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서요나 시인의 "물과 민율" 출간
[인터뷰]서요나 시인의 "물과 민율" 출간
  • 이승석
  • 승인 2022.03.11 19:52
  • 댓글 0
  • 조회수 2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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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송희 에디터
사진= 한송희 에디터

 

지난 18년 <페이퍼이듬>을 통해 데뷔한 서요나 시인의 첫 시집 <물과 민율>이 '파란시선'에서 지난 21년 12월 21일 출간되었다. 페이퍼이듬은 이듬 시인이 운영하는 '이듬 책방'에서 발간한 독립문예지이다. 

<물과 민율>은 200페이지가 넘는 시집이다. 보통 시집과는 달리 두꺼운 편이다. 이 시집은 여느 시집들과는 달리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내는 형식을 취하는 것들이 많다. 특히 '민율아', '서영아', '소이야' 처럼 사람들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부르는 시어들이 눈에 띈다. 긴 텍스트 속에서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는 대화들은 시가 아니라 마치 우리에게 대화를 건네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근데
여기가 어디야?

여기가 어디냐고?

질문들이 모두 
손바닥보다 작은 거울 속에서만 울려 퍼졌다
「봄날의 서스펜스」 중

신수진 문학평론가는 서요나 시인의 이러한 독특한 시의 형태에 대해서 "티피컬한 시의 양식을 파괴하고 언어를 단순화"하는 것이라며, 카지미르 말레비치와 피트 몬드리안의 추상화와 비교하며 이를 '시의 본질을 되찾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한다. 회화의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다른 모든 요소들은 제거하고 사각형의 단순한 기하학적 도형들만 남긴 말레비치와 몬드리안의 추상 작품들처럼, 서요나의 시 또한 기존의 은유적, 상징적인 시적 언어를 모두 제거함으로써 "시의 문법이 작동하지 않는 곳, 시적인 구호와 질서가 호위하지 않는 곳, 시를 지향하고 조형하지 않는 곳"에서 역설적으로 시가 시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혜미 시인은 작가의 작품 활동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요나 시인은 시를 포스타입(작가가 무료 또는 유료로 콘텐츠를 발행해 후원을 받거나 판매하여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블로그 서비스)을 통해 발표하고 메일링 서비스를 활용하는 등, 기존 문학계에서 하지 않는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다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글처럼 작가 활동 역시 기존의 문단에서는 보여주지 않은 방식을 통해 진행한 것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이러한 문화는 기존 문단의 관습을 깨는 행위 중 하나이다.

시인의 필명인 '요나'는 성공을 두려워한 성경 속 인물인 요나를 뜻한다. 그래서일까, '시크릿 시거렛 스크럼', '비처럼 비밀처럼 비망처럼'과 같이 반복되는 비슷한 시어들은, 시인이 본질을 추구하는 가운데 가장 적확한 단어를 찾아내기 위한 고민의 흔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성적인 좌절의 시대 속에서 성공의 가능성을 눈앞에 두고도 이를 의심하고 주저하고 망설이는 현재 세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1과 1이 11이 아니게 하는 거리는 몇 센티부터 시작되는가
지금 죽어 가는 사람과 방금 살아늠은 사람이 그 거리를 두고 서면
어떤 놀이부터 하게 되는가
미처 정의하지 못한 채로
「시크릿 시거렛 스크럼」 중

하지만 독자에게 대화를 걸듯 전해지는 말들은 관계로 힘겨워하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이혜미 시인은 시인의 시에 대해 "두고 온 이름을 부르고 보고 싶은 사람을 호명하고 속삭이듯 허밍하듯 노래를 부른다"며, "관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유려한 표현의 색을 입고 시집 전반을 물들인다."고 이야기했다.


질문 01 
이 시집에는 유독 이름에 대한 호명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호명은 어떤 상징이나 행위로도 읽히는데요, 이런 호명이 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이유를 말씀 부탁드립니다. 

 상징보다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이름이라는 건 결국 의미가 담긴 낱말들의 조합으로 태어나서 불리면서부터는 그 의미가 탈락하고 말의 음만 남아 기능하게 됩니다. 흔히 우주를 혼란속에서 탄생한 질서라고도 정의하는데 이는 반대 구도에 해당하죠. 질서로부터 출발해 혼란을 향해, 그 혼란을 밟고 더 흐릿한 혼란을 향해 도약해가는 중력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씨앗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름을 부르고, 인식하고, 또한 느끼며 감지하는 행위에서 그 씨앗의 단서가 발견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02
포스타입 등 독자들을 만나기 위한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시도들이 효과가 있었는지, 그리고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특별한 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들어서 단독적으로 자신의 원고(그게 시나 소설이 아니더라도)를 독자들에게 선보이려는 실천을 하시는 젊은 작가분들은 늘고 있으니까요. 단지 저는 데뷔하기 이전부터(다른 습작생 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시를 완성하고 나면 공개된 데에 즉흥적으로 내보이는 걸 피하지 않았던 성격이라 데뷔를 하고 시집까지 내고 난 현재에도 그 태도를 어쩌다 보니 유지하고 있는데요,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작품을 쓰고 나면 그걸 단행본으로 묶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방향으로 독자분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플랫폼들이 뭐가 있을지 여전히 고민 중에 있습니다. 좀 더 액티브 한 방식으로 시인들이 작품 활동 할 수 있는 판이 넓어졌으면 합니다. 저한테는 포스타입도 그 한 과정이고요.

질문03 
신수진 평론가는 서요나 시인의 시를 "시의 문법이 작동하지 않는 곳, 시적인 구호와 질서가 호위하지 않는 곳, 시를 지향하고 조형하지 않는 곳" 라고 지칭했는데, 서요나 시인이 생각하는 시라는 것은 무엇인지, 신수진 평론가가 조명한 시적 기법을 쓰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신수진 평론가님께서 해설 원고를 쓰시는 과정 중 짧게나마 평론가님과 대화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저는 제 시가 결국은 시가 아니었던 자리로 멀리 멀리 우회해서 되돌아가는 일을 꿈꾼다고요. 그래서 시는 저에게 명사가 아니라 동사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우리들이 작은 일상에서부터 쓰는 소통의 언어 하나조차 실은 시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시의 모태가 되는 것들이고, 모태에서 시인들 각자의 시로 발전해 걸어 나온 말들이 또한 각각의 행성으로 존재하는 것이죠. 작품으로서의 시와 일상의 말이었던 것들이 하나의 통일 된 신체였던 시간을 잊지 않는 하나의 동사가 저에게는 시 쓰기인 것 같습니다.

질문04
코로나로 다양한 문학 활동들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문학 활동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직은 특별하게 계획된 활동은 당분간 없습니다. 그저 시를 차근차근 더 쓰게 될 것 같고,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독자분들과 작품으로 교류할 수 있는 다양한 창구들을 고민하면서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질문05 
끝으로 뉴스페이퍼 독자들에게 전달하거나 못하신 이야기가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좋아하는 시인의 시 구절을 짧게 공유하면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나는 당신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대는 나의 생명 
 (포루그 파로흐자드, 나는 당신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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