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미강 시인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에서 “약한 자의 슬픔” 창작시 발표
권미강 시인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에서 “약한 자의 슬픔” 창작시 발표
  • 박채은 기자
  • 승인 2021.11.30 23:36
  • 댓글 0
  • 조회수 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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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채은 촬영
사진=박채은 촬영

 

지난 10월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조선일보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권미강 시인의 “약한 자의 슬픔” 창작시 발표가 있었다.
김동인은 친일문인을 대표하는 문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일제 기관지 매일신보에 내선일체와 황민화를 주장하는 글을 여러 차례 기고했고 일제의 징병에 조선 청년들이 자원할 것을 독려하는 글을 집필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권미강 시인은 1989년 동인지 ‘시나라’에 ‘백마의 안개’ 외 1편을 발표하여 데뷔하였으며 2011년 ‘유년의 장날’로 <시와 에세이> 신인상을 받았다.

아래는 시 전문이다.

‘약해서 슬퍼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김동인은
‘스스로 어진 성품을 가진 동쪽의 무늬’라 칭하고
히가시 후미히토 東文仁가 되었다.
조국을 버리고, 자신이 출산한 강엘리자베스1와 복녀2와 뱃사공 아내3를 버리고
도쿠가와 막부 때 시인 야나가와 세이간을 흠모했다.
돈과 권력과 부조리에 매장당한 그녀들은 더 이상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내선일체로 무장한 히가시 후미히토는
더 이상 ‘붉은산’ 위에서 애국가를 부르지 않았고
‘천황폐하 아래서 생사를 같이하고 영고(榮枯)를 함께할 한 백성일 뿐’ 4
‘어린 자식들에게는 ‘일본과 조선’이 별개 존재라는 것을 애당초부터 모르게 하련다’5
‘천황폐하 은혜에 여생을 어봉공(御奉公)’6하겠다며
조국 청년들을 대동아전쟁의 아수라장으로 내몰고
그것이 문학인의 책무라고 부끄럼 없이 토해냈다.

한 뼘의 자리라도 더 얻으려고 노인을 죽음으로 내몬 ‘태형’의 사람들처럼
최고 작품을 위해 눈이 먼 아내를 죽인 ‘광화사’ 솔거처럼
자기만 살겠다고 조국을 버렸다.
그러니 조국이 해방된 날 조선총독부 아베 다쓰이치에게
‘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을 만들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참 어리석은 사람, 히가시 후미히토.

그 망령이 친일신문 조선일보에 스며들어가 문학상으로
이 땅의 작가들을 어지럽히니
변절한 천재 작가는 죽어서도 민족을 배반하고
친일족속 품에서 ‘히가시 후미히토’가 된다
믿음이 약한 자들의 슬픈 자화상이 된다.

1 강엘리자베스 : 김동인 첫 소설 ‘약한 자의 슬픔’ 여주인공
2 복녀 : 소설 ‘감자’ 주인공
3 뱃사공 아내 : 소설 ‘배따라기’ 뱃사공의 의심으로 물에 빠져 죽었다는 아내
4 <매일신보>에 게재된 김동인의 글 「감격과 긴장」 중에서
5 <매일신보>에 게재된 김동인의 글 「감격과 긴장」 중에서
6 국민문학 창간호에 게재된 「조선 문단과 내가 걸었던 길」 중에서

이 시는 친일문인을 대표하는 문인 김동인을 비판하는 시이다. 권미강 시인은 김동인의 작품 속 인물들을 나열하여 부조리에 매장당한 인물들은 주인공이 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특히 1945년 8월15일 김동인이 일본의 항복 사실을 모른 채 조선총독부를 찾아가 총독부 관리인 아베에게 친일 작가단을 만들겠다고 한 지점을 강하게 비판하며 친일문학이 사라지길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냈다.
이외에도 조미희 시인이 “똥의 전시(展示)는 끝나야 한다”라는 제목의 창작시를 낭독하였다. 조미희 시인은 2015년 시인수첩 신인상으로 데뷔하였으며 시집으로 “자칭 씨의 오지 입문기”가 있다. 
이후 세미나는 발제 전상기(성균관대)의 ‘문학상 운용의 논리와 작가의 대응, 그리고 줏대’, 토론 이영숙(추계예술대), 발제 최창근(전남대)의 ‘김동인 소설의 환멸의식 연구’, 토론 정민구(전남대), 발제 박수정(부산대)의 ‘해방기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주체화 전략’, 토론 이시성(동의대)로 이어졌으며 종합토론을 끝으로 조선일보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는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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