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 공적심사위원은 종신제인가.
보훈처 공적심사위원은 종신제인가.
  • 박용규(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고려대 사학과 박사)
  • 승인 2022.03.15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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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용규 촬영
사진=박용규 촬영

 

현재 국가보훈처가 독립보훈 업무를 맡고 있다. 국가기관인 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서훈 업무를 관여하고 있는 공적심사위원의 임기를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장기간 연임할 수 있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 운영규정’(2020)의 제3조(구성)에 “⑤ 공적심사위원회 민간위원의 임기는 2년으로 하되 연임할 수 있다.”로 되어 있다. 
현행 공적심사위원의 임기와 연임 규정은 시대착오적이다. 2년 임기는 너무 짧다. 물론 임기를 마친 공적심사위원이 다시 연임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과 대법원의 대법관 임기도 각각 6년으로 한정하고 있다. 
문제는 공적심사위원의 연임 제한 규정이 없다는 데에 있다. 연임의 상한선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한선이 없으면 특정 공적심사위원들이 장기간 독립유공 서훈 업무를 독점할 수 있다. 특정 공적심사위원들이 장기간 활동할 경우에, 독립유공 서훈 업무는 정체되고 보수화가 된다. 다른 전문 인사에게도 서훈 업무에 참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 운영규정’을 개정하여, 공적심사위원들의 전체 임기를 6년 이내로 한정하였으면 한다. 

현재 장기 연임하고 있는 공적심사위원들의 행태가 심각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21년 공적심사위원 36명(1심 30명, 2심 6명) 가운데, 위촉된 지 10년 이상이 된 공적심사위원이 12명에 달하였다.(「제2차 동학농민혁명 서훈 해결의지 없는 보훈처」, 2021, 10, 12. 민형배 국회의원실 작성 문서, 5쪽.) 10년 이상이 된 공적심사위원이 전체 공적심사위원의 1/3에 해당하는 것은 지나치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현재 20년 이상 된 공적심사위원도 여러 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제1공적심사위원회 1분과의 홍모 위원과 제2공적심사위원회의 김모 위원은 20여년이 훨씬 넘도록 공적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1공적심사위원회의 1분과 공적심사위원장 박모 위원과 제2공적심사위원회의 김모 위원도 현재 20년 이상 공적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1공적심사위원회의 1분과의 박모 위원은 10년 이상 공적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여년이 훨씬 넘도록 공적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제2공적심사위원회의 김모 위원과 제1공적심사위원회 1분과의 홍모 위원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겠다. 
제2공적심사위원회 김모 위원은 문석봉이 항일 동학농민군을 숱하게 학살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1993년 문석봉을 위해 독립유공자신청서를 작성하여 그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게 하였다.
문석봉(1851∼1896)은 대둔산에서 최후까지 반일 항쟁을 하던 동학농민군을 이간질해서 죽이고, 동학농민군 탄압부대(민보군)를 이끌고서, 대둔산 반일항쟁의 최고지도자인 최공우·최사문의 항일 동학농민군을 숱하게 학살한 당사자였다. 1895년 을미사변 이후, 문석봉은 1895년 9월 18일 유성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일본군과 싸웠다. 그 공로로 국가보훈처가 1993년 문석봉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문석봉은 1895년 1월 26일 동학농민군 탄압부대(민보군) 43명을 데리고 전라도 진산군 염정동에 진입하여 동학농민군을 잔인하게 처형하고서, 처형 장면을 다음과 같이 상세히 묘사하였다. 

“때(1895년 1월 26일)는 밤 12시 정각이어서 비록 담이 큰 장사라고 해도 누군들 감히 꼼짝달싹할 수 있었으랴. 비도들 중에서 놀라서 일어난 자들은 하나하나 총이 있는 쪽으로 향하여 서게 하였으며,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게 하여 하나가 들어오면 하나를 베고 둘이 들어오면 둘을 베었다. 방내의 적 16인의 목을 베는 것이 끝나자, 남은 무리들을 모두 포박하였으며 투항한 자들은 모두 400여 명이었다. 모두 옷을 벗기고 빈 방에 가두었다.”(문석봉, 「토비략기(討匪略記)」, <의산유고>, ; <동학농민혁명 국역총서>(이하 <국역총서>로 표기)6, 158쪽.)

이렇게 문석봉은 민보군을 지휘하여 동학농민군에게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게 하여, 농민군 하나가 들어오면 하나를 베고, 농민군 둘이 들어오면 둘을 베었다. 방내의 동학농민군 16인의 목을 베는 것을 끝냈다.(低頭入來 一來一斫 二來二斫 斬了房內賊十六箇)”라고 자랑스럽게 기술하였다. 이처럼 문석봉이 민보군을 지휘하여 동학농민군 16명을 참수하였고, 400여 명을 포박하였다. 
계속해서 문석봉은 부대를 이끌고 대성사로 가서 동학농민군의 수괴를 잡았고, 투항자가 400여 명이었다. 다시 문석봉의 부대는 토굴로 가서 동학농민군 40여 명을 체포하였고, 우두머리 5명을 참수하였다. 그 날이 1895년 1월 28일이었다.(문석봉, 「토비략기(討匪略記)」, <의산유고>, ; <국역총서>6, 158∼159쪽.) 이처럼 문석봉은 동학농민군 탄압부대를 이끌고 가서, 대둔산에서 내려와 염정동 일대에서 최공우와 최사문이 다시 봉기한 1천여 명의 동학농민군을 진압·궤멸시켰다.
항일 동학농민군 탄압부대 출신인 홍건·김문주·오형덕에 대한 김모 공적심사위원의 연구에 힘입어, 홍건은 2009년 건국포장에, 김문주와 오형덕은 각각 2013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한편, 전봉준의 항일 봉기를 배후에서 막아주고 지켜준 손화중·최경선의 항일 동학농민군을 압살하여 이름을 날린 나주의 동학농민군 탄압부대(민보군) 출신인 김창균과 정석진에 대한 홍모 공적심사위원의 연구에 힘입어, 김창균과 정석진은 각각 1995년과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항일무장투쟁인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동학농민군을 압살한 인사들에게 어떻게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할 수가 있는가. 
국가기관인 국가보훈처에 참여하는 공적심사위원(민간위원)이 어떻게 20년이 넘도록 연속해서 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는가. 5번을 연임하면 공적심사위원들은 10년을 공적심사위원으로 활동한다. 10번을 연임하면 공적심사위원들은 20년을 공적심사위원으로 활동한다. 그렇다면 보훈처 공적심사위원은 종신제가 아닌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종신제가 가당키나 한가.   
정치권력도 장기 집권이 독재·독단을 일삼기에 문제이듯이, 국가보훈처 공적심사위원의 장기 연임이 서훈 심사의 공정성을 훼손한다. 보훈처는 공적심사위원의 임기 규정을 합리적으로 고치기를 바란다. 그래서 다양한 인사가 공적심사위원으로 활동하게 해야 한다.

박용규(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고려대 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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