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교과서에 실려야 할 옛 시조 30편(5)-이규보의 귀거래사
이승하 시인의 교과서에 실려야 할 옛 시조 30편(5)-이규보의 귀거래사
  • 이민우
  • 승인 2022.12.05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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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이규보의 귀거래사

 

일난日暖코 풍화風和ᄒᆞᆫ대 조성鳥聲이 개개喈喈로다

만정滿庭 낙화에 한가히 누어스니

아마도 산가山家 금일今日이 태평인가 ᄒᆞ노라

 

(날은 따뜻하고 바람 잔잔한데 새소리 참 부드럽다

온 뜰 가득 떨어진 꽃들 위에 한가히 누웠으니

아마도 산마을의 오늘이 태평인가 하노라)

 

시조 발흥기의 이조년(12691343)보다 100년 앞선 시대에 살았던 이규보(11681241)의 시대에 시조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시조의 작자가 이규보라고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실제 그의 작품인지는 시조의 기원을 잘 연구해야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다만 이 시조가 이규보가 썼다고 가정하고서 언급을 해본다.

과거에 급제를 몇 번이나 하고도 관계官界로 나가지 못한 것은 그 무렵이 무신武臣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나이 마흔이 되도록 울화앙앙, 세상을 한탄하지만 않고 대작을 썼으니 서사시 동명왕편東明王篇이다. 출세의 기회가 왔으니 최충헌이 연 연회 자리에서였다. 송축시가 최충헌의 마음에 들어 출셋길을 달려 훗날 문신으로서는 최고 자리에까지 오른다. 하지만 최충헌 밑에 있을 때에는 좌천과 면직의 연속이었다.

이규보는 몽고와의 외교문서 담당관으로 고려에 대한 탄압을 누그러뜨려 줄 것을 간구하는 진정표陳情表로 유명해졌으니 어찌 보면 구국의 충신이었다. 최이가 집권하자 이규보는 권력자의 눈치를 보았고, 아부도 하면서 보신책을 강구하였다. 독재정권 아래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 택한 생존방법 같은 것이었을 텐데, 유배도 갔다 왔으니 일생이 파란만장했다고 볼 수 있다. 나이 일흔이 되자 모든 공직을 내려놓고 귀향하여 시만 쓰다 죽었다. 만약에 이 시조의 작자가 이규보가 확실하다면 우리 시조의 역사는 124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멋진 장면이 나온다. 뜰 가득 떨어진 나뭇잎 위에 드러누워 안빈낙도를 만끽하는 장면이다. 목련을 노래한 시인들은 많았다. 대체로 너무 일찍 지고 시커먼 색으로 보기 흉하게 변하는 것을 한탄하는 내용이 많았는데 그 꽃잎 위에 벌렁 누워 내 집의 태평을 노래한 이는 없었다. 물론 이 시에 어떤 꽃인지 나와 있지는 않다. 그 꽃이 무엇이든지 간에 뜰 가득 진 꽃들 위에 한가히 누웠으니라고 썼으니, 이것이야말로 풍류가 아니고 무엇인가. 도연명의 귀거래사만 좋다고 할 것이 아니다. 이규보의 시 중에는 명작이 즐비하다. 고려조 때는 이인로와 이규보가 있었고 조선조 때는 김정희와 박지원이 있었다. 이 시조도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으면 한다. 낙화유수落花流水라고, 떨어진 꽃잎을 주워 물에 뿌려주는 것도 멋진 풍류지만 그 꽃잎들 위에 누워 보는 것, 누워서 하늘이나 별을 보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은 풍류라고 생각한다.

 

사진=이승하시인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향일성의 시조 시학』,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인산시조평론상, 유심작품상,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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