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에게 인격을 불어넣는, 안은숙의 "지나간 월요일쯤의 날씨입니다"
낱말에게 인격을 불어넣는, 안은숙의 "지나간 월요일쯤의 날씨입니다"
  • 이민우
  • 승인 2021.12.31 17:08
  • 댓글 0
  • 조회수 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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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되기 위해
나에게 호명되어 온
낱말들에게
나는
아직
안녕하다는
안부를 전한다
-안은숙, 시인의 말

사진= 한송희 에디터
사진= 한송희 에디터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아이작 디즈레일리는 말했다.
‘시인은 영혼의 화가이다.’
 
글자가 모여 낱말을 이루고, 낱말은 다시 모여 문장을 이룬다.
낱말은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만을 뜻하는 일종의 기호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시인들은 존재하는 낱말 단계에서부터 그것을 관찰한다. 낱말이 함유하는 의미를 알고, 기호가 가지는 의미를 다른 기호와 연관지어 생각하며, 그것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나열하고, 음율에 맞추어 끊는다. 시인들은 그렇게, 낱말이 문장을 이루기도 전에 영혼을 부여한다.
 
낱말에 영혼을 부여하는 시인들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그저 존재한다고만 여기지 않는다. 인간도, 동물도, 그것들의 행위 등등... 존재하는 모든 것을 관찰하고 그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깊게 들여다본다.
 
문학평론가 이성혁은 안은숙 시인의 작품을 일컫어 “사물을 포옹하는 자의 시”라 평하였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사물을 의인화하여 표현하는 것은 딱히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안은숙 시인은 여기서 좀 더 나아간다. 사물들을 탐구하는 것은 물론, 그것들을 서로 연관시킨다. 단순한 의인화를 뛰어넘어, 사물이 함유하는 의미와 의미간의 연대로 더욱 큰 극장을 꾸며낸다.
 
그녀는 이 무대에 흐르는 짤막한 스토리라인에 인간과 사회를 담아낸다. 그 기저에는 ‘상실’과 ‘허무’가 스치는 듯 하다. 그것을 대변하는 대상이 무기물이라는 것. 눈물을 흘릴 눈도, 신음을 낼 입도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이 더욱 우리를 씁쓸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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