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특집]사유의 두께 제2부-김수영의 작품에 흐르고 있는 동양적 사유의 물결
[김수영특집]사유의 두께 제2부-김수영의 작품에 흐르고 있는 동양적 사유의 물결
  • 김상천
  • 승인 2022.02.04 13: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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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송희 에디터
사진= 한송희 에디터

 

서언

2-1, 김수영 사유의 내적 기원

2-2, 김수영 사유의 외적 기원

마무리

 


 

서언

세상에 혼자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관계의, 상호작용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더 말할 것도 없이 자기 시대의 아들1)이라고 했거니와, 현존재인 나는 세계 속의 존재라는 하이데거의‘세계-내-존재’ 또한 같은 말이 아닌가 말입니다. 철학은 말할 것도 없고 문학예술도 마찬가지고, 김수영의 시적 성취와 사유의 열매 또한 갑자기 돌출한 것이 아닙니다.

김수영의 시작 초기 이력을 자세히 보니,‘묘정의 노래’(‘45)에 이어‘공자의 생활난’(‘45),‘가까이할 수 없는 서적’(‘47),‘아메리카 타임지’(‘47), ‘이’(‘47),‘웃음’(‘48),‘아버지의 사진’(‘49),‘아침의 유혹’(‘49), ‘음악’(‘50),‘토끼’(‘50) 등을 일 년에 한두 편 이어오던 과작의 시인이 1950년 이후 3년의 공백을 깨고 무슨 노다지처럼‘번쩍!’하고 들고 나온 것은 예의‘달나라의 장난’이었습니다. 어찌해서 시인은 3년여 동안 한 편의 시도 낳지 모한 것일까? 이런 의문은 시인이 시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이 영향을 적지 않은 미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대체 물때가 맞아야 물고기도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김수영 사유의 오롯한 싹이 트고, 영롱한 꽃이 피고, 단단한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는 시기는 '달나라의 장난'(1953)부터입니다. 왜 하필 1953년인가. 대체 ‘달나라의 장난’이라는 금편이 출현하기 위한 시대적 조건은 무엇이었나. 아니, 금편을 낳은 시대적 토양은? 앞장에서 본 바대로 그것은 '공자의 생활난'(1949)이 해방 후 혼란한 시대현실에 대한 시적 자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꼭 그처럼 ‘달나라의 장난’ 또한 6.25라는 참혹했던 '사회정치적 환경socio-political milieu'에 대한 명증한 자각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자, 이것은 ‘달나라의 장난’을 낳은 사회정치적 환경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하나의 엄격한 검증을 요구하거니와, '공자의 생활난'에서 보여준 사물의 진지眞知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이어 태풍이 지나가면 바닷물이 더욱 푸르듯이, 시인이 거친 파도와도 같은 죽음의 사선을 몇 고비 넘기고 드디어 자기만의 개성을 지니고 고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6.25라는 혹독한 전쟁을 치르고 살아남은 결과였습니다. 

타고 남은 재는 다시 기름이 된다니...

이와 마찬가지로 김수영이 몇 차례의 사선을 넘어 피워낸 사유가 금꽃처럼 빛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것는가. 그러니 김수영의 시적 개화와 사상적 성취 역시 내, 외적 영향의 결과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는 지적인 관심이 남달랐던 당대의 문화인이 아니었나. 이에 나는 먼지가 소리 없이 내려앉듯이 김수영 시에 조용히 내려앉은 사유의 내적, 외적 기원을 그 영향사적 관점에서 좀 밀도 있게 밝혀보려고 합니다. 

2-1, 김수영 사유의 내적 기원

우선, 앞으로 밀도 있게 논의하게 될 원작부터 보것습니다.

팽이가 돈다
어린아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 전문

이 시를 어티케 해설해야 하나. 천학비재한 나는 참 난감한 글쓰기 상황에 놓여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뭐 간단한 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달나라의 장난’은 분명 현재 자신의 심경을 솔직 토크하고 있는 자유로운 산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시이지만, 무슨 금덩이처럼 형식 이상의 중요한‘그 무엇’이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말입니다. 대체 시인이 이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시적 주제는 무엇이란 말인가. 기본적으로 볼 때, 하나의 주조음으로 화자는 분명 서러운 감정에 휩싸여 있음을 파악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지배적 정서로‘서럽다’는 것은 원통하고 슬프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시어의 지층 속에서 하나의 광석과도 같이 빛나는 언어가 우리를 주목케 하는 것은 서러운 감정에 사로잡힌‘정의적 모습’의 화자이기보다는 외물에 대한‘추상적 사유’의 진수를 접하게 되는 흔치 않은 학이學而의 즐거움 때문입니다. 나는 그렇게 봅니다.

‘달나라의 장난’은 추상적 사유의 진수를 드러낸 작품...

먼저, 화자는 왜 서러운 감정을 느꼈을까 생각해 보것습니다. 그것은 무슨 보풀이 일듯이 아이가 팽이를 돌리는 것을‘물끄러미’보게 되먼서 감정이 자연스럽게 이입되어 일어난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기, 팽이는 하나의 시적 오브제이자 정치적 무의식을 지닌 알레고리로 기능하고 있는데, 이것이 화자에게 서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은 우선 그놈이 신기하고‘낯선’물건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동화 같은 어린 시절, 추운 겨울 얼음판에서 나무로 깎아 만든 팽이를 나무에 헝겊을 맨 채로 있는 힘껏 후려치먼서 우리는 팽이를 돌리곤 했지만, 당시에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서 돌게 하는 전혀‘새로운novel’팽이가 등장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건 참 신비하고 이상한 물건이 아닌가. 그래‘이놈이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새로운 시대의 양식으로 대두되었던‘소설'이라는 개념이 연상되고,‘별세계’가 튀어나오고, 그 옛날 이태백이 놀던(‘토끼’) '달나라의 장난' 같다는 재미있는 상상의 끈이 이어지게 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시적 지평으로 달나라의 장난처럼 신기한 것은 팽이만이 아닙니다. 그것은“도회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나의 일이며/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가 또한 신기한 일이 아닌가 말입니다. 그런 어느 순간 나의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삶과는 다른 그들의,“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바쁘지도 않은” 나와는 다른 그들,‘뚱뚱한 주인’의 낯선 삶이 겹치게 되고 대위법적으로 대치되먼서 화자는 이내 뭔지 모를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박탈감이랄까 따돌림을 받는 것 같은 소외감에 젖게 되고, 그러니 뭐 자신도 모르게 그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원통하고 슬픈 서러운 감정에 휩싸이게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정의 불길은 여기서 그치질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시적 지평은 동심원을 그리며 대상사물에서 자신의 삶으로, 나아가 자신의 삶과는 다르게 낯설게 돌아가는 사회정치적 영역으로 점차 증폭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이상한 감동을 느끼게 되며, 그 이상한 감동의 끝에서 정의적 감정에 사로잡힌 화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추상적 사유의 뼈대를 단단히 물고 있는 성숙한 화자를 보게 됩니다.

여기, 화자가 잠시 마음의 평정을 잃고 자연계의 외물에 감정이 휩싸이게 된 것은 고대적 관념으로 그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숭고sublimity2)-‘숭고’는 거대한(‘성인’) 공포(‘비웃는’)에서 오는 신비한 관념의 일종인데, 이것은 또한 그 불분명함(‘까맣게’, ‘회색빛’)에서 말미암는 미적 개념입니다-라는 미적 감정에 가까운 것이기도 하지만, 분명 피동적인 감정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니까 팽이는 주인공이지만 나는 이 세계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러니 나와 세계는 행복하고 조화로운 관계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팽이는 나를 울리고 비웃는 낯선 외물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외물에 감정을 빼앗기고 마는 것은 내가 이 세계의 주인이 되지 모하고, 그러니까 제‘스스로 도는’ 팽이처럼 자립하지 모하고 개밥의 도토리처럼 도회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안타까운 처지와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마치 무엇엔가 무거운 망치-우리는 이것을 ‘시적 충격’ 또는 ‘시적 망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로 뚜드려 맞은 듯이 화자는 서러운 감정에, 비탄에만 빠져서는 안 되는 자신이 놓인 현실을 이성적으로 자각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사명을 냉철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과연,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로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 그 추상적 사유로서 자신의 운명을 직시하고 그 어떤 사명을 완수해야 할 자신을 자각한 화자가 깨달은 시적 직관이 만만치 않다는 데에 '유명론nominalism의 승리’로서의 한국시의 일대 쾌거라는 평가에 손색이 없는 번쩍이는 시의 금편을 마주하게 됩니다. 유명론의 승리라니! ‘달나라의 장난’에 유명론이 어디에 있고, 더욱이 승리라니! 대체 ‘유명론’이라 하먼 중세철학에서, 아니 저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볼 수 있듯이, 장미가 더 이상 장미가 아니었던 것처럼, 개체만이 실재하고 보편은 개체에서 추상하여 얻은 명목에, 이름에, 명분에, 뭐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이론으로, 언어 비판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근대 인식론의 하나가 아닌가 말입니다. 그리하여 여기,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에서‘생각하면 서러운 것’은 화자의 내면에 졸졸졸 흐르고 있는 원통하고 슬픈 감정의 물결이 아닌가. 앞에서 보았다시피 그것은 중심에서 벗어나 외로 된 삶을 게우 유지해 가고 있는 못난 자신에 대한 박탈된 감정으로서의 그 무엇을 대변하는 정서임에 틀림없는데, 그러나 팽이로 촉발된 서러운 감정은 주변으로 떠도는 자신과는 다른 ‘별세계’를 살아가고 있는‘뚱뚱한 주인’과, 비대한 권력과 관련되어 있음을, 당시의 이승만 독재 권력과 긴밀하게 연계된 사회정치적 상상력의 시적 암시임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시적 상징으로 보이지 않는 그 무엇something을, 그러니까 개인의 내밀한 정서를 넘어‘사회정치적 무의식socio-political unconsciousness’이라는 위험한 뇌관을 건드리고 있는 표현이지 않은가 말입니다. 다시말해 하나의 이념 지향을 드러낸 이데올로기 시로서‘달나라의 장난’이 보여준 시적 인식이 결코 장난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먼‘달나라의 장난’에 보이지 않게 흐르고 있는 강물 속의 강물은 대체 뭐란 말인가. 바로 여기서 우리는 시가 내면의 읊조림을 넘어 하나의 사회정치적 메시지로 기능할 수 있는 전거를 확인하게 되는데, 그것은 과연 우리는(‘너도 나도’) 주체적인(‘스스로 도는’) 인간이 되어야지 노예적인 삶에 휘둘려서는(‘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닌가. “나라와 역사를 움직여 가는 힘이 정부에 있지 않고 민중에게 있다는 자각이 강해져 가고 있고 이러한 감정이 의외로 급속도로 발전해 가고 있다”(‘아직도 안심하기 빠르다-4.19 1주년’, 민국일보, 1961. 4. 16)는 대사회 메시지를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이런 의식은 이미 이데올로기적 '금기taboo'-시는 오직 모방만을 일삼아야지 정치를 논해서는 안 된다는 오랜 묵계로서의-를 깨고 지식인의 사명을 실천하고 있던 문화인의 의식이 여기 계몽적 성격을 지닌 산문 형의 교술시에 오롯하게 박혀있지 않은가 말입니다. 그렇다니‘달나라의 장난’은 실로 그 솔직 토크로서의 진실한 정도에 있어서나 물론 ‘문학은 사회적 공기와 꿈’을 지닌 것이라는 미적 규범aesthetic norm에 있어서나 그 인간 존엄이라는 시적 위의를 잃지 않으먼서도, 거기 하나의 탈은폐 기a try of disclose로서 정치적 무의식을 날카롭게 드러낸 저항시로서 한국시의 위상을 보여준 일대 쾌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시인의 내면에는 늘 ‘시인’과 ‘철학자’가 대립하고 있었다

이렇게 김수영이‘달나라의 장난’을 통해 탈은폐적 기도의 일환으로 위험한 진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던지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로 우리는 그의 내면에는 늘 시인과 철학자가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상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시인은 전통적으로 집단의 모럴을 상징하는 존재이고, 철학자는 개인주의 도덕을 나타내는 문화적 표지입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시인과 철학자는 대립과 모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령, 호메로스와 소크라테스가 대표적입니다. 그것은 각각 그 니체적 의미에서 ‘노예도덕’과 ‘주인도덕’을 나타내는 표지로 기능하고 있는데, 왜냐하먼 시인은 다만 어린이처럼 노래mimesis하고, 철학자는 어른처럼 이야기diegesis 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노래하는 존재라는 사실과 철학자가 이야기 하는 존재라는 점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시인은 대상을 묘사하는데, 사물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그 사물의 진상을 은폐하는데 그치는 종속적인subordinated 존재에 불과하지만, 철학자는 대상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을 넘어, 저 아테네의 등에를 자처했던 소크라테스처럼 시시콜콜 따지고 들며, 그 대상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판관과도 같은 독립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여기,‘달나라의 장난’을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화자는 단순히 팽이가 돈다는 것을  말하고, 노래하고, 모방하고자 한 게 아닙니다. 그는 재현의 기술자artist가 아닙니다. 화자는, 아니 화자를 앞세워 시인은 ‘은폐close’와 ‘개진disclose’의 싸움에서 분명 하나의 알레고리로 팽이를 통해 당시 한국사회의 극심한 정치적 부패 현실('뚱뚱한 주인‘)을 비판하려는 기도를 지니고 이야기 보따리를 늘어놓고 있는 게 아닌가 말입니다. 

그리하여 시인이 노래하는 종속적인 존재였다는 것은 그 플라톤적 의미에서 맹목적인 찬사를 늘어놓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하는 국가시인임을 암시하고, 철학자가 이야기 하는 자라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자의 편에 선 자임을 말하는 것으로, 이런 사실은 김수영의 경우,“시에 있어서의 모험이란 말은 세계의 ‘개진’, 하이데거가 말한 ‘대지의 은폐’의 반대되는 말이다”(‘시여, 침을 뱉어라’)라는 진술에서 잘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이것은 그대로 시인 자신이 자각하고 있는 철학적 소명과 관련되어 매우 주목되는 현상이 아니것는가. 그러니까 김수영은 시를 ‘모방’이 아니라 ‘모험’으로 전제하고 있는 가운데, 이런‘시적 모험’을 이루기 위해서는 숨겨진 진실을 거짓 없이 드러내야 하는데, 다시 말해 그는 노래하기 위해서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기 위해서, 진실을 밝히는 사도로서 탈은폐적 기도를 위해 시를 썼음을 짐작케 합니다. 

여기, 시인의 임무를 ‘은폐’와 ‘개진’의 싸움을 대전제로 놓고 본다고 할 때에 있어서, 김수영이 전통의 수사학에 비판적 거리를 지녔을 것이란 점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먼 전통의 수사학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처럼 대상의 분식에, 대상에 대한 노예적 찬사에 그 본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다음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칭찬의 대상이 어떠한 것이 되었든, 그것을 훌륭하게 칭찬하는 방법은 그 대상의 본모습은 상관하지 않고 가능한 한 무조건 그 대상에 대한 거창하고 훌륭한 찬사들을 덧붙이는 것처럼 보이네 그려! 더구나 그 찬사가 거짓일 경우에도 전혀 문제로 삼지 않으니 말일세.”

-플라톤, <향연>, 문학과지성사

자, 이런 사실은 하나의 철학적 소명으로서 진실의 개진에 온통 관심을 쏟았던 소크라테스처럼, 꼭 그처럼 김수영에게 있어서 왜 그가 전통의 수사학보다는 서사학에 큰 관심을 쏟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소설을 쓰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시여, 침을 뱉어라’)는 그의 말처럼, 대체 소설은 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통해서도 잘 볼 수 있듯이 중세 실재론의 허구를 까발리는, 근대의 리얼리즘에 기초한 피렌체 플라톤주의자들의 유명론을 대표하는 시대적 형식이거니와, 그의 시가 왜 산문시에 가까워지고 있는지-김수영의 말대로, “산문이란, 세계의 개진이다”-그것은 과연 숨겨진 진실을 탈은폐시키려는 기도try와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고, 이를 실천하다보니 그의 시가 왜 냉정한 현실인식을 보여주는 산문의 형식을 띠고 있는 가운데서도 또한 성숙한 은유로서의 해석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지 예측해 볼 수 있는 근거입니다. 

자, 이왕 ‘해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리는 잠시 니체, 하이데거가 현대 해석학에 기여한 공적을 소환해 보것습니다. 하이데거의 후계자 가다머를 비롯 데리다, 푸코, 들뢰즈 등 저 뭇별과도 같은 현대 프랑스 철학의 성운들은 모두 독일 해석학의 아들들이 아닌가 말입니다. 그러나 그 엄격한 사실에 있어서“사실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해석만이 존재할 따름이다.”(<권력에의 의지>)라고 해석에 권위를 부여하며 기름을 붓듯이 처음으로 해석에 존재 의의를 부여한 것은 꿈쩍 않고 있던 형이상학의 성채를 무너뜨린 니체였습니다. 그는 분명 현대 해석학의 선구자입니다. 아니, 그는 익명의 대부3)입니다. 그러나 이를 더욱 발전시켜 이론적 체계를 더하고 해석학적 관심을 폭발시킨 것은 전혀 하이데거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는 뭐 해석학의 공식적 대부입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의 발현에는 본질적으로 ‘개시’와 ‘해석’이 속해 있다disclosing and interpreting belong essentially to Dasein's historizing”라고 했습니다. 그럼으로써 ‘개시(또는 폭로)’와 ‘해석’은 드디어 실존적 인간인 나를 이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하이데거를 사숙한 김수영 또한 이런 하이데거에 주목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리하여 화자가 팽이를 통해 그 추상적 사유의 막대에 해당하는 해석학적 명제로 제시한 것은 "스스로 돈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현존재로서 시간성을 지닌 실존적 존재인 내(존재자)가 주체성과 역사성을 지녔음을 암시합니다. 다시 말해, 나는 스스로 도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주체성
-돈다; 역사성

현존재인 나는 어티케 존재하는가. 그것은 하이데거에 따르먼 적극적으로 '개시disclosing'함하고, 능동적으로 '해석interpreting'함으로써 존재합니다. 그러나 개시와 해석을 통해 자신을 발현시켜 주체성을 지닌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해석학적 혁명a hermeneutic revolution’으로 의미의 불火이 일어나야 합니다. 의미가 불인 이유는 어떤 것을 가령, 자연물의 가공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대상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interpretation'행위에, 사실의 가치화valuing에 있기 때문입니다. 해석은 대상에 의미를 더하는 것입니다. 능동적으로 개입inter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의미를 따지는 해석행위는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기호sign행위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세계는 근본적으로 기호로 된 해석의 세계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기호의 세계(해석의 세계)=사실(소)+가치(소)

어원적으로 볼 때,‘해석interpretation’은 본래‘중개자, 거간꾼, 브로커’등을 뜻하는 라틴어 명사‘interpres’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interpres’는 ‘~사이에(between)’라는 뜻의 라틴어 전치사‘inter ’와 ‘물건을 팔다’라는 뜻의 원시인도유럽어‘per-’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로 ‘물건을 팔 때 중간에 다리를 놓아주는 사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따라서 ‘interpretation’은 ‘거래를 할 때 양 당사자의 의사를 중간에서 정확히 해석해 설명하고 전달하는 작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의미를 전달하는 사람의 주관과 입장, 이해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히게 되먼서 자연 해석에는 주관적 요소가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해석의 요점은 자의적이고 판명한 설명에 있습니다. 이것을 해석학의 선구자 딜타이는 '정신과학의 역사적 세계구성'이라 했습니다. 달리 말해 역사의 역사학적 개시라 할 이런 변화는 바로 현존재의 시간성으로서 내던져인 피투된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시간 속에 개시된 존재가 유의미한 해석을 통해 그 결단성으로서의 역사성을 스스로 드러낸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좀 쉽게 접근해서리 해석으로서의 의미의 불은 어티케 일어나는지 보것습니다. 

"조각이 아로새겨진 보기에도 육중한 찬장, 거무스름한 떡갈나무 자재였다
아주 오래된 물건이었다 마치 선량한 노인과도 같은 모양새다
찬장 문이 열리자, 그 깊은 안쪽에서
마치 오래된 포도주를 따를 때의 사람 마음을 끄는 듯한 향이 일어났다

찬장 속은 꽉 차 있었다 잡동사니들로 가득 메워있고, 손댈 수 없을 정도의 낡은 옷가지들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고, 누런 속옷가지들,
여자들과 어린이들의 낡은 옷가지들,
그리고 퇴색해버린 레이스들,
대형 독수리의 모양이 새겨진 할머니의 어깨가 파인 드레스

-구석구석을 찾아보니 나오는 것은
그리고 장신구와 검은 머리타래, 흰 머리타래 그리고 초상화, 과실향기를 뒤섞은 듯한 향기를 피우는 그 옛날 눌러서 말린 꽃 등이 있었다
-아, 그리운 옛날이 낡은 찬장이여, 그대는 수많은 옛날의 이야기들을 알고 있으련만...
검은 광택이 나는 육중한 문을 천천히 여닫을 때마다 삐걱 소리가 나면서
아무래도 그대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것 같구나"

-아르튀르 랭보의 '찬장Le Buffet', 피천득 번역 

시적 정황으로 보건대, ‘장식장’이 더 그럴듯해 보이지만 함 보것습니다.

사물들은 어티케 '시성詩性'을 부여받고 의미를 지니는가. 그러니까 삶은 어티케 시가 되고 이야기가 되는가. 그것은 이것에서 저것으로, 사실에서 가치로, 그러니까 묘사에서 서사로, 돌덩이가 석불로, 재가 다시 기름으로, 일개 사물에 불과한 ‘찬장’이 ‘그대’로 의미 전환되고,  인격personality이 부여됨으로써 비로소 사물에 시성이 부여되고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해석으로 찬장은 곧 너입니다. 

가령, 여기 무심한 성냥개비 하나가 있다고 칩시다. 이것은 다만 그렇게 놓여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누군가의 주목을 받고 기어코 확! 하고 인력이 당기어지먼 성냥개비가 성냥불이 되는 것처럼, 이 불이야말로 과연 어둠을 몰아내는 서사의 불이, 시성이 부여된 의미의 불이 아니것는가 말입니다.

여기, '찬장'도 마찬가집니다. 찬장은 다만 하나의 사물로 찬장일 뿐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무엇에 의해서인지 모를 마법의 광기에 휩싸이는 때 찬장은 밀물을 만난 수초들이 누웠다가 고개를 발딱 세우듯이 평면의 사물에서 둥근 그대가 되고 직립의 주체가 됩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서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사물에도 내력이 있고, 그녀를 알게 된 그의 생이 갑자기 빛을 발하듯이, 생의 비밀을 간직한 서사의 문이 드디어 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 앞에서 무심히 돌고 있는 신기한 팽이에 ‘스스로’ 돈다는 서사의 불이 당겨지는 순간 해석학적 혁명이 일어났던 것처럼, 꼭 그처럼 여기 하나의 알레고리allegory로 그대라는 찬장의, 서사의 문이 열리자 드디어 너는 오래된 성처럼 비밀에 휩싸인 성채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합니다. 거기, 우리들의 지난 사랑이 있었다고...이제는 오래된 포도주향이 나는 빈티지한 매력을 풍기는 고아한 풍경으로 남아 있지만, 그 잊지 모할 포도주향이 전해주는 알싸한 세계에서...너는 어깨가 파인 드레스를 입고 멋진 장신구를 하고 흰 머리 검은 머리 과일향이 나는 너는 머 전설 같은 꽃소녀가 아니었던가...너는...그러니 너는 지금도 살아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욕망으로 가득찬 푸른 생명의 잎을 매달고 있다니...그러니 네가 어찌 한갓 사물이것는가...누가 이야기를 죽었다 하는가... 너는 지금도 이렇게 나에게 속삭이고 있거니...서사는 쉽게 죽을 수 없다니...금꽃처럼 빛나는 너의 꿈과 욕망과 생의 의지를 담은 서사의 불은 제아무리 힘센 칼에 버히어도 버히지 않는다니...

사물에 인격이 부여될 때 DU, 너는 그대가 되고 시성이 부여된다니...아, XX! 내 맴의 시가 된 사물이여! 그대! 헤아릴 수 없는 비밀의 문이여! 부글거리는 욕망의 불꽃이여! 

존재차원과 의미차원

자, 여기‘달나라의 장난’을 통해 촉발된 서사의 연금술로서의 해석을 통한 사실의 가치화는 어티케 가능하게 되었는지 보것습니다.

1, 팽이가 돌고 있다
2, 팽이는 스스로 도는 존재다

현존재인 나는 통상 존재자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나=존재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보편자로서의 이데아적 존재자의 형상일 뿐‘지금’,‘여기’라는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존재로서의 개별자인 나는 아닙니다. 1에서 ‘팽이가 돌고 있다’는 진술은‘나무가 서 있다’와 크게 다르지 않고,‘순이가 밥을 먹고 있다’단순 서술과도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을 일반화시켜보먼 '무엇이 어떠하다' 또는 '누가 어찌어찌하다'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철학적으로‘있다’에 해당합니다. 형용사와 동사의, 용언의, 비주체로서의 술어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물(인간)의 존재차원에 즉자적으로 그냥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다’이지‘있다’가 아니다.

그러나 2는 1과 전혀 다릅니다. 2가 1과 다른 이유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1이 일차상태에 머물러 있다먼, 2는 1의 이차상태로 변환되어 있습니다. 이차상태를 일반화하먼 '무엇은 무엇이다'가 됩니다. 이차상태는 명사로, 실체로, 주어로, 중요한 그 무엇something으로 바뀌었습니다. 술어에서 주어로, 사물에서 인간으로, 대상에서 주체로, 자연에서 인간으로...중요한 것은 과연‘이다’이지‘있다’가 아닙니다. 명제화는, 이를 통한 가치화는 하나의 결단이자 의미입니다. 하나의 차이로서 사실의 가치화, 그것은 대상을 대자적으로 인식한 성숙한 해석이고, 의미전환이고 초점화이자 주제화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주제화는 세계-내-존재를 전제로 한다Tematizing presupposes within-the-world”는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전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일차상태로서의 현존재가 단순한 존재차원에 불과하다먼, 이차상태인 주제화는 성숙한 의미차원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여기, 계속해서 등장하는 주제화, 초점화, 가치화는 상호변환이 가능한 서사학의 전문 용어로, ‘주제화’는 하이데거(<존재와 시간>)가, ‘초점화’는 제라르 즈네뜨(<서사담론>)와 미케 발(<서사란 무엇인가>)이, ‘가치화’는 글쓴이의 지적 개념입니다)

중요한 것은 과연 의미차원으로서의 주제화이고, 여기 하나의 가치 있는 삶으로서의 이 주제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해석의 기능입니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딜타이의 해석학을 넘어 '해석학적 존재론'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김수영을 구원한 것이 하이데거였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거기서 저 암귀와도 같은 전쟁과 죽음을 넘어(초월하여) 하나의 근거로서 주제화를 통해 성숙한 해석에서 희망의 언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를 통해 자신을 의미라는 새로운 지평의 세계로 스스로를 역사화하고, 자기화personalizing해낼 수 있는 방법과 암시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게 봅니다.

사진= 김수영
사진= 김수영

 

사실범주와 가치범주

자, 나는 김수영이라는 텍스트를 숙주로 삼아 하이데거의 '개시'와 '해석'을 한국적 철학의 한 개념으로 수정受精시켜 보려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 ‘개시’는 사실범주이고, ‘해석’은 가치범주를 구성하는 기호적 표지입니다.

1, 사실범주; 무엇‘이’어찌하다/묘사/시의 세계
2, 가치범주; 무엇‘은’무엇이다/설명/소설의 세계
3, 정책범주; 무엇‘을’어찌해야 한다/논증/에세이의 세계

여기, 기호의 세계를 사실범주와 가치범주, 정책범주로 그 위계를 다르게 설정한 것은 기호가 '사실'과 '가치', 나아가 ‘정책'이라는 다층적 요소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기호는 다층으로, 레이어layer한 상태로 존재하지 단선의, 레니어linear한 상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호는 발화자의 초점화 의지에 의해 <마담 보바리>처럼 끊임없이 시점 이동하는 가변체4)입니다. 가령, 밀가루로 빵을 굽는다고 했을 때에 있어서 밀가루는 사실이고, 빵은 가치입니다. 밀가루가 있어야 빵도 가능하듯이, 사실이 있어야 가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밀가루가 밀가루인 상태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밀가루가 반드시 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밀가루는 다양한 존재 가능태로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밀가루를 빵으로 굽는 것은 너와 나와의 공감의 일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가치의 세계이자 또한 정책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현대의 텍스트 기호학은 ‘다양성diversity’과 ‘상호성reciprocity’이라는 모럴에 기반 해 있습니다.

대중들의 이야기storytelling가 차고 넘치는 대중 서사, 대중 평자시대의 기본 구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즉 이야기 또한‘사실-事-story’에 대한‘가치-敍-telling’라는 기본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역시 밀가루를 빵으로 굽듯이, 사실을 가치로, 의견으로, 평가로, 의미로 구워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에 더 큰 의미가 부여되듯이, 사실범주에서 가치범주로의 의미변환, 여기에 더욱 큰 의미가 있다먼 김수영이 가치화valuing를 통해 성숙한 해석의 힘으로 자기화시켜 낸 한국철학적 사유의 한 형태로서의‘달나라의 장난’이 던진 철학적 깊이는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가치화 단계에서의 해석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고, 김수영의 시가 산문화 경향을 띠고 소설(철학적 인식론)의 세계에 닿아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봅니다.

-사실범주; 달나라의 장난인 듯 신기한 팽이가 눈앞에서 돌고 있다.

-가치범주; (그러나)팽이는 ‘스스로 도는’ 것이지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해 도는 게 아니다.

그리하여 여기 하나의 철학적 화두로 우리가 주목하지 않으먼 안 될 김수영 사유의 핵심에 ‘스스로 도는’ 팽이와 함께 ‘공통된 그 무엇’이 있습니다. 대체‘스스로 도는’팽이는 민중의 주인됨을 암시한다고 한다먼 ‘공통된 그 무엇’은 또 무엇인가요? 아니, 우리가 두 눈을 비비고 다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김수영은 왜 예의 비수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공통된 그 무엇’에 하나의 시적 상징이자 사회정치적 무의식이라는 추상적 사유의 깊은 철심鐵心을 박아넣었나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시 보건대,‘스스로 도는’팽이라는 능동적이고 성숙한 해석과 더불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과연 비판의 대상으로서의‘공통된 그 무엇’에 대한 관심입니다. 앞에서 보았다시피,‘달나라의 장난’의 김수영 사유의 내적 기원은 6.25라는 사회정치적 환경의 산물입니다. 대체 ‘6.25’와 ‘공통된 그 무엇’은 무슨 관계인가 생각해 보것습니다.

......

6.25가 터지고 잔류파로 남아 미적미적 대던 자유의 신봉자 김수영이 의용군으로 인민군에 끌려가먼서 겪은 말 모할 고통과 깨달음은 산문‘내가 겪은 포로 생활’, ‘나는 이렇게 석방되었다’와 미완성 장편소설 ‘의용군’, 그리고‘연대기적 성격을 띤 시‘조국에 돌아오신 상병포로 동지들에게’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를 찾기 위하여서의 여정이었다
가족과 애인과 그리고 또 하나 부실한 처를 버리고
포로수용소로 오려고 집을 버리고 나온 것이 아니라
포로수용소보다 더 어두운 곳이라 할지라도
자유가 살고 있는 영원한 길을 찾아
나와 나의 벗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현대의 천당을 찾아 나온 것이다”

그러나 자유의 여정은 결코 만만치 않은 길이었음을 곧 깨닫게 됩니다.

“내가 6.25 후에 개천(价川) 야영훈련소에서 받은 말할 수 없는 학대를 생각한다
북원 훈련소를 탈출하여 순천 읍내까지도 가지 못하고
악귀의 눈동자보다도 더 어둡고 무서운 밤에 중서면 내무성군대에게 체포된 일을 생각한다
그리하여 달아나오던 날 새벽에 파묻었던 총과 러시아 군복을 사흘을 걸려서 찾아내고 겨우 총살을 면하던 꿈같은 일을 생각한다”

자, 이것은 한 자연인이, 자유에 대한 막연한 상념을 지녔던 관념론자가 겪은 실로 무시무시한 전쟁의 참상이거니와, 그는 이런 생명의 위급을 겪고 자유를 찾기까지의 여정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을까?

‘나는 지금 자유를 연구하기 위하여 <나는 자유를 선택하였다>의 두꺼운 책장을 들춰볼 필요가 없다
꽃같이 사랑하는 무수한 동지들과 함께
꽃 같은 밥을 먹었고
꽃 같은 옷을 입었고
꽃 같은 정성을 지니고
대한민국의 꽃을 아미 위에 동여매고 싸우고 싸우고 싸워왔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나 순진한 일이었기에 잠을 깨고 일어나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지 않았나 하는 신성한 착감(錯感)조차 느껴보는 것이었다”(밑줄-글쓴이)

자, 여기 한 자연인은, 아니 관념론자는 전쟁의 참상을 겪고 국가에 대해 회의의 눈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는 시인이기 전에 회의주의 철학자였습니다. 아니, 그는 시적 무정부주의자였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그는 국가를 위해, 대한민국의 자유라는 꽃을, 이상을 위해 싸운다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착각이라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하나의 관념론이자 정명론, 실재론으로‘공통된 그 무엇’에 대한 비판의 시선이, ‘스스로 도는’ 팽이를, 민중들의 자유로운 인생을 망가뜨리고 있는,‘뚱뚱한 주인’으로 상징되고 있는 국가라는 존재에 대한 비판의 눈길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대체 이런 인식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그것은 과연 한 자연인이자 연약한 시인이 전쟁을 통해‘말할 수 없는 학대’와, ‘체포’와,‘총살을 면하던 꿈같은 일’을 겪은 개인 체험의 결과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개인의 체험적 진술이 공명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분명 시대의 진실과 통하기 때문이 아닌가. 

대체 국가란 나에게 무엇인가.‘국가’에 대한 깊은 사유를 던져준 근대 철학자는 세계정신의 사무총장이라는 헤겔입니다. 그는 당대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이자, 프로이센(후에 독일)의 국민철학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쓴 대표적인 국가철학서가 바로 <정신현상학>에 이는 <법철학>입니다. 그러나 헤겔은 이를 통해 국가가 전부이고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며 도덕은 정신의 생에 종속되는 하나의 형식이라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헤겔은 프로이센 국가의 변호자란 지적5)처럼, 헤겔은 국가철학의 신봉자로 그의 철학이 왜 프랑스 혁명을 낳은 부르주아의 철학을 대변함과 동시에 하나의 종족주의로서 국민과 국가를 최우선으로 하는 독일적 파시즘을 상징하는 국가철학이 되었는지, 왜 그의 철학이 인간성 옹호라는 본래의 숭고한 취지와는 다르게 결과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부정하는 전체주의 논리의 학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것은 당파적으로 볼 때, 철학 역시 하나의 태도 표명으로 ‘국가’와 ‘개인’ 간에 걸친 오랜 투쟁에서 그가 개인보다는 국가편을 들었던 우파 철학자였기 때문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로부터 헤겔 철학의 진정한 탄생지요 비밀이라는 찬사를 받은 <정신현상학>은 전문가6)의 해설에 따르먼 “웅장한 사상체계와, 치밀하고 심오하며 오묘하기까지 한 헤겔 특유의 변증법적 사유논리가 실로 인간과 신과 자연을 포함한 전체의 본질 규명을 위한 궁극의 경지를 아우르는 초인간적인 고투의 결실”이라지만, 그 근본에 있어서는 자신이 서설에서 밝힌 바대로 “철학이란 그 본질상 특수적인 것을 내포하는 보편성을 지반으로 하고”있는 것으로, 그 철학적 보편성을 지반으로 하고 있는 절대정신의 철학은 과연 “오직 정신적인 것만이 현실적인 것이다”란 말에서 반복 변주되고, 이렇게 정신의 경험을 체계화한 <정신현상학>은 정신의 현상만을 다루는 진리의 세계로, 다시 “진리는 곧 전체이다”란 명제로 부연되거니와, 헤겔 철학은 전혀 관념철학의 성격을 지닌 것이자 국가를 최우선으로 하는 민족 파시즘화를 옹호하는 위험한 씨앗을 품고 있는 우파의 샘으로 기능했던 사유체계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런 국가 중심의 전체주의 철학은 잇달아 내놓은 작품들을 통해, 특히 <법철학>에서 그 완성태로 나타났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국가는 하나의 건축학적 구조물, 또는 현실 세계 속에 나타난 이성의 상형문자”라고 거창한 의미를 박아넣었거니와, 그 유명한 서문에서 또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며 현실을 합리화, 속물화(니체, <반시대적 고찰>)하는데 기여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국가를 지상의 신처럼 숭상해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는 헤겔의 모습에서 우리는 국가지상주의로서의 헤겔 철학의 궁극적 지향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헤겔의 이런 국가(민족)지상주의 철학은 전체주의 논리에 다름 아니며, 한국의 우파 지성7)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분명 정신의 나치즘에 다름 아닙니다. 이런 인식을 전제로 하고 볼 때, 김수영이 하나의 해석학적 혁명으로 ‘달나라의 장난’을 통해 보여준 실재론으로서의 서구 전통의 관념철학을 집대성한 헤겔적 국가철학을 연상시키는‘공통된 그 무엇’이라는 충격적인 사유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바로 국가 또는 민족으로 연상되는 당시의 부도덕한 국가 질서와 가치에 대한 정치적 무의식을 드러내고자 했던 탈은폐 기도이자 하나의 문화사적, 철학적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what matters is that~

중요한 것은 과연 국가라는 집단의 성격을 놓고 자신의 의견을 용기있게 드러내고 있는 이런 충격적 인식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라는 기원의 내적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6.25라는 민족사의 비극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특히 <전쟁과 사회>(김동춘, 돌베개, 2020)라는 신뢰할만한 저술을 통해 한국전쟁의 마고스적 대립과 민간인 살해의 무시무시한 죄악의 실상, 그 알튀세르적 의미에서의 국가 이데올로기적 장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보기 드문 걸작을 통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27일 밤 서울은 혼란 그 자체였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되었고, 이제 서로가 서로를 가리켜 반역자라고 아우성치는 아비규환이었다. 서울을 사수하자던 대통령과 행정부가 서둘러 서울을 떠나게 되자 이제 국가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이제는 정부고 뭐고 믿을 것이 못 되는 것이고 각자도생의 생지옥이 연출될 판”이었다. 전쟁에 대한 국가의 완전한 무방비 상황, 대통령의 은밀한 피란, 국민에 대한 거짓 전황보도, 그리고 국가기구의 핵심구성원들의 이기적인 행동은 아노미 상황을 부채질하였다. 당시 교사였던 리영희가 회고하는 것처럼 학교를 사수하자던 교장이 “피란 보따리를 먼저 싸는”것을 목격한 교사들이 “강도처럼”캐비닛을 뺏어서 돈을 분배하던 모습은 바로 ‘국가’에 배신당한 ‘국민’들이 생존을 위해 가장 이기적이고 부도덕한 상황을 연출한 전형적인 풍경이었다. ”(158쪽)

그러니까 하나의 단적인 사례로 한강다리를 건너려다가 국가의 폭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대다수 민중들은 국가가 더 이상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지 모하며, 또 책임져 주지도 않는다는 것을 각성하게 된 것입니다. 뭐 말 그대로 국가는 더 이상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값비싼 댓가를 치르고 실재론에 대한 미망迷妄에서 벗어나게 되는 소중한 유명론적 체험이었습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국가’는, 또‘민족’은 나에게 무엇이었는지...6.25는 이렇게 권력의 외부에서 국가로부터 아무런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모하고 겉돌기만 하던 힘없고 불쌍한 민중들이 국가니 민족이니 하며 듣기 좋은 말로 주워대는 말들이 사실은 권력을 움켜쥔 자들이 자신들을 어르고 달매가며 속여먹기 위한 허튼수작임을 깨닫게 하고, 대한민국은 해방된 국가이고, 민주주의 국가라는‘의사擬似 현실’이라는 가상에서 벗어나 살상으로 가득 찬 무시무시한‘실제實際 현실’을,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대면하게 하는 미증유의 역사 체험이었습니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할 수 있는 한 존중받을 수 있는 가치이지만, 거꾸로 인간을 노예나 동물의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상황에서 국가와 민족을 존중하자는 주장은 허구일 수밖에 없다.”(408쪽)

여기, 김동춘의 지적 그대로, 당시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모한 이승만 정부와 행정부는 허구 그 자체였습니다. 그것은 뭐 쩍! 하고 얼음이 깨어지듯이, 민중들의 머리를 깨는 망치와도 같은 뼈아픈 고통이자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국가의 그 죄악적 실체를 경험했을망정 이런 국가를 사유한 적이 없습니다. 일제시기, 우리는 나라를 세우기도 전에 ‘빼앗긴 들’을 걱정해야 했고, ‘가버린 님’을, ‘산산히 부서진 이름’을 그리워해야 했습니다. 해방 이후, 우리는 다행히 한반도에서 우리의 손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결정적 시기를 맞았으나,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구제하고자 할 때는 오직 우리 자신의 힘에 기대는 수밖에 없8)기 때문인데, 불행히도 남과 북이 모두 타력에 의해 급격하게 국가가 건설되고 말았으니, 뭐 헤겔의 말대로 하나의 건축학적 구조물로서, 현실 세계 속에 나타난 이성의 상형문자를 충분히 숙고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모하였으니, 그리하여,‘국가’의 본질과 실체에 대해, 예의‘공통된 그 무엇’에 대한 철학적 주제를 놓고 본격적으로 사유의 대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헤겔 우파에 대한 반정립이자 하나의 대안으로‘스스로 도는’팽이로서의 시민의 권리보호를 위한 투쟁에 나서본 적이 없는 우리로서, 그리하여 그 언제 오롯하게 국가에 대해 사유해본 경험이 전무한 국민들에게 그가 제시한 한국적 사유의 시적 구현으로서 김수영이 보여준 정치적 무의식으로서의 탁월한 해석학적 혁명을 여기‘달나라의 장난’을 통해 보게 된 것입니다.

이제까지 본 바대로, 김수영 사유의 그 반헤겔적 성격으로서의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은 6.25라는 한국전쟁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강박으로 김수영이‘민족주의nationalism'에 대한 심한 비판을 계속해서 쏟아내고, 어느 평자의 말대로 김수영의 시적 주제는 우파 평론가에게 계속해서 자유9)일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유도, 그리고‘민중’이라는 당파적 언어가 하나의 개인취향을 넘어 당대의 새로운 인식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자각적 계층에 대한 한국적 사유의 개념도구로, 한국철학의 민중지향적 요소로 기능하고 있는 것 또한 바로 여기에 그 사유의 내적 기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공통된 그 무엇’과 더불어‘스스로 도는’팽이로서의 민중적 자각과 주체의식은 또한 어디서 나온 사유의 덩어리인가지... 김수영 사유의 외부를 사유하먼서 이를 다시 재구해 보것습니다.

2-2, 김수영 사유의 외적 기원

김수영 사유의 반헤겔적 사유로서의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의 핵심에 하이데거가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앞에서 본 바대로 다름 아닌‘공통된 그 무엇’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헤겔에게는 아직도 존재가 스콜라적인 보편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이데거에서의 존재는 이미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르트르, <존재와 무>, 동서문화사, 1994

그러니까 하이데거뿐만 아니라 그에게 사사받은 사르트르는 물론, 김수영에게도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개별자이지 보편자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전후에 나타나 한 시대를 풍미한 철학사에서의 현상학적 실존주의요,‘달나라의 장난’에 나타난‘스스로 도는’팽이에 대한 민중, 곧 타자에 대한 자각이었습니다. 

보편자-공통된 그 무엇
개별자-스스로 도는 팽이

자, 그렇다먼 이번에는 김수영 사유의 외부, 바깥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것습니다. 모든 것은 상호작용의 결과라니 시대의 외풍을, 당시 해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그 또한 피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니 외풍의 실체를 좀 철저히thoroughly 다루어 보것습니다.

김수영의 시가 난해하다는 일반적인 세평과 달리 '달나라의 장난'은 그리 어려운 작품이 아닙니다. 아니 소소하고 친숙한 일상의 단편처럼 화자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처럼 술술 읽히고 있습니다. 하나의 산문시로서 형식적으로도 그만큼 민중에게 무리없이 다가간 무엇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무론 그렇다고 해서 간단한 작품은 아닙니다. 요소요소에 박아 넣은 이데올로기적 표지 가령, '별세계', '뚱뚱한 주인', '공통된 그 무엇', ‘스스로 도는 팽이’등이 저 70년대 김지하의 '오적'을,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연상께 할 만한 시어들이 결코 만만치 않은 현실인식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것은 과연 부패한 정치 현실과의 대결을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높은 가독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주의깊게closely 볼 부분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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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책을 읽는 일도 고통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 고통 속에서 찬란한 금꽃*이 피어납니다. 하이데거의 유명한 철학서 <존재와 시간>(1927)을 다시 읽었습니다. 순전히 김수영론을 위해서 말입니다. 어느 때인가 두려움인지 의무감인지 모를 청춘의 에너지가 있어 한번 읽어 두었던 경험이 도전을 가능케 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대체 분량도 만만치 않은 데다 그 다 삭이지 모할 편집증에 가까운 지독한 분석과 난해함이라니... 그러니 이런 책을 재독, 숙독하것다고 마음을 먹는 일이 더 어렵고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김수영 덕(?)에 재독, 숙독을 거치고 나니 참 잘했다는, 아, 고전은 역시 고전이구나 하는 느낌입니다. 아니 솔직할 느낌으로 철학서도 이렇게 재미있구나 하는 격한 페이소스가 밀려오는 것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렇다먼 대체 <존재와 시간>은 어떤 책인가?

좀 상업적인 카피이이기는 하지만 언론에 소개된 내용을 보것습니다.

"What is the meaning of being?" This is the central question of Martin Heidegger's profoundly important work, in which the great philosopher seeks to explain the basic problems of existence. A central influence on later philosophy, literature, art, and criticism-as well as existentialism and much of postmodern thought-Being and Time forever changed the intellectual map of the modern world. As Richard Rorty wrote in 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 "You cannot read most of the important thinkers of recent times without taking Heidegger's thought into account."(밑줄-글쓴이)

밑줄 부분을 통해 보건대, 대철학자가 썼다는 <존재와 시간>은 현대세계의 지적 지도를 영원히 바꿔놓은 철학사의 고전이 아닌가 말입니다. 잘 알다시피, 고전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살아남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고전이 다 고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 사람들 저마다의 편차와 취향과 기질과 여건이라는 전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제조차 넘어서는 몇몇 위대한 철학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부분이 언급하는 바대로 머 플라톤을 위시하여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그리고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하이데거랄까 아니 최근의 푸코, 들뢰즈 정도랄까. 추가한다먼 바흐친 정도랄까. 나머지는 머 그렇다고 싸잡아 말할 수는 없지만, 아니 그래서도 안 되지만 그러나 철학사에도 분명 그 누구도 쉽게 넘어설 수 없는 거봉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 그렇다먼 대체 하이데거는 어찌하여 철학사의 거봉인가, 아니 우리의 김수영은 왜 이런 하이데거에 몰두하였단 말인지 우리는 이런 것들이 참으로 궁금한 게 사실입니다.

하이데거의 위상이 어떠한지 함 보것습니다.

우선, 프랑스 철학의 자존심이라 일컫는 장 폴 사르트르(1905~1980)가 젊은 시절(1933) 후설과 하이데거를 배우기 위해 독일 유학을 떠났을 정도로 그의 위상은 가볍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현실과 낯선 관계를 유지하며‘철저히 혼자 살고 있’는 로캉탱의 이야기를 다룬 실존적 소설 <구토>(1938)가 쓰여졌고, 이를 철학적으로 풀어 쓴 <존재와 무>(1943)를 써서 일약 세계의 철학자가 되었으니, 대체 왜 하이데거였더란 말인가. 그것은 이미 칸트, 헤겔을 넘어 딜타이, 후설, 니체를 계승 현대철학의 지도를 영원히(?) 바꾸어 놓은 하이데거의 새로운 철학의 강물이 거기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음, 사르트르 못지않은 프랑스 철학의 아이콘 미셸 푸코를 보것습니다. 그는 자신의 철학적 수기에서,

"나는 헤겔을 읽기 시작했고 이어서 마르크스를 읽었으며, 그후 하이데거를 읽었다. 내가 하이데거를 읽을 때 뽑아 놓은 노트가 몇 톤은 좋이 될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것을 전부 보관하고 있다. 그것들은 헤겔이나 마르크스를 읽으며 작성한 노트와는 또 다른 중요성을 갖는다. 나의 모든 철학적 형성은 하이데거의 독서에서 결정되었다. 그러나 니체가 그것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니체에 대한 나의 지식은 하이데거의 그것보다 훨씬 우수하다. 그러나 여하튼 그 두 경향의 철학은 나의 기본적인 철학체험이다. 아마 내가 하이데거를 읽지 않았다면 니체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그린비

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헤겔이라는 열쇠 구멍을 통해 독일철학의 창고에 들어가 독일철학의 거인들을 차례로 만났습니다. 자, 이런 사실들은 하나의 영향사로 중국의 문화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왔듯이, 가장 프랑스적인 철학자들이 가장 프랑스적이지 않은 독일에 그 철학적 시원을 두고 있음을 보게 한다는 점에서 문화의 의미를 생각케 하먼서도 매우 이례적이고 역설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연 사르트르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자존심이 높은 현대철학의 대가가 하이데거를 자신의 철학의 근본 줄기임을 시인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실은‘분명’하이데거가 마르크스, 니체와 더불어 현대 철학의 거봉임을 증명하는 객관적인 표지라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대시인 김수영 또한 이런 하이데거에 주목했습니다. 대체 그는 왜 하이데거에 주목하였을까. 시인에게 하이데거의 사유체계가 무엇이길래 그렇게나 자존심이 세고 성질이 까다로웠다는 시인에게 그렇게 큰 문학적 자양이 되고 철학적 사유의 밑거름이 되었단 말인가. 

잘 알다시피, 이 세계에는 다양한 사유체계들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신’ 중심의 존재-신-론적 구성틀을 지닌 고중세적 사유체계입니다. 쉽게 말해서, 나의 존재 근거가 신이니 뭐 '신이 있으므로 나도 있다'는 연역적 사고체계입니다. 플라톤의 이데아 모델을 비롯,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론 이래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자를 거쳐 칸트의 사물 자체, 헤겔의 절대정신에 이르는 서구철학의 지배적 담론a dominant discourse을 이끌어온‘실체’중심의 관념론적 형이상학은 모두 그 차이와 반복으로서의 이의 모작模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구현대철학, 특히 하이데거와 데리다는 이를 '현전의 형이상학'이라 합니다.

둘째는 '인간' 중심의 합리론적 구성틀을 지닌 근대적 사유체계입니다. 머 가장 대표적인 것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이른바 자아 중심적인 근대의 ‘코기토cogito’ 사유입니다. 첫째든 둘째든 모두 신-인간, 인간-자연처럼 이원론적이고 배타적인 특징을 이루는 철학으로 칸트, 피히테, 헤겔을 통해 종합 지양된 철학적 사유로 근대의 계몽철학과 분류학이라는 큰 줄기를 형성합니다. 그러나 신이 인간으로 바뀌었을 뿐 그 중심에 대한 실체적 사고의 뿌리는 그대로입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이를 대변합니다.

셋째는 ‘현존재’ 중심의 존재론적 구성틀을 지닌 사유체계입니다. 니체를 비조로 딜타이, 후설, 하이데거, 사르트르의 실존철학, 또 다른 줄기의 마르크스까지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탈근대적 현상학적 사유체계입니다. 인간 중심의 합리론적 구성틀이 이원론이라먼, 현존재 중심의 존재론적 구성틀은 일원론입니다.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가 이를 상징합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것처럼 존재론적 구성틀은 전통의 실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매우 전복적이고 획기적이라는 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왜 '정신'에서 '실존'으로, ‘실체’에서 ‘관계’로 이렇게 서양의 사유체계가 바뀌기 시작했을까요. 그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성-사르트르가 <구토>에서 '나를 불쾌하게 한 그 커다랗고 흰 덩어리'라 했던 관념으로서의-대한, 이성을 기반으로 한 서양의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프랑케쉬타인적 악몽-이것이 저‘베이컨’과 ‘오디세우스’로 대변되고 있는, 일군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철학자들이 말하는 '계몽의 신화'입니다-이고, 그것이 바로 민족 신화, 전체주의에 기반한 세계대전이었습니다. 이에 존재에 기반을 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세기말적 불안과 죽음의식이 실존철학 또는 현상학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인간 ‘존재’에 대한 관심은 시들고, 다시 ‘구조’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었으니, 그것이 바로 구조 중심의 시스템에 대한 사유체계입니다. 소쉬르(형태)를 필두로 레비-스트로스(신화소), 프로이트(무의식), 마르크스(하부/상부구조), 니체(영원회귀), 들뢰즈(차이와 반복), 푸코(고고학) 등으로 니체의 계보학에 영향을 받은 지식의 고고학의 푸코적 핵심개념인 '에피스테메episteme'-지식의 기본구조를 말합니다-가 대표적인 개념입니다. 가령, '나는 사과를 먹는다'라고 우리는 무심코 글을 꾸미지만 이 무심코 쓰는 관례화된 의식에도 사실은 하나의 구조로서의 무의식적 메카니즘으로 '주목술' 구조가 작동하고 있으니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주체인 인간이 아니라 언어라는, 문법으로서의 구조라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다양한 사유체계 가운데 우리의 김수영은, 아니 그가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는 하이데거의 위상이 이제 어디쯤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이데거를, 그를 숙독했다는 김수영을 전체의 사유구조라는 틀에서 매의 눈으로 멀리 보고 상대화 하려는 것은 하이데거도 김수영도 결코 신화화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과연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구성틀로서의 사유체계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왜 그는 유독 이런 하이데거의 사유체계에 매료되었는지, 그 배경은 무엇이며, 이를 시적 성취로 얻어낸 결과가 또한 얼마나한 의미를 지닌 것인지, 나아가 이것의 한계는 무엇이며 우리가 결과적으로 수용하고 극복해야 할 김수영의 문학적 유산이 무엇인지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톺아보는 일입니다.

김수영이 하이데거에 주목, 몰두하게 된 것은 그 밀도 있는 사유의 체계도 매혹적이었지만 전후의 죽음과도 같은 불안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근거, 자신이 앞으로 무엇에 의지해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생의 북극성으로서의 인생의 확실한 좌표축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비단 김수영만은 아니었습니다. “전쟁 속의 피난 대학에서 키에르케고르, 엘리어트, 사르트르, 카뮈, 말로와 하이데거가 흘러나왔다”고 한국의 시인은 술회하고 있습니다(고은, <1950년대>). 그러나 그는 철저히 파고들었습니다. 이점이 동료문인들과 다른 지점이었음에 분명합니다.

임동확(한겨레. 2021. 7.19 거대한 100년 김수영 '하이데거'편)에 따르먼, 김수영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입관할 때, 그의 아내 김현경 여사가 그의 관에 '틀니'와 함께 넣어준 것은 하이데거의 주저 <존재와 시간>이었다 합니다. 중요한 것은 다음 대목입니다. "김 여사는 첫번째로 구입한 일본어판 하이데거 전집이 낡고 닳아 한번 더 또 다른 전집을 구입했을 정도로 하이데거에 심취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김수영은 철학자 하이데거를 롤 모델로 정하고 그를 닮으려고 애를 쓰고 숙독하고 이를 '자기화personification'함으로써 시인으로써 성숙했다고 볼 수 있는 창조적 모방의 대표적 케이스입니다.

자, 여기 김수영이 보여준 자기화의 과정은 과연 하나의 창조적 모방의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창조적 모방’이라니...대체 그것은 어떤 것인가. 창조적 모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하나의 모본母本으로서의 원형이 있어야 합니다. 가령, 호메로스의 경우를 보것습니다. 오래전부터 <시경詩經>이 동양문화에서 그런 것처럼, 꼭 그처럼 호메로스 또한 서양문화의 전범으로 인식되어 왔거니와 특히, <오디쎄이아>는 그 소설적 이야깃거리가 무진장하게 묻혀있는 풍요한 서사의 보물창고입니다. 거기 ‘폴리페모스’라는 외눈박이 거인이자 괴물monster은 하나의 원형서사로서 이후 서국문학에 그 풍부한 소재를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디쎄우스가 귀향 중에 저승으로 가서 죽은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를 만나는 유명한‘저승’편은 하나의 원형 모티프로 호메로스를 계승한 로마의 시인 베르질리우스에 의해 대서사시 <아이네이스>의‘저승으로 가서 아버지를 만나다’로 다시, 이를 계승한 이딸리아의 대시인 단테에 의해 서사시 <신곡>의‘지옥’편으로, 또다시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파우스트>로 창의적으로 모방, 계승되먼서 하나의 불사의 형식이자 마르지 않은 수원水源으로, 그 서구문학사의 대하장강으로서의 위용을 찬란하게 드러내며 줄기차게 흘러내려왔던 것입니다. 

내가 평생을 두고 사숙私淑하는 도스또예프스끼도 마찬가집니다. 그가 세계명작 <죄와 벌>을 쓸 때, 평소 프랑스어에 능숙했던 그의 손에는 항상 발작의 <고리오 영감>과 위고의 <레 미제라블> 원본이 들려 있었다고 아내가 쓴 회고록(<나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아내>)이 술회하고 있습니다. 

사실 <고리오 영감>의 '라스티냑' 없이 어찌 러시아의 라스티냑, '라스콜리니코프'가, 로쟈가 나올 수 있었을 테고, <레 미제라블>의 '자베르' 경감 없이 어티케 '뽀르피리' 예심판사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며, 가난한 법과대학생 라스티냑이 루싱겐 부인에게 받은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혼자 고리오 영감의 장례를 치러줬던 선례 없이 어티케 가난한 법과대학생 로쟈가 시계 등을 전당포에 맡기고 받은 돈을 소냐의 아버지 마르멜라도프의 장례비에 보탤 수 있었는지, 또한 보트랭에게 암시받지 않고서 어티케 저 프랑스 혁명의 영웅이자 천재 나폴레옹에 대한 길고 긴 탈근대적 비판적 사유의 씨앗을 심어놓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팡틴느' 없이 어티케 우리의 청순한 창녀 '소냐'가 나올 수 있었겄는지... 머 루카치의 말대로 라스콜리니코프는 19세기 후반의 라스티냑인 것입니다. 

이것은 문화의 모방적 전이에 대한 훌륭한 본보기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죄와 벌>에 대해 모방작이니 아류작이니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쇠가 빠지게 닳고 닿도록 자세하고 오랫동안 프랑스의 선배 작가 작품들을 사숙하고, 숙독하먼서 이를 러시아적 문화현실에 맞게 재해석하고 창의적으로 모방, 변용했을 뿐만 아니라 성공적으로 개작, 창조해 낸 것입니다. 부성父性 중심의 가톨릭 모델과 달리 모성母性 중심의 러시아 정교 모델이 두드러진 것도 그 중의 하나인데, 그것은 예의‘자기화personification’의 결과로 자기화란 이렇게 거장 도스또예프스끼처럼 그 범용한 정도에 있어서나 세계적 수준에 있어서나 자기만의 독창적인 사유를 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자, 그렇다먼 우리의 김수영은 또 다른 거장 하이데거를 사숙하먼서 그 무엇을 얻어냈더란 말인가. 아니, 그는 어티케 해서리 그만의 독창적인 사유의 불을 뿜어냈더란 말인가? 이런 문화적 전이에 따른 창조적 모방 성격으로서의 사유의 결과물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제대로 밝혀놓지 않으먼 김수영에 대한 그 어떤 전언도 그저 신화 만들기에 다름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봅니다.

초발심이라니, 중요한 모든 것은 첫 장에 담겨있습니다. 독자에 대한 배려로 하나의 상징과도 같은 큰 밑그림으로 바로 그곳에 저자들은 대개 자신이 글을 쓰게 된 동기와 의도, 이 글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을 드러내 놓기 마련입니다. 하이데거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김수영이 그토록 닳고 닳도록 숙독했다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서론 존재 의미에 대한 물음의 설명' 제1장을 넘기먼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제목을 볼 수 있습니다.

‘존재문제의 필연성, 구조 그리고 우위’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먼 해석학과 현상학, 그리고 실존철학 등 ‘실체’에서 ‘관계’로 기운 현대유럽철학의 흐름에 많은 영향을 미친 하이데거의 난해한 철학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럴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하이데거 철학을 재미있게 공부해 보것습니다.

첫째, 하이데거가 제일성으로 ‘존재문제의 필연성’을 깃발처럼 꺼내든 것은 기존의 존재문제를 다룬 고대의 존재론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고대의 존재론을 대변하는 철학자로 누구든지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도 마찬가집니다-을 들고 있는데, 그는 ‘이데아idea’ 라는 현실을 떠난 형이상학적 정신을 하나의 순수한 원본이자 부동의 존재 개념으로 설정하고서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원론적 사고체계를 구성해낸 철학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하이데거가 볼 때에 있어서 이건 뭐 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존재의 철학은 한마디로 ‘있다’의 철학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가령,‘나는 방에 있다’처럼 존재가 올바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존재의 주체인 ‘나’도 있어야 하고, 하나의 토포스로서 그 존재가 놓인 구체적인 상황 ‘방’도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지금 현재, 여기에 있는 나라는 현존재를 언급하지도 않으먼서 하나의 대전제로서 검증되지도 않은 존재가 무조건 ‘있다’라고 철학을 논한다는 것은 나무도 터무니없다는 것입니다. 자, 이것은 참으로 공감이 되는 타당한 논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따라서 여기에서는 선입견에 대한 토론을 하되,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다시 재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관점에서 하기로 하자.”라고 하먼서 존재는 가장 보편적이고 정의될 수 없으며, 자명한 것이라는 전통적인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며 고도의 추상적 사유를 지닌 강밀하고 난해한 언어로 각개격파 해 나가먼서 <존재와 시간>의 서장이 시작되고 있으니,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독자들은 첫장을 넘기기도 전에 뻑! 하고 나가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둘째, 그러나 현존재의 본질은 하나의 ‘구조’로서 “어떤 세계 안에 존재한다”라고 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이데거적 존재론의 핵심 개념 중의 하나인 ‘세계-내-존재within-the-world’개념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라는 현존재는 분명 고대의 존재론적 설정과는 다른, 그러니까 하이데거적 존재론에서의 현존재는 먼저 그 존재자 스스로가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지만, 존재문제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즉 나를 올바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어떤 존재자-묻는자-자신을 그 존재로서 대전제하여 전망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 현존재인 내가 놓인 세계-내적 인식이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니, 이것은 어떤 것을 파악할 때에 있어서 고대적 존재론처럼 연역적으로 어떤 실체를 전제하고 논증한 것이 아니라 거시적으로 이 세계와 나와의 관계에서 현존재를 바라보기 시작했던 것이니, 니체 이후 하이데거에 이르러 비로소 전통적 '실체의 철학'에서 현대의 '관계의 철학'으로 이행하게 된 것이니, 이것은 전혀 하이데거의 공이 크지 않은가 하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오늘날의 그 모든 것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동양의 유기적 자연관the organic view of nature in the east 관점에서 보더라도 매우 과학적 객관성과 엄밀성을 지닌 사유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방에 있다’에서 ‘세계’는 ‘방’이요, ‘내’는 ‘나’요, ‘존재’는 ‘있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먼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세계-내-존재’로서의 현존재인 ‘나’인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보편적이먼서도 정밀한, 부정하기 쉽지 않은 사유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셋째, 앞에서도 보았듯이 이제까지의 존재론은 잘못되었다는 것이요, 그러니 현존재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요, 그것은 무엇보다 머 인간이라는 현존재가 상황 속에 놓인 존재라는 객관적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존재자에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현존재’는 세계 내 현실에 근거 짓고 살아가는 구체적인 관계에 터한 개별적 인간에 대한 하이데거적 개념이고, ‘존재자’는 이런 현존재를 초월한 이데아적 본질로서의 실체적 존재를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과연 하이데거가 현존재를 존재자보다 우선한다고 본 것입니다. 이것은 하이데거의 사상적 후계자인 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 선언과 전혀 동일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이데거가 밝히고 있듯이, “이렇게 하여, 현존재가 바로 다른 모든 존재자들에 우선하여 존재론적으로 또한 일차적으로 물어져야 할 존재자임이 판명되었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철학사의 일대 혁명적 사건입니다. 우리가 왜 하이데거! 하이데거! 하고 외치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뭐 하이데거가 후설과 니체 등을 이어받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로 상징되는 철학적 거인들을 거세게 두드려 패고, 그들이 세운 거대한 전통을 통째로 뒤집어엎고 물구나무 세웠으니 말입니다. 

무론 이런 철학사에 대한 전복적 인식은 하이데거만의 것은 아닙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헤겔을 넘어 현대철학을 주초한 니체와 마르크스, 도스또예프스끼 또한 헤겔과의 싸움을 통해 현대철학을 열었던 것이니, 하이데거만이 철학의 제왕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먼저, 니체를 보것습니다. 그는 <도덕의 계보학>(연암서가)에서 말했습니다. “플라톤 대 호메로스, 이것이야말로 완전하고 진정한 적대관계이다-전자는 최선의 의지를 지닌 ‘저편 세계의 인간’이자 삶의 위대한 비방자이고, 후자는 뜻하지 않은 삶의 숭배자이자 금빛 자연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먼서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까먼서 일생을 보낸 안티-플라토니스트가 바로 니체입니다. 그런 그가 말하였습니다. 

“철학자들은 가상, 변전, 고통, 죽음, 신체적인 것, 감관, 운명이나 부자유, 목적 없는 것에 반항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니체, <권력에의 의지>, 청하)

라고 철학자들이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던 미신-철학은 영원한 것, 또는 정신에 해당하는 형이상학을 연구하는 것이라는 고대적 존재론-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을 통해 현실을, 감각을 중시해야 한다고 보았으니, 그는 참으로 전통 철학에 대담하도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던 현대철학의 진정한 비조가 아니었는가 말입니다. 이것은 물론 하이데거의 인식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다음으로, 마르크스를 보것습니다. 마르크스 하먼 우리는 그가 ‘사회적 존재는 의식에 앞선다’를 주장한 혁명적 철학자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독일 이데올로기를 ‘새롭게’ 세우고자 했던 그의 의식을 집약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왜 독일 이데올로기를 새롭게 정초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그동안 ‘의식은 존재에 앞선다’는 관념 우선주의에 머물던 칸트-칸트의 종합(<순수이성비판>)은 놀라운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그 알 수 없는 초월적 객관 존재로서의 ‘사물 자체’에 대한 여지를 남겨놓음으로써 그 또한 신적 형이상학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와 피히테-피히테(<독일국민에게 고함>) 또한 인간은 타고난 도덕성을 지니고 있다는 관념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모한 인종주의 철학자였습니다-를 비판적으로 지양, 종합하며 당대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이자, 프로이센(독일)의 국민철학자가 된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물구나무 세운 전복적 인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마르크스는 자본의 초고에 해당하는 <경제학-철학-수고>에서 “우리는 헤겔 철학의 진정한 탄생지요 비밀인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출발해야만 한다.”라며 자신의 철학적 기원을 인정하먼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기 바깥에 자신의 자연을 갖고 있지 않는 존재는 결코 자연적 존재가 아니며, 자연의 존재에 관여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바깥에 대상을 갖고 있지 않은 존재는 결코 대상적 존재가 아니다.”(밑줄-글쓴이)

자, 이것은 당대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이자 국민철학자인 헤겔을 무너뜨린 유명한 비판입니다. 잘 알다시피, 헤겔은 주저인 <정신현상학>에서 이성의 힘을 통해 자기의식을 지닌 대자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주목했습니다. 그것이 여기서 말하는 ‘대상적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말대로 헤겔의 대상적 존재는 절대정신으로서의 자유의 변증법을 설파, 부르주아적 이념을 대변했던 근대의 주관철학자의 그것이었지 마르크스처럼 객관적 사실, 즉 ‘자연’이라는 변화가능한 역사적 이념을 대변한 변증법적 철학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여기, 마르크스가 주목한 ‘자연’은 바로 하이데거적 의미에서의 ‘세계’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마르크스적 계급당파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러니까 마르크스10)가 헤겔을 어디까지나 근대의 국민경제학자로 인식하고 있듯이, 헤겔이 부르주아 민족주의에 기반한 시민국가이론을 대변한 철학자임에 분명하다는 사실입니다.

“헤겔의 전체철학은 진화, 즉 역사성의 철학이었으며, 필연적 진보의 철학이었다. 헤겔은 맨 처음부터 프랑스 혁명의 극좌파를 싫어했고, 마침내 전적으로 보수적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프랑스 혁명이 부르주아 사회의 기초로서 갖는 역사적 필연성을 한시도 의심하지 않았다. ”

-에릭 홉스봄, <혁명의 시대> 한길사, 1998

그리고 우리는 소설가이자 사상가였던 세계의 문호 도스또예프스끼에게서 또한 하이데거의 동반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대체 그 또한 헤겔과의 싸움을 통해 인간(성)을 옹호한 위대한 작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료를 보건대, 도스또예프스끼가 시베리아 옴스크 감옥에서 나올 때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간과overlook할 수 없는 대목이 있습니다.

"헤겔 책을 보내다오. 내 생애는 거기에 달려 있다."

-에드워드 카, <도스또예프스끼 평전>, 열린책들, 2011

헤겔이 과연 누구인가요? 그는 서양철학사의 천산산맥이자 파미르고원이 아닌가 말입니다. 우리는 그를 넘어야 비로소 저 드너른 세계사상사의 지평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이 헤겔을 목숨을 건 경쟁의 상대로 삼아 공부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도스또예프스끼는 결코 간단한 소설가가 아닙니다. 아니 그런 만큼 니체가 소크라테스를 망치로 가격한 위대한 사상가인 것처럼, 이 니체의 스승인 그 또한 헤겔을 넘어서고자 했던 위대한 사상가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보여준 게 바로 철학적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이고 걸작 <죄와 벌>인 것입니다. 그는 왜 미친놈처럼, "2×2=4라는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의 시작이다”이라고 했을까요? 아니, 그는 왜 미친 놈이 되어서는 천재(나폴레옹)는 청동으로 된 존재인가 라며 아무 죄도 없는 노파와 리자베따에게 도끼를 내려쳤을까요? 아니, 그의 소설(<카라마조프네 형제들>)에서 끊임없이 출현하는 프로이트적 ‘부친살해patricide' 모티프가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지...이것은 근대 이성(주어를, 남성주체인 아버지를 그 숙주로 하는, 헤겔과, 이 헤겔이 그렇게도 추종하는 나폴레옹)에 대한 탈근대적 사유로서의 깊은 형상적 사유가 아닌지.. 이런 것들은 도스또예프스끼만의 고유의 유산으로 철학이 어티케 형상화라는 소설의 외피를 두른 형태로도 을마든지 추상적 사유가 가능한지 엿볼 수 있는 위대한 사례인 것입니다.  

자, 그렇다먼 도스또예스끼가 어티케 이 세계의 대철학자 헤겔을 만나게 되었는지 보것습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옴스크 감옥에서 5년 동안의 강제노동형을 마치고 약간의 자유를 얻었을 때 뚜르게네프, 똘스토이, 곤차로프, 칸트, 헤겔 등의 문학 철학서적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는데-감옥에서는 공식적으로 성경 외에는 책의 소지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헤겔에 자신의 생애가 달려 있다고 한 것은, 다시 말해 소크라테스 이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칸트, 피히테를 거쳐 서구전통의 이성철학을 집대성한-무론 레이어한 지층을 두텁게 탐사한 고고학적 현상학의 눈깔을 단 푸코가 이런 식의 레니어한 시간적 줄세우기는 좋아할 리 없지만-대철학자를 대면하고 그를 자신의 생애를 건 대결의식의 상대로 여기고 있다는 대목에서 우리는 왜 도스또예프스키가 시인이 아니고-참고로 플라톤으로부터 헤겔에 이르기까지 전통적 형이상학자들인 철학자들은 대부분 시인을 부정하고 소설을 옹호한 사람들입니다. 대체 소설은 앎의 모럴을 다룬 이성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소설가이기 전에 하나의 '문제적' 철학자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소설가가 현실의 형상적 인식의 대상으로 예술적 가공을 거치기 위해서는 마치 화가가 풍경을 화폭에 담기 위해 한 발 뒤로 떨어져 풍경을 주시하듯이, 꼭 그처럼 소설가 또한 현실을 담기 위해서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하는데, 여기 화가가 풍경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원근법이라는 근대적 구도로 풍경을 보듯이, 소설가 또한 간접화법으로 현실에 대해 원근법적 미적 거리를, 그러니까 이성적인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바로 여기에 그만의 독특한 철학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뭐 위대한 예술가는 위대한 사상가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도스또예프스키가 과연 위대한 것이, 그리하여 니체의 스승이 될 수 있었던 것이 헤겔의 근대철학을, 다시 말해 나폴레옹으로 대표되고 있는 인간의, 계몽적 천재들에 대한 흠모의 이념을 담아 모든 역사는 자유라는 절대정신의 개진의 역사라는 근대부르주아의 이념을 관념적으로 반영한 헤겔의 철학을 뛰어넘어 그 허구를 보았다는 점이고, 바로 이 부분을 니체가 이어 받아 망치를 내려쳤다는 점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도스또예프스끼에게 있어 이런 탈근대철학으로서의 주체철학의 한계를 보게 된 계기가 바로 페트라셰프스끼 사건으로 인해 끝도 없이 펼쳐진 저 광막한 시베리아에서의 유형 체험이었고, 이 때의 유형 체험이 마치 그동안 자신이 최고라는 엘리트 의식에 젖어있던 한국의 시인 김수영이 저 단테의 지옥보다도 더 무서웠던 6.25와 포로수용소를 체험하먼서 ‘스스로 도는’ 팽이를 넘어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등‘무수한 반동’에게서‘거대한 뿌리’로서의 민중을 새롭게 발견했던 것처럼, 꼭 그처럼 도스또예프스끼 또한 시베리아 유형체험이 그에게 부르주아 지식인이라는 인텔리켄챠로서의 먹물의식을 떼내고 러시아 민중을 재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사에서 니체가 주목한 <죽음의 집의 기록>을 통해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대전환을 처음으로 보게 되는데, 거기서 우리는 하나의 이항대립이라는 분리 감정에 기초한 근대의 '나'와 '그들'에서, '우리'로, '우리나라 민중'으로, 귀족의식에서 평민의식으로 '학대받은 사람들the oppressed'이라는 이른바 ‘타자들’에 대한 심리적 경사로의 획기적인 전환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사회의 쓰레기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그들에 대한 통념과 다르게 "우리 러시아에서 얼마나 많은 힘과 재능이, 때로는 거의 햇볕을 보지 모하고 자유 없는 괴로운 운명 속에서 허망하게 사라져 가는 것일까"라는 서술-그는 감옥 안에서 크리스마스 축제 주간에 벌어진 죄수들의 '놀라운' 연극을 보았습니다-을 대하먼서 러시아 민중이 역사의 타자가 아니라 역사의 주체라는 탈근대적 타자의식이 싹트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뭐 니체, 마르크스, 도스또예프스키만이 아닙니다. 하이데거의 제자 푸코(<담론의 질서>)또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대는, 논리학에 의해서든 인식론에 의해서든, 마르크스를 통해서든, 니체를 통해서든 헤겔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처럼 하이데거든 니체든 마르크스든 도스또예프스끼든 푸코든 그 누구든 헤겔과 헤겔적 인식에서 모든 문제가 발단되고 있으니, 그는 분명 저 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만큼이나 프로브레머틱problematic한 문제적 인물인 것이니, 머 그에게서 현대 철학의 모든 것이 흘러나왔으니 그는 과연 세계철학사의 크로스로드, 진정한 십자로가 아닌가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철학적 분수령으로, 그는 또한 근대철학에서 현대철학으로, 동일성에서 차이로 넘어오는 드높은 고갯마루였으니...그리고 그 고대적 의미에서 예술의 종말(<헤겔 미학>)을 선언하고 근대시민서사시로서의 소설의 등장을 예고한 자는 누구였던가. 우리가 다시 헤겔을 주목해야 하고, 마르크스의 말대로 '헤겔 철학의 진정한 탄생지요 비밀'인 <정신현상학>을 끊임없이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를 유심히 살펴봐야 하네.”
“그렇습니다. 그곳에서 바로 인간에 대한 심오한 사상이 싹트고 있지요.”

-페터 헤르틀링, <소설 횔더린>

이것은 프랑스 혁명이 유럽의 국가들에게 어티케 인식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화 한 토막이거니와, 그리하여 시인 횔더린의 동료 철학자로서 헤겔은 프랑스 혁명을 주목하며 거기,‘마상馬上의 세계정신’이라는 나폴레옹으로 상징되고 있는 현상을 주목하고 인간의 정신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는 역사철학적 분석을 시도한 거작이 바로 <정신현상학>이었던 것이니, 아니 또 가다머(<진리와 방법>)가‘경탄스러운 작품’이라며 극찬해 마지않은 <헤겔미학>은 또 어떤가. 대체 왜 헤겔을 주목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 헤겔의 저 웅봉과도 같은 <정신현상학>에 대한 대타적 인식에서 나왔기 때문이요, 이런 하이데거의 영향을 크게 받은 김수영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달나라의 장난’을 낳은 배경 속의 배경이 또한 헤겔이니 우리가 김수영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자 대전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렇게 봅니다. 

......

자, 나는 앞에서 김수영의 시적 기원이-특히 ‘달나라의 장난’의 경우-저 서구 철학사의 정맥을 이어받은 하이데거의 사상적 영향권에 있음을 애써 논증하였습니다. 그러나 알고보먼 저 니체와 더불어 서양철학사의 존재기반을 뿌리부터 무너뜨린 하이데거의 서양철학사의 대전회-‘정신’에서 ‘실존’으로, 또는 ‘실체’에서 ‘관계’로-도 사실은 동양철학에, 동양의 자연관에 크게 빚지고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먼 김수영의 시적 기반의 하이데거적 실체도 사실은 동양사상에 그 근원적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김수영의 '달나라의 장난'을 읽으먼서 그 자연스런 이야기체와 현실에서 벗어난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 듯한 가벼운 모던취에도 불구하고 마치 실감개가 풀려나가듯, 그의 시가 난해하다는 일반적인 세평과는 달리 술술 읽히먼서 마치 고향에 오먼 모든 것이 나와 관련이 있고, 거기 죽음이 있고, 불안이 있으며, 또한 다양하게 기투된 존재로서의 타자화 된 나의 모습을 보며 내 이야기를 하는 듯 이상한 친연성을 느끼게 되는 것도 거기 '동양적 자연성'이 하나의 문화적 유전자a gene of culture로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러한지...이번에는 현대서양철학에 미친 동양사상과 철학을 중심으로 '달나라의 장난'에 얽힌 또 하나의 비밀의 문을 열어보고자 합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이성에 기반을 둔 서구정신은 몰락하였습니다. 아니 뭉크의 ‘전율’이 상징하듯, 공포와 불안, 죽음이 감돌던 세기말적 사상이 서구의 하늘을 뒤덮던 18,9세기는 적어도 그것은 하나의 유행적인 현상이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를 우리는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등 서양문명을 고발한 일군의 프랑크푸르트 학파ecole의 주저 <계몽의 변증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기, 베이컨과 오디쎄우스를 통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온 실체 중심의 서구의 형이상학을 비판하먼서 던진 제일성은 과연 '계몽은 신화다'라는 자기부정의 명제였습니다. 이 계몽 신화를 깨부순 선구자가 니체, 니체의 스승 도스또예프스끼, 그리고 니체를 이은 하이데거라고 볼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헤겔 이후 도스또예프스끼와 니체와 후설을 이은 하이데거에 이르러 서양철학사의 흐름이 전통의 '실체의 철학'에서 현대의 '관계의 철학'으로 이행transition했다(리처드 커니, <현대유럽철학의 흐름>, 한울)는 점입니다.

What matters more

더욱 중요한 것은 여기, 스스로 눈을 찌른다니...서양의 철학이 스스로 자신의 철학을 부정하는 것을 넘어 전통 형이상학의 실체의 철학을 새로운 관계의 철학으로 보기 위해서는 기왕의 서양인의 태도와 이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아야 했는데, 그리하여 거기 하나의 거울이자 지렛대로서 서양철학사의 근본을 바꾸어놓는데 핵심적인 좌표축이자 아르키메데스의 점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바로 동양사상과 철학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자, 지금부터 이야기하려고 하는 이것은 하나의 ‘페이퍼로드paperroad’에 해당하는 인류의 정신문명교류사에 해당하거니와, 머 그것을 우선 대강 말해 놓자먼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18세기말부터 19세기 중반 이후까지 유럽 전역에서는 동양에 대한 관심이 증대했으며, 이러한 동양에 대한 증폭된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신 문예 부흥’, 또는 ‘동양 문예 부흥’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했11)는데-이것은 비단 철학 예술분야뿐만이 아니라 과학계에도 큰 영향을 미쳐 고전물리학을 대체하는 현대물리학의 탄생에도 지대한 영향12)을 가져왔던 것입니다-19세기가 오기 전 영국의 레게는 이미 중국의 주요 고전들을 거의 번역해 놓았을 뿐 아니라 프랑스의 뒤페롱은 그보다 훨씬 앞서 전대미문의 힌두교 경전인 <우파니샤드>를 라틴어로 번역해 쇼펜하우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니체가 또한 이에 크게 영향을 받아 인도철학은 물론 불교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던 것이니 니체의 주관적인 사상이 오늘 우리에게 대회자되는 궁극적인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거기 하나의 문화적 유전자로서 또한 동양전통의 주관주의적 사유가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 아닌가 말입니다. 과연 그럴까. 

니체, 그는 스스로 ‘유럽의 부처’임을 자인13)했거니와 흔히 염세주의 또는 허무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런 평가가 크게 틀리지도 않은 것은 그의 철학을 낳은 배경이 동양의 이른바 ‘무無’의 사상이었기 때문이었는데, 그의 절친 도이센은 저명한 인도학자였을 뿐 아니라 쇼펜하우어를 통해 인도철학과 불교사상, 가령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나타난 동양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허무적인 종교로서 불교를 통해 그는 삶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응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보먼 알 수 있듯이 부정에만 머무르지 않은 대긍정의, 의지의 시인이자 힘의 철학자였습니다.  

“국가가 소멸하는 곳에서 비로소 꼭 필요한 인간의 삶이 시작된다. 그것에 꼭 필요한 인간의 노래가, 단 한 번뿐이고 대체할 수 없는 노래가 시작된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펭귄클레식 코리아

이런 사상적 기조는 그대로 국가지상주의자인 헤겔에 대한 반격이자 공공적 질서를 중시한 유교와 달리 개인적 모럴을 중시한 도교와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이는 또한 하이데거 사상의 주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그것은 개별자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하이데거의 경우는 과연 어떤가 보것습니다. 리하르트 빌헬름(1873~1930), 그는 독일의 토양에 동양의 빛을 전해준 중국어학자였습니다. 1899년 선교사로 중국에 온 그는 20년 넘게 중국에 살먼서 동양의 인문지식과 정신세계를 섭렵해 나갔습니다. 그리하여 곧 중국문화와 사상에 정통하게 된 리하르트 빌헬름은 1921년에 <노자>, <장자>에 이어 <주역>(1923), <황금꽃의 비밀>(1928)을 비롯 <논어>와 <맹자> 등 도교와 유교의 핵심적인 경전들을 모두 번역해 놓았습니다. 특히, 빌헬름은 <역경>을 번역하고, 직접 <주역>을 풀이할 수 있을 만큼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였는데, 그가 번역한 동양의 자연적 신비주의와 변화의 철학이 당대는 물론 후일 독일의 과학계와 정신분석학, 철학계와 정치(독일의 녹색당)에 미친 영향은 정신적 지진이라 할 만큼 그 후폭풍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럽 학문의 헤게모니가 영국에서 프랑스를 거쳐, 다시 독일로 이행하는 데 매우 큰 징검다리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두 개의 서로 다른 사상의 조류가 한데 합침으로써 장관을 이루고 있는 형국으로, 인도의 불교가 구마라집에 의해 도교에 기반을 둔 중국어로 번역-이것을 흔히‘격의불교格義佛敎’라고 합니다-됨으로써 중국의 철학이 더욱 왕성하게 개화하는데 일조한 문화사적 사건인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문화사상적 자장에서 이미 니체와 후설 등의 영향을 받은 하이데거가 38세에 가장 왕성한 사유를 펼쳐 서양철학사의 조류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걸작 <존재와 시간>(1927)을 세상에 내놓기 6년 전에 이미 동양의 핵심적인 사상이 그에게 읽혔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 동시대의 독일의 지성이 이를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의 독일 정신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한 권의 책이 있다. 리하르트 빌헬름의 중국 고전의 번역이다. 인류 문화의 가장 고상하고 최고로 발달된 성과의 하나, 지금까지 독일 독자들은 알지 못하고 비웃기만 했던 진기한 세계가 드디어 우리의 소유물로 주어졌다. 그것도 라틴어와 영어를 통한 우회로가 아니라, 제3의 혹은 제4의 손을 건너서가 아니라, 생애의 전반을 중국에서 생활했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국의 정신세계와 친숙하고, 독일어와 중국어에 정통하며, 중국의 정신이 가진 의미를 오늘의 유럽 자체를 위해 몸소 체험한 독일인이 직접 중국의 원전에서 번역한 결과가 우리의 손에 주어진 것이다.”

-헤르만 헤세, <세계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범우사

곧 이어 헤세(1929년)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습니다.

“독일어권의 최고 지성들은 지난 20년 동안 이 자비로운 흐름에 감동되었으며, 강력하게 큰소리치다가 다시 사라지는 많은 정신 운동과 비교해서 리하르트 빌헬름의 중국 작품은 그 비중과 영향력에 있어서 조용하면서도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러니까 세계의 문호 괴테-그는 자신이 직접 술회한 <시와 진실>에서 인도의 우화와 대서사시 <라마야나>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전하고 있는데, 괴테문학의 자연관과 ‘마성The Demonic'의 발견은 결코 우연히 아닙니다. 하나의 정신의 계보학으로 이 세계정신의 소유자 괴테가 쇼펜하우어에게 영향을 주고, 쇼펜하우어가 다시 니체에게, 니체가 하이데거 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는 말할 것도 없고 심리학자 융-프로이트와 달리 원형상징을 통해 집단심리학을 개척한 그는 빌헬름의 추도사를 썼을 뿐 아니라 도교의 핵심경전인 <태을금화종지>를 해설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전적으로 빌헬름의 영향입니다- 등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반 이후에 유럽 전역에, 특히 독일에 동양에 대한 관심이 증대했던 사회문화적-지적 자장에서 하이데거 역시 큰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겠거니와,‘형이상학적인 서양의 정신’에서 ‘실존적인 동양의 존재’로의 획기적인 문명사적 전환이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졌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What matters the most

가장 중요한 사실은 과연 김수영이 그토록 사숙하먼서 닳고 닳도록 보았다는 이 세기적 걸작의 구석구석에 동양사상의 정수가, 삶과 죽음에 대한 불교-도가적 사유가 전편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 그러니 다시 <존재와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것습니다.

현존재의 속성은, 그러니까 인간은 본질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시간적, 역사적 존재라는 사실, 이것이야말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 던진 사상의 폭탄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왕의 서양철학에서는 모든 철학적 논의의 대전제로 항상 죽음을 넘어선 형이상학적 실체로서의 영원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적 존재로서의 객관적 사실을 무시한 서구정신의 오만hubris이 아닌가 말입니다. 이런 서구정신의 오만이 그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 민족주의이고, 제국주의이고 머 자연의 재앙 아닌가. 그리하여 이런 이성의 오만 앞에서 인류의 재앙을 맞이한 당시 독일의 현실-나찌 독일과 전체주의화한 민족주의, 이것은 근본적으로 민족주의에 기반한 국가주의를 대변한 헤겔리즘의 영향입니다-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는 인간을 투시하먼서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1927)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철학은 과연 시대의 딸이 아닌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서양철학의 위기를 넘어 나의, 인간의 위기로 다가왔기 때문이 아닌가 말입니다.

존재의 위기를 체험한 하이데거가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의 하나로 내놓은 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의 현상학적 진단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현실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로서 동양의 지혜들을 충분하게 참고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환경socio-culture milieu에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동양의 텍스트를 확인해 본 결과는 놀라운 것이 아니었나 유추해 볼 수 있는데, 그러니까 동양의 사고에서 볼 때, 인류가 위기에 빠진 것은 바로 헤겔(<정신현상학>)이 ‘순수한 정신의 운동이 학문’이라고 호언했던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존재 그 자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여기서 말하는 존재는 과연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불안한 존재라는 것 아닌가 말입니다.“죽음을 은폐하고 그로부터 도피하는 것은 사실을 외면하기 위한 행위다.”,“죽음에 대한 깨달음이야말로‘현존재’의 가장 뚜렷하고도 확실한 깨달음이다.”,“죽음이란 부정할 수 없는‘경험적 사실’이다.”그러니까 “무규정성과 확실성은 죽음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의 특징이다.”(이상, <존재와 시간>에서 인용)여기, 현존재에 대한 가장 확실한 무규정적 존재로서의 인식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바의 인간은 과연 실존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 아닌가. 죽음에 따른 불안, 그러니 고통은 인간의 숙명이 아닌가. 이것은 인간 고유의 미연未然(아직 실현되지 않은)의 가능성에 대한 심오한 통찰이 아닌가 말입니다. 그러니까 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인간은 그 어딘가로 완성되지 않은 채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는 존재가 아닌가. 이것은 ‘무無’에 기반하고 있는 불교적 인식-잘 알다시피, 불교사상은 영원한 실체는 없고 모든 것은 끝없는 연기 속에 미끄러진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철학에 기반하고 있습니다-이고 자연적 존재에 대한 도가적 통찰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죽음 앞에 내던져진 존재로서의 인간은 현존재가 ‘무적無的’이라는 것을 나타내지 않은가. “무성無性은 현존재의 이 존재(내던져진 성격)를 구성하고 있는 무無를 가리킨다.” 여기,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고 달아나고 싶어도 달아날 수 없는 인간존재의 실상이 미연의 가능성이라는 죽음으로서의“어떤 세계 안에 존재한다”는 세계-내-존재로서의, 관계로서의 현존재의 근본은 바로 자연세계 안에서의 무無입니다. 사르트르의 ‘실존’과 ‘무’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무’야말로 노자철학의, 도가사상의, 이 도가사상을 하나의 숙주로 인도의 불교사상을 수정시켜 중국화Sinicization시킨 중국적 불교사상, 선禪의, 대승불교의 핵심이 아닌가 말입니다. 그 바탕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민중전통의 죽음의식이 아닌가. 동양전통의 민중사상에 익숙해 있던 우리에게, 이에 크게 영향을 받은 하이데거의 사상적 권역에 있는 김수영의 작품에서 또한 그 오랜 동질적인 친연성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것는가. 나는 그렇게 봅니다.

'무無'에 기반을 둔 불교식 도가 사상은 동양적 유명론인 무명론無名論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름부터 걸고 명함부터 내밀고 나오는 저 유가의 정명론이라는 지배담론에 맞선 동양 전통의 민중사상이 아닌가 말입니다. 그러니까 도가철학이 민중들뿐만 아니라 중국은 무론 우리의 지식인에게도 그 비판적 근거를 잃지 않고 지속적인 사유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도, 그러니까 명분과 예를 중시한다고 해서 명교名敎, 예교禮敎라 하여 현자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사람을 잡아먹는다(노신, <광인일기>)는 예의 유교집단에 대한 깨어있는 시인들-가령, 백석의 ‘정문촌旌門村’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의 사유의 근거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것는가. 김수영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커크 더글러스나 리처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전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요릿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웃고 잡담하고
동정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
원고도 쓰고 치부도 하고
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산보도 하고
영화관에도 가고
애교도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전선(戰線)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우리들의 전선은 된케르크도 노르망디도 연희고지도 아니다
우리들의 전선은 지도책 속에는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집안 안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직장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동리인 경우도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

-김수영, ‘하......그림자가 없다’일부, 1960. 4. 3

여기, ‘하......그림자가 없다’며 적의 실체는 물론 그림자조차 없다는 무명론적 깨달음을 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특이한 이 시는 하나의 '저항담론a counter discourse'으로 바로 실재론에 대한 유명론적 대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른바 이름의, 헛된 명분에 대한, 민주주의에 속고 선량에 속고 양민에 속고 회사원이라는 거창한 명분의 세계현실에 속고 또 속으며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신화에 갇혀 말의 울타리에서 헤어나오지 모하고 있는 '지배담론a dominant discourse'에 대한 명쾌한 박격포탄이 아닌가. 뭐 대중기만으로서의 신화 비판이, 서사폭탄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그러니까 김수영은 예의 사물의 실상에 대한 하이데거적 '개시disclosing'를 통해 실재의 허구를 쏘아보는 비수 같은 날카로운 눈길로 일상화된 신화 세계의 진상을 탈은폐시키고 있는 것이니, 이 일상화된 신화 세계의 진상은 바로 ‘그림자’조차 ,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매우 교묘한 것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그러나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닌 그들은 마치 공기처럼 어디에나 있다는ubiquitous 것 아닌가. 머 신화는 빠롤이라는 거 아닌가. 아, 씨파! 김수영은 바르트다. 바르트라니...그는 일상의 언어, 빠롤parole에 하나의 만연한 거짓으로서의‘신화mythologies’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탁월하게 분석해낸 프랑스의 국보급 문화재가 아니었는가. 그러나 그보다도 먼저 한국의 탁월한 시인은 이렇게 신화가 어티케 우리의 눈을 가리고 맹목에 이르게 하는지 참으로 리얼한 실상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협잡과 아부와 무수한 악독의 상징인/지긋지긋한 그놈의 미소하는 사진-/대한민국의 방방곡곡에 안 붙은 곳이 없는/그놈의 점잖은 얼굴의 사진을”(‘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이 미소 속에, 점잖은 얼굴에 가려진 가면의 실체를 벗기는 탈은폐적 기도를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는가.

이것은 또한 그 알튀세르적 의미에서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는 신화적 장치에 대한 고발이, 정치적 무의식을 드러낸 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과 대담한 용기가 아닌가. 그것은 이데올로기화된 일상의 문화적 장치를 통해 우리 일상이 어티케 교묘하게 통제되고 있는지에 대한 수준 높은 문화의식과 각성된 계몽의식이 아닌가. 유명론은 과연 언어비판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우리의 경우, 한국의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은 가령, 한국문화예술위원회처럼 전혀 억압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먼 그들은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는커녕 그들은 선량의 이미지를 하고 나에게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지원해 줄 테니 투고들 좀 하세요...이렇게 해서 작가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자발적으로 작품을 투고하는 것처럼,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또한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자유롭게 교회에 가고, 학교에 갑니다. 비록 학교가 ‘의무적’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또 사람들은 정당에 가입해 복종하고, 신문을 사며,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고, 영화관. 경기장에 가며, 디스크, 그림, 포스터, 문학적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 혹은 과학적 책을 삽니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은 ‘폭력에 따라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따라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국가장치와 구분됩니다.”

-루이 알튀세르, <재생산에 대하여>, 동문선

이와 마찬가지로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적들 또한, 

전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요릿집엘 들어가고/술을 마시고 웃고 잡담하고/동정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원고도 쓰고 치부도 하고/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서울에도 있고 산보도 하고/영화관에도 가고/애교도 있

습니다. 이것은 시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정치적 무의식’을 건드린 위험한(?) 시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김수영은 위험한 시인이었고 뭐 불온한 문화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위험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처럼 경계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고 서슴없이 자신의 의견을 ‘온몸으로’ 개진했기에 비로소 그는 하나의 철학이, 추상적 사유가, 한국 철학의 가능성으로 우리에게 오늘도 살아있습니다. 이처럼 그의 시는 철학적 사유의 진수를 보여주는 탁월한 텍스트입니다. 우리들의 자유를 위한 싸움을 억압하는‘공통된 그 무엇’인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그러나 그것은 매우 시적이먼서도 탈은폐 전략의 하나로 유연하먼서도 성숙한, 그만이 사용하는 아이러니한 언어기법을 통해  거침없이 풀어놓고 있습니다. 우리가 충분히 이해 가능한 쉽고 평이한 한국어의 형태로,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하나의 실재론에 대한 유명론적 관점에서, 상징폭력a symbolic power의 한 형태인 언어이데올로기(성)의 허구에 대한 수준 높은 비판적 사유의 한 형태로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김수영의 시를 통한 추상적 사유의 어떠함은 프랑스의 일급 철학자들의 사유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마무리

어쨌거나 유교와 도교는 중국은 무론 동양문화와 사상을 대변하는 두 기둥으로 공자의 정명론과 노자의 무명론이 대비된다먼, 서양철학의 실재론과 유명론이 또한 이에 대비된다고 할 때 헤겔과 공자를 통해 볼 수 있듯이 정명론과 실재론이 '종적種的' 집단의 에스니한 이데올로기를 대변하고, 하이데거와 노자를 통해 무명론과 유명론이 '개별' 인간의 자아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것으로, 이를 반영한 철학으로서의 <존재와 시간>은 그 유명론으로서의, 아니 실존으로서의 죽음을 안고 살아가는 유럽(문명)적 공포로서의 불안한 나의 운명에 대한 관심이었으니, 그것은 그대로 전후의 한국지성들에게 때마춤한 포스트 교과서가 아니었던가 말입니다. 그리하여 김수영 또한 <존재와 시간>을 앞에 두고 그토록 닳고 닳도록 읽어냈던 것이니, 그것은 과연 시대를, 역사를 거기 시간 속에 놓인 죽음의 존재인 나를 들여다보는 깊은 연못이자 청동거울로서 대체 이만한 텍스트가 오데 있더란 말인가.

중요한 것은 이런 텍스트를 한국적 현실에 맞는 언어로, 그 창의적 모방의 시적 형식으로 객관화, 자기화 해 냈다는 점이 아니것는가. 그리하여 그 실재론에 대한, 그러니까 유교적 관념론에 대한 탈은폐적 기도로서의 유명론적 투쟁에 종지부를 찍음으로써 진창과도 같았던 당시 이승만 정권의 부패한 한국적 현실을 올바로 보기 위한 유물론적 기반을 마련하는 단초를 만들었던 것이니, 그것은 저 마르크스의 이른바 “유명론은 유물론의 최초의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공통된 그 무엇'에 대한 '스스로 도는' 팽이를 통해 비로소 저 서구정신의 지적 자장에서 서서히 벗어나 우리 스스로, 우리의 아름다운 언어로 있는 그대로의 나의 맨얼굴을 객관적으로 대면하게 되지 않았것는가.

그렇다니...한국의 철학은 이렇게 해서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간 그 폐허의 한가운데서, 그러나 동양 정신의 강물로 흐르고 있는 하이데거를, 그 무無의 텍스트를 철저히 응시한 김수영의‘달나라의 장난’에서 개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봅니다...

 

 

1) 헤겔, <법철학> 서문, 한길사. 2008

2) 에드먼드 버크,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마티, 2019

3) 장 그롱댕, <현대해석학의 지평>, 동녘, 2019

4) 제라르 즈네뜨, <서사담론>, 교보문고, 1992

5) 요하임 리터, <헤겔과 프랑스혁명>, 한울, 1983

6) 임석진 옮김, 헤겔 <정신현상학1,2>, 한길사, 2013

7) 김현 문학전집2, ‘민족문학의 의미’, <사회와 윤리>, 문학과지성사,2011

8) 피히테, <독일국민에게 고함>, 동서문화사, 2019

9) 김현, ‘자유와 꿈-김수영의 시세계’, <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4

10) 칼 마르크스, <경제학-철학 수고>, 이론과 실천, 2006

11) 김정현, <니체, 생명과 치유의 철학>, 책세상

12) 프리초프 카프라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주)범양사출판부, 1979

13) 니체비평전집10, 109쪽 ‘니체의 불교 이해와 서양적 무아사상’ 김정현 재인용, 책세상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삼국지 : 조조를 위한 변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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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2-02-06 11:29:32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