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 인쇄 혁명이 확산되던 15세기 독일 풍경
구텐베르크 인쇄 혁명이 확산되던 15세기 독일 풍경
  • 공병훈
  • 승인 2022.01.0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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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송희 에디터
사진= 15세기 인쇄물 디자인 합성 한송희 에디터

 

독일의 예술로 불리던 마인츠의 인쇄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가 1440년 주조 금속활자법과 인쇄기를 개발하여 제일 만들고 싶어하던 책은 성경이었다. 그는 고대시대부터 널리 사용되던 포도주나 기름 압착기 원리를 활용하여 인쇄기를 개발하여 1456년에 『42행 성서』(42-line Bible)을 인쇄한다. 구텐베르트 인쇄기는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연결된 나사가 돌면서 아래로 움직이고 여기에서 생기는 압력이 수평으로 나무 판자에 전달되었다. 이 나무 판자에는 인쇄될 종이를 장착할 수 있었고 판 밑에는 조판이 끝난 활자가 놓여 인쇄되는 방식이다.


한장을 인쇄하고 다시 활자에 잉크를 칠하고 다시 인쇄하였다. 중세 유럽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고 지식 혁명의 방아쇄를 당겼다는 구텐베르크 인쇄기 기술의 핵심은 활자를 이용한 인쇄이다. 그가 개발한 금속 활자 제조 방법을 살펴보자. 먼저 납, 주석, 안티몬 같은 금속을 최적의 비율로 합금하여 다양한 활자를 만들어내었다. 알파벳 철자 하나를 뒤집힌 형태로 단단한 강철 막대 끝에 조각하여 활자의 몸을 만드는 틀인 주형(鑄型)을 만든다. 무른 구리를 주형에 대고 망치를 내리치면 죄우가 제대로 된 움푹 패어서 모양이 같은 물건을 만들기위한 틀인 모형(模型)이 만들어진다. 이 모형을 구텐베르크가 만든 주조 도구인 거푸집에 고정하여 232도로 가열한 납 합금을 붓는다. 합금이 식으면 좌우로 뒤집힌 활자가 완성된다. 이제 이 활자를 동이에 인쇄하면 글자가 정상으로 나타난다.

15세기 , 자유 도시이던 마인츠 인쇄소 풍경

 

구텐베르크는 『42행 성서』를 인쇄하기 위해 299종의 활자를 제작했다. 미리 여러 벌 만들어 놓은 활자에서 필요한 알파벳을 뽑아 단어는 단어대로 단어 사이 공간은 공목(空木)으로 분리하여 하나의 행이 환성될 때까지 조판했다. 행과 행 사이에도 다른 공목을 넢어 전체 페이지의 조판을 마무리하여 식자판을 인쇄기에 걸었다.


15세기 독일에서 사용하던 종이는 깨끗하게 인쇄하고 색을 균등하게 입히기에는 너무 딱딱하고 미끈거렸다. 인쇄공들은 며칠 전에 종이를 축축하게 만들었고 구텐베르크는 걸쭉하면서도 빨리 마르는 잉크를 만들기 위해 아마인유, 테르펜틴, 송진, 역청 등을 혼합하였다. 그는 인쇄의 모든 과정을 최적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도구들을 발명했다. 활자를 뽑아 조판하기 편하도록 활자 상자를 만들고 활자 조판을 위해 식자가(植字架)와 식자판(植字版)을 만들어 식자판에 인쇄할 전체 면을 배열하였다. 구텐베르크의 꼼꼼함과 천재성은 마지막 발명품인 잉크 방망이(Inkball)에 있다. 잉크 방망이 덕분에 잉크를 균등하게 칠할 수 있었다.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금속 활자와 잉크 방망이

 

1454년 10월 구텐베르크는 프랑크푸르트 박람회에 『42행 성서』의 일부를 선보이기도 한다. 선주문을 받을 목적으로 내놓은 것이다. 구텐베르크는 성경 외에도 『도나투스 문법서』, 면죄부, 단력, 의학 조언서, 종교 소책자 등을 출판했다.


연구자들은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 유럽에 수천 권의 필사본들이 출판되었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인쇄술이 발명되고 난 후 불과 50년이 지난 1500년 경에 이미 900만 권이 넘는 책들이 출판된다.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인쇄기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준다. 1550년경 인쇄기와 기술이 자리잡히면서 인쇄업자들이 책 출판 활동을 주도하여 활자주조·편집·출판·판매활동까지 겸한다. 1500년 경의 책에서 저자명, 도서명 출판 장소, 출판사 이름, 발행연도 등이 있는 판권이 발견된다. 저자를 작품의 원작자로 이해하는 의미를 보여준다.


구텐베르크가 태어나서 주로 활동하던 지역이 독일 마인츠(Mainz)였기 때문에도 당시에는 인쇄를 “독일의 예술”이라고까지 불렀다. 마인츠는 로마시대에 개발된 라인강 주변의 상업 도시이다. 16세기초 독일이 종교개혁의 중심지로 떠오른 것도 발달된 독일 인쇄술과 관련된다. 


마인츠는 1118년 자치권을 얻어 1244년에 시민들이 자유권과 특혜를 누리던 자유 도시가 되었다. 대부분의 중세 도시들에서는 화폐경제의 발달과 함께 성장한 상인계층의 역할이 주도적이었다. 그들의 욕구와 열망에 열향받은 장거리 곡물 수송, 교역 등으로 도시들은 활기있게 번성기를 맞는다. 마인츠는 1254년에는 라인 지방 도시 연맹의 중심지였다. 마인츠에서 번성하던 초기의 인쇄 기술은 폐쇄적으로 영업상의 비밀이 지켜지면서 마인츠에만 활용되었다. 하지만 1462년에 적대관계에 있던 대주교의 전쟁과 군대에 점령되고 경제 침체가 극에 달하자 시민들은 자치권을 박탈당했고 많은 기술자들이 유랑의 길을 떠났다. 인쇄업자들이 유럽의 다른 도시로 피난하면서 마인츠의 인쇄 기술 독점은 끝나고 구텐베르크의 인쇄 기술이 유럽 전체로 퍼져나간다.


인쇄기술은 독일 상인들의 교역로를 따라 널리 확산되어 1464년에는 마찬가지로 로마시대에서부터 상업 도시로 발달된 라인강 주변의 쾰른(Cologne)이 인쇄 중심지로 떠오른다. 1470년에 구덴베르크 인쇄기를 사용하는 인쇄소는 17곳이었지만 1480년에는 121곳으로 늘었다. 10년 뒤에는 204곳의 인쇄소가 운영되었고 1500년경에는 대략 250개 도시로 인쇄기가 퍼졌고 바젤· 뉘른베르크· 아우크스부르크 등 거대한 교역 중심도시들이 인쇄 중심지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뉘른베르크 연대기』의 코스탄티노플에 대한 설명 페이지와 천지창조 네번째 날의 묘사 일러스트

 

 

15세기 안톤 코베르거와 뒤러의 활동


 출판업의 선두자리를 차지한 뉘른베르크(Nuremberg)에서는 안톤 코베르거(Anton Koberger)라는 출판업자는 24대의 활판 인쇄기를 보유하고 바젤·스트라스부르크·리옹·파리 등 다른 많은 도시들에 지사를 두고 국제적으로 출판 활동을 했다. 그는 뉘른베르크의 제빵사 집안에서 태어나 1464년에 시민 명단에 처음 등장하였으며 금세공업을 하다가 인쇄업과 출판업을 하게 된다. 뉘른베르크에 처음 인쇄소를 세웠으며 세계 최초의 대기업 규모의 국제적인 출판 활동을 한 인물인 셈이다. 15세기 말 베스트셀러인 『뉘른베르크 연대기』(Nuremberg Chronicle)도 안톤 코베르거가 펴낸 책이다. 창조의 순간부터 1490년까지의 역사를 담은 세계사 그림책이다. 이 책에는 유명한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션의 선구자로 꼽히는 알브레흐트 뒤러(Albrecht Dürer)의 645점의 목판화들이 들어 있다. 코페르거는 뒤러의 중요한 후견인으로 알려졌다.


안톤 코르데거는 자신의 책을 최적의 상태로 보관하고 안전하게 거래하고 위해 1506년에 프랑크푸르트에 상점을 연다. 박람회 기간에는 상인들에게 여러가지 특수한 권리가 주어졌는데 시민들은 자유롭게 물품을 판매하고 외지인들에게 숙소를 제공할 수 있었으며 법적으로 고소당하지 않을 권리를 누렸다.


『뉘른베르크 연대기』의 삽화를 그린 알브레히트 뒤러는 독일의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판화가로서 북유럽의 레오나르드, 독일 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자신에 재한 매력에 흠뻑 빠졌는지 수많은 자화상을 연대별로 남겨왔으며 심지어 미술사 최초로 자신의 누드 자화상을 그리는 등 작품을 통해 르네상스 이상을 구현하였으며 새로운 기술에 몰두하였다. 구텐베르크에 의해 촉발된 인쇄물 유통망을 활용해 자신의 작품을 유럽 전역에 판매한 최초의 화가였다.

알브레흐트 뒤러의 자화상(1493)과 누드 자화상(1509)

 

인쇄가 활성화되던 근대 이전의 이 시기에 인쇄업자들은 작업의 성과물인 책을 스스로 분배했다.출판사이자 동시에 서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을 판매할 별도의 조직이나 장소가 없다 보니 한 도시안에서 책을 모두 판매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적상이 형성되어 생산자와 구매자 사이에 자리를 잡아나가고 새로운 시장이 생겨나면서 책의 생산에 전념하는 인쇄소들이 늘어났다.


뒤러는 이 판매 방식을 선호했다. 뒤러는 판매를 목적으로 판화와 그림을 그렸다. 사업가였으며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르네상스 시기 독일의 박람회와 강을 통한 무역 경로를 통해 그림을 효과적으로 전파했다. 


뉘른베르크 연대기 같은 베스트셀러의 탄생과 뒤러의 활약은 1945년에서 1500년 사이에 책의 생산과 판매 제도를 지닌 시장이 생겨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피지에 비하면 매우 저렴하고 무제한 생산할 수 있는 종이가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편집자하는 교정 작업을 첨삭교정자(Kastigaror)라고 불리는 이들이 하였는데 이들은 젊은인본주의자들러서 해박한 교양과 지식을 지닌 르네상스인이었고 사회적으로 존경받았다. 첨삭교정자는 중세의 대학에서 학업을 마친 사람들로서 작업하는 동안 통상 계약한 인쇄업자의 집에서 무료로 숙식했다. 첨삭교정자와 증정본이 주어졌는데 이들은 책을 서적상에게 판매하였다. 


하지만 루터의 사례에서처럼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에 대해 돈을 받지 않았다. 책을 쓰는 정신적인작업에 보수를 받는 행위는 상업적이어서 스스로 정당화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생계 유지를 위해 경제적인 수익이 필요했다. 작가들에게도 증정본이 주어졌는데 작가들은 책을 제후, 주교, 은행가, 점포 주인에게 헌정하고 책을 받은 이들이 사례를 주는 관례가 생겼다. 점차 명예를 기리는 기부금의 의미로 주어지는 경제적 수입이었다. 작가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하고 그 명예을 기리는 기부금이었다. 오늘날에 원고료나 사례 보수를 뜻하는 “honor”라는 단어가 ‘명예’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는 건 그런 연유에서이다. 물론, 인쇄업자들이 작가에게 사례로 현금을 지급하거나 숙식을 제공하거나 견본도서를 주는 사례들도 발견된다.

 

 

서적상과 서점, 그리고 베스트셀러의 탄생


근대 이전에는 책을 주문하는 성직자, 귀족, 부유한 시민들을 위해 수도원에서 책을 만들던 방식었다. 서적상들이 한정된 이 고객들을 방문했다. 상업적 성공을 위해 활동하는 인쇄업자들이 주도하는 출판시대로 넘어가면서 서적상들은 여러 인쇄소들로부터 책을 얻어 행상 무역을 하고 책을 보호할 목적으로 통과 가죽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박람회, 시장, 시철, 여관 등 책을 살 수 있는 이들이 모일 만한 장소에서 책을 공급했다. 이들을 서적 행상인(buchführer)이라고 불렀다. 

중세 유럽의 행상인. 구르동 드 주누일락(Gourdon de Genouillac)의 1897년 작품

 

1480년경에는 출판된 책들이 증가하자 서적상들은 행상 무역을 포기하고 자기 점포를 낼 만한 공간에 정책하여 자영업을 시작했다. 도시가 커지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책에 대한 수요와 구매력이 생겨났다. 기록에 따르면 일부 서적상들은 여관과 식당을 운영했다. 책의 판매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생산과 판매의 분리과정은 지속적으로 이루러지고 있는 상황에서 서적상들이 임금 대신에 인쇄소가 맡긴 계약을 자기들끼리 나누어 가지면서 스스로 발행인이 되기도 했다. 1550년쯤에 독일에 정착한 서적행상인들의 수가 1,200여명 정도였다.


1470년에 페터 쉐퍼(Peter Schöffer)가 만든 인쇄소 전단에는 “도서 판매자는 뉘른베르크 여관 춤 빌덴 만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같은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서적 행상인들은 이런 광고를 교회 문, 여관 창문, 시청 계단, 대학 건물 등에서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선정적인 그림이 큰 광고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는지 인쇄업자 게라에르트 에오니(Gheraert Leeu)의 1491년에 『아름다운 멜루지네』(Le livre de Mélusine)의 광고와 책자에는 욕조에 가슴을 드러낸 여주인공을 목판화로 사용한다.

1947년의 『아름다운 멜루지네』에 담긴 목판화

 

책의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서적 행상인들과 구매자 사이에는 자유로운 흥정으로 가격이 결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교들은 비용을 지금하고 인쇄소에 미사용 도서를 주문했다. 사제단은 미사 관련 저작물에 대해 고정된 가격을 매길 것을 명령했다. 일종의 도서정가제인 셈이다.


프랑크푸르트 박람회는 14세기에 유럽의 박람회 중에서 가장 크게 열렸다. 15세기부터 인쇄업자들이 직접 소비자에게 책을 판매할 수 있게 되면서, 서적 유통에 따른 이윤이 점차 증가하게 되었다. 그래서 책을 팔고 살 사람들이 독일뿐 아니라,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폴란드, 영국 등에서도 프랑크푸르트로 모여 들게 되었다.

1534년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하여 출간한 성경

 

인쇄 기술이 개발되어 발전하여 100년 동안에 제작된 책들 중에서 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에는 종교 개혁가로는 루터(3,520종)와 멜란히톤(1,092종), 인문주의자로는 에라스무스(2,408종)와 밥티스타(610종), 고대 로마의 작가인 키케로(2,075종), 오비디우스(816종), 베르길리우스(761종),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는 아리스토텔레스(981종), 프랑스 작가로는 알렉산더 드 빌라다이(642종), 4세기 라틴어 문법 교육자 도나투스(823종) 등이 있다. 예를 들어 루터(3,520종)은 루터의 저작을 가지고 만든 여러 판본을 뜻한다. 15세기와 16세기 종교개혁과 인문주의자들의 활동과 고대 로마의 지식을 탐구했던 르네상스의 혁명적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폐쇄적 공동체 조합과 길드의 규칙에서 생산 활동을 벌이던 15세기의 다른 산업 분야와는 달리  인쇄와 출판에는 인쇄공이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났지만 누구나 인쇄소를 열어 영업할 수 있었다. 인쇄공과 식자공을 위한 교육도 없었다. 하지만 다양한 문헌에서 인쇄업자와 출판업자, 그리고 인쇄공들은 대학 교육 이수자라고 전해진다. 15세기의 엘리트들이며 그들은 인쇄 기술이라는 첨단 기술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찍어내고 있었다. 종교 개혁, 인문주의, 르네상스는 근대를 형성하는 지식 혁명의 도화선이지만 인쇄업자들에게는 새로운 콘텐츠의 출현이자 새로운 시장의 탄생이었다.

 

공병훈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문예커뮤니케이션학회 학회장.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서 앱(App) 가치 네트워크의 지식 생태계 모델 연구에 대한 박사논문을 썼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디어 비즈니스, PR, 지식 생태계이며 저서로는  『광고는 어떻게 세상을 유혹하는가?』,  『4차산업혁명 상식사전』 등이 있다.

유튜브 채널 : 공병훈 지식공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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