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거실
-김연덕
픽셀에 들어찬 길쭉한 얼굴들을 봐
우리는 각자의 방을 막 오려낸 누더기처럼 메고
안경을 쓰고
디지털 창구 앞에
밤 근육을 모으고 앉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보다 조금 늦게
화면을 켠다
몰래 해도 흔적은 남으나
쏠린 감정
무거움의 것은 아닌
작은 소리와 움직임으로만 남는
식사의 제스처
환한 잡음과
시
책상 위를 어슬렁거리는
꼬리의 종류
드러나기 직전의
책장/ 인형/ 스테이플러/ 컵
물속처럼 웅웅거리는
웃음들
미움들
인간적인 단위의 픽셀로
회색 고양이 꼬리로
사이를 끌어모으고 있다
적당히 내보인 채 적당히
알 수 없게 만나는 근육은 결국
따뜻하게 뒤틀려
천장으로 부푼 안전
비스듬한 벽으로 결성된
공동거실이 되지
겨울 목요일 우리는 매주 시를 읽는다
우리는 서로의 방 바깥을 영영 알지 못할 것이며
차갑게 느슨한 기분
스테이플러의 심조차 대신 바꿔 끼워주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 쏠리고 무거워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너무나 아름답고 일시적인
근육질의 창구에 있다
<시작노트>
코로나 19 시대에 ‘Zoom 시창작 강의’ 에 대한 김은지 · 이소연 시인의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원격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기분이 이 시에 얼마나 녹아들었을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수업에 대한 선배 시인들의 생각과 내가 진행했던 수업에서 받았던 인상들을 겹쳐 펼쳐보고 싶었다. Zoom 이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부분과 아직 한계로 남아있는 부분을 동시에 쓰고 싶었다. 상황 자체가 어떠하다고 확정하거나 긍정하기보다, 밤늦게 우리에게 찾아왔을 감정과 이미지들을 다시 만져보았다. 하나의 디지털 화면으로 우리가 만났을 때 신기해지는 것들에 대해 가장 쓰고 싶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