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도시의 부조리와 소외된 이들의 비극을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설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됐다.
“배달 가던 소년이 아스팔트 위에서 오토바이와 함께 쓰러졌다
일분 일초 때문에 빨간 신호등을 마음에서 꺼버렸다
튕겨져 나간 짧은 생
가파른 길을 다 못 가고
마지막 생의 출구
부러진 화살표와 함께
흰 선 안에 갇혔다”
-‘배달 소년들’ 중
이민자와 착취당하는 노동자들, 이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낸 시인의 리얼리즘 시는 독자에게 무겁게 다가온다. 신용목 시인은 추천사에서 “노동과 착취와 디아스포라가 기록이 아니라 체험”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인은 이들의 고통을 그려내는 관찰자의 시점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들과 연대하기 위해 직접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밑’에서 시인은 “네 슬픔의 밑바닥을 천천히 답사하는 중이야”라고 말하며 그들의 슬픔 가장 깊은 곳으로까지 내려간다.
“일년 내내 슬픔은 슬픔을 말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오늘의 마음을 다 쓰겠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중
“아직 도착하지 않은 수많은 얼굴을 찾아서/나는 매일 쓴다”고 밝힌 시인은 오늘도 도시 어딘가,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혼자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는 이들을 만나고 있을 것이다.
이설야 시인은 2011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시집으로 “우리는 좀 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굴 소년들” 등이 있으며,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박영근작품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