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교]사랑과 헌신이 돌연변이 유전자라고?
[미래학교]사랑과 헌신이 돌연변이 유전자라고?
  • 김예지
  • 승인 2021.08.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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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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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한국 서울 출생. 학부에서 영문학 전공 후 변호사 자격증 취득하여 변호사로 활동 중. 아마추어 SF 작가로 글을 쓰고 있으며 죽기 전에 장편 스페이스 오페라를 쓰는 것이 꿈.

출처: Pexels
출처: Pexels

 

[Q우주 제1847은하 380AhdfugX-CXX 행성 재개발 시뮬레이션 결과 보고의 건재검토 요청]

이사님,

클라이언트께서 요청하신 프로젝트 8&329140-0113건, 즉 제1857은하 380AhdfugX-C 행성에 대한 재개발 초벌 작업을 위한 시뮬레이션 결과 보고드립니다.

결론적으로, 저희 팀은 본 행성은 수익성이 맞지 않아 재개발에 부적하다는 결론을 내렸는 바, 철수 지시 바랍니다. 임원분들께서 요구하실 것이 예상되어 근거자료 첨부드리며, 그 요약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본 행성이 양질의 자원이 풍부하고 질소 및 산소 차폐막으로 항성 에너지 기반 통신 등이 어렵다는 점, 그리고 Q우주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져 위치한 만큼 수익성 높은 휴양지로 개발 잠재력이 있는 점은 인정됩니다.

2. 그러나 본사 시뮬레이터 및 에뮬레이터들이 수억 차례 시뮬레이션을 돌린 결과, 68.6666%의 확률로 해당 행성의 개발 사업 진행으로 개발사의 손해가 예상된다는 결과치를 얻었습니다.

3. 물론 위 행성의 원시성을 고려할 때, 이는 본부장님이나 이사님께서 믿기 어려우실 결과일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러나, 저희의 시뮬레이션은 극한의 원시성과 폐쇄성이 오히려 문명인들이 이해하기 불가능한 방식으로 위험 요소를 발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는데, 문명학자들이 알게 된다면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달려들 만큼 예측불가한 현상이 관측된 것입니다.

이를 설명드리기 위해 시뮬레이션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저희 시뮬레이션 팀은 현재 타겟 행성을 점유하고 있는 원시 생명체들의 제거 작업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다수의 시뮬레이션을 적용하여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제거 방법을 테스트하였습니다.

이 행성의 점유민들은 행성의 구석진 위치와 천연 차폐막으로 가려져 타 우주는 커녕 타 은하계의 문명들과도 접촉이 온전히 차단되어 지적 도약이 일어날 기회를 얻지 못한 것으로 관찰되었습니다. 스스로를 ‘지구인’이라고 일컫는 이들은 (행성 이름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한다는 사실 자체로도 알 수 있듯이) 항성 에너지 중 극미량을 겨우 활용하는 미개한 수준으로, 생존 이외의 목적성을 가지지 못한 문명(이를 문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이며 따라서 이들의 제거 자체가 재개발법에는 저촉되지 않다는 점을 확인한 부분까지는 긍정적이었습니다.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점유자 제거를 위한 제초 및 청소봇 파견/다양한 미생물 살포/ 방사능 샤워 등의 시나리오를 적용하였는데 기기들의 모든 물리적 제거 시도가 높은 확률로 와해되었으며 지구인 제거 성공률 자체가 저조하였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하자면, 시뮬레이션들 중 79.9952542라는 높은 확률로 지구인들의 멸종 직전에 한 개체에 강력한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우리측의 제거 시도를 압도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 돌연변이의 양상은 다양한 것으로 보이는데, 전자기파를 조종하거나 광자에너지를 의지로 활용할 수 있거나 심지어 소리를 이용한 음파 한번의 공격 단 한번으로 우리측 기기 1789402기를 파괴한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 특정 병원균의 살포 시뮬레이션에서는 한 개체가 자신의 피로 정화능력을 발휘하여 스스로 희생한 후에는 오히려 외계 생명체들에게 치명적인 피를 보유한 개체들이 태어나기 시작한 시나리오도 있습니다(이 경우 본 행성 자체가 오염되어 휴양지로서의 목적 자체가 형해화될 것입니다).

*** 이러한 그 돌연변이는 한 개체에 발현되면 그 다음세대로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 팀은 실패 시나리오가 누적되자 그 원인을 규명하고자 Q우주의 4공전기 내내 팀원 모두가 쉬지 않고 자료를 검토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 지구인들의 원시성과 폐쇄성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지구인들의 유전자는 ‘구원자 개체’의 등장에 대한 열망을 본능으로 새겨 놓았습니다. 가장 집단적으로 사고하는 원시생명체들이 개별 개체를 통한 구원을 바라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지만 이는 해당 개체군에 뚜렷이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정신공유로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저희 문명인들은 이해가 불가능한 영역이라 하겠습니다.

즉 이들의 유전자는 이러한 집단적 열망을 통해 감당할 수 없는 적이나 재해 등이 예상되면 모든 자원을 한 개체에게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특정 조건이 충족되는 순간 그 개체를 시작으로 잠재력이 발현됩니다. 아마 본부장님이나 이사님께서는 이 발현 조건를 사전에 제거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시겠지만, 그 발현 요소 역시 지극히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감각 반응에 기초하고 있어 사전 대응이 불가능함을 발견하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입니다. 지구인은 위기 발생시 자신보다 약한 개체에 대하여 감정 고양이 발생하고 이러한 감정 고양이 극한으로 발휘되는 다수의 사례 중 한 개체에게 급격한 돌연변이가 급성으로 발생합니다. 그 대상은 다양한데, 갓 태어난 어린아이, 병상에 누운 환자, 쇠약한 노인, 움직이지 못하는 부상자 등… 심지어 ‘고양이’라고 불리는 쓸모없는 종을 보호하기 위해 이 ‘구원자 유전자’가 발현되는 시나리오도 있었습니다. 강한 개체를 보호하여 종족의 보존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취약한 개체를 보호하고자 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아 이는 저희 팀이 가진 최신 에뮬레이터로도 판단이 불가능하였습니다. 또한, 지구인 포함 행성 대부분의 개체들이 미개하고 취약하여 어떤 대상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지 예측할 수 조차 없습니다.

지구인들은 이러한 감정, 행위, 동기 등등을 애매하게 아울러 [사랑]이라고 불릅니다.

미개함과 어리석음에 불과한 이 개념에 대해 이 연약한 지구인들은 기묘할 만큼의 가치 부여하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자신들의 원시성을 보완하기 위한 방어 기제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사랑]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우리 문명인들의 이해가 부족한 이상, 굳이 위험을 감수할 만한 작업은 아니라는 것이 저희 팀의 결론입니다. 개발에 온전히 착수하기도 전에 그 기초작업에 막대한 금전적 손해가 발생할 뿐 아니라 몇몇 시나리오에 따르면(세부 내용은 첨부 참고 부탁드립니다) Q우주에 위협적인 새로운 종족을 탄생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우주연합법 위반의 소지도 있습니다(이 부분은 법적인 자문을 받아보시기를 권고드립니다).

상부의 의사결정을 기다리겠습니다.

  • 우주 MODUgegu재개발 시뮬레이션 팀장 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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