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의 시편들을 영문 번역과 함께 읽는 ‘K-포엣’ 시리즈 27번째로 이소연 시인의 “거의 모든 기쁨”이 출간됐다.
이소연 시인은 2014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면서 2020년 시집 “나는 천천히 죽어 갈 소녀가 필요하다”를 썼다.
전작에서 이 시인은 폭력적 상황에 처한 여성,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의 슬픔에 공감하며 이들의 눈물을 어루만졌다. 이번 “거의 모든 기쁨”에서도 시인은 여성, 환경, 생태, 그리고 언어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인다. 세상 만물에 깃들어 있는 시의 순간들을 발견하면서, 시인은 때로 순정한 목소리로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문장들을 선사하기도 한다.
생일이 끝났을 땐
거의 모든 기쁨이 사라졌다
거의 모든 기쁨이 거짓이 되려 할 때
한 사람이 생크림을 뒤집어쓰고 달아나는 바람에
촛불이 꺼지고 다만 한 조각 진심이 남았다
-‘부분일식’ 중
![이소연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편집 = 김보관 기자]<br>](/news/photo/202209/77136_51098_348.jpg)
질문 01
시인님께서는 주로 여성에 대해서 시를 써 오셨는데요, 어떤 점에서 여성 이슈가 시인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합니다.
창작활동에 집중을 하기 위해서는 안전한 환경이 필요해요. 그런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 마다 ‘아니, 이게 뭐야!’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때론 지치기도 했어요. 그저 나와 같이 걸어갈 사람들이 안전하게만 걸어가길 바라면서 말하고 썼을 뿐인데 여성 이슈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는 말을 듣게 되죠. 여성 이슈가 뭔지도 까먹을 만큼 안전한 세상에서 글을 쓰고 싶어요. 부분 일식이 일어나던 날, 뉴스에서는 달이 태양을 얼마큼 가렸다는데 조금도 어두워지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아는 사람은 알아요. 부분 일식이 있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들고 나가서 사진을 찍고 하더라고요. 저는 거기에서 희망을 봤어요. 여성 이슈에 대해서 우리가 함께 이야기하고 행동했던 일들이 조금도 헛되지 않다. 작은 변화지만 그 변화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말하면 부딪히겠죠. 하지만 말하지 않아서 변화가 없는 세계보다는 말하고 조금씩 나아가는 세계가 더 시에 가깝다고 믿어요.
질문 02
이번 시집은 전작과 비슷한 주제를 갖고 있지만 분위기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번에 시집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과 달랐던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두 번째 시집은 첫 번째 시집과 달리 유머랄까? 뭔가 좀 더 여유가 느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첫 시집에서는 심각한 표정을 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했다면 두 번째 시집에서는 절망적인 시적 상황에 함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대화할 때도 인상을 쓰고 이야기하면 상대가 마음의 문을 열기가 힘들잖아요. 웃으면서 얘기할 때 상대방과 다음을 도모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전쟁이나 코로나19 등, 이 세계에 내재한 폭력성을 이야기할 때, 그것을 읽는 것만으로 힘들어지는 독자들을 떠올리게 돼요. 그래서 폭력적인 세계에 반응하는 즉흥적인 감각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특정 감정에 함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비탄에 빠져 다음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질문 03
끝으로 뉴스페이퍼 독자들에게 전달하거나 못하신 이야기가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뉴스페이퍼를 통해서 문학 자장 안의 여러 가지 이슈들을 전해 듣고 있습니다. 요즘은 반갑고 기쁜 일로 많은 동료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시집이 나오고 나서야 제 시집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가끔 연이 닿은 곳에서 불러주셔서 낭독회를 하곤 했는데 시집을 통해서 나에게 마음 쓰는 사람들을 느낄 계기가 되었어요. 평소 가까이 지내는 책방 사장님들께서 낭독회를 하자고 제안해주시는 것도 정말 감사한 일고요. 책방과 도서관 사람들을 비롯한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시집을 읽고 건네준 말들도 하나하나 기억할 만큼 정말 따뜻했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마음이 환해져요. 뉴스페이퍼를 통해서 새로이 만나게 되는 독자님들에게도 거의 모든 기쁨을 담아 반갑게 인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