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솔아 작가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그럴듯하게 보이면 되는 세상
임솔아 작가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그럴듯하게 보이면 되는 세상
  • 박채은 기자
  • 승인 2021.12.31 14:38
  • 댓글 0
  • 조회수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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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송희 에디터 작업
사진= 한송희 에디터 작업

 

그럴듯하게 보이면 되는 세상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위로, 그럴듯한 말들을 전한다. 모두에게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그 사정을 다 헤아릴 수 없다. 타인이 기대하는 나의 몫을 해내는 것. 임솔아의 소설 속 인물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할극을 해내느라 자신을 기만하거나 서로에게 악의 없는 악의를 건넨다. 그리고 그 역할극의 공모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이 뒤섞여 있다. 작가는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그들의 입장을 가만히 전달하며 소설을 이어나간다.


소설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는 임솔아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임솔아는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한 장편소설 ‘최선의 삶’과 2017년 신동엽 문학상을 수상한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등을 출간하며 소설과 시를 써왔다. 본 도서에는 제10회 문지문학상 수상작인 ‘희고 둥근 부분’을 포함한 총 아홉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있다.


임솔아 단편집에 수록되어있는 ‘손을 내밀었다’, ‘단영’은 자신에게 기대되는 역할에 충실한 인물들을 담아냈다.
‘손을 내밀었다’에서는 만학도들을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한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자살 위험군에 속한 주인공 하연은 학교의 요청으로 자살한 학생의 룸메이트인 척 애도문을 읽는다. 애도문에서의 하연의 감동적인 거짓말은 자신에게 기대하는 역할극을 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홍성희는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제도 속에서 역할극이 어떤 방식으로 승인되고 확대되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러한 인물상은 소설 ‘단영’에서도 볼 수 있다.


‘단영’의 주인공 효정은 사찰 하은사의 충실한 주지이다. 절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던 그는 출가를 한 승려는 무성의 존재로 살아가야 하지만 비구니는 무성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효정은 이상적 여성성이라는 역할을 이용해 신도들의 판타지에 부합한다. 여성을 위한 공간이지만 효정은 찾아온 여성들의 사연은 모른 척 한다.


그들은 자신을 기만하는 데서 시작하여 타인을 배제하고 스스로 제도와 동일시하는 데까지 다다랐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에게 기대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임솔아는 이것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떠나 그들의 역할에 따라 연기하고 강요하는 타인의 시선에 집중하고 있다.


임솔아의 작품 속 인물들은 ‘마피아는 고개를 들어 서로를 확인해주세요’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이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마피아 게임을 하는 것처럼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거나 누군가를 저격한다. 이 글들이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실제로 마피아 게임을 하며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외에도 표제작인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는 문경과 아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문경과 아란은 10년 전 기숙학원에서 만났다. 문경은 돌보는 일이 천직이라 생각하여 간호대를 입학하지만 하지만 꿈을 포기한다. 꿈을 포기한 문경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던 아란은 위로를 전달하지만 문경은 아란에게 더 이상 푸념하지 않는다. 그들은 친구라는 역할을 연기하며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에 진심을 숨기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그들은 10년 전처럼 그네를 타며 통화를 하던 중 문경이 말한 “아무것도 아냐”라는 말을 통해 다시 한 번 관계의 매듭을 짓고 진심을 이야기한다.


침묵할 수 있어서 좋은 관계가 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속 인물 문경과 아란은 서로의 말에 진심을 숨기고 친구라는 역할을 연기한다. “아무 것도 아니야” 라는 대답은 어쩌면 침묵일 수 도 있는 말. 하지만 소설 속 문경이 새롭게 던진 “아무것도 아냐”라는 말처럼 새롭게 매듭을 짓고 진심을 이야기 할 수도 있게 만드는 말이다. 임솔아의 작품 속 인물들은 매듭을 지은 말에 새로운 대화를 시작함으로써 말하지 못한 마음을 기다린다. 그들의 역할에 따라 타인의 시선에 강요받는 삶. 그들의 삶과 그들의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한 말에 다시 새로운 매듭을 짓고 말해지지 않은 마음을 기다리는 일. 임솔아는 소설을 통해 모든 것이 말해졌다고 믿는 세계에서 아직 말해지지 않는 마음을 기다리는 일,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은 진심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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