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線)
-정현우
사랑에 실패하는 빛이 가위를 든다,
나를 자른 날들이 멀어졌다.
싹둑싹둑 베이는
집과 고양이와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널브러진다.
두 손을 한 선으로 모을수록
예감은 흩어진다.
빠져나가는 선,
손을 떼면 끊어지고 마는 선.
멀리서 바라보면
선은 먼저 가고
남는 것은 윤곽과 죄와 재앙과
시간이 어떻게 무너지고 사라지는지
선은 없어지며 선명해진다.
선을 잃은 사람이 있다.
선으로 돌아가려는 증명이 있다.
버리고 싶은 마음을
한 곳에 모으면
시간이 분절 된 모자이크,
오래된 선들이 선들을 접어놓을 때
교차되는 선의 선
꽃은 한 번으로 그려지고
그림자는 삼차원을 벗어난다.
나는 나를 넘지 못하는 발자국,
나의 선은 단순해지고
여자 속 남자와
집 속의 고양이가 헝클어진다.
<시작 노트>
환란의 시대, 인간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을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나는 누구인지, 빛을 어떻게 보고 깜빡여야 하는지, 옷은 입을수록 늘어나고, 우리는 그것을 모르지, 우리 뒤에 서 있는 나무는 우리의 두 눈을 가리고 가나, 구름이, 새들이, 빛들이, 우리의 마음을 왜 가리고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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