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서 한 장만 찍어줘
옥수수 사이로 우주가 번지고
바람의 구멍으로 영혼이 걸어 다니는
세계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너 장을 찍었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여자는 파파유엘라처럼 포즈를 취했다
줌을 당길수록 짙어지는 노이즈와
흔들린 채로 남은 잔상을
그대로 앨범에 넣었다
눈을 당기지 말고 전체를 보자고 했다
힘을 빼면 초점이 흐려지기도 하잖아
빛의 밀도가 빽빽할수록
선명하게 드러나는 표정
세상이 하얗게 번져
잠깐이라는 시간 동안
옷소매를 가져와 렌즈를 닦는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볼 수 없을까
길게 늘어진 파노라마처럼
5, 4, 3, 2, 1
1초를 가두기 위해 5초를 쓴다
바닥까지 흘러내린 플래시
사라지지 않고 벽면에 굳어버린다
그녀는 그 자리에 계속 서있다
다듬어진 과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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