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극
-이혜미
당신은 영화를 못 보는 사람
귀신이 된 것 같잖아, 어둡게 잠겨서
다른 생을 바라보느라 바쁘지
참견할 수 없는 사건들
사랑하기 좋은 사람들
자위할 때 근처 귀신들이 다 몰려와서
구경한다잖아, 그걸 들은 이후로는
도무지 젖지가 않아
보여진다고 생각하면
서른 전엔 죽어야지 다짐하다가
넷플릭스에 가입하고
영화들의 목록만 늘어났지
언제든 감상 가능한 슬픔
이리저리 돌려볼 체위들
놀랄 만한 뒷이야기도 없이
쓸쓸히 솟구친 허무를 닦아
휴지통에 던져넣으며
아, 그냥 좀 봐 줘요
아님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주던가
괜한 혼잣말을 덧붙이면서
<시작 노트>
이상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 소식이 최대한 느리게 우주에 닿기를 바랍니다. 답장이 올 때쯤에 저는 울창해진 숲속에서 저를 믿어 준 이 초록을 봉양하고 있겠습니다. 당신이 떠나온 이 행성이 다시 푸르름을 되찾아 돌아올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초목이 나의 왕이고 땅이 내가 섬길 백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먼 곳의 이웃에게 ― 일단 한 번 이 편지를 만져보세요. 어둠을 관통하여 당신에게 가닿으려는 이 빛과 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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