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병모 작가의 신간 ‘상아의 문으로’가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출간되었다. 이는 일 년만에 발표되는 구병모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상아의 문으로’는 꿈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여기서 꿈이란 소망을 뜻하는 게 아닌 수면을 통해 이뤄지는 현상이다.
소설은 ‘진여’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어느날 진여는 거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게 된다. 얼굴이 붙어 있어야 할 자리에 습관적으로 물을 끼얹고 느껴지는 차가운 감각만이 ‘내’가 있다, 라는 것을 감지하게 해준다. 이 소설에서는 이처럼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상황을 ‘증상’이라고 부른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사람들 사이에서 시작된 이 ‘증상’은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잠에서 깬 것도 아닌 상태를 만들면서, 꿈이 갑작스럽게 현실을 가격하듯 찾아온다.
이러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진여 말고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고, 원인을 찾으려는 회사들이 등장한다. 진여는 ‘무기’라는 사람을 만나, 센터라는 곳에 따라가게 된다.
‘규정되지 않는 미래’와 ‘고착되지 않은 과거’(p.33) 사이에 수많은 가능성들이 열리기 마련이고, 이 가능성을 품은 채 진여는 예측할 수 없는 현재를 살아낸다. 어디로 출근하는지 알 수 없지만 늘 그렇듯 출근을 하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타던 대로 열차에 오른다. 분명 어제는 학교 선생님이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학생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놀랄 것은 없다. 과거에 일어난 사태는 오늘을 담보해주지 않는다.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다. 요약할 수 없는 글, 그러니까 메시지를 섬멸한, 어긋난, 바로 엊그제의 일, 눈 깜짝할 사이, 어쩌면 1년에 관한 글이라고 조재룡 문학평론가는 설명했다.
‘상아의 문으로’를 읽은 박모씨(25)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워 책의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문장이 주는 매력 자체가 뛰어나 여러 번 되새김하며 읽게 되었다는 의견이다. 확연히 구병모 작가의 이전 장편소설과는 차별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꿈의 바이러스라는 단어를 등장시킨다. 바이러스를 통해 꿈이 찾아온다는 설정은 코로나19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바이러스로 인해 단절된 사회 속에선 관계의 커뮤니티 역시 끊어지기 쉽다. 집단과 직책에 소속된 ‘나’가 아닌 ‘나’는 과연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소설을 읽은 후에는 이런 의문이 든다. 그만큼 우리의 존재는 자립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으며 그만큼 유동적이라는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상아의 문으로’는 구병모 작가의 새로운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다. 구병모 작가의 이전 작품을 재밌게 읽었다면 이 도서 역시 시도해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