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秋夕)을 글자대로 풀면 가을 저녁이다. 소슬한 바람이 불고 달빛이 가장 밝은 저녁, 다가온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귀한 휴일을 보낼 책을 펼쳐본다면 어떤 책이 좋을까. 몇 년 동안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갔던 코로나19로 인해 추석의 민족 대이동도 다소 주춤했고 만나지 못한 가족들도 많았다. 전 사회적으로 대면 활동이 늘어나며 이번 추석은 오랜만에 활기를 띠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시기에 팬데믹의 경험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과 사람들 사이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는 것은 어떨까. 전염병은 ‘옮긴다’는 특성상 관계에 대해 성찰하게 했다. 사회 곳곳에서 회복이 필요한 지금, 이주란의 소설 수면 아래(문학동네, 2022)를 추천한다. 일상적이면서도 일상을 뒤흔드는 파열음을 품고 있고, 잔잔하면서 수심이 깊은 슬픔을 보여주는 이주란의 첫 장편소설이다. 한 부부가 아이를 잃는 커다란 상실을 겪은 뒤 다시 삶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봉합되지 않는 균열을 안은 채로도 삶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치유에 대해 말한다.
추석이면 불거지는 여러 갈등 국면에서 누군가의 헌신과 노고를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돌봄’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김유담의 소설 돌보는 마음」(민음사, 2022)도 읽어볼 만하다. 돌봄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되는 것은 공감의 능력이며, 문학은 이러한 공감의 상상력을 가져다주며 공감의 매개체로 기능할 수 있다. 돌보는 사람을 어떻게 ‘돌보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지금 반드시 사유할 필요가 있고 돌봄을 통해 이 사회에 필요한 공존과 연대가 무엇인지 성찰할 수 있다.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이는 전통의 명절, 역사와 가족을 말하는 정지아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 2022)는 어떨까. 몰입감이 높아 명절 연휴에 오랜만에 독서에 빠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시대의 격랑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삶을 헤쳐 나가는 인물들의 강인함을 통해 지금 이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힘을 준다.
시집을 선택한다면, 신철규의 시집 심장보다 높이 (창비, 2022)를 추천하고 싶다. 이 시집은 “상처와 고통의 연대기”(남승원, 해설)라는 평처럼 깊은 비애를 담고 있지만 오히려 그 이유로 우리에게 위로를 전해준다. 김학중 시집 바닥의 소리로 여기까지(걷는 사람, 2022)도 누락되기 쉬운 ‘바닥의 소리’를 복원하며 마치 블랙코미디 같은 핍진한 현실을 보여주는 시집으로,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가짜 행복으로 감싸 포장하거나 얄팍한 위로를 하려는 문학보다, 불행을 불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더 좋은 문학이라는 생각이 들 때, 누군가의 두려움과 불안, 내면의 어둠이 나의 마음속에 있는 닮은 감정과 만나 공명할 때 어떤 위로의 말보다 위안을 준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시집들이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김지윤 평론가
약력: 시인, 문학평론가, 상명대학교 한국언어문화전공 교수. 2006년 『문학사상』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여 시인으로 데뷔했고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