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고 있다. 지난 몇 달간 우리를 괴롭혔던 덥고 습했던 바람은 이제 제법 시원해졌다. 아직은 가을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여름의 끝에 가깝지만, 한풀 꺾인 더위는 곧 추석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가을은 역시 독서의 계절이다. 이번 추석에는 건강을 위해 기름진 명절 음식은 적당히, 대신 독서를 통해 마음을 배불리 하면 어떨까. 고향으로 가는 길,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읽기 좋은 책 세 권을 소개한다.

1) 엄마와의 기억을 더듬으며, 인디 록커 미셸 자우너의 “H 마트에서 울다”
명절을 쇠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가족이다. 이미 오래전에 농경사회를 벗어난 한국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추석에 ‘가족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 고향으로 향한다.
미국의 인디 록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리더, 미셸 자우너의 에세이 “H 마트에서 울다”는 돌아가신 엄마와의 추억을 되돌아보며 쓴 눈물의 회고록이다.
미셸은 한국인 엄마와 유대계 미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 자랐다. 2014년 암으로 엄마를 떠나보낸 후 미셸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엄마와 함께 쌓았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엄마와 함께 자주 갔던 아시아 식재료 전문 슈퍼마켓 체인 ‘H 마트’를 찾는다. 그곳에서 작가는 다양한 한국 음식들을 통해 절반은 한국인으로, 절반은 미국인으로 살아야 했던 자신의 삶을 솔직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가족, 음식, 그리고 사랑에 관한 감동적이고 재치 있는 에세이, “H 마트에서 울다”를 읽으며 이번 추석,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2) 나이듦에 관하여, 파커 J. 파머의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봄에서 시작해 겨울로 끝나는 사계절은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생명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여름이 지나면 차분하고 쓸쓸하게 가을이 찾아온다. 나무들은 잎을 떨구며 겨울 동안의 긴 잠을 준비한다. 1년 동안의 삶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사람도 가을이 되면 슬슬 나이테를 하나 더 추가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파커 J. 파머의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는 저자의 ‘나이듦’에 관한 경험을 제시해 독자 스스로 자신의 ‘나이듦’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근대 일본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남긴 “인생은 한 갑의 성냥과 같아서, 소홀히 다루면 위험하지만 너무 진지하게 대해도 우스워진다”는 말처럼, 자못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는 삶과 죽음, 그리고 나이듦에 대해 파머는 진지하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게 접근한다. 김훈 소설가는 추천사에서 “삶에 의미가 있는가? 라는 질문은 무겁고 무섭지만, 게으른 자들이 억지로 만들어낸 의문문이라는 혐의가 짙다”며 “파머는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보다는, 이미 드러나 있는, 그러나 보이지 않았던 의미들에 관하여 말”한다고 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신체가 늙는 것이 아닌,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는 추석 연휴뿐 아니라 평생 곁에 두면서 곱씹어 읽어도 좋을 책이다.

3) 여름휴가지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삼각관계와 위험한 음모, 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
아직 나이들 준비가 안 됐다면, 다시 여름의 한복판으로 돌아가 보면 어떨까.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은 여름휴가지에서 벌어지는 한 가족을 둘러싼 미묘한 삼각관계를 그려낸다.
대학 입학시험을 앞둔 17세 소녀 세실과 그녀의 바람둥이 아버지 레몽, 그리고 그의 어린 여자친구 엘자는 해변의 별장으로 여름휴가를 떠난다. 셋의 평화롭고 행복했던 휴가는, 죽은 어머니의 친구인 안이 찾아오면서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레몽은 안과 빠르게 가까워지고, 결국은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자유분방한 성격인 자신과 달리 지적이고 질서정연한 성격인 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세실은 두 사람의 결혼을 막기 위해 자신의 남자친구 시릴, 그리고 엘자와 함께 음모를 꾸미게 된다.
사강이 18살의 나이에 발표한 이 작품은 10대 소녀의 복잡한 심리를 놀랍도록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다가오는 추석, 그리고 가을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면,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낭만적인 프랑스 해변으로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