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라면
새 것으로
갈아 끼우면 되겠지만
어디 꼭꼭 숨겼길래
미소에 가렸는지
마음을 찾지 못했네
쏟은 말
네게 흘렀지
오늘 만난 당신 역시
금 간 맘일지 모른다고
혀에 베어 예리하게
조각난 기억들을
조심히 건네 말로도
툭, 건들지 모른다고
-「깨진 유리창의 법칙」
너와 나. 나와 그들. 우리는 서로 진정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내내 불가능한 하나가 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태경 시집 “액체괴물을 탄생”은 이처럼 불가해한 타자성, 불화하는 자아 속의 타자성을 유리의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프롤로그 「유리다리」부터 「유리관」, 「유리상자」, 「유리구슬」, 「유리꽃」까지…. 그의 시집에는 유독 유리가 잦게 등장한다. 그의 시 속에서 유리는 ‘겁나는 걸 겁내지 않고’ 건너야 하는 다리가 되기도 하고 ‘나’의 숨어지낼 공간이 되기도 한다. 끝내 유리관 뚜껑을 열고 나온 화자는 “사람을 더 사랑하기로/시든 장미를 오래 보기로” 결심한다.
그의 시집에 등장하는 것은 유리뿐만이 아니다. 표제작 「액체괴물의 탄생」의 액체괴물은 ‘유리가 흘러내’려 변하는 대상으로 ‘나에게는 평등하고 당신에겐 불평등한//단 하루 약속된다면/ 바라보기만 하는 놀이’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마냥 경계 없이 눈을 맞추는 것 같은 이 놀이는 ‘오랫동안 반죽해’(「액체괴물—되기 순서도」)’ ‘완전히 섞일 때까지 귀 열어 저어 주’어야만 이어갈 수 있는 행위이다.
액체 괴물은 한때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유행하던 점액질 성분의 장난감이다. 자유자재로 모양을 만들어낼 수 있고 특유의 촉감과 소리가 마음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유튜브를 통해 단순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번 시집에서 화자는 이런 액체괴물 놀이를 유리처럼 섬세한 ‘나’와 타자가 가까워지고 하나가 되는 과정으로 형상화한다. 불가능한 하나 되기를 ‘유쾌한 괴물’이 되어 성공하는 그날까지, 우리는 서로를 반죽하고 부풀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