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규 평론가: 어느 막연한 애착에 관하여
전영규 평론가: 어느 막연한 애착에 관하여
  • 전영규
  • 승인 2022.09.1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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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에세이, 『어금니 깨물기』(마음산책, 2022)

 

 

큰어른들이 안 계신 명절을 맞이한 지 어느덧 2년째에 접어든다. 2년 전 외할머니의 장례를 마지막으로, 우리집의 외조모부님과 친조모부님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당신들이 부재하는 우리집은 작은 변화가 생겼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차례와 제사를 없앴다. 동생은 결혼을 했고 조카가 생겼다. 명절 때마다 방문하던, 외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을 찾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엄마는 외삼촌 말고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외할머니를 보며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되었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오래 싫어했다. 
  엄마는 체면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어쩌다 신문 칼럼에 내 이름과 글이 나올 때면 자랑스러운 딸이라며 뿌듯해했다. 그와 함께 너가 지방대학에 입학했을 때 난 너무도 창피해 동창회도 가지 않았다는 말도 꼭 덧붙였다. 엄마는 ‘나를 낳은 엄마조차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여자’의 위치에 자신을 놓고 결혼 후 지금까지 겪은 불쌍한 자신의 삶에 대한 넋두리를 나에게 쏟아냈다.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은 ‘난 불쌍한 여자’였다. 아빠의 무능함에 대한 원망에서부터, 너희들을 위해 내가 얼마나 희생을 하고 있는지를 나와 동생들에게 자주 쏟아냈다. 엄마도 그랬듯이 나도 엄마를 오래 싫어했다.
  사건은 명절날 발생했다. 그날도 별 거 아닌 일로 화를 내며 넋두리를 늘어놓는 엄마에게, 참다못한 나는 소리쳤다. 엄마가 끔찍하게 싫고, 하다못해 엄마가 내 몸 만지는 것도 싫다고 했다. 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엄마가 내게 했던 만행을 고스란히 쏟아냈다. 한동안 내 말을 멍하니 듣고 있던 엄마는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울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오히려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았다. 그날 이후 난 엄마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다음 해 명절, 엄마는 내게 용서를 구했다. “난 결혼하고 나서도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어. 너는 꼭 사랑하는 사람 만나.” 내 앞에서 울음을 꾹꾹 눌러담으며 고백하는 엄마를 보며 난 다짐했다. 언젠가 나를 낳은 여자와, 나를 낳은 여자를 낳은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반드시 쓰리라.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엄마의 서사를 내가 엿본 적이 없고, 엄마도 내가 질문을 건넸을 때에만 짤막하게 들려주는 정도가 다였다. 내가 엄마를 헤아리는 마음은 원초적일 뿐, 서글프리만치 앙상했다. 어떤 꿈이 있었는지, 실재하는 삶과 어느 만큼이나 괴리가 있는지. 놓쳐버린 것과 비켜간 것이 무엇인지. 열망하던 것과 품어오던 것이 어떻게 변해버렸는지. 자식으로서 내가 무엇을 더 헤아려야 하는지. 나는 헤아려야 한다는 당위와 딸이라는 원초적인 감정이 뒤범벅이 된 채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김소연, 「편지 두 상자」중에서(222-223쪽) 김소연,

 

『어금니 깨물기』, 마음산책, 2022. 이후 본문을 인용할 경우 괄호 안에 제목과 쪽수만 표기한다.

 시인의 에세이를 읽으며 엄마를 향한 나의 감정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알고 있지만, 혹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들여다보기 싫었던 감정. 당신에 대한 나의 분노 때문에 나도 모르게 “서글프리만치 앙상해져 있”던 당신의 모습. 누가 엄마를 저렇게 불행하게 만들었을까. 누가 엄마에게 감당할 수 없는 삶을 안겨다주었을까. 엄마에 대한 나의 분노는 엄마를 저렇게까지 만든 자들에 대한 분노에서 오는 것이었다. 여느 평범한 여자의 삶을 만고불변한 신파극으로 만들어버리는 결혼이라는 제도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엄마의 얼굴만 보면 걷잡을 수 없이 치솟던 나의 분노는, 시인의 에세이를 읽게 되면서부터 잠잠해졌다. 그와 함께 엄마를 향한 감정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일상의 순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노력해서 얻게 되는 이해라기보다는 저절로 와닿아서 비로소 살아나는 이해”(「등 돌림」,43쪽 )의 순간이나, “찰나처럼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잠시 안아주고 떠나버리”는 평화로운 순간들.(「평화롭게」,212쪽 ) 아마 인간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이 순간 덕분인지도 모른다. 시인의 에세이 서두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전부를 말하진 않았어도 전해지는 것들이 우리에게는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저절로 와닿아서 비로소 살아나는 이해야말로 “전부를 말하지 않았어도 차곡차곡 쌓여 모든 이들에게 전해지는 것들”이 아닐까. 시인의 에세이 덕분에 나는 나를 낳은 여자와, 나를 낳은 여자를 낳은 여자 사이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그 이야기를 언제든 할 수 있게 되었다. 
  비비언 고닉의 에세이 제목인 『사나운 애착』을 빌려 시인의 에세이를 ‘막연한 애착’에 대한 이야기라고 부르고 싶다. 이제야 내가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막연히 자각하게 시작하는 지점.” (「막연漠然함에 대하여」, 147쪽 )그 지점에 이른 자가 들려주는, 당신과 함께 “더할 나위 없이 막연한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 전부를 말하진 않았어도 머지 않아 그 지점에 다다르게 될 우리는 분명 들려줄 이야기가 많을 것이리라. 

 

전영규 평론가

2017년 조선일보 평론 등단. 문학동인 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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