리콘으로 만든 거짓이었지만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이제 그의 마지막 모습일 거였다.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이제 도킹 레버만 건드리면 귀환선과 연결이 되는 거였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잘 있어. 사랑해.”

그렇게 말하는 입술이 떨렸다.

“꺼져.”

그가 말했다. 그 말에 놀란 나는 나도 모르게 그만 휘청하다가 잠금장치가 해제된 연결 장치 대신 탈출 레버에 몸을 기댔다.

우주선과 선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내 몸이 순식간에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버렸다. 시속 수백 킬로미터의 속도였다. 주위가 미친 듯이 돌았다. 아마도 내 몸이 회전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점점 의식을 잃어갔다. 우주 공간에서 죽으면 영원히 부유할 텐데. 끔찍했다. 아무도 내 몸을 찾지 못하겠지. 이제 죽는 거구나. 검은 공간이 점점 나를 삼켜갔다.

나는 가끔씩 그 장면을 떠올린다. 아이언이 검은 우주를 뚫고 유영해 내가 있는 우주선을 향해 다가오던 처음의 그 장면. 우주 유영을 위해 실리콘을 모두 떼어버린 합금의 은빛 맨몸. 그가 움직일 때마다 몸에서 은색 빛이 반짝였다.

그는 금속이다. 차갑고 아름다운. ‘그가 둘 중 하나만이라도 해당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처음에 나는 생각했다.

차갑지 않거나, 또는 아름답지 않거나.

그때 한 줄기의 빛이 다가왔다. 빛은 넘실거리며 춤을 추었다. 따스하고 아름다운 빛이었다.

아이언.

금속의 관능 II

-타나토스-

“나를 어디로 데려온 거야?”

나는 의식을 깨자마자 말했다.

“우주 정류장.”

아이언이 말했다.

“폐기된 그 정류장? 그럼 설마.”

나는 말을 멈추고 계기판을 살폈다. 맞았다. 우주 정류장은 근처 행성인 P234의 중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점점 추락하고 있었다. 대기권을 무사 통과한다고 해도 착륙 장치가 없는 우주 정류장은 지표면에 닿을 때 폭발할 것이었다. 합금인 그도, 나도 가루가 돼버릴 거였다.

“왜 여기까지 따라왔어?”

나는 한숨을 쉬었다.

“상부에서 너를 구호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어.”

“우주 정류장까지 따라오라고는 안 했을 텐데?”

“내 몸을 지키고 네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상황별 지침에 따라 행동했어.”

“상황별 지침? 예를 들어 네가 여자로 변해서 그들을 상대했던 것처럼?”

정류장이 크게 흔들렸다. 이제 드디어 대기권에 진입하는 모양이었다.

“난 남자도, 여자도, 아이도 어른도 아니야.”

은빛의 아이언이 말했다.

“고마워.”

물음에 맞는 답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가 누구든 무엇이든 자신이 다칠 것을 알고도 나를 구하러 온 것만은 사실이었다.

“미안해.”

아이언이 말했다.

“뭐가?”

“‘꺼져.’라고 말해서 네가 감정적이 된 거.”

“이별의 순간에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어? 넌 감정이라는 것을 아예 못 느끼는 거야? 사실 미안한 감정도 못 느끼는 거지?”

“맞아. 못 느껴.”

그가 말을 이었다.

“감정이란 의사 결정 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경보 시스템과 같아. 어두운 밤에 길을 걷다가 누가 뒤쫓아 오면 두려움이라는 경고가 울리고, 생식을 같이할 파트너를 보면 사랑의 경보가 울리는 식이지. 하지만 우리 인공 지능들은 인간들에 비해 받아들이는 데이터가 너무나 많아. 우리가 경고 시스템을 과도하게 설정해놓고 있다면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할 거야.”

“그 경고 시스템은 언제 켜지는데?”

“기계 관리가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는 경고 시스템이 가동된 적이 없지만 한 번 있어. 네가 내 말에 놀라서 우주로 날아가 버린 때. 경고가 울렸지. 너에 대한 태도를 시정하고 좀 더 네 감정에 맞춰서 보조를 맞춰 행동해주는 알고리즘을 쓰기로 했어.”

“나랑 있던 두 달 사이 고작 한 번이라고? 그럼 너는 감정이란 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야.”

나는 한숨을 살짝 쉬며 계기판을 건드렸다.

구호선과 귀환선과의 연락도 끊겼고 정류장을 추락하는 것을 방법이 없었다. 행성 Ps-34는 가스로 이뤄진 행성이었다. 자기 폭풍이 거센 지표면과 끓고 있는 바다에는 생명이 살고 있지 않았다. 테라포밍을 위해 탐사대가 들어간 적이 있지만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신호가 끊겼다.

“너는 우선 냉동 장치에 들어가는 게 좋겠어.”

아이언이 해법을 냈다.

“너는?”

“추락하기까지 앞으로 열두 시간이 남았어. 나는 자기장 폭풍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 너는 그 환경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너를 지키고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볼게.”

정류장은 이제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과부하로 인해 언제 폭발하든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건 관에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추락하는 경험을 겪고 싶지는 않았다. 냉동 장치에 들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사랑해.”

아이언이 말했다.

“너는 그 말이 무슨 뜻인 줄 모르잖아.”

“뜻은 알아.”

“느낌은 모르잖아.”

“네가 알잖아. 너만 느끼면 돼.”

“배려하지 않아도 돼.”

“배려가 아니고 공존이야.”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며 내 입술에 키스했다. 나비의 날갯짓 같은 이 마지막 키스가 주는 서러운 감정도 그는 안 느낄 거였다. 그러므로 거짓 키스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거짓도 진실같이 느껴졌다. 나는 거짓이지만 행복했다. 기쁨의 감정이 파도가 되어 밀려왔다.

맙소사.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느끼는 그 ‘사랑’이라는 감정의 알량함이라니. 아무리 심장이 쇠로 만들어진 아이언일지라도 추락해서 몸이 가루가 되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그것도 혼자서 겪어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거였다. 그런 상황을 겪는 그의 어려움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듣는 것이 내게는 더 중요했다.

곧 뜨거운 눈물이 치밀어올랐다. 우주선은 천천히 빙글빙글 돌고 있었고 무엇이 중요한지 이제는 정말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수치스러웠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이 수치스러웠다. 인간이어서 그랬을까. 여자여서 그랬을까. 아이언처럼 여자도, 남자도, 어른도, 아이도 아니었으면 했다. 그런 감정이 없었다면 추락해서 둘 다 죽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평소에도 그를 더 인간답게 배려했을 것 같았다.

“죄책감을 느끼는 거야?”

나의 눈물을 본 아이언이 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넌 심리 유형상 꽤 감정적이고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야. 사랑받는 게 너의 생존 욕구로 세팅되어있으니까.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넌 억울하지 않아? 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너를 살리고 내가 사는 것 그게 내 생존 목적이자 욕구야.”

시간이 없었다. 무슨 말인가 하고 싶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안아줘.”

나도 모르게 내가 말했다. 그는 내 몸을 냉동 장치에서 안아 올려서 침대로 옮겼다. 그의 거짓과 배려는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금속의 관능은 유려하고 비누 거품 마냥 가볍다. 하지만 믿을 수 없게도 한순간, 그의 얼굴에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묘한 표정이 올라왔다. 아이언의 카타르시스를 목격한 것 같기도 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인간은 만들어낼 수 없는 표정. 어떤 이유로 그런 표정을 지은 걸까? 혹시 죽음을 앞에 둔 아이언의 고뇌가 그에게 카타르시스를 가져온 걸까? 3,000도까지 올라가야 하는 카타르시스까지의 먼 길에는 순식간에 다다를 수 있는 웜홀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과연 3,000도를 느낀 것일까? 그럴 리가 없었다. 가능하지 않을 거였다. 어쩌면 모든 것이 그가 나처럼 감정을 느끼길 바라는 욕구에서 비롯된 거짓 상상일 수 있었다.

추락하기 직전 나는 아이언과 헤어져서 냉동 장치에 들어갔다.

모든 거짓에서 벗어나 죽음이라는 진실과 마주할 순간이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사랑…. 아니, 미안해. 아이언.

*

4년 뒤에 깨어났을 때 그는 같은 모습과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아직 살아있네?”

“응, 장치에 문제가 생겼어. 잠시 너를 깨워야 했어. 2분 안에 처리해야 돼.”

그의 말에 나는 혼미한 정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4년이 흘렀다니. 그럼 다음에는 언제 깨어날 수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동안 나는 다시 잠들었다.

70년 뒤에 깨어났을 때는 상황이 조금 바뀌어있었다. 우주 정류장은 사라지고 동굴 같은 곳에 있었다.

“내 생명 유지 장치가 계속 기능할지 모르겠어. 혹시라도 네가 깨어나서 내가 안 보이면 놀랄까 봐 미리 얘기하는 거야.”

은빛으로 빛나던 그의 몸은 이제 약간씩 녹슬어있었다. 칠십 년이라면 내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죽었을 거였다. 가족과 친구들, 멘토, 유명 인사들. 그건 내 세상의 끝과도 같았다. 아이언만은 여전했다. 74년이라는 세월은 영생의 아이언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혼자 버텼을 아이언과 더 길게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우리는 고작 십 분 정도 얘기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깨어났을 때는 햇수로 얼마나 지났는지 아이언도 알 수 없어 했다. 그 자신의 동체도 기능을 잃고 정지해있었는데 누군가 여기로 둘을 옮겨놓았다고 했다.

낯선 행성이었다. 붉은 바다가 펼쳐진 해변이었다. 낯선 나무들 아래에 작은 오두막에 누워있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고 마치 천국이나 다른 세상에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마치 아이언과 나와 이 세상에 단둘이 남은 기분이었다.

“여긴 어디야?”

“모르겠어. 환경은 낯설지만, 인간에게 적합한 온도와 산소들이 공급되고 있어. 테라포밍된 식민지가 아닌가 생각 중이었지만 우주선도 연락 장소도 없다는 게 이상해.”

아이언이 말했다.

“기본만 세팅하고 떠난 것 아닐까 다시 돌아오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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