麦原遼 (Haruka Mugihara)
1991년 일본 도쿄 출생, 현재는 교토에 거주. 수학으로 석사 취득. “겐론 오모리노조무 SF창작강좌”를 졸업한 후, 중편소설 “역수우주”(2018)으로 데뷔.

할머니, 저는 할머니가 좋아요. 할머니를 만나서 처음으로 저는 제가 유복한 가정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기뻤어요. 만약 지금과 다른 처지였다면 냉동수면 상태의 할머니를 안전하게 깨울 수 있도록 비용을 내고, 깨어난 할머니를 맞이하는 사람이 제가 아니라 제 자식 혹은 손주가 됐을지도 모르죠…… 아니면 유지비 조차 낼 수 없어서 폐기 (이건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네요)를 할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몰라요. 아아, 할머니가 뭐라고 하시든 간에 잔혹한 가능성을 뚫고 할머니와 제가 만났다는 사실이 너무 기쁩니다.
어제 할머니와 다툰 후, 온종일 명치 언저리가 답답한 느낌이에요. 긍지를 부정 당했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화가 나서 할머니를 두고 뛰쳐나오고 말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아직 다시 찾아 뵙지 못하고 있네요. 할머니가 냉동수면 전에 적어두셨던 것으로 보이는 블로그라는 것을 읽으면서 대화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이렇게. 여기까지는 할머니도 아마 평온하게 들어주실 거야.
음. 제가 제 처지를 돌이켜보면서 복 받았다고 느꼈던 일이 하나 더 있어요. 그건 제가 여성과 아이를 가지고자 하는 경우에 상대방에게 임신의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맞아요, 저희 집이 D……와 계약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제 상대가 스스로 임신하고 싶다고 하는 D……와 같은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요. 어제는 잘 얘기하지 못했지만 저는 이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 얘기를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할머니가 적어 두셨던 블로그를 읽어봤어요. 이제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으니 본인의 인생을 돌이켜보며 기록을 남긴다는 말로 시작하는 글을. ……음, 말하는 방식을 바꿔보자. 가슴이 먹먹해서 말을 이어가기가 힘들어서…… 할머니가 적어 두셨던 블로그를 읽어봤어요. ‘낙서’ 라고 되어 있는 카테고리의 글을 하나 읽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나의 임신 체험은 인생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고 많은 배움을 안겨준 경험이었지만 아이들에 대해서는 이것이 모두 선하기만 한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몸의 부담은 감당하기 힘들다. 또한 사회적인 복잡성과 편견도 종종 너무 고통스러워 저주를 퍼붓고 싶어지기도 했다. 친한 친구와는 안줏거리로 자주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빨리 인공자궁이 실용화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저는 D…… 그자들과 저희의 생활을 보여드리면 할머니가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다퉈버려서. 아니, 다퉜다고 하기 보다도 할머니의 거부에 제가 충격을 받고 고집불통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죠.
그때 할머니는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떠넘기고 있는 거니” 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복잡한 공사나 맛있는 요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과 같아요. D……는 프로예요. 일류 선수예요. 아티스트예요. 임신에 있어서. 입덧은 겪어본 적도 없고. 진통도 가려운 정도이고요. 모든 것을 마친 후에는 행복한 마음으로 가득해지는. 그리고 그곳에는 자긍심과 기쁨, 그리고 성취감이 있을 뿐이에요.
‘대리모’ 라는 단어가 할머니 시대에는 있었죠. 지금도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그 행동은 D……로 대체되어가고 있어요. 대리모에 대해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 대리모가 되어야 한다는 알력이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어요.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본인이 유복했다면 대리모가 되지 않고 누릴 수 있었을 인생을 대리모가 됨으로써 빼앗기는지 그 여부예요. 그 선택이 그 사람이 본래 원하고 있었던 것인지 라는 부분입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면 그건 당연히 좋지 않은 것이죠.
D……는 스스로 원하고 있기 때문에 안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다음을 원하는지 아닌지 질문을 받고, 원하고 있더라도 부담이 클 것 같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휴양을 택해요. 휴양 중에도 의식주는 충분히 해결이 되지만, 임신에는 행복감이 동반되기 때문에 임신을 원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더군요.
어째서 “인공자궁”이 아닌지, 궁금하시다고요? 세상 어딘가에서는 그것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은 있어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하지만 저희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그걸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에요. 인구 증가 추이를 너무 간단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냐고. 인구의 증가가 개개인의 육체와 연결되어 있어야 민주적 분산적으로 인구를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듯 해요. 네, 맞아요, 그리고 정동의 존중이라는 측면도 있어요. 그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편이 무감정적으로 ㅡ더하자면 정동이 없는 존재로 인해서ㅡ 행해지는 것보다 좋을 것이다 라는 거죠.
D…..는 저와 동일하게 한 생명입니다. 그리고 D……는 태생적으로 임신에 적합한, 예로부터 존재했던 여성도 남성도 아닌 또다른 존재입니다. 어제는 설명하지 못했는데, 처음에는 그들도 저희와 함께 교육을 받는답니다. 대부분은 교육 도중에 흥미를 잃고 전문학교로 옮기는 것 같지만요.
D……는 D……끼리도 아이를 가질 수 있지만, 난자와 정자가 결합된 것 혹은 그와 유사한 것을 몸 안에 심는 방법을 통해서도 그것을 키울 수 있어요. 한번에 3,4명을 키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엘리트예요. 보셨죠? 하지만 몸도 매우 커서, 정말 건강해 보인답니다.
아아, 할머니가 뭐라고 말씀하실지 벌써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네, 네, 노예가 아니에요. 싫은데도 불구하고 부림을 당하는 것이 노예잖아요, 그게 아니라, 원하고 있는 거예요. 할머니도 스스로 결정하신 것을 다른 사람의 지배나 조작으로 인한 것이라고 매도 당하면 짜증이 나지 않겠어요? 노예가 아니라면 가축?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울타리를 치고 가둬 놓지 않는다고요. D……가 가축이라면 저희 모두 가축이 아닐까요?
저희는 그런 D……에게 감사를 바치고 있어요. 네, 저희 자랑이에요. 소중한 생명을 품고 지켜주는. 그들이 원하는 것은 대부분 이뤄주고자 하고 있어요. 하지만 D……는 욕심이 없는 사람들 뿐이에요.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몸을 움직이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고 해요.
음, 처음 D……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말이죠? 유전자의 직접적인 편집은 없었다고 들었어요. 네, 혼돈기였지만. 모든 것이 우연히 발생했다고.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요. 그래도 납득할 수 없으시다고요? 어째서죠? 아아, 이런 말씀을 하시려는 걸까요? ㅡ지금의 D…… 가 되기 전, 아직 다른 평범한 사람들에 가까웠던 D……의 조상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의 의지가 존중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많은 것들을 강요받았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본인들의 유전자 정보에 어떤 변이가 추가된 존재가 미래 후손으로 선택될지, 이에 대한 주도권을 갖고 결정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ㅡ. 그러고보니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그런데 말이죠, 만약 어떠한 잘못이 역사 속에서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지금 살고 있는 것은 우리들, 지금의 D……와 함께하는 우리예요. 과거가 악이라면 그 결과 태어난 D……의 존재도 악인 것일까요? 그들에게 기쁨을 줘서는 안 된다고, 더 나아가 그들의 자손들을 제한해야 한다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살아있는 모두의 기쁨을 더욱 키워나가고 서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 어떠세요? 아니ㅡ할머니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계세요?
저는 모르겠어요.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시는 모습이 떠올라요. 왜 그러시는지 저는 도통 모르겠어요.
일한 번역 최다원
일영 번역 김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