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교]만약 잉여시간이 존재한다면
[미래학교]만약 잉여시간이 존재한다면
  • 이온
  • 승인 2021.08.1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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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

 

20세기에 태어났다. 21세기에 우주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 확실하다. 삶의 가장 위험한 도피처인 글쓰기에 기거한다. 사람과 연결된 시공간, 동식물, 사물 등에 관심이 많다. 주로 읽고 쓰며 공상과 망상으로 시간을 보낸다.

출처: Pexels
출처: Pexels

 

윤초의 꿈

바퀴벌레 한 쌍이 쏜살같이 시멘트 더미 속으로 달아난다. 순간, 나는 끝없는 심연으로 멀어져간다. 소리 없는 폭발. 침묵 사이로 별들이 흐른다. 태양에서 세 번째로 먼 별이 꿈틀댄다. 먼지들 사이로 희미한 파동이 전해져온다. 누군가 간절하게 부르는 소리. 소리는 어두운 우주 가득한 거품 안에서 희미해진다. 나는 막 터지려는 거품 속으로 뛰어든다.

지구의 불규칙한 자전으로 지구의 시계와 자연의 시간이 불일치하게 되는 순간, 나는 이곳으로 불쑥 떨어졌다. 우주 탯줄인 ‘팍스텔레파시’를 통해 지구인들의 역사와 문명 등을 영양분으로 흡수해왔던 나로서는 지구로의 도착이 더없이 반가웠다. 태양마저 떠나버린, 태양의 고향인 ‘메시에 67’ 같은 곳에 떨어졌다면 얼마나 막막했을까? 사람들은 나를 ‘윤초’라고 불렀다. ‘윤초’는 시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달력의 중간이나 마지막 하루 끝에 덧붙이거나 없앤 ‘1초’였다. 지구인들은 눈 내리는 12월에 8월의 달력을 걸어놓게 되는 불상사를 막아냈다고 안도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는 그들의 임의대로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언제든 이 지구를 혼란에 빠트릴 수 있었다. 그들이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손을 내민다면, 지구는 조화롭게 다시 태어날 수도 있었다. 연결과 접속은 지구와 내가 공존하는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

접속의 대상 중에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알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었다. 철학, 종교, 문화, 국가, 이야기 등이 탄생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나는 그들의 발명품 중 이야기에 끌렸다. 이곳에 불시착하는 순간, 그들의 이야기 속에 내가 어떻게 등장하게 될지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나의 이야기는 바야흐로 대전환과 혼란의 20세가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첫 번째 과업은 미국의 월스트리트 증권회사 객장에서였다. 1929년 가을, 나는 전광판 사이를 이리저리 내달리며 엔트로피를 높였다. 확률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자 구름을 헤치고 숫자들을 저격했다. 숫자들은 진동을 일으키며 5는 6으로, 3은 6이나 9로 바뀌었다. 0을 8로 만드는 데는 모로 눕는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어야 했다.

모든 시도가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많은 우연과 나의 공적이 쌓이며 주식이 갑자기 폭락했다. 신문과 방송에서 ‘증시대폭락과 미국 경제의 위기’라는 제목의 기사가 연일 보도되었다. 하지만 주가 조작을 벌인 것이 나라는 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가가 2달러에서 350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때는 어떤 종목이든 사기만 하면 돈을 긁어모았던 1978년이었다. 당시 투자주들이 증권회사로 몰려든 것은 당연했다. 신이 난 팁스터 스미스는 물컵에 담갔다 꺼낸 휴지를 추천 종목을 띄운 대형 화면에 던졌다. 휴지가 달라붙은 곳을 가리키며 스미스가 말했다.

“신의 계시입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동안에도 주가는 계속 올랐다. 이번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숫자를 줄이고 빼자 주가는 급락하기 시작했다. 스미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갔고 나는 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믿는 신은 내가 아니었다. 주가 변동에 대해 나를 거론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고 쉽게 물러설 수는 없었다.

다음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좀 더 아날로그적이었다. 땅 부자였던 테드 터너가 부동산 계약서에 사인할 때마다 나는 터너의 만년필에 매달렸다. 그러자 정확한 필체로 유명했던 그의 사인은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명확해졌다.

터너의 집사인 데이비드는 기회를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터너의 사인을 위조해 텍사스에 있는 목장 서너 개를 빼돌렸다. 하지만 터너는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7조 2천억 원의 부동산은 조금 갉아 먹히더라도 표가 나지 않았다. 목장을 빼돌릴 수 있었던 것이 내 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데이비드는 나에 대한 감사 인사 대신 교회에 자산의 1/5을 헌납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천당에 가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거짓과 욕망, 위선이 삼위일체를 이루어가는 동안 나의 간절한 기도는 황무지의 먼지처럼 흩어져 갔다.

사실 따져보면 문제는 나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의 불찰이라면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인간의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했다는 것이었다. 존재 증명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상해야 했다. 나는 지구 곳곳을 유랑하듯 돌아다니며 방법을 모색했다.

지구의 배꼽인 호주 울룰루를 거쳐 콴타스 항공사의 중앙 컴퓨터 위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의도치 않았지만 사건은 나로 인해 벌어졌다. 정확한 시간에 맞춰진 컴퓨터의 모든 시스템이 1초의 오차 때문에 엉망이 되었던 것이다. 모든 발권 시스템은 마비되었고 400여 편의 항공기는 결항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제야 사람들은 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세계 각국은 2000년에는 윤초로 겪게 되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윤초’를 유지할 것인지 폐지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나는 ‘팍스텔레파시’를 통해 이들과 함께 시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주의 변화, 창조에 대해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될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인간들은 윤초로 발생하는 문제를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리고 논쟁을 마무리했다. 나의 존재는 잊혔고 예전과 마찬가지로 나는 있지만 없는 존재가 되었다.

다시 원점이었다. 한동안 나는 침잠했다. 그동안 사람들은 지구를 파괴하고 함부로 다뤘다. 오만과 무지함을 무기로 스스로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지구는 끊임없이 황폐화 되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여러 시도를 해보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시간의 파편이라면, 내가 처음 떠나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인간과 연결되어 세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매달린 나머지 나는 그곳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졌다. ‘팍스텔레파시’와도 연결이 끊겼다. 나는 나의 처음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처음이라는 게 있긴 한 걸까? 나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가 되었다. 지구의 황폐화와 함께 나의 무력감은 300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팍스텔레파시’로부터 신호가 왔다. 거대 행성 간 충돌의 여파로 지구의 중심축이 흔들리고 곧 대폭발이 있을 거라는 메시지였다. 어쩌면 이번이 지구와 접속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 꺼지지 않은 기대와 관성화된 열망이 나를 다시 일으켰다.

나는 블랙홀의 조건과 같은 사건의 지평선이 펼쳐진 곳을 찾아냈다. 그곳은 한국의 서울, 종각이었다. 구멍 위로는 커다란 종이 서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밑으로 파고 들어갔다. 사방에서 부딪히는 입자들과 한없이 커지는 엔트로피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모든 감각이 한꺼번에 뚫린 듯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구에서 내가 감내해야 했던 분노와 절망, 고통과 좌절의 기억만은 더욱 선명해졌다. 나는 타들어 가며 조여 오는, 존재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존재하고자 하는 열망을 견뎌내야 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멈췄다. 단단하고 차가운 벽에 부딪혀 꼼짝할 수 없었다. 나는 울룰루의 바위 위에 앉아서 명상할 때처럼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순간 나는 처음부터 그리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건과 공간에 있었으며 필연적인 확률의 우연과 섞이고 수없이 많은 기억들에 쌓인 존재,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모든 것. 나는 이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제야 지금 이곳이 지구의 중심축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지구의 중심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중심이 이미 한쪽으로 너무 기울어져 돌려세울 수가 없었다. 거대한 진동이 울렸다. 중심을 붙잡고 있던 힘의 반동으로 나는 지구 바깥으로 순식간에 튕겨 나갔다.

멀리서부터 검은 어둠이 지구로 서서히 다가왔다. 종소리가 울리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종소리가 울렸다. 땅이 벌어지고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폭발은 순식간에 일어난 듯했지만 지루할 정도로 길기도 했다. 슬로우 걸린 화면처럼 작은 바퀴벌레 한 쌍이 느릿하게 시멘트 더미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 완전한 침묵과 어둠 속에서 나는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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